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란 곳이 그렇다.물건을 사고파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다양한 삶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낯설지만 어딘가 친숙한 그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일 수 있는 공간.그래서 시장하면 제일 먼저소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옛 장터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이웃의 소식이 반갑고,모르는 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탁주 한 잔 마셔도 꺼릴 것이 없었던 그 소통의 시간이 그곳에 있었다.최근 강릉 시내 한복판에 이런 소통의 장이 열렸다고 한다.이름도 익살맞게깨비 예술장터 뚝딱이란다.이곳에서 만나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기대 반,설렘 반으로 장터구경을 나서 본다.

 

이야기 하나.대중과 예술의 자유로운 만남

 

강릉아트마켓깨비 예술장터 뚝딱은 강릉문화예술진흥재단 주최,강릉시의 후원으로 매달 둘째 주,넷째 주 토요일 오후3시에서 오후9시까지 강릉임영관지 관아터에서 열린다.말 그대로 한 달에 두 번 뚝딱 나타났다가 뚝딱 사라진다.정말 도깨비들이 모여 잔치라도 벌이는 것일까 싶지만,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작 예술가의 작품 전시와 판매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또한 시민들이 직접 창작체험까지 할 수 있다고 하니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면서 보다 활발한 창작활동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대중들에게는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 전시 관람과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에 한발 더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한 마디로 장터가 갖는 자유분방한 특성을 활용하여 대중과 예술이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을 만든 것이다.

 

도내 유일의 창작 예술장터인깨비 예술장터 뚝딱은 창조적인 문화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라면 모두가 참여 가능하다.공연예술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싶은 공연예술가도 물론 환영이다.평소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고,새로운 문화 체험을 원하는 시민들에게도 문은 활짝 열려있다.신청만 하면 벼룩시장이나 책 나눔 장터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행사를 즐기는 입장이 아닌 직접 운영하는 주체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참가신청은 강릉아트마켓 홈페이지에서 가능)이곳 예술장터의 주인은 도깨비가 아니라 창작 예술인과 시민들이다.요술 방망이 같은 그들의 손끝에서 과연 어떤 보물들이 쏟아져 나올지 궁금하다.

 

이야기 둘.전통과 현대의 이색 조화

 

 

 지난924일 토요일 오후,햇살이 좋은 주말을 맞아깨비 예술장터 뚝딱이 열리는 강릉 임영관지 관아터를 찾았다.강릉 임영관지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강릉의 객사가 자리했던 터로 강릉을 찾은 중앙관리들이 머물곤 했던 곳이다.최근 복원된 강릉 임영관지 관아터는 마치 오래전 기상을 되찾은 듯 고운 단청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하얀 천막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그 아래에는 창작 삼매경에 빠진 손님들과 작가들의 모습이 보였다.본격적으로 장터를 둘러보기에 앞서 우선뚝딱 환전소를 찾았다.이곳에서의 모든 체험활동은 엽전 화폐로 이뤄지기 때문이다.엽전1냥에3000.생김새가 꼭 옛날 사람들이 새끼줄에 끼워 쓰던 그것과 닮아있다.진짜 돈을 내는 것보다 훨씬 정감있고 이색적인 느낌이다.엽전 두 닢을 손에 꼭 쥐고 여유롭게 체험부스를 둘러보기 시작했다.초크아트와 냅킨아트를 비롯해서 리본공예,손뜨개 공예,비즈공예,나무공예,전통매듭공예 등 동양과 서양,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 중이었다.

 

예술장터를 둘러보며 이곳은 전통과 현대의 문화가 어우러져 빚어낸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옛 숨결이 배어있는 곳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꽃피우고 그것을 앞으로도 지속시켜 가게 하는 힘.과거와 현재,미래를 관통하는 문화예술의 힘이 가슴 언저리부터 묵직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야기 셋.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작품

 

이왕 엽전도 생겼으니 직접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기로 하고 나무 팔찌 공예체험 부스에 자리를 잡았다.작가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가느다란 실에 조그만 나무구슬을 끼워 넣기 시작했는데 구슬의 색깔도 다양하거니와 모양도 제각기라 선택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보기 좋은 작품을 만들 자신이 없던 터라 자꾸 손이 떨려왔다.그러다 작가 선생님과 눈이 마주칠 때면 멋쩍게 웃어 보였더니 괜찮다는 말로 초보 예술가를 격려한다.용기를 얻어 겨우 완성한 작은 팔찌 하나.그래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행사장에서 나눠준 쿠폰에 체험 인증 도장을 꾹 찍어주는 작가 선생님.다섯 개의 체험도장을 받으면 무료로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옆 부스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비누공예 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를 격려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다른 부스에서도 공예 체험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가들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작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작품을 완성한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조금 서툴러도 나만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그것이 보물을 얻은 것보다 기쁜 이유다.이러한 성취감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특히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꼬마들이 눈에 띄었는데 다양한 창작활동을 통해 성취감은 물론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적 효과도 기대되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장터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다.땅 위로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의 키만큼이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감성도 쑥쑥 자라고 있었으리라.앞으로도 이 자리에서 더 많은 지역 예술가와 시민들이 만나 소통하며 문화 예술 교류의 장으로서 또는 교육의 장으로서 오랫동안 함께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강릉아트마켓깨비 예술장터 뚝딱은 문화예술이 어렵고 먼 존재가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함께 숨쉬는 생활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그런 깨달음을 느끼고 나서야 문화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진_이연하 강원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