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보다 소리에, 무용보다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이 서로의 차이점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현시대다. 필자는 소리와 움직임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으로서, 또 표현이 고갈된 시대에 음악으로 표현을 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예술캠퍼스 <두근두근 두드림, Taps> 프로그램 자체에 관심이 갔다.
먼저, 공간, 소리, 움직임의 연결고리가 어떻게 재현될지 궁금했다. 공간과 소리, 소리와 움직임은 어느 정도 쉽게 관계성을 부여할 수 있었지만, 이 세 가지가 어떤 관계를 이루며 ‘창의성’을 끌어낼지는 미지수였다. 음악, 무용, 인문학이라는 장르를 아우르는 수업은 어떨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9월 16일(토) 오전 9시, 서울N타워 아래 가로수들 사이로 보이는 숭의여자대학교 무용실을 방문했다.
스토리에 소리와 움직임을 얹다
이 프로그램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논리적인 체험을 통해 익히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기획 의도로 하여,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악기로 표현해보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필자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입장에서 항상 신경이 쓰이지만 쉽게 간과하게 되는 것이 바로 ‘표현’의 부분이다. 이번 프로그램의 총괄자인 김종균 숭의여자대학교 교수는 서사를 중심으로 결과보다는 과정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고, 그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오전 9시가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 모였다. 왜인지 모르지만, 참여자들이 대부분 여학생일 것이라는 편견은 무용실을 반 이상 가득 채운 남자 학생들을 본 후에 보기 좋게 깨졌다. 이미지를 소리로 만들고 몸으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남학생들이 부담을 느끼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수업을 참관하면서 이 예상 역시 빗나갔다.

학생들은 현장체험 활동을 통해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역의 소리를 채취하여, 컴퓨터와 전자 악기를 이용해 상상의 소리를 구현하는 과정을 수행한 상태였다. 그런 작업을 함께해서인지 강사와 학생들의 관계는 활기차고 자연스러웠다.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강사들이 요구한 사항에 응했고, 강사들은 학생들에게 친근한 방식으로 지식과 정보를 공유했다. 딱딱하고 전형적인 수업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관계처럼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학생들은 두 조로 나누어져 한 조는 이전 시간에 진행한 현장답사를 토대로 미리 구상하고 연습해온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머지 한 조는 타악기를 활용해 영화에 사운드트랙을 입히듯 실시간으로 그 위에 소리를 얹었다. 한 조원들은 일제 강점기를 표현하기 위해 둥그렇게 손을 잡고 원을 만든 다음, 그 안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다른 조의 조원들은 각자 배정받은 타악기를 활용하여 그 움직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원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움직임과 그를 막으려 하는 움직임에 타악기의 둔탁하고 무게 있는 리듬이 더해지고 음악의 세기와 속도가 빨라지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이 장면에서 시각적인 묘사가 청각적으로 표현되고 학생들이 그 과정을 직접 느끼고 즐기는 것을 눈과 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어진 수업에서는 사운드맵*을 보며 서로의 의견과 느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항상 똑같은 음표들로 가득한 악보만 보던 학생들에게 사운드맵은 콘셉트부터 생소하고 신기했을 것이다. 현장답사에서 보고 들은 감정들을 종이 위에 이미지로 묘사한 후 그 이미지를 통해 소리를 표현하는 과정은 아마 중학생들로서는 처음 해보는 경험일 것이다. 이 시대의 학생들은 무언가를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다. 곡을 연주하려면 일단 음표가 빼곡한 악보가 손에 쥐어지게 되고, 한 음이라도 틀리지 않기 위해 연습해야 한다. 추상적으로 내 귀에 들리는 소리,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 어떤 공간이 주는 이야기에 대해 악보로 표현하는 기회란 더욱 흔치 않다.
* 사운드 맵 : 위치를 나타내는 미디어의 한 종류. 장소와 그 장소가 나타내는 소리를 연결하여 위치를 나타낸다.
학생들 각자가 그림으로 표현한 소리 안에 담긴 이야기는 신선하고 흥미로웠으며 성숙했다. 한 학생은 일본 여인과 조선 여인의 얼굴을 그렸다. 특히, 마땅히 가져야 할 자유를 빼앗긴 조선 여인의 모습을 선명하게 표현했다. 글자로만 배우던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니 학생들의 입에서 나오는 의견들도 새로웠다. 개인적으로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예술캠퍼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학교 사회, 음악 시간에도 하나의 정규과정으로 포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이상의 것을 얻는 수업
프로그램의 목표 중 하나는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다. 수업 내내 등장한 ‘위안부’라는 주제는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앞서 진행된 움직임, 소리, 사운드맵 등 예술성에 초점을 맞춘 소재와 조금은 어색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현장 체험을 통해 미리 역사를 배우고 실제 그 장소에서 소리를 녹음하며 상상력이 더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 실감나게 역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3시간 안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한 과정 한 과정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타악기를 통해 감정과 스토리를 표현한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학생들이 움직임과 소리의 관계를 파악하고 고조된 분위기를 계속 끌어올려 음악적으로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운드맵을 나누는 시간도 직접 그린 이미지를 짧게나마 목소리나 도구를 이용해 표현하는 부분이 포함되었다면 학생들이 내용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 아쉬울 수 있는 조건 속에서도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었다는 점은 인상 깊었다. 물론 그것은 보조강사들과 스태프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프로그램 내내 누가 학생이고 스태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융화되며 참여를 이끌었으며,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용기를 북돋웠다.

더 넓은 소리의 세계를 향해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예술캠퍼스라는 카테고리 안에 시간적인 한계 등 제한적인 요소들이 있었지만, 한편 이 덕분에 소리와 움직임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소리를 발견, 혹은 구현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피아노의 현을 퉁기거나, 피아노를 활로 연주해 현악기처럼 쓰거나, 바이올린의 몸통을 두드려 타악기처럼 쓰는 활동을 통해 악기들의 활용 가능성을 발굴하며 더 넓은 소리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3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20여 명의 학생이 함께한 과정은 실제 시간보다 훨씬 짧게 느껴졌다.
향후 과정에서 진행될 컴퓨터와 전자 악기로 사운드를 구현하는 수업을 참관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김종균 교수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소리를 구상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디지털 기기에 관심이 많은 남학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휴대폰이나 컴퓨터 없이 살 수 없는 현시대에 사는 학생들이 좀 더 친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일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몸이나 목소리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있어 서툰 학생들에게 컴퓨터는 아주 좋은 방패가 될 수 있다. 꼭 수업 현장이 아니라, 집에서도 혼자 원하는 소리를 언제든지 구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학생들의 참여도와 집중력은 훨씬 좋았다. 물론 일부 학생은 과정 내내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이런 경험을 함께할 수 있다는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몇몇 눈에 띄는 학생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수업 중에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아낌없이 표현했다. 타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에는 강사에게 다른 방식을 제안하기도 하고, 조별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몸으로 마음껏 표현했다. 이번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예술캠퍼스 <두근두근 두드림, Taps> 수업을 통해 그동안 학생들이 교실 안에서 수동적으로 배워온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수업 後… 학생들의 말 말 말
“예전에는 소리를 그저 잡음으로만 생각했는데, 이 과정에 참여하고 난 후 소리를 활용해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악기로 음악을 표현하는 것보다 주변에 있는 소리를 활용할 때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일반적인 악보는 규칙적이지만 사운드맵은 내가 원하는 것, 상상하던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점이 좋았다.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색다른 체험이라 흥미로웠다.”
“실제 그 장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상상하면서 소리를 녹음하니 교실 안에서 배울 때보다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고 마음속에 와 닿았다.”
이 프로그램을 총괄한 김종균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생적으로 예술을 선별해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일이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면 어떤 예술을 접하든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김종균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소수의 학생이더라도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 역사성과 예술성, 창의성을 부여한다는 취지를 모두 부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직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과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소리 분야의 아티스트로서 기쁜 마음이다. 앞으로도 더욱 어린 연령대에서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길 기대한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주말예술캠퍼스> 프로그램
<주말예술캠퍼스>는 단순 체험 형태의 예술 활동을 넘어 예술과 인문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장르가 통합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주말 아동·청소년 및 가족들이 참여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올해 <주말예술캠퍼스>에서는 전국 11개 대학의 예술 관련 학과 연구진과 교육강사가 협력해 개발한 다양한 통합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해당 프로그램은 12월까지 서울, 부산, 전남 등에서 운영된다.

고지인_아티스트
고지인_아티스트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가르치고, 음악에 관한 글을 쓴다. 미디어아트 그룹 ‘Collage+’의 사운드 디렉터이자 나사렛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컴퓨터음악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