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기 문인이자 화가였던 동기창은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여행한 다음에 비로소 붓을 잡는다”고 했다. 사물을 관찰하고 그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상상력이 분출된다면, 끊임없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진화하고 실마리가 풀린다. 그런 면에서 책 읽기는 예술의 시작이다. 그뿐인가. 너와 내가, 우리 가족이, 같은 학교, 같은 동네 사람들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 단절된 세대 간, 반목하던 이웃 간, 불통하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공동의 화제, 공감의 거리가 생긴다. 그래서 책 읽기는 공동체의 출발이다.
아르떼진 10월 테마는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을 여러분들에게 책을 매개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감을 격려하는 문화현장으로 안내한다. 3000원짜리 헌책 한 권이 건네는 어제와 내일의 만남, 동화책이 살아서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환타지, 작은 책방 공간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커뮤니티와 마을의 재탄생까지, 책의 세계로 입문하는 이들을 환영한다.

 

보수동, 꿈을 파는 거리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부산 국제시장.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못 구하면 여기 와서 구한다”는 만물 시장 국제시장 옆으로 보수동이 있다. 영화의 배경으로도 등장했던 가파른 40계단이 있고, 낡았으나 정겨운 옛집들이 웅숭그린 이곳은 60년 역사를 가진 책의 거리이기도 하다.

 

서울 동대문, 청계천 등에 형성되었던 고서적 상가와 더불어 우리나라 책의 역사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는 곳이 바로 부산 보수동의 책방골목이다. 서울의 고서적 상가와 터줏대감 헌책방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쇠락하여 결국 문을 닫거나, 인터넷 헌책방 사이트 등으로 모양새를 바꾸는 동안 보수동의 작은 헌책방들은 꿋꿋이 살아 남았다.

 

한국전쟁 때 부산은 피란지였다. 그 난리통에서 사람들은 아이들 보낼 학교는 맨땅에 천막을 치고라도 차렸다. 그런데 학교는 차렸으나 당장 책을 구할 데가 없었다. 교과서며 참고서, 읽을 거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국제시장 한켠 보수동에 헌책방 노점이 생겨났다. 피란짐에 끼어 온 책들이 귀하게 팔렸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잡지며 소설은 신기한 볼 거리인 동시에 꿈이 없던 학생들에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교재였다. 그 시절 책은 곧 말씀이었다. 신의 말씀이 새겨진 돌판을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조차 못하던 고대 사람들처럼,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책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말 그대로 ‘눈에 불을 켜고’ 책을 뒤적이며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로 북적이었다.

 

그래서 보수동은 ‘꿈을 파는 거리’가 되었다. 보수동에 가면 척박한 현실을 잊게 해 주는 수많은 책과 잡지들이 있었다. 배움에의 열정으로 가득 찬 학생들, 현실을 딛고 미래를 향해 날아오르고 싶은 청년들에게 보수동은 무궁무진한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비록 빳빳하게 날선 순결한 새 책은 아니었지만 알고 싶은 것을 충족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기에는 충분했던 것이다.

 

 

 

희망이 자라난 곳, 다시금 날개를 달다

 

보수동의 전성기는 1960년대에서 80년대 후반이었다. 요즘만큼 물자가 풍부하지 않은 시대였고, 헌책을 보는 것이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중고등학생들은 새학기가 시작되면 ‘필수 코스’ 보수동을 찾아 참고서와 읽을 거리를 챙겼다. 대학생들은 희귀한 외국 원서와 금서를 찾기 위해 보수동을 도서관 드나들듯 했다. 그 시절 보수동은 약 70여 개 이상의 서점이 영업하는 가운데 헌책은 물론 LP, 민예, 골동 따위도 함께 다뤘다. 70년대를 살아 온 부산 시민들에게 ‘보수동’은 서울에서 청춘을 보낸 7080 세대의 ‘광화문’, ‘종로통’ 만큼이나 애틋한 이름이다. 배움에의 열정이 전쟁 속 보수동을 ‘꿈의 골목’으로 만들었다면, 이 시기의 보수동은 보물찾기 같은 헌책 보기의 즐거움, 부산 도심과 가까워 젊은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 등에 힘입어 중요한 문화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좋은 시기도 오래 가지 않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보수동 책방골목 역시 서울 청계천이나 대구 헌책방거리처럼 쇠락의 위기를 맞았다. 인터넷이 정보의 출처로 자리잡으면서 책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물자가 풍부해지니 헌책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고민과 모색이 뒤를 이었다. 한 자리에서 보통 30년 이상, 길게는 40~50년 동안 책을 다뤄 온 책방골목의 서점주들과 ‘보수동’을 하나의 상징으로 가슴에 품고 있던 부산시민들은 보수동이 다시 한 번 날개를 달고 날아 오를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것은 바로 책방골목을 하나의 문화예술 커뮤니티로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로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행사와 책방축제를 기획했다. 올해로 여덟 번째 개최되는 책방골목 문화행사는 ‘책은 살아야 한다’는 모토 하에 책방골목에서 만나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선보인다. 책방골목의 서점주들이 모인 보수동 책방골목 번영회와 지역문화기획자들이 힘을 합쳐 행사기간 동안 책방골목을 독특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다. 재즈연주, 팬터마임 등의 공연과 낭독 행사, 국악공연,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작은 콘서트와 사진전, 영화 상영, 어린이 연극 등이 무대에 오른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벼룩시장도 개최된다. 온갖 재미난 수공예품과 빈티지 물품이 등장하는 알짜배기 시장이다. 행사 기간 동안 보수동 서점도 ‘그랜드 세일’에 나선다. 새책 특가판매도 있고, 헌책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일괄판매하기도 한다. ‘1+1’ 판매에 덤도 있어 책 고르고 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축제와 더불어 탐방 스탬프 찍기, 보수동 사진 올리기 등 참여형 이벤트가 계속되며, 한편으로는 보수동의 지역성과 발전방안 등을 모색하는 토론회도 열린다.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행사는 지역 예술가와 서점주 모두가 윈-윈하는 마당이다. 예술가에게는 전시 공간과 무대가 생겨 기쁘고, 서점주에게는 더 많은 고객이 찾는 계기가 되니 즐겁다. 더불어 부산시민에게는 보수동의 상징성을 새롭게 환기하는 계기가 된다. ‘문화’를 만끽하고 싶다면 예나 지금이나 보수동이 정답이라는, 변치 않는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참여하는 지역문화로 새롭게, 더욱 새롭게

 

‘책’을 키워드로 한 보수동 책방골목의 지역문화 활성화 시도는 보수동이 가진 의미를 지켜 나가고자 하는 책방골목 서점주들의 의지와 보수동의 오래된 가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젊은 문화예술인들의 참여, 그리고 작년 말 개장한 보수동 책방골목문화관과 같은 문화 구심점이 있어 의미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약 6~7년 전부터 보수동을 거점으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비교적 집세가 싼 책방골목 근처 낡고 작은 공간을 임대해 작업실, 북카페, 로스터리숍, 공예숍 등을 열었다. 그리고 보수동의 낡은 골목길과 옹벽, 서점의 셔터를 캔버스 삼아 그래피티와 벽화를 그리는 예술가들도 생겨났다. 젊은 예술가들이 가지고 온 독특한 활기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다시금 살아 숨쉬게 했다. 이곳의 터줏대감인 서점 주인들 또한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여기에 더해 지역 문화축제와 문화관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책방골목문화관은 보수동에 쏟아지는 시민들의 관심이 축제 때만 집중되지 않도록 매달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문화학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책만 보러 책방골목을 찾지 말고 문화를 만나러 책방골목을 찾아 달라는 것. 또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방골목문화관의 그리기, 글짓기, 이야기 학교 등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수동 책방골목의 상징성을 대물림하기 위한 시도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가 간직하고 있는 ‘문화공간’ 보수동의 의미를 자녀들 역시 공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책’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보수동 책방골목이 다른 지역에서 그 예를 찾기 드문 독특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까닭도 역시 ‘책’에서 시작된다. 책이 가진 상징성, ‘읽기’라는 행위가 주는 기쁨과 충족이 낡고 작은 동네를 모두가 사랑하는 문화지대로 변모시켰고, 사람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만들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멋진 변신은 인문학이 죽고 책이 소멸되어 가는 이 시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_ 박세라 사진_ 예정원 부산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