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미 예술감독은 공연, 전시, 퍼포먼스, 예술교육 등 춤을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 활동과 작품을 선보여 오고 있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사심 없는 땐쓰> <대심땐스> 등 세대·성별·문화의 경계를 넘어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로 시민이 참여하는 커뮤니티 댄스 작업은 문화예술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예술교육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더욱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한 꿈의 댄스팀 홍보대사 기획사업 <으라차찬>(2022), 이어 2023년 꿈의 댄스팀 ‘관악’ 무용감독으로 끊임없이 춤으로 건네는 대화를 넓혀가고 있다. 어떠한 분야/직업보다 스스로 동기부여가 가장 큰 출발점이자 동력이 되는 예술교육가들에게 2023년 마지막 달 12월을 앞두고 지치지 않고 내 안의 욕구와 이끌어가는 힘을 안은미 예술감독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보고자 한다.
Q.

바쁜 공연 일정 속에서도 작년에 이어 올해는 꿈의 댄스팀 ‘관악’과 함께 하셨습니다. 올해는 어떤 계기로 활동을 이어오셨나요?

A.

사실 그전에는 인터뷰에서 늘 얘기했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없었어요. 작년에 꿈의 댄스팀 엠버서더를 하면서 아이들의 끊임없는 에너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어떻게 내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닿을지 고민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선생님의 진심을 고래 소리처럼 알아들어요. 나의 권위도 알아듣고 내가 그 안에 단단하게 갖고 있는 언어도 알아들어요. 그래서 저는 작년에 꿈의 댄스팀을 하면서 ‘아, 이제 내가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이제 나이 육십이니 나도 많이 단단해졌고, 아이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읽어 내리는 마음의 여유가 좀 생겼어요. 물론 그것 때문에 너무 바쁘지만 ‘내가 제일 잘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Q.

무대가 아닌 예술교육의 장에서 선생님이 주목하는 점은 어떤 건가요?

A.

아이들이 저를 만날 때 ‘선생님 옷이 왜 그래요?’ ‘왜 이렇게 옷이 화려해요?’ ‘여자예요, 남자예요?’ 질문하는데, 이게 얼마나 좋은 교육이에요. 이 세상에 자기가 보지 못한 어떤 물체가 존재한다는 질문이 호기심이 되고. 공연을 하고 나면 아이들 모두 깜짝 놀라요. 왜냐하면 그 공연을 위해서 모든 사람이 너무 애쓰잖아요. 그건 아이들한테 놀라운 순간이에요. 자꾸 뭘 가르치려고 그러면 안 되죠. 인상에 남은 것들을 줘야 된다는 거지. 우리가 명작을 보면 굳이 무슨 말을 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진 힘에 충격을 받는 거죠. 그런 면에서 아이들한테도 무대가 적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무대 세트, 조명, 항상 좋은 극장에서 해야 하고, 여러 가지 요소가 가르치는 방식뿐 아니라 그 주변의 것들이 아이들의 기억에 충분히 남을 만하게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선물이고 문화예술교육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그런 의미에서 지난 5월 유네스코 본부에서 특별무대로 <으라차찬>을 보여준 꿈의 댄스팀 아이들의 몸짓과 목소리의 에너지가 강렬했습니다. 아이들의 기억에 무엇을 남기고 싶으셨나요?

A.

춤이라는 게 동작을 배우는 게 아니고 신체와 정신이 같이 가는데, 이것이 몸을 통해서 발현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몸이 가져야 하는 태도에 관해서 가르치는 거잖아요. 가장 힘이 없을 때 ‘가자!’ 그러면 막 근육에 힘이 생기잖아요. 단순한 근육인데 ‘으라’ 외치면 배에 힘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그 언어 자체가 어떤 에너지를 주는 거예요. ‘으라차차’ 그러면 힘 풀리니까 ‘으라차찬’ 이렇게 다시 내가 말을 바꾼 거죠. 멈추지 마라. Don’t stop, never don’t stop!

Q.

수업 중에 대기하는 부모님들도 선생님의 제안에 함께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또 이후 참여하신 분들과 캠프도 함께한 만큼 참여자들과 깊은 공감과 연대를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A.

엄마들이 와서 애들 앉혀 놓고 핸드폰하고 2시간 앉아서 기다리기에 (내가) “그러지 말고 우리 다 같이 춤을 춥시다”해서 우리 팀만 아이들이 부모하고 같이 공연했어요. 부모하고 같이 듀엣을 만들고 하니 아이들이 (부모보다) 더 빠른 거야. 그러니 애들이 집에 가서 엄마를 야단쳐보기도 하고. 엄마들도 태어나서 생전 처음 춤추는 거니까 ‘이런 무대에 서다니’ 엄마들이 더 난리가 났어요. 근데 또 더 감동적인 건 공연을 보러 온 할아버지가 울었어요. 왜? 손녀 때문에 운 게 아니라 자기 딸이 세종문화회관에 선다는 것 때문에 울었어요. 아직도 애들이 밥 먹으면서 <으라차찬> 얘기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올해도 부모님도 같이 참여할 사람 함께 하라고 그랬어요.

Q.

프로젝트를 통해 참여한 아이들 뿐 아니라 가족까지 짧은 기간 동안 밀도 높은 몰입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난 후 일상으로 돌아가서 어떤 삶의 변화가 있었을까요?

A.

나보고 ‘또 해요’ 그래서 ‘어머님들끼리 모여서 만들어요.’ 그랬어요. 왜 남한테 자꾸 뭘 바라냐, 알았으면 여기서 뭔가 새로운 것을 본인이 스스로 찾는 거지. 누구에게 바라면 그거는 의지하는 삶이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주면 이해하고 다음 거 하면 좋은 거 아니냐. 여러분들은 충분히 능력도 있고 여기 어머님들이 모여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라. 그러면 그 영향이 옆에 사람한테 가는 거고 그런 거지. 뭐 어떻게 내가 다 해드려. 내가 몸이 하나밖에 없는데 영감을 주면 가져가는 거지. 그런 걸 가르쳐야지. 누군가 이 무대를 세웠으면 다음 무대에 설 프로젝트 하시면 되지. 그런 걸 알려드리는 게 중요한 거죠.

  • 꿈의 댄스팀 ‘관악’
  • 꿈의 댄스팀 유네스코 특별무대 ©UNESCO/Natalia Weir
Q.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사심 없는 땐쓰> <대심땐스> 등 세대·성별·문화의 경계를 넘어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로 시민이 참여하는 커뮤니티 댄스 작업과 이어진 꿈의 댄스팀까지 춤을 통해 선생님이 교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

그러니까 우리 한국이 기억하는 춤이 뭔지 궁금한 거죠. 세대 별로 과연 춤이라는 걸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우리가 소모하는 상업적인 어떤 인지도가 아니라 일상에서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춤은 이렇게 뭔가 보여주는 것만 춤이 아니라 자기 내적으로 깊은 성찰을 준단 말이에요. 이게 제 2의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만히 보면 안 움직이고 산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근데 우리는 몸을 가둔다고요. ‘예의가 없다’ ‘경망스럽다’ 좀 경망스러우면 어때? 뭘 할 때는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데 그 몸을 가둬 놓는다면 건강한 인간으로 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춤은 테크닉적으로도 되게 중요하지만, 사회가 가지고 있는 춤에 대한 인식들이 작동하는 방법이 궁금한 거죠. 나보다 잘 추는 사람 많지 뭐. 춤이야 뭐 난리가 났지. 그러나 끊임없이 춘다는 것도 되게 중요한 거야. 나처럼. 나는 뭐 매년 공연하고, 끊임없이 아직도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고, 멈추지 않고 있고, 죽을 때까지 할 거고. 그런 연속성에 대해서 내가 성찰하는 것도 있는 거고.

Q.

끊임없이 춤을 추셨다는 말을 입증하듯 선생님은 매해, 매달 공연과 전시가 빼곡합니다. 사실 어떤 분야보다 예술 분야는 자기 자신의 동기부여가 가장 큰 출발점이기도 한데, 선생님의 창작과 활동을 자극하고 이끌어내는 힘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A.

며칠 전에 미술평론가 임근준이 제 연보를 만들었어요. 나를 연구하느라 자료를 보내라고 해서 몇 년 치 자료를 보냈어요. 그래서 연대기로 강의했더니 젊은 애들이 너무 놀란 거죠. 나도 그 말 듣고 놀랐는데 작업량이 너무 많은 거예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대충 놀면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지만 이력서를 보니까 공연한 게 몇십 장이에요. 삼십 몇 년 동안 멈춘 적이 없어. 하루도 쉰 적이 없어요. 올해는 신작만 세 편을 짰어요. 그런 에너지 어디서 나오냐고? 그건 사랑이지. 그게 없으면 내가 이런 식의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는 거예요. 먹고 사는 건 다른 거 하면 더 잘할 수 있어요. 근데 내가 어릴 때 겪었던 취미라는 걸 통해 사람들에게 줘야 하는 게 무엇일까? 마지막에 이것이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것은 그 불확실성에 대한 어떤 믿음. 불확실해도 괜찮아. 인간의 몸을 보면 손가락 굵기도 다 달라. 다 불확실성이에요. 이게 다 완벽하지 않아요. 그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정을 가지고 균형감을 가져가려는 노력’ 이게 나한텐 꿈이에요. 그 빈 곳을 메꿔주고, 가끔 미친 사람이 되어 보는 거. 그러니까 ‘신난다’는 게 ‘기분 좋다’ 그게 아니라 ‘‘신’이 몸에서 나온다.’ 하루에 한 번은 신이 나와야 해. 그러니까 신이 나온다는 건 엄청난 일인 거예요.

Q.

그 동기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인류애. 내가 춤을 추니까 이걸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예술가니까,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까. 그렇게 생각할 때 이 춤으로 할 수 있는 게 뭔가 있을 거 아니에요. 춤출 때, 좀 미칠 때, ‘신’이 나올 때, 그나마 이게 공평한 느낌으로 인간이 아닌 모습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춤을 출 때 그때가 중요한 거지. 그걸 증명해 보이려고 이렇게 계속 작업을 하면서 떠드는 거죠.

Q.

때로는 이런 ‘신’이 나오지 않고 동기를 찾기 어려운 때도 있지요. 요즘에는 종종 무력함이나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A.

어릴 때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해요. 그러니까 나의 경험으로 얘기하면 할머니도 있고 삼촌도 많고 이모도 많고 고모도 많아요. 내가 혼나면 그중에 친한 삼촌이 와서 떡볶이 사주면 끝났어요. 상담(카운셀링)이 끝나죠. 하지만 요즘은 없어요. 부모님은 일하러 갔고, 학원에 보내면 학원은 또 순위를 매겨 친구들하고 경쟁해, 이 친구는 또 따돌려, 아이가 갈 곳이 없어요. 어린애가 무슨 상담소에 문을 두드리겠어요. 근데 요즘은 집도 똑같은 데 살아요. 너 몇 평에 사니? 33평? 25평? 넌 얼마 짜리? 그럴 거 아니에요. 그 무력감. 나는 아이들을 엄청 많이 안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존감을 키워주려면 어릴 때부터 뭔가를 해줘야 하잖아요. 요즘 애들이 얼굴을 안 보고 얘기하는데, 카톡으로 인사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아까 인사한 거라고 해요, 카톡에서 한 게. 난 충격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뇌에서 느끼는 위로나 이런 것들이 다른 장소에 저장되면 이제 힘이 나지 않는 거죠. 그러고 나서 얘가 사회생활을 하러 나가면 거기서 슬픔과 기쁨이 왔다 갔다 하더라도 받아쳐 줄 안정적인 구조가 필요한데, 누군가 있어야 해요. 항상 내 편이 되어주고 가서 싸워주기도 하고 막 칭찬해 주기도 하고 웃겨주기도 하고. 근데 없잖아요. 그 아이들은 병들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혼자 집에서 안 나오기 시작하면 정말 안 나오고 싶을 것 같아요. 귀찮아지는 거죠. 그건 그들의 몫이 아니라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을 밖으로 끌어내려는 데는 그 사람이 거기 갇힌 시간만큼, 갇히게 된 이유만큼 힘이 들어요. 근데 누가 하냐는 거야. 한 사람을 담당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으라차찬 프로젝트는 아이들에게 그냥 어릴 때 어떤 기억, 어느 날 괜찮다고 말해주는 ‘안은미컴퍼니’라는 어떤 집단의 선생님들과 함께했다는 기억이에요. 그래서 작년에 참여한 아이가 끊임없이 공연을 보러 와요. 그럼 또 자극받는 거죠. 아이들은 안은미 선생님 작품이니까 또 자랑스러워해요. 집중해서 보고. 나는 그게 또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Q.

꿈의 댄스팀을 통해서 ‘안은미학교’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획이세요?

A.

지금 준비 중인데 돈이 없어서 못 하고 있는데요. 땅을 좀 사서 양떼목장처럼 아주 넓은 울타리 안에 그냥 아무것도 없이 부드러운 모래를 채우고 아이들이 막 거기서 뛰어놀고 소리 지르고 끝! 그거예요. 거기다 공 하나 넣어 놓고 그냥 애들이 하루 종일 놀아요.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부드러운 흙을 종류도 여러 개로 해서 이 흙에서 놀아보고 저 흙에서 놀아보고. 가끔 여러 가지 수업, 무용 수업도 하고 뭐 그런 장소에요.

Q.

마지막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예술교육가들과 나눌 이야기를 더 전해주신다면요?

A.

삶은 원래 불안해요. 그걸 깨닫는 것부터, 완벽하다는 건 욕구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운동성이 안 생기지요. 불균형 감이 서로 있을 때 운동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불안정한 공포나 이런 게 우리를 움직여요. 그리고 사람은 누군가가 필요해요. 나도 친구가 필요하고 부모도 필요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팬들의 응원도 필요하고. 서로 격려하고 믿고 갈 수 있는 나의 무용단.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하는 힘이 세거든요. 내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거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뭐,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 역사의 속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또 예술의 역사 안에서 예술가로서 안무자로서 해야 하는 어떤 위치라든가. 이런 한 가지만 꿈이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나한테 정리한 거는 있어요. 이거 쓰세요. ‘사랑’이야.

안은미
안은미

현대무용가. 안은미컴퍼니 대표. 꿈의 댄스팀 ‘관악 ’ 무용감독. 1988년 안은미컴퍼니를 창단하고 “인간은 춤추는 동물이다”라는 기조로 안무 작업을 전개해 왔으며,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춤의 자연사’가 안무를 관통하는 대주제이다. 대표작으로는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2011), <사심없는 땐스>(2012), <아저씨들을 위한 무책임한 땐스>(2013), <안은미의 북.한.춤.>(2018), <거시기모놀로그>(2019) 등이 있으며, 2023년 국립현대무용단 신작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낸 신여성들의 면면을 담은 <여자야 여자야>를 선보였다. 대구시립무용단장(2000~2004)을 역임했으며, 2021 무용분야 예술대상: 현대무용 부문, 2019 올해의 양성평등 문화인상, 제38회 세종문화상: 예술부문(2019), 한-불문화상(2016) 등을 수상했다.
· 안은미컴퍼니
최미란
최미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교육기반본부 디지털콘텐츠팀 대리. [아르떼365]와 온라인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mirangc@arte.or.kr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