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진짜 하는 일
강연할 때마다 청중들에게 질문하곤 한다. “뇌는 무슨 일을 할까요?” 그러면 열에 아홉은 ‘생각’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한다. “뇌는 생각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랍니다.” 청중들은 잠깐 술렁이다가 이내 ‘뇌가 없는 사람’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면 뇌가 진짜 하는 일은 무엇일까? 현대 뇌과학이 발견한 생명, 사람,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생명이 지속되려면 무엇보다 심장이 잘 뛰어야 하고 숨을 잘 쉬어야 한다. 또 외부에서 영양과 에너지-칼로리를 섭취해야 하고 이를 분해 흡수해야 한다. 동물의 슬픈 운명이다. 식물은 외부에서 흡수하는 아주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살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면역 시스템도 잘 작동해야 한다. 뇌는 이 모든 것을 총괄한다. ‘내’가 의식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뇌’는 주변의 조건에 적응하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신체 예산을 배분하고 조절한다. 이게 뇌가 진짜 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대부분 ‘나’의 의식, 생각과는 무관하게 이뤄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인류는 독특한 진화의 부산물을 얻었다. 발성기관을 잘 활용해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고 뇌에 빚어진 고도로 복잡한 언어체계를 표현하고 주변의 나 아닌 다른 존재와 이야기 한다. 메타인지 수준의 복잡한 생각, 의식도 갖게 되었다. 마음도 복잡해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서부터 하늘의 무수한 천체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귀하고 위대한 기술을 터득했다.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고 근대 이원론은 이 토대 위에서 작동했다. 그런데 현대 뇌과학은 이를 뒤집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는 이렇게 수정되었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도 한다.’
스트레스, 살아있음의 증거
흔히들 말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없애야 한다고. 스트레스가 나쁘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진화학의 설명은 좀 다르다. ‘우리는 모두 스트레스를 잘 활용해 살아남은 조상의 후손’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사고 실험을 해보자. 먼 옛날 인류의 조상 한 분이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와 마주치는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1. 호랑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서 도망친다, 2. 호랑이보다 더 힘이 세져서 호랑이를 때려잡는다,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호랑이보다 더 빠르거나 더 힘이 세지려면 특별한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 순식간에 힘이 세지는 마법 같은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야 한다. 이때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코르티졸’이 활약(?)한다. 마치 공습경보 사이렌을 울리듯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비상! 비상!’을 외친다.
평소에 심장은 뇌, 소화기관 등으로 많은 혈액을 공급한다. 그런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비상 상황이 되면 뇌는 평소의 시스템을 뒤집어서 근육으로 더 많은 혈액을 공급한다. 만약 스트레스, 코로티졸의 활약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호랑이와 마주쳤던 먼 옛날 인류의 조상들은 느긋하게 호랑이의 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반면, 스트레스를 잘 활용해 생존의 확률을 높인 조상님들은 더 많은 후손을 남겼고 우성 유전자로 새겨졌다. 스트레스는 생존 확률을 높이는 유용한 적응이었다. 인류는 이 ‘스트레스’라는 선물(?)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다른 동물에겐 없는 문화와 문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트레스는 생명의 에너지, 생명의 자원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다. 사랑에 빠지거나 설레거나 행복에 겨워 마구 흥분하거나 혹은 두렵거나 불안하거나 고통에 빠졌을 때 모두 마찬가지다. 살아있음은 늘 스트레스와 함께 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없애겠다고 달려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쉬는 순간에도 뇌는 쉬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허하라!” ‘멍때리기 대회’라는 야릇한 퍼포먼스의 슬로건이다. 지난해 유럽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어떤 청년이 무려 60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잘 때려서 우승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대회의 규정을 보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하게 된다. 졸아도 안 되고 웃어도 안 되고 대화도 안 되며 휴대폰을 보거나 시간을 확인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바로 탈락이다. 그리고 15분마다 심박수를 측정해서 가장 안정적인 심박수를 유지한 사람이 우승하게 된다. 흥미로운 퍼포먼스가 아닐 수 없다.
‘멍때리기 대회’를 소개한 이런저런 영상을 보면서 뇌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 가지 궁금한게 생겼다. 참가자들의 뇌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뇌를 스캔해 보면 어떤 반응들이 관찰될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인지언어학을 창시했다고 알려진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언어학을 미국의 현실정치에 적용한 책의 제목이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제목은 기억하고 이야기할 만큼 유명한 문구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는 순간 우리 뇌는 언어의 프레임에 갇혀서 끊임없이 코끼리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뇌에서는 분주히 코끼리가 맴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는 ‘나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뇌에서 벌어지는 이 현상은 ‘쉼’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고 말하는 순간, 더 나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집착하는 순간, 우리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인가를 열심히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자, 이쯤 되면 그러면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짜증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과학자들이 그렇게 무책임하지는 않으니까.
좋은 쉼이란 무엇인가
많은 뇌과학자는 ‘명상(Meditation)’에 주목한다. 잠깐, 그렇다고 ‘당장 요가나 명상수련을 시작하세요. 과학으로는 넘볼 수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 종교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겠어요’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명상할 때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살펴보면 좋은 ‘쉼’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뇌과학자들이 명상에 주목하는 이유는 뇌에서 일어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라는 상태 때문이다. 비유하면 휴대폰이나 컴퓨터의 초기화 모드에 해당한다. 뇌는 쉬는 상태, 잠자는 상태에서도 쉬지 않고 잠들지 않고 끊임없이 일한다. 이는 뇌가 감각이라는 생명의 통로로 얻은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계속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한 이 현상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뇌는 특별한 선물을 얻었다.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외부의 정보가 뇌에 전해지는 통로 즉 감각 정보가 단순해졌을 때 뇌의 이 네트워크는 오히려 활성화된다. 이 역시 뇌의 활발한 활동이다. 정보의 유입이 적어지면서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지우기도 하는 등 뇌 안에 여유 공간을 확보한다. 많은 뇌과학자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의해 확보된 이 여유 공간을 통찰력과 창의성의 생물학적 원천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정보의 유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등 모든 감각 기관을 잠시 쉬게 하는 것이다. 뇌과학이 알려 주는 좋은 쉼의 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를 깨워라!’
뇌의 기본값을 깨우기
‘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쉼은 일상과는 뚝 떨어진 작위적인 행위, 또는 특별한 장소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많은 뇌과학자가 우리 뇌를 ‘근육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근육은 꾸준한 운동을 통해 강화된다. 반면 운동을 게을리하면 강화됐던 근육은 도로 약해진다. 살아있는 한 우리 뇌도 강화되고 약해지기를 반복한다. 언어, 지능, 마음, 자아도 마찬가지다. 유전자에 새겨져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한번 정해지면 끝까지 계속 가는 것도 아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굳이 특별한 행위, 이벤트를 벌이지 않아도, 어떤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얼마든지 좋은 ‘쉼’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한 시간에 한 번, 단 몇 분 만이라도 눈을 감고 주변의 모든 소리를 잠재워 보자. 입으로 들어가던 모든 것을 잠시 멈춰 보자. 그리고 심장의 리듬과 들고 나는 숨결을 느껴 보자. 그러면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깨어난다. 바로 이 순간이 좋은 ‘쉼’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쉬는 순간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당신의 뇌를 응원한다.
신성욱
신성욱
(전)다큐멘터리 PD 겸 작가로 6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카이스트에서 과학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지금은 저술,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농업인이자 건설기계 굴착기 조종사이다. 지은 책으로 『뇌가좋은아이』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가 있다.
thelabgoodbra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