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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아닌 평안, 고립 아닌 공존

예술로 연대하는 공존-솔리다르코

모든 것이 멈추고 고립된 상황에서 힘없는 존재들의 삶은 더 큰 위협을 받는다. 예술가라는 존재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언어가 자유롭지 않은 낯선 삶,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불안함 속에 있는 난민 예술가에게 코로나19로 인해 벌어진 여러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2021년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며 한국 예술가와 한국에 살고 있는 난민 예술가들이 만남과 교류를 위해 ‘예술로 연대하는 공존(Solidary Art of the Coexistence)-솔리다르코’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불안한 시절, 예술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찾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삶은 어떻게 지속되는가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한 이 만남의 기원은 10년이라는

어디에나 있는, 그러나 쉽게 오지 않는

평화를 느낀다는 것

평화란 무엇일까?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평화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평화에 대한 정의는 하나로 말할 수 없다. 평화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요한 갈퉁이 전쟁이나 직접적인 폭력의 부재 상태를 소극적 평화로, 그리고 그러한 전쟁, 폭력,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이며 간접적인 폭력까지 사라진 상태를 적극적 평화로 명명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회가 지닌 복잡하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폭력까지도 사라진 상태가 평화라고 한다면 한 사회의 평화는 그 사회의 맥락에서, 또는 개개인의 관점에서 다르게 정의될 수

꽃을 피우듯 함께하는 마음, 평화를 향한 모두의 외침

우크라이나를 돕는 예술 활동

작은 움직임이 평화의 불씨가 되길 이선철_감자꽃스튜디오 대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은 압도적 우위의 대국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거나 곧 어떤 식으로든 적절한 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거세어 양국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제사회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이나 핵전쟁 또는 우크라이나의 만성적 내전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현실적 우려를 하게 되었다. 또한 전황이 전개되는 양상을 지켜보며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감하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부당한 침공에 맞서 기꺼이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에

평화의 봄이 왔다

책으로 만나는 문화예술교육

이른바 ‘평화’의 시대다. 북한이 남한에서 열린 겨울 올림픽에 참가하더니, 남북한의 정상이 말 그대로 ‘수시로’ 만나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핵 단추를 자랑하던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 평화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전에도 우리 주변에 ‘평화’는 흔한 말이었다. 동대문 평화시장이니, 임진각 평화누리니, 평화공원이니 심지어 평화장(필자가 해인사 인근에서 실제로 목격한 여관 이름이다)이니 하는 식으로 ‘평화’는 늘 곁에 있으면서도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러니 너도나도 평화의 시대를 말하면서도 대체 평화란 무엇인지, 어떻게 평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현재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은밀하고 위대하게 세상을 움직이는 예술

질문하는 예술

예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다양한 경험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서로 다른 시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철학과 메시지를 온전히 담아내는 예술가의 역할 또한 중요합니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Émile Zola)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사회의 부정, 즉 사회의 모든 규칙과 요구 바깥에 존재하는 개인의 확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질문하고, 비판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차이의 시대, 평화의 가능성_정수경 미술이론가

6월 6일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귀를 파고드는 사이렌 소리가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추도하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1분간의 묵념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다. 한반도를 휩쓴 전쟁의 달 6월은 그렇게 전쟁과 평화를 되새기하며 시작되곤 한다.   평화를 뜻하는 영어단어 ‘peace’의 어원은 로마어 ‘pax’다. 자연 ‘pax romana’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이 말이 가리키는 바, 고대 로마제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의 원리는 두 가지다. 정복전쟁의 최소화, 그리고 이민족에 대한 적극적인 동화정책. 하지만 이 팍스 로마나가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평화의 상태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음악 – <피아니스트>
최유준 음악평론가의 무지카시네마(1)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나치의 유태인 집단학살이 이루어진 “아우슈비츠”를 상징적 기준점으로 삼아 예술과 문명의 전후를 나누었다. 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도르노의 이 같은 명언을 떠올려보면 유태인 집단학살을 다룬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2002)에서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의 피아노곡들이 전편에 깔리는 것은 얄궂기까지 한 일이다. 이는 물론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 속 주인공 피아니스트 스필만이 쇼팽과 같은 폴란드인이라는 점을 고려한 설정일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라는 시청각적 체험의 도구를 통해 아도르노의 비관적 예술관을 실험해 보기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