작년 봄, 건축가 유현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1시간 남짓했던 그의 강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학교와 교도소의 공간 구조가 같다는 것이었다. 두뇌가 가장 말랑말랑하고 무엇이든 흡수하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기의 12년을 감시와 통제를 위한 공간 속에서 대학 입시라는 하나의 답을 좇으며 길들여지는 것이다. 교도소. 이것이 한국 교육 공간의 현실이라고 한다. 다소 충격적이었고 너무 과격한 표현은 아닌지, 나의 어린 시절 교육 환경을 떠올리며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학교는 물론 미술 학원, 피아노 학원 등 감성과 창의를 강조하는 학원도 교도소의 구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는 주거 환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파트 생활이 본격화되며 더 심각해진 것 같다. 이젠 노력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네모나고 평평한, 단순한 공간 안에서 단조로운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부분 건물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크리에이티브를 강조하는 기업들이 사무 공간 디자인에 투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창의성은 조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데, 이 창의성이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유독 창의성을 강조하는 기업의 사무실 곳곳에는 동료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장소나 카페 같은 편안한 분위기의 회의 공간, 오픈형 커뮤니티 룸 등을 만든다. 이는 교육 환경에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하기를 배우는 문화예술교육 공간에서는 더욱 강조되어야 할 사항이다. 유아교육 시스템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에 따르면 학습 환경은 ‘제3의 교사’로 여겨질 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교실 환경이 제대로 형성되어야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는 시설을 살펴보면 일반 강의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정부, 민간단체 등이 국내 문화예술교육 환경이 미흡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봄에 출간된 『삶이 예술이 되는 공간』은 이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문화예술교육 공간이 어느 한 시설의 부수적 존재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독립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서울, 춘천, 영주, 광주, 제주 등 전국을 다니며 엄선한 공간 15곳을 소개했다.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만든 사례, 청소년을 위한 공간, 마을의 정서와 특징을 콘텐츠로 만든 사례 등이 담겨 있다. 사실 취재에 들어가기 전에는 15곳을 여행하며 즐겁게 다니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평소 즐기고 관심 가졌던 분야인 만큼 무엇이든 흥미로워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 곳, 두 곳 사례를 접할수록 생각이 많아졌고 공간이 주는 힘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청소년 시기에 이러한 공간을 경험하고 교육을 받았다면 난 지금과 좀 달랐을까?’라는 질문은 취재를 마칠 때마다 스스로 되묻는 문장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광주의 청소년삶디자인센터(이하 ‘삶디’)를 방문했을 때 특히 더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이었던 건물을 청소년을 위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사용하는 곳이다. 청소년들의 진로 활동과 문화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고 스스로 배움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기획되었다. 으레 공공기관에서 만들었다고 하면 공간이 완성된 후 운영자가 일정 기간 계약을 맺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인데 삶디는 기획부터 그러한 관례를 엎었다.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삶디 아이들의 움직임이었다. 저녁 5~6시쯤이었던 것 같다. 낮에는 한산했던 공간이 저녁이 가까워지자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삶디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1층 다이닝 룸에서 준비한 저녁 식사를 아이들과 함께 먹으며 시작한다. 학원 일정으로 빡빡한 여느 도시 청소년들과 사뭇 다르기도 하거니와 1층과 2층의 뻥 뚫린 공간 사이로 서로 힘차게 이름을 부르고 대화하는 모습이 묘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즐거워 보였고 동작이 시원시원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좋은 에너지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 직업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실제 직업인들이 사용하는 장비와 공간을 갖춘 것도 인상적이었다. 입시 중심의 교육을 받으며 적성조차 제대로 찾아보지 못한 채 사회에 나오는 것이 현실인 지금, 삶디의 아이들은 그곳에서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직접 모임도 만들며 자신의 진로를 적극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밝은 에너지와 열정, 자신감에는 개방감을 강조한 인테리어와 콘텐츠에 딱 맞게 구성된 공간이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공간이 주는 기운만으로도 색다름을 느끼며 판타지를 자극하는 곳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부천아트벙커B39(이하 ‘B39’)와 문화비축기지가 강렬했다.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B39와 석유를 보관하던 문화비축기지는 본래 인간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일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겪게 된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적막감, 공간에 압도당하며 느끼는 두근거림, 생경한 풍경이 주는 어색함 등의 감정들은 안 쓰던 근육을 쓴 것처럼 세포를 자극하는 것 같다. 감정의 변화는 새로운 인식을 만든다. 창의성은 일상의 것을 다르게 인식하면서부터 생긴다. 이색적이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문화예술교육 공간들, 삶을 예술로 만들어주는 공간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arte365
박은영
동덕여자대학교에서 공예를 전공했다. 라이프스타일 잡지 [메종] 어시스턴트 에디터를 거쳐 [행복이 가득한 집]과 월간 [디자인] [까사리빙]에서 기자로 일했다. 단행본 『손재주로도 먹고삽니다』(공저),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삶이 예술이 되는 공간』을 썼다. 현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공예+디자인]의 객원 편집장으로 일한다.
eunyoungstudi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