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 그리고 장애인분야 복지기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평가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장애인분야 문화 복지에 대한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발달장애 자녀를 두고 있는 덕에 꽤 오랫동안 발달장애 아동·청소년들과 함께 미술활동을 해왔다. 그것은 그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되었으며, 지금은 그들과 함께 조그만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내가 함께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중증 장애로 현재 취업이 거의 어렵다. 그래서 어떻게든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상상하며 협동조합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할 일은 미술활동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상품이 되는 것은 나와 부모들, 또는 디자이너들의 매개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방문한 복지시설*도 대부분 직업 활동이 어려운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고력이 미약한 중증 발달장애인의 경우 반복 작업이 가능한 일부 자폐성 장애 외에는 직업 활동이 거의 어렵다. 심지어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복지시설의 경우 대부분 이러한 발달장애인이 그 주류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주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발달장애인들은 복지시설에서 시간을 보낸다. 말하자면 수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복지시설들의 모습은 일단 이들을 관리해주고 일과를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복지시설: 복지관, 주간보호센터, 보호작업장 등의 시설을 의미함
안타깝게 느낀 것은 장애인 복지라는 것이 현재로서는 딱 거기까지 인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하루를 어떻게 소비하는가 하는 과제가 당면한 가장 직접적인 과제로 보였다. 물론 장애인 교육의 관점에서 미래지향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예술을 향유하는 부분보다는 장애인의 사회적·정서적 능력이나 작업 능력을 개선하여 장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강사분들의 접근도 전반적으로 그런 측면을 강화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하는 반복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강박이 작용하고, 그래서 그들이 이런 것도 해냈다고 보여줘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접근은 자칫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전제로 한 유예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미래가 가능하지 않다면 그들은 평생 그런 유예를 살아야 하는 셈이다.
나는 나의 아이 때문에 10년 전쯤 한 장애인 작업장에 견학을 간 적이 있었다. 장애자녀 부모들과 함께 아이가 미래에 어떻게 직업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내가 간 작업장은 쇼핑백을 만들고 있었는데, 40대~50대로 보이는 발달장애인들이 봉투에 손잡이를 끼우고 있었다. 아주 느린 속도로 더듬적더듬적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듯이 보였고, 그저 마치 서커스 동물처럼 훈련된 대로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 게다가 일에 대한 능률이 없음은 뻔했다. 그나마 과잉행동이 있는 나의 아이는 저런 일조차 할 수 없을 거라 느낄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든 비장애인과 동일한 일을 낮은 단계에서라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성인이 된 우리 아이는 양치를 제대로 못하는데 중 3 때쯤 양치교육을 1년을 넘게 시킨 적이 있다. 순서를 정하고 번호를 매겨서 외워서 칫솔질을 하게 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양치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끝내 이해하지 못했기에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성은 높아서 끊임없이 사람을 찾고 만나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감정과 즐거움이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런 면에서는 비장애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 자기 느낌과 욕구에 충실한 반면 생각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면에서 비장애인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참고 견디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들에게도 그들 방식의 삶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복지라면 바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복지가 되는 셈이다. 그들도 나름 자기의 욕구를 추구하는 작업을 한다. 설령 우리가 보기에 작업 같지 않을지라도 그런 작업이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나의 활동에 참여하는 한 중증 뇌성마비 친구는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펜을 쥐고 종이에 선을 긋는 일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 그 선에는 그의 의지와 함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떤 친구는 늘 동영상을 찍으면서 다니고, 어떤 친구는 테이프 질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무의미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소중한 작업이다. 발달장애 복지와 교육, 특히 문화예술교육은 바로 그러한 그들의 삶이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도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받을 때 성취감과 자존감을 느낀다.
나는 우리 아이 친구들을 모아서 미술 활동을 해온지 올해로 7년째이다. 그것은 이제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그것이 하나의 공동체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물론 거기에는 매개자가 필요하고 또한 사회 복지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그들의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데 미술전시회가 큰 몫을 했는데, 일반적인 전시하고는 좀 다른 점이 있다. 내가 보아온 많은 장애인 미술 활동들은 대체로 목표와 과정이 정해져있는 과제를 수행한 것들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예상된 결과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데 머무른다. 그러다 보니 활동보조인이나 강사가 많은 부분에 손을 대주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나의 미술활동에서는 매체가 제공될 뿐 어떤 결과를 가져와야 하는지 목표가 제시되지 않는다. 그것은 각자 그들의 욕구에 의해 수행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그리고 나는 단지 그것들과 관객이 어떻게 만나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보여주는 방식에서 개입한다. 어쩌면 그것이 더 큰 고민을 요구하지만 말이다.
나는 발달장애인의 작업에 비장애인이 흉내 낼 수 없는 매우 소중한 강점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무엇보다도 비교의식이 아주 낮기 때문에 -장애 정도가 클수록 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을 충분히 즐긴다. 결과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자신의 행위, 혹은 재료의 물성, 어떤 형태감에 흥미를 느끼며 그것을 즐긴다. 그래서 놀랍게도 각자 다른 결과들이 나오는데,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예술적 특징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늘 비교의식의 억압감에 시달리는 비장애인들에게 독특한 미적 흥미와 해방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것이야 말로 발달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미술 전시는 어떻게 그것과 관객이 만날 수 있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고 할 수 있다. 액자에 담아지거나, 주렁주렁 매달기도 하고, 도자기에 그려지기도 한다. 때로는 천에 그려져 에코 백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비장애인 바느질 동호회 활동과 결합하여 그렇게 변신할 수도 있고, 때로는 목공하는 분들의 도움으로 생활용품에 담아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비장애인과 협력 관계를 통해 그 결과물들은 더 멋지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것들은 관객들이 구매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소비될 수 있고, 지속적인 활동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한 형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복지는 단지 그들의 하루를 관리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비장애인 사회에 일방적으로 적응하거나 혹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현재적 삶이 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특성과 즐거움, 강점, 등을 어떻게 비장애인들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혹은 문화 복지는 그러한 측면에서 부단히 모색 되어야 할 것이다.

  • 이번 2017년 전시에 출품된 냄비받침이다.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 편을 나무에 끼워 제작했다. 전시에서 작품이 팔리면 그것을 가져간 사람의 인증샷으로 대체되었고, 전시가 끝날무렵에는 사진전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발달장애인의 강점 중 한 가지는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마음을 품게 한다는 것이다. (2017년 전시 ‘마음의 발굴’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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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_전 서천고 교사, 작가
전 서천고 교사로, 2017년 예술강사 평가위원이자 복지기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예술강사 선발 심사위원을 지내고, 컨설팅에 참여했다. 현재 서천 지역에서 발달장애 아동 청소년들과 미술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kig814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