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돌봄의 시대다. ‘고령화 시대, 고령화 사회’와 같은, 미디어상에서 매일같이 유통되는 키워드가 상징하듯이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거나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상황은 우리 주변 도처에 산재해있다. 지난 2017년 발간된 「사회적 돌봄서비스 강화를 위한 법제 연구」(한국법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돌봄은 “어린 자녀 또는 가족 구성원 중에 질병이나 장애, 노령 등의 이유로 다른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가족 내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런 점에서 흔히 돌봄이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사 노동의 한 방식으로 이해되곤 했다. 그러나 가사 노동의 주체를 특정한 성별, 나이, 지위, 역할에만 국한시킬 수 없는 오늘날, 돌봄의 주체 또한 자연스럽게 가족의 안과 밖에서 유동적으로 특정되곤 한다. 또한 그와 같은 유동성 안에서 돌봄의 주체에 대한 인식도 전환되어, 우리는 어느새 돌봄의 주체와 대상 간의 경계가 언제라도 전복될 수 있음에 주목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 또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상황 혹은 조건은 곧 ‘자기돌봄’의 문제로 이어진다. 나는 나 자신을 충분히 그리고 잘 돌보고 있는 것일까, 나의 마음은 지난날의 상처로부터 충분히 회복된 것일까,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지내고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지금의 나는 괜찮은 것일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에 귀 기울이고, 내 안에 쌓여온 상처를 보듬는 돌봄의 과정은 어쩌면 내 안에 남겨진 아픔과 고통의 흔적을 객관화하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세우고자 하는 저마다의 자기 선언일지도 모른다.
10여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줄곧 자기 안에, 그리고 타인 안에 깊이 웅크리고 있던 목소리들을 꺼내기 위해 춤을 추고, 말을 건네고, 노래를 부르던 ‘춤추는 여자들’은 그동안 공연과 워크숍을 통해 자신을 돌보는 법, 타인을 돌보는 법, 더 나아가 ‘우리’라는 이름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법에 대해 고민해왔다. ‘춤추는 여자들’의 대표인 장은정 안무가를 만나 돌봄으로서의 예술작업, 그리고 자기돌봄을 매개하는 춤에 대해 들어보았다.
Q.

프로젝트 그룹 ‘춤추는 여자들’의 대표로 오랜 기간 활동해오셨다. ‘춤추는 여자들’. 익숙한 듯 낯선 느낌에 자꾸만 곱씹게 되는 이름이다. 우선 단체의 시작에 대해 듣고 싶다.

A.

지난 30년간 소위 제도화된 무용계 안에서 활동해왔음에도 작업을 이어갈수록 관객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05년경부터 주변의 예술가 동료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객의 확장성을 도모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춤을 추고 있고 어떤 예술작업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5~6년간 이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마음이 맞고 예술적인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 2010년경에 ‘춤추는 여자들’을 결성하게 되었다.

Q.

‘춤추는 여자들’을 떠올리면 무엇보다도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이하 <바비레따>)라는 제목의 연작에 주목하게 된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초입이 맞닿은 시간의 아름다움을 중년의 여성에 빗대어 표현한 제목(바비레따)처럼, 작품은 무대와 객석을 잇고 서로 다른 나이를 잇고 서로 다른 몸들을 잇는다. 지난 2012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작품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A.

‘춤추는 여자들’을 시작했을 당시, 우리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다. 창작 과정에서 어떤 결과물이 어떤 방식으로 나오게 될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우리 자신에게 친숙한 이야기를 친숙한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중년의 여인들을 만나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2011년, 당시 춘천아트페스티벌(현 춘천공연예술제)의 감독님이 저희가 준비 중이던 작업을 페스티벌 10주년을 맞아 춘천에서 진행해보자고 제안해 주셔서 그해 여름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춘천에 거주하는 30대부터 50대까지의 여성 참여자들을 모집했고 매주 한 번씩 춘천에 가서 이들을 만났다. 연령대를 한정해서 참여자 신청 공지를 올렸지만, 실제로는 20대 직장 여성, 20대 주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60대 중반의 직장 여성 등등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찾아와주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워크숍을 공연으로 발전시킬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과정을 지켜보던 페스티벌 측에서 공연 제안을 해줘서 결국 주요 공연 중 하나로 발표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 모두가 느꼈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춤의 기준과 경계를 넘어서서 각자의 내면에 깊이 각인되어 있던 것들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를 들어, 공연 중간에 옷을 들어 배를 고스란히 노출하는 장면이 있는데, 중년 여성의 배, 출산을 겪은 여성의 배 등 각자의 배가 전해주는 느낌이 생경하게 다가왔고, 그것을 통해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다층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듬해인 2012년부터 <바비레따> 프로젝트는 아르코예술극장 스튜디오 다락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Q.

이후 10년간 <바비레따> 프로젝트는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의 형식을 일관되게 지향하면서 스튜디오 다락에서 공연되기도 했고, 이후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YOUNG 바비레따>가 발표되기도 했고,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 버전으로 진행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과 만났다.

A.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 다른 조건 안에서 공연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연결과 연대의 정서를 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절실해졌다. 공연을 이어가는 다양한 방법을 경험하는 동안, 예술작업에 임하는 시야가 점차 넓고 깊어지면서 저희가 앞으로 할 10년간의 작업 키워드인 ‘자기돌봄과 자기다움’에 이르게 되었다.

Q.

‘자기돌봄과 자기다움’이라는 주제가 매우 시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바비레따> 프로젝트에는 ‘관객참여형 감성치유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부여되어왔는데, 치유 방식 혹은 치유 과정으로서의 춤 작업에 대해 말씀 듣고 싶다.

A.

실은 그리 특별한 게 없다. 제가 춤 치료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춤에는 이미 치유의 기능이 담겨 있지 않나. 몸과 몸이 만나 맺게 되는 관계를 통해 우리 삶의 질도 높아진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위로’와는 다르다. 타인을 위로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 기저에는 상대적인 우월감이 깃든 경우가 많다. 춤을 통해 그런 비교적인 우위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고, 무엇인가를 미화해서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진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꾸밈없이 나 자신이 어떻게 하면 바비레따에 살 수 있을지, 나 자신을 어떻게 하면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바비레따> 작업은 시작되는 것이다.

Q.

앞으로의 작업 키워드와 관련해서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지난 2021년 <바비레따> 프로젝트의 10년을 기념하며 ‘춤추는 여자들과 함께 하는 자기돌봄, 자기다움 워크숍’을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사회적 돌봄이란 대개 유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등 신체 기능의 결여가 전제된 특정 대상에 대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해되곤 하는데, 이에 반해 워크숍 주제로 제시된 ‘자기돌봄’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A.

<바비레따> 프로젝트를 10여 년간 이어오다 보니까 자연스레 저 자신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춤추는 여자 장은정은 누구일까. 어떻게 살고 있고, 또 어떻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그 과정에서 제가 과거에 경험했던 폭력적인 방식의 무용 교육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제 안의 상처에 대해 비로소 자각하게 되었다. ‘왜 나는 저 동작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왜 나는 인정받지 못한 채 도태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오랜 시간 혼자 감내해야만 했던 고민을 뒤로 한 채 저 자신의 몸에 대해서 자각하기 시작하니 애당초 제 몸은 그것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학창 시절의 저는 다리를 어느 정도의 높이 이상으로 들 수 있는 몸의 조건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마치 무능한 학생인 것처럼 취급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껏 그런 경험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바비레따>를 계기로 저 자신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게 되면서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더욱 소중히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Q.

말씀을 들으니 자기돌봄의 의미가 자기 몸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A.

우리가 자기 자신을 돌보고, 서로를 돌보는 데 있어서 지금 너의 상태가 어떤지, 그리고 나의 상태는 어떤지에 대해서 묻고 답하며 서로를 진지하게 토닥여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우리가 자기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나의 몸을 스스로 만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Q.

문득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제 몸을 자발적으로 찬찬히 어루만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저 스스로 몸 상태에 대해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뭇 놀라울 정도인데, 자기 몸에 대한 터치가 작업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궁금하다.

A.

중년 여성들과 함께 하는 워크숍 과정 중에 스스로 몸을 터치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수업 중간에 마구 우는 것이었다. 지금껏 자신의 몸을 그렇게 따뜻하게 만져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 말이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서로를 꼭 안아주는 시간도 있었는데, 참여자들이 또 우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 한 젊은 엄마는 언젠가 자신의 아이가 안아달라고 했는데 귀찮아서 저리 가라고 하며 안아주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고 했다. <바비레따> 프로젝트 외에도 2019년부터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진행하는 가정폭력 생존 여성들의 자립 지원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도 하고 있는데, 참여자 스스로 자기 몸에 대한 터치의 공포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며 ‘자기돌봄과 자기다움’의 의미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자신의 몸에 남아있는 폭력의 기억을 서서히 극복해가며 비로소 서로의 몸을 터치하게 되었을 때, 워크숍 현장이 그야말로 통곡의 바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렇듯, 어떤 역사를 가진 몸이든 우리 모두의 몸에는 진실로 돌봄이 필요한 순간들이 기입되어 있는 것이다. 그 순간들에 귀 기울이며 나 자신의, 그리고 타인의 삶을 돌봄의 자세로 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비레따>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Q.

마지막으로 <바비레따> 프로젝트의 향후 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시작된 지 10년여가 훌쩍 지난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춤의 시간이 궁금하다.

A.

2021년 연말에 10주년 공연을 한 이후로 작년과 올해는 안식년으로 정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40대에 <바비레따>를 시작한 우리 모두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사이에 우리 몸이 변했다는 것이다. 우리 몸이 모두 변해버렸다. 누구는 아파서 어깨를 못 움직이고, 누구는 무릎이 아파 절뚝거리며 다닌다. 평생 그런 변화가 없을 것 같았던 저 역시도 요즘 들어 몸의 신호가 점차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2021년 공연을 마친 후, 각자 몸을 추스르며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몸이 변하다 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물리적인 신체성의 결여 혹은 마음 상태의 결여에 관심을 새로이 갖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 소규모의 작업이라도 진행해보고 싶다. 그리고 전국의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장님께 허락을 받고 노인회관이나 정자, 논두렁 같은 곳에서 춤을 추며 팔도유람 버스킹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오래전부터 가져왔다. 코로나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바람을 내년부터는 점차 실행에 옮겨보고자 한다. 가까이는 올 7월에 제주 해녀분들과 만나 <바비레따>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함께 진행해 볼 예정이다.

몸에 대한 앎은 곧 몸에 대한 사랑의 터전을 이룬다. 그리고 내 몸에 대한 사랑은 타인의 몸에 대한 사랑의 터전을 이룬다. 그것을 확인해주듯, 안무가는 대화 중에 이 말을 남겼다.
“내 몸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남의 몸 또한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나를 돌보고, 나를 사랑해야만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춤이 아주 좋은 매개체인 것은 확실해요.”
자기돌봄을 매개하는 춤. 그러한 춤, 그러한 사랑, 그러한 공유 안에서 ‘춤추는 여자들’이 찾아 나가는 바비레따의 시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장은정
장은정

종군기자를 꿈꾸며 공부하던 고등학생 때 춤을 접하고, 춤의 선택을 받았다. ‘일상의 위대함을 위하여’를 작업 모토로 삼고 시대를 향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몸과 정서의 수용을 주요 가치로 여기며 생긴대로의,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을 나누고자 한다. ‘몸, 춤, 삶’을 연계하여 지속가능한 춤의 새로운 가치를 고민하고 있으며, 좀 더 자유로운 장소에서 좀 더 자유로운 사람들과 좀 더 자유로운 춤을 나누는 팔도유람을 꿈꾸고 있다. 현재 장은정무용단 대표, 강애심, 장은정, 최지연, 김혜숙, 조민수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춤추는 여자들’ 대표이다. 2021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로 선정된 <매스?게임!> <친애하는 그대에게> <바비레따, 열 번째 계절> 등 다수의 작품을 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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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옥주
손옥주
공연학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무용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공연예술 관련 학술연구와 현장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공연을 이루는 움직임의 양상들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컨템포러리 서커스에 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okjuson@gmail.com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장은정 안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