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기반한 일본의 폐교 활용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다

다양한 지역적 상황을 고려하라! 메뉴얼 보다 똑똑한 일본의 폐교 활용사례를 만나본다.

이 사업의 역할 분담에서 필자가 주로 담당하게 된 부분은 전국에 산재한 폐교에 대하여 그 실태를 파악하고 자료를 수집, 분석하는 것이었다. 막연히 전국에 수많은 폐교가 있을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수천 개의 학교들이 문을 닫은 현실을 보게 되면서 때로 막막하기도 했고 가슴 아픈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기도 했다. 이렇게 국내의 자료들을 조사,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외 사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우리와 비슷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을 일본의 사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꾸준히 늘고 있는 일본의 폐교

며칠동안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사례들을 검색하던 중, 일본의 문부과학성에서 비슷한 유형의 연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연구 내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궁금한 것이 많아져 급기야는 일본을 직접 방문, 그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3박4일의 일정을 통해 문부과학성과 지역의 폐교를 주관하고 있는 두 곳의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두 곳의 폐교를 직접 방문하여 그들이 폐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방식을 통해 운영의 묘를 살리고 있는지 인터뷰했다. 빡빡한 여정이었지만, 나름대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


케이단쿄( 사단법인 일본예능실연가단체협의회) 의 야마토 시게루씨와 야마다 아키코씨

우선 처음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은 학교라는 시설의 설비, 지원, 수속 등 전반적인 지원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문부과학성 문교시설기획부 시설조성과와 그 산하 진흥지역계의 중앙부처 공무원들이었다. 현재 일본에는 약 40,000여개의 공립 초·중·고등학교가 있으며, 현재 다소 증가세가 둔해지기는 했지만 지난 10년 간 폐교의 숫자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아동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사회가 고령화되어가는 것이 주요 원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문을 닫는 학교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그 실태조사의 필요가 대두되게 되었고 이에 ‘폐교시설의 실태와 유효활용상황 조사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었다.

폐교의 바람직한 활용사례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니시스가모 창조사’’라는 곳으로, 이곳은 구 아사히중학교 자리를 NPO 법인인 ‘아트 네트워크 제팬(Arts Network Japan;ANJ)’과 또 다른 NPO 법인인 ‘예술가와 어린이들’이 지자체인 토시마구와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지자체의 담당자들과 시설 담당자들이 함께 자리하여 대화를 나누었는데, 지자체의 협조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토시마구 역시 지역 내의 폐교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많이 고민하던 중 ANJ의 사업 내용 프레젠테이션을 보게 되었고, 당시 내각부에서 추진 중이던 ‘지역재생계획’에 맞추어 ‘문화예술창조시’ 계획을 수립, 본 폐교를 이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해 지역의 문화 비전에 부응하는 시설로써 재활용을 유도했다.


아트네트워크제팬 연극자료실. 일본전역의 연극전문자료를 지역 주민에게 무료 개방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다양한 예술단체에게 연습장 등으로 임대되어 시설 유지를 위한 기본 경비를 충당하고 있으며 ‘동경 국제 예술제(Tokyo International Arts Festival)’의 행사장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에게 직접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신주쿠구와 ‘게이노카덴샤(Geinokadensha)였다. 신주쿠 구에서는 문화담당부서의 공무원들은 물론 총무부 계약관재과의 공무원들이 자리를 같이 했는데, 폐교는 지자체의 시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임대 및 계약 등은 이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시설의 경우 알맞은 시설을 찾고 있던 ‘게이단쿄(Geidankyo)측에서 단순 임대 형식을 취했고 월 약 300만 엔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했다. 다소 비싼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도쿄에서도 이름난 중심지인 신주쿠에 위치해있고 또 문부과학성의 반제금 등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임대료를 받는 것이 타당하나 시설이 낡았다는 점을 고려해 30% 이상 할인하여 주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게이단쿄 역시 시설을 산하 단체에 사무실로 임대해주거나 교실을 연습실 혹은 TV 촬영장으로 임대해 수입을 얻기 때문에 운영상에 크게 문제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처음 임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노인복지시설이 들어오기를 희망하던 지역주민회의 의견 때문에 다소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지역민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어린이날과 같은 특정일에 시설 전체를 개방해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열거나, 지역축제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폐교는 지역주민의 자산이라는 인식

전반적인 만남과 대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들이 폐교를 더 이상 학교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부과학성의 담당자들에 따르면 일본의 법제상 학교를 설립할 때 모든 부분은 지자체에서 담당하고 국가는 시설 설비의 1/2만을 국고보조로 지원한다. 학교의 시설 연한은 그 건물의 감가상각을 고려할 때 대략 60년으로 계산되고 60년이 지난 폐교는 지자체에 귀속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60년이 채 안된 시점에서 학교가 문을 닫는 경우 폐교는 더 이상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국고보조로 지원한 금액은 전액 회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보다 유효적절한 활용을 위해 그 상환 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지원을 하고 있고 실제로 그런 노력을 통해 많은 폐교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폐교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문부과학성에서 자산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국고에서 투자된 만큼의 상환만 이루어진다면 처음 학교를 설립한 지자체에서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는 현재 국내 상황과 비교해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내용은 토시마구와 신주쿠구의 담당 공무원들에게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들이 폐교라는 시설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의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물론 일본의 경우에도 문을 닫은 학교들이 그 자산 가치와 상관없이 모두 문화적인 시설로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부과학성의 통계에 따르면 가장 많이 활용되는 예는 사회교육시설로의 활용이고 노인복지시설이나 생산시설로의 활용이 그 다음이며 문화관련시설로는 그다지 높은 활용도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닫은 시점에서 학교의 주인은 더 이상 문부과학성도, 지자체나 시설을 임대한 임차인도 아니며 바로 그 학교를 졸업하고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이라는 시각은 폐교를 새로운 문화의 구심점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우리에게 큰 교훈으로 다가왔다.

 
케이단쿄는 80여개의 일본 예능단체가 모인 단체다. 폐교를 창작의 공간으로 이용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전통문화예술 교육을 한다. 

폐교는 하나의 자산이기 때문에 국가, 단체, 혹은 개인이 그 소유권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 것이기 때문에, 또는 내가 사용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라는 생각 이전에, 폐교가 문을 닫기 전까지는 지역 공동체의 공공재산이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폐교를 이용해 문화예술활동이나 문화예술교육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고자 한다면 더더욱 이러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폐교와 연관된 각각의 주체들이 욕심을 부리거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 폐교를 이용함에 있어 공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활동을 위해 더불어 노력하는 것,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것에 부응하여 새로운 지역문화의 토양을 가꾸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폐교를 문화예술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임을 이번 일본 방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의 상황과 일본의 상황이 같을 수 없고, 우리의 방식과 그들의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방문을 통한 지금까지의 연구과정에서 우리는 폐교를 문화예술교육의 장으로 만드는데 있어 이상적인 모범 답안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본 폐교활용사례 현장 답사를 통해 느낀 것은, 일본의 경우처럼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효적절하게 이용되고 있는 폐교들의 사례를 모아 그들이 각각의 문제를 어떻게 진행시키고 해결해왔는지 공유하고 다양한 변수를 가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것이 보다 적합한 연구 방향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