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미술 대학) 강사 경력 10여 년이 쌓이자, 인식되는 무덤덤한 진실 혹은 경악할 만한 현실이 있다. 미술 대학이 타 단대에 비해 고액 등록금을 납부하고서도, 졸업 후 진로의 향방에 전적으로 무대책하거나, 전부 혹은 전무라는 이분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즉 ‘작가가 되거나 혹은 안 되거나’라는 완강한 이분법이 미대 구성원 거의 전부에게 스스럼없이 수용된다. 오래 지속된 비정상적인 집단 최면 같다. 더불어 경악할 만한 또 다른 사실은 내가 수업 현장에서 만난 미대생들은 출신교를 불문하고 태반이 당대 미술의 흐름에 무지한 채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고, 그런 자기 형편에 대한 문제의식을 거의 깨닫지 못하며 지낸다는 것이다. 전공에 대한 자기 애정이 식었다는 풀이 말곤 해석할 방도가 달리 없다. 결론부에서 다시 강조하겠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미대생 절대 다수가 ‘무엇을 어떻게 왜 그려야 하는지’와 같은, 전공의 존재론에 관해서도 길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 대학의 총체적 부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2011년 9월 교과부는 부실대학 명단을 발표했다. 내실 없이 운영되는 대학을 정리하겠다는 취지인데, 나는 교과부의 방침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부실대학에 연간 무의미하게 쏟아 붓는 세수가 1천억 원대에 달한다. 부실대학 방치는 국고를 받아 챙기는 무익한 사학 재단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한데 발표 직후 명단에 포함된 예술대학의 반발이 있었다. 이들의 반발에 동조한 업계 종사자도 있었지만 그 반발의 연대는 강고한 것 같진 않다. 불이익을 당할까봐 일까? 그래서 일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인 것 같진 않다. 발표에 포함된 부실대학 뿐 아니라, 전국 모든 미술 대학이 교육품질 면에선 매우 부실하다고 나는 믿는다. 비록 그런 이유로 특정 대학을 솎아내 부실대학 낙인을 찍는 건 온당한 처사는 아니지만. 현실성이 약한 미대 커리큘럼이 재학생의 학업성취도나 예술창작의 동기부여를 이끌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나는 본다. 예술대학 정상화의 카드가 오직 ‘자율성’에 달렸다는 항간의 구호는 면피용처럼 들린다. 교과부의 부실대학 발표와 예술대학의 반발이 마치 2011년 하반기의 소동처럼 보일 테지만 조짐은 3월부터 포착되었다. 전국 130여 개 대학 미술-디자인 계열 학장들로 구성된 ‘전국 미술-디자인 계열 대학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3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창립총회를 열어, 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만을 기준으로 취업률을 산정하는 방식에 맞서기로 결의했다.

교과부가 부실대학 선정 기준 가운데 20%를 취업률로 할당한 건, ‘4대 보험 가입 직장’에 취업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예술대학 졸업자의 속성을 간과한 행정 착오인 게 맞다. 때문에 부실대학 선정 기준 중 취업률 20%에 해당하는 상이한 항목을 찾아 일반 대학과의 형평성을 맞춰야 하는데, 협의회 측이 내놓은 대책도 난감하긴 매한가지. 미협 같은 예술인 단체 회원 가입자나 개인전 회수를 취업을 인정하자는 방안 따위인데, 교과부의 취업률 기준만큼 부실하다. 제도 화단의 각종 예술단체는 관제적 성향이 강해 현장 예술의 가치관과 동일한 코드이기 어렵다. 개인전 회수 산정 또한 대관 화랑 배만 불려줄 공산이 매우 높을 뿐, 전시 개최자의 예술적 성취로 평단이 간주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돈만 내면 할 수 있는 전시회이기 때문에. 지구촌에서 현대미술이 어떤 위치에서 전진 중인지 바르게 응시할 필요가 있다. 창작의 최 선단에는 미술교육을 숫제 이수하지 않고도 주역이 된 사례가 (해외의 경우) 수두룩하다. ‘경계를 넘어서려는’ 예술의 본질이 제도 교육의 공정과 어울리기 힘들어서 일거라 추정한다. 취업률 20%의 부실대학 선정 기준을 예술대학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건 전적으로 부당하지만 그에 합당하는 상이한 기준치를 현재 누구도 제시한 바 없다 (필자 역시 현재로선 알지 못한다).

 

현실적인 방안을 강구하라

 

교과부의 부실대학 선정 논란이 전국 미술대학 교육의 건강지수를 자체 점검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한국 미술 대학의 교육 품질은 대체로 부실하다’가 내 결론이다. 지방 소재 한 미술 대학(울산대)은 매해 졸업전 도록에 ‘미술시장에서 선전하는 모교 출신들’을 자랑하기도 하며 학교 광고에도 홍보로 쓴다. 졸업전 도록 인사말에 “작품 판매와 전시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힐 정도다. 첫눈에는 격조에 떨어지는 홍보 문안처럼 보였는데, 미술대학이 직면한 엄연한 현실 앞에 무방비한 보통의 미술 대학에 비해, 훨씬 진솔하고 현실적인 대처라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그런 노력마저 기울이지 않은들 미대 교수가 자리를 위협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학 사회 밖에서 현대 미술이 회자되는 건 크게 둘로 대별된다. 미술 시장에서의 선전과 국제적 미술행사(요컨대 비엔날레)의 출품 자격. 이 두 무대 어디건 활약할 형편이 되는 미대 졸업자는 극소수다. 시장에서 팔리는 그림(에는 대개 공식이 있다)을 기술적으로 습득한 장인이 되거나, 제도 화단의 미학적 유행을 선도하는 극소수의 전위 그룹에 포함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 모두 쉽지 않다. 인정하건 부인하건 이 두 그룹 속에 미대 정규 교육 습득만으로 재학생이 접근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미술대학은 이미 충분히 늦었지만, 자기 존재 이유에 관해 교육 품질 차원에서 자성하고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

미술 대학 존재론과 관련해 부실대학 소동으로 다시 되돌아오자. 졸업생 다수가 프리랜서나 학원 강사로 활동하는 예체능계열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게 부실대학의 항변이다. 맞는 반론이다. 하지만 설마하니 미술 대학의 존립 목적이 미대생을 미대 입시 준비생을 가르치는 강사로 투입하는 데 있진 않을 테다. 마찬가지로 미대 재학/졸업생 역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미래를 기다리는 신입생을 양성하는 강사가 되려고 입학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푸념을 한들 무소용한 일이지만, 차츰 구시대 예술 양식 중 하나로 기억되는 중인 순수미술을 가르치는 학과가 종합대학에 너무 많이 개설되어 있다. 교과부의 안일한 대학 평가 잣대를 계기로, 전국 모든 미술 대학은 수업만족도와 취업 후 대책에서 무방비했던 자신의 자화상을 거울을 통해 똑똑히 확인했으면 한다. 미대 재학생이 교과목에 얼마나 실제적 만족을 느끼는지 설문조사하라. 또 재학 중/졸업 후 진로에 그들이 얼마나 불안한지도 공감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총체적 부실을 진단하고 그것을 치유할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수립해야 한다.

평가 기준의 객관성이 확보되기 힘든 학문일수록 시대를 지배하는 매체 속도에 더디게 반응하는데, 그걸 마치 학문적 고유성인양 우기는 경향까지 있다. 절대 다수의 미술 대학이 지난 시절 사용한 수업 방식을 고수하느라 ‘현재적 매체 속도’에 적응된 동시대 학생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대학 4년 중 저학년의 상당 시간을 ‘기초 실기’ 반복하느라 허비하는 것이 현실이다. 필수 수련과정인 건 이해하지만 당대 미술 현장에서 요구하는 기술이 아닐 공산도 매우 높다. 과제를 던져주고 학생 자율에 맡기는 미대 교육 풍토도 문제다. 학생의 실제 경험담을 인용하면, “예고나 입시미술에 숙련된 입학생들에게 무조건 ‘알아서 자유롭게 작업하라’는 요구는 잘못된 의사 전달 방식”이며, 나아가 ‘자유롭게 대처’하는데 실패할 다수의 학생에게 영문 모를 열패감을 안겨 학업의 동기를 상실하게 만든다. 교육기간 4년을 단계적으로 편성하는 수업진행의 배경은 이해하겠는데, 저학년부터 학생의 미학적 적성을 찾아주거나, 진로를 안내하는 수업의 재편성이 현실적인 대처다.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처하기를

 

미대 졸업 후 진로의 이분법 즉, ‘작가가 되거나 안 되거나’에 대한 미대 구성원 다수의 영문 모를 공감대도 위험 수위다. 미술 교육을 이수한 학생은 전업 작가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남다른 조형감각과 미학 경험을 토대로 타 업종에서 성취를 발현할 수 있으며 그런 전례는 적지 않다. 학교는 재학생 관리를 크게 둘로 나눠 꾸준히 관찰하고 대처해야 한다. 작가 지망생에게는 학생에게 어울리는 교강사를 배치하거나 유사한 미학을 공유하는 전업 작가와의 연결을 돕는 프로그램을 개설하면 좋겠다. 한편 미술계 너머 취업 기회를 외부 전문 인사를 초빙한 설명회로 전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건 미대 교수들 누구도 가르칠 수 없는 정보이므로. 미술대학 교육이 당면한 부실의 시발점은 구성원 다수가 진로마저 ‘자율’에 맡기는 걸 학문적 고유성이라 믿는 풍토다. 아울러 상당수 미대생이 현장 미술계가 제공하는 각종 기회들, 레지던시를 포함한 작가 지원프로그램과 공모전 정보에 무지하다. 게시판에 무심한 안내 종이 한 장 붙여두는 것보다 설명회를 갖는 편이 효과적이다. 더불어 미술시장 취향과 동향을 관계자를 초빙해 설명하는 프로그램도 개설하면 좋겠다.

ps. 절대다수 미대생이 직면한 현재적 불안감과 근심 중 하나는, “무얼,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이 얼마나 경악할 노릇인가. 문제를 직시한 미술대학 교육자라면, 현행 교과 과정을 ‘현대미술이 당면한 현주소’에 어울리게 개정하고, 보완 프로그램을 확충해야 옳다. 더불어 개정될 교육 프로그램의 아웃라인은 수혜자(재학생)의 견해가 수용되도록 기획해야 한다. 느린 속도지만 변화할 수 있는 과제다. 미술대학의 교육은 현대미술의 변화 속도와 무관하게 정체 중이었는데, 그건 어느 모로 보나 예술의 본질과도 괴리되는 것이다.

 

 

글_ 미술 평론가 반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