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에서 성과란 무엇일까? 철학이나 담론 수준을 넘어 그것을 ‘특정’할 수 있다면 지나온 실천을 따져볼 수 있고 앞으로의 실천을 위한 결정에서 덜 불안할 것이다. 필자는 2022년 「서울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고관여자(교육수혜자, 중간매개자) 분석 연구」(서울문화재단)를 수행하면서 담론이나 믿음, 지혜와 철학의 수준보다는 조금 더 땅에 가까운 현황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남은 과제의 무거움을 마주하는 결론이었지만, 문화예술교육의 ‘성과’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중 조금 건조한 정책연구자의 시각을 공유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교육 참여 경험은 사람을 변화시킬까
‘성과’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성장’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문화예술교육 참여 경험이 많으면 점점 문화예술 마니아가 되고, 공공정책이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문화예술 참여자, 소비자, 전파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레벨에서 고레벨로의 이행을 목표로 하는 ‘이행단계’ 접근법이다. 정말 그런지 문화예술교육에 쓰는 시간과 비용을 기준으로 통계적 분석을 통해 확인해보았다. 결과적으로는 문화예술교육 저관여자와 고관여자는 이행단계 모델로는 포착하기 힘든 욕망의 다양한 갈래를 보여주었다. 저관여자는 주로 생활권 안에서의 여가로서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고, 타인과 만남, 교류의 계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와 달리 고관여자는 문화예술교육에서 자기실현 욕구와 수월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문화예술교육 참여 경험이 축적되면 저관여자 중에서 고관여자로 바뀌는 사람이 없을 리는 없겠지만, 지향의 차이가 있고 또 특정 방향으로의 성장이 정답도 아니다. 실제로는 고관여자 그룹 안에서도 세부적인 성격에 따라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정책이 피라미드식 목표를 중심으로 수렴하도록 사람을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분포하는 모양에 따라 문어발(?)처럼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두 그룹의 공통점도 있는데, 우선 문화예술교육 참여 경험을 통해 미술, 음악, 무용과 같은 전형화된 장르만을 예술로 인식하는 시각을 바꿀 수 있었다는 점, 예술이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외에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의 수용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단일장르 외 통합적 예술교육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커지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통합예술교육을 확대하면 달라질까
미적체험 기반 통합예술교육이 어느 정도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교육 철학을 대변하는 용어이긴 하지만, 대략 20년 정도 이어진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 정책 역사에서 현장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지향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연구를 통해서도 장르적 다양성, 주제적 다양성 등에서 통합적 예술교육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간의 정책 성과인지 아니면 사회 전반적 성장 경험의 파생 효과인지 가려내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정책의 큰 방향이 현장의 변화와 동행했다고는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합예술교육이 담론을 넘어 구체적인 방법론과 결과로서 실천되는 것은 다분히 학교예술교육 TA(Teaching Artist) 중심이라는 것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예술교육 TA 경험이 없는 예술교육자는 통합예술교육 지향을 동의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상을 그리기 어려워했고, 일부 예술교육자는 장르 간 피상적 수준에서의 어색한 결합을 밀어붙이는 정책적 슬로건이라는 불편함을 보이기도 했다.
학교예술교육 TA 사업에는 ‘학교’라는 공간과 교과 전문가로서의 교사 및 교육 내용이 있고, 교사와 함께 다장르 예술가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통상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지원사업에서는 이러한 개발 과정과 방법론 모두 예술교육자 본인의 몫이 된다. 프로그램 기획 외에도 홍보-모집, 참여자 관리, 공간 및 환경 세팅, 행정 업무 등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하드캐리’ 상황에서 일정한 마찰과 전환적 경험을 수반하는 ‘통합’을 예술교육자가 알아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과 수요 기반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통합예술교육 외에 문화예술교육 정책에서 꾸준히 추구해온 것은 중앙 공급 중심에서 지역화로의 무게 중심 이동이다. 이는 현장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고 일상적 삶의 조건에 적합한 계획과 실천을 한다는 측면에서 적절한 지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화의 핵심축인 기초문화재단은 필요성에 대한 공감 여부를 떠나서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 문화예술교육 전담부서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고, 타 사업과 병행하는 담당자가 한두 명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일상 맥락에 맞는 지역화 계획을 세우고, 적절한 예술교육 파트너를 만나고, 관련 정보를 공개‧공유하는 등의 작업이 힘에 부치는 것을 육성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산 대부분을 서울문화재단 공모사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 지역에 뿌리를 둔 파트너 그룹이 있다면 감사할 따름인데, 그런 경우 오히려 불투명하다거나 편파적이라는 오해와 비판이 생기기도 했다. 통합예술교육이 시스템 없는 벌판에서 예술교육자 개인의 노력과 헌신으로 수행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기초문화재단에서 지역화 버전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암중모색과 확증편향을 넘어서기 위해
연구 과정에서 크게 느낀 것은 데이터가 없다는 아쉬움이었다.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겨우겨우 데이터를 만들면서 연구하긴 했지만, 현실의 문화예술교육은 서울문화재단 공모사업 범위보다 훨씬 크고, 설문을 진행한 2022년의 경험보다 훨씬 깊다.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오래 몸담고, 다양한 현장을 보고, 많은 사람과 교류하면서 꽤 날카로운 통찰을 가진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DIKW(Data-Information-Knowledge-Wisdom, 데이터-정보-지식-지혜) 피라미드’로 보면 지혜 또는 지식의 수준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귀한 통찰도 다양화되는 현장의 다채로운 ‘픽셀’을 들여보기에는 해상도가 낮고, 또 확증편향에 빠지지 말란 법도 없다.
2022년부터 가동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은 기존 허블 망원경보다 우주의 이미지를 더 장엄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전문가(과학자)들에게 더 정교한 데이터를 쥐여줌으로써 우주에 대한 이해 자체를 확장하거나 전환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20년의 역사도 그 나름의 성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쌓아왔을 텐데, 우리에게 쥐어진 도구는 흐릿한 청동 거울 같은 수준이다. 성과만큼 중요한, 혹은 성과를 논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현장의 살아있는 정보(live data)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이미 도래하지 않았나 싶다.
설동준
설동준
사단법인 정가악회에서 기획자로 문화예술 분야 경력을 시작했고, 최근 5년은 DMZ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서 축제 기획자로 동료들과 함께 일해왔다. 공연예술 현장에서의 기획자 외 문화예술 정책연구자 및 문화예술교육 컨설턴트로 꾸준히 활동해왔고, 문화예술, 기술, 교육의 관계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탐색 중이다.
브런치 @commun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