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 아닌, 청년도 아닌 중간 시기를 거치는 청소년들은 감정이 들쑥날쑥하다.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움츠러들기도 한다.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가도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몰라 조심스럽다. 어린이보다는 책임감을 요구받으면서도 청년보다는 미성숙한 ‘청소년’이라는 시기. 이러한 청소년 시기에 접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청소년의 다양한 감정과 더불어, 자유롭고 창의적인 의식과 행동을 이끌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를 알아 가는 데 있어 문화예술교육은 청소년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위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캐나다의 중·고등학교 예술교육 프로그램인 ‘사회 정의를 위한 예술(The Arts for Social Justice)’과 토론토 릴아시안 국제영화제(Toronto Reel Asi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운영하는 아시안 청소년 영화제작교육 프로그램인 ‘숨은 목소리(Unsung Voices)’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예술 활동으로 목소리를 내는
– 사회 정의를 위한 예술(The Arts for Social Justice)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비영리 예술교육 단체 ‘바이브 아트(Vibe Arts)’는 체계적인 예술교육 과정을 제공하며 신진 예술가를 토론토 지역 중·고등학교에 지원하고 있다. 기존의 학교 내 예술교육 과정에서는 예술의 기술을 습득하고 정서를 함양하는 것이 주요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때때로 시의성이 있는 주제를 다루기가 어려울 때가 있는데, 바이브 아트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이에 바이브 아트는 최근의 사회 동향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꼽히는 ‘사회 정의’를 주제로 시각예술,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영역의 예술교육과 결합한 ‘사회 정의를 위한 예술’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이는 지역 사회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두 예술 영역의 젊은 신진 예술가가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청소년의 창의적 발상을 이끌어 내기 위함과 동시에 아직 경험과 경제적 자립이 부족한 신진 예술가의 육성에도 힘을 쏟기 위함이다.
추상적 개념으로 인지하기 쉬운 ‘사회 정의’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청소년들은 신진 예술가의 도움으로 일상 속에서의 차별, 빈곤, 부주의, 괴롭힘 등 정의로운 사회 설립을 방해하는 요소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사회 정의’에 대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웨스트뷰 센트러니얼 중·고등학교(Westview Centennial Secondary School)에서는 많은 학생이 제인 앤 핀치(Jane and Finch)라는 특정 구역에서 살고 있는데 우범 지대로 인식되고 있는 제인 앤 핀치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편견 어린 시선을 많이 받아 왔다. 그러한 학생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반영하여 ‘이것이 제인 앤 핀치다(This is Jane and Finch)’라는 비디오를 제작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구체적인 편견에 대한 내용과 함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들이 발견한 제인 앤 핀치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이미지와 인터뷰로 엮어내어 자신들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집이라는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해 냈다.

‘이것이 제인 앤 핀치다(This is Jane and Finch)’ 비디오 중 일부 발췌

한편, CW 제프리 중·고등학교(CW Jefferys Collegiate)에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변화를 위한 상자’라는 작품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고민하고, 이를 사진이나 그림, 단어로 표현하여 상자를 제작했다. ‘키가 작고 약해 보인다’는 외적인 선입견부터 ‘고층 건물에 거주하는 이유로 부자일 테니 남들을 업신여길 것’이라는 추측성 선입견까지, 학생들은 타인 혹은 자신에 대해서 느꼈던 선입견들을 상자에 담았다. 그러고 나서 학생들은 자신이 제작한 상자를 머리에 쓰고 발표나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어떤 학생들은 상자를 부수거나 다른 학생과 상자를 연결하기도 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다른 학생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당당히 표현하는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변화를 위한 상자(BOXES FOR CHANGE)’

그 밖에 클라우드 왓슨 예술 중·고등학교(Claude Watson School for the Arts)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연극 대본을 작성하고 연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빈곤에서 오는 식생활의 차이를 인지하고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장면 등을 통해 이러한 관점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한 학생은 종업원에게 패스트푸드의 대표 음식인 치킨 너겟을 간단하게 주문하는 반면, 다른 학생은 고급 갈비와 브리 치즈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를 주문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의 음식 주문이 보다 다양하고 복잡하며, 특정한 식재료를 언급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를 연극에도 잘 반영하였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겪었던 부당했던 경험을 이끌어 내어 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데 있어 도움을 주고 있는 신진 예술가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바이브 아트는 ‘신진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 예술가에게 조금은 특별한 공공장소에 입주 공간을 제공한다. 경찰서, 구세군 상점, 지역 사회 센터와 같은 공간이 입주 공간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이는 신진 예술가에게 사회 정의 문제를 탐구하고, 이에 맞는 예술 매체를 선택하게 하며, 예술가 자신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인식을 제고하여 공동체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신진 예술가는 입주 공간에서 지역주민들과 만나며 주고받은 영감을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시선에 맞게 변형한 후, 사회 정의를 위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신진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중 지역민과의 교류

‘사회 정의를 위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은 문화예술, 환경,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체를 지원해 주는 온타리오주 트릴리움 재단(Ontario Trillium Foundation)에서 3년 동안의 프로그램의 운영 자금을 조달받아 지난 2017년까지 진행되었다. 바이브 아트는 각 예술 영역(시각예술, 음악, 무용, 연극)에 맞는 문헌, 기사, 비디오 등의 자료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여 각 학교에서도 이를 참고로 교사들이 예술교육을 진행할 수 있도록 위에 소개한 바이브 아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청소년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데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 그러나 꼭 말해야 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예술은 즐겁기 위해 존재하기도 하지만, 어떤 예술은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존재하기도 하지요. 그러한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지 생각하게 하고, 이를 예술의 형태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제작을 통해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을 알아가다
– 청소년 영화제작교육 프로그램 ‘숨은 목소리(Unsung Voices)’
매년 11월에 열리는 토론토 릴아시안 국제영화제(Toronto Reel Asi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의 사무국은 영화제가 시작되기 한참 전인 5월부터 아시안 청소년 영화제작 교육 프로그램 ‘숨은 목소리(Unsung Voices)’ 운영 준비로 분주해진다. 실제 영화 현장에서 활동 중인 아시아계 캐나다인을 영화제작 강사로 선발하고, 토론토 지역 학교에 공고문을 보내어 프로그램에 참가할 아시안 혹은 아시아계 캐나다인 청소년을 모집한다. 자신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영화 제안서를 제출하고 면접 과정을 거쳐 모집된 청소년들은 최대 8분 길이로 자신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시설과 장비를 제공받는다. 영화 제작비를 포함한 프로그램 전 과정은 무료로 제공되는데, 이는 정부 기관인 글로벌 토론토(Global Toronto) 및 민간 통신사 기업인 벨 미디어(Bell Media)의 해롤드 그린버그 펀드(Harold Greenberg Fund)가 스폰서로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발된 참가자들은 실제로 영화제작에 들어가기 앞서 6월~7월 사이에 총 12회로 구성된 워크숍에 참석하게 된다. 이 기간을 통해 참가자는 영화제작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이때 이야기 구성,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디지털 편집과 같은 기술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 및 예술적 표현에 대한 비판적 사고 능력, 단체 작업과 리더십에 관한 태도 등도 함께 배워 나간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같은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도 하고, 자신들보다 앞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아시아계 캐나다인 영화제작 강사에게 기술을 전수받으며 자신들의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영화제작 강사는 그 존재 자체로 참가자들에게 롤 모델이 되는 것이다.
다문화 사회인 캐나다에 있어도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참가자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극심히 느끼며 성장통을 겪는다. 이때 캐나다 사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같은 아시아계의 영화제작 강사는 참가자들에게 긍정적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특징은, 참가자들이 완성한 영화가 실제로 영화제의 큰 스크린에 상영되고, 참가자들이 상영 무대에 올라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에 있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고민을 표현한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이 잘 되었는지 직접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하고, 교감을 나누며 자신의 정체성이 사회와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 시간을 갖는다.



아동권리 학자 로저 하트(Roger Hart)는 청소년의 사회 참여에 대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에 영향을 주는 의사 결정을 공유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예술이야말로 삶에 있어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예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사회 참여로 이어지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그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본인이 속한 공동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의 한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신일
신일_영화 연출가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 후 일본과 한국에서 방송, 광고, 뮤직비디오, 출판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영상 콘텐츠 제작 일을 즐겁게 해왔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영화분야 예술강사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 영화를 만들며 문화예술교육에 눈을 떴다. 일본, 한국, 미국에서 각각 독립영화를 제작한 바 있으며 현재는 토론토 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캐나다에서 새로운 영화제작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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