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가장 높은 산, 금정산에 오르면 부산의 지세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날씨 좋은 날은 멀리 대마도가 보이고 해 질 녘 낙동강의 반짝이는 물결도 볼 수 있다. 금정산 능선 한 편에 산성마을이 있다. 산성마을은 예전에 집집마다 막걸리를 만들어 팔기도 했고, 등산객들이 하산길에 파전이나 도토리묵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거나, 단체모임에서 오리고기나 백숙을 먹으며 야유회나 단합대회를 하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금성초등학교는 이 산성마을에 있다. 부산이라는 대도시, 특히 부산대학교에서 불과 차로 10여 분이면 닿을 거리에 있지만 꼬불꼬불 경사진 산길을 올라야 하는 산성마을은 높이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거리감이 있다.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것이 주요 생계수단이기는 하지만, 산 중턱에 둘러싸인 산세나 밭이 있는 풍경은 농촌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농촌 마을이 그러하듯이 그곳에서 나고 자란 젊은 사람들도 마을을 떠나고, 소비나 문화의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그곳에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는 적었다. 2005년경 전교생이 50명 정도로 줄어들었던 금성초등학교도 한때 폐교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내가 문화 활동을 시작하던 2010년쯤에는 정보력 빠르고, 입시 교육에서 한 발짝 빗겨서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금성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한 노력이 이미 회자되고 있었다. 폐교가 거론되던 때에서 불과 2년 정도 지난 2007년에 학생 수 100명이 넘어섰으며, 굳이 산성마을에 살지 않아도 통학용 승합차로 학교에 다니던 것이 수요자가 많아져서 지금은 산성마을에 주소지를 두고 거주해야만 다닐 수 있다고 한다.
그사이 변화라고 할 만한 것이 확실히 있었다. 부산시교육청에서 2006~2007년 정책연구학교로 지정해 교육과정 혁신모델학교로, 2008~2009년 교육과정 자율학교를 위한 작은 학교 모델로 운영했다. 그뿐만 아니라 2008~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꽃 씨앗학교도 진행되었다. 정책적인 용어가 들어가니 좀 딱딱해 보이지만 몇몇 교사들이 합심해서 체험 중심, 주제 통합, 방과 후 보육 등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쉽게 이야기하면 폐교의 위기를 입시 교육의 틀을 벗어나 문화예술과 체험을 강화하는 것으로 돌파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인터뷰는 바로 그 시기 금성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예술꽃 씨앗학교를 통해 음악을 배웠던 강영훈 씨에 대한 것이다. 그 당시 음악을 배웠고, 또 그로 인해 음악을 사랑하게 된 강영훈 씨는 현재 부산에서 특색 있는 음악(오리엔탈 댄서블 록)을 선보이고 있는 ‘더 매거스’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예술꽃 씨앗학교를 통해 음악을 배웠던 그는 모교인 금성초등학교를 포함해 3곳의 학교에서 밴드 동아리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어서인지 말은 군더더기 없이 짧고 간결했다.
산성에 있는 금성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밴드 동아리 강사로 나가고 있다. 부산이라는 큰 도시에 있는 학교지만 높이도 있고, 거리감도 있다. 학교 분위기는 어땠는지? 그리고 예술꽃 씨앗학교가 도입될 당시 기억이 나는지?
도심 속에서 큰 학교 다니다가 3학년쯤 금성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교생 50 몇 명 정도의 작은 학교였고, 슈퍼도 하나뿐일 정도로 주변이 개발되지 않은 곳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거나 배우는 시간 말고 별달리 할 게 없어 그런지 학교에 있는 시간이 제일 재밌었다. 수업이 끝나도 운동장에서 놀고 그랬다. 금성초등학교에 와서 처음 기타를 배웠다. 최윤철 선생님이 밴드 동아리를 해보자고 해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고 얼마 뒤 예술꽃 씨앗학교도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합주, 춤 등등 여러 문화예술 관련 수업이 생기면서 다양한 선생님들이 학교에 드나들었던 것 같다. 합주라 악기별로 선생님도 다양하게 오셨다. 나는 악기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선생님들과 게임이라든지 사담이나 잡담 같은 것을 나누는 시간까지도 모든 것이 즐거웠다.
예술꽃 씨앗학교의 경험이 예술에 대한 관점, 진로나 삶의 방향, 관계 등에서 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집이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금성초등학교를 계속 다니지 못하게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윤철 선생님께서 마침 이사하는 곳 근처에 살고 계셔서 출퇴근하시는 차로 함께 등하교 하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런 배려 때문에 계속 학교에 다닐 수도 있었고, 좋아하는 음악도 계속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선생님께서 그렇게 신경을 써주셔서 도시의 학교로 옮기지 않은 것이 내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지 않았을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운 좋게 그때 배웠던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악기나 춤을 배우고 그것으로 무대에 서보는 경험을 하면서 표현한다든지 생각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재미있는 상상 같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들어서 기준이 되고, 그냥 ‘나’가 되었다.
금성초 외에도 밀양 부북초, 예술꽃 씨앗학교인 상북초 등에 출강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밴드 동아리 강사로서의 보람이나 어려운 점은?
모교인 금성초등학교에서는 3년 차인데, 음악이나 악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가르쳐 아이들이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볼 때 즐겁기도 하고 보람을 느낀다. 모교이다 보니 공감대도 잘 형성되는 부분도 있고, 선배발(?)도 좀 먹히는 것 같다.(웃음) 그런 즐거움도 있는 반면 요즘 아이들, 특히 도시의 아이들은 사춘기(?)가 빨리 오는 것 같다. 아이로 대해야 할지 청소년으로 대해야 할지 어느 태도로 대하면서 만나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내가 어렸을 때 선생님을 만나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것처럼, 음악의 다양성을 알아가고 음악을 통해 친구들을 만나고 교류했던 것처럼,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그런 것들을 느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교육자(강사)와 창작자(아티스트), 어울리면서도 잘 안 어울린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일단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내가 잘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좋고, 예술꽃 씨앗학교 강사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고도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래도 가장 큰 부분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면서 엉뚱한 생각이랄지 오기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큰 무대에 서거나 방송에는 나올 정도로 유명해지면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듣지 않을까?(웃음)
학생으로서 직접 경험했던 예술꽃 씨앗학교와 현재 강사로서 경험하고 있는 예술꽃 씨앗학교 간에 다른 점이 있나?
오히려 내가 특수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내가 금성초등학교 다닐 때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거의 전부였다. 예술꽃 씨앗학교를 통해 학교에서의 시간이 더 재밌어졌고 소중해졌다. 하지만 요즘은 게임이나 유튜브 등 즐길거리나 흥미를 채울 수 있는 소스가 많아서인지 아이들이 그렇게 재밌게, 소중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들 것 같다. 아이들이 밴드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얻었으면 하는지, 또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으면 하는지? 강사로서의 욕심이 있다면.
나는 인디밴드, 그중에서도 록음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음악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생소해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나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신나거나 유명한 음악만 듣는 것처럼 너무 보이는 것만 좇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것보다는 음악 속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고 음악을 통해 관계가 깊어지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요즘 수업을 다니다 보면 친한 친구와 같은 수업을 듣지 않는 경우도 있고, 같이 밴드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불만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밴드나 합주 활동이 오히려 편견이나 장벽 없이 새로운 관계를 탐색하고 열어주는 그런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때 좋아하는 음악을 만나 20대 초반 벌써 음악이라는 언어를 가진 강영훈 씨와의 담백한 인터뷰를 곱씹어보게 된다. 나를 포함해 수많은 우리에게 흔하게 주어지지 않은 두 가지를 참 일찍 만났구나 싶어진다. 하나는 최윤철 선생님처럼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은사이고, 다른 하나는 공부 아닌 것을(문화, 예술, 놀이 등을) 실컷 해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다. 예술꽃 씨앗학교를 통해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해서 한 아이가 ‘나’가 되어가는, 무언가(음악)를 사랑하는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행운이 이제 수많은 우리들에게도 조금은 더 가까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강영훈
강영훈

인디밴드 ‘더 매거스’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금성초등학교(예술꽃 1기) 밴드부에서 처음으로 기타를 접했고, 졸업할 때까지 밴드부로 활동했다. 지금은 모교인 금성초를 비롯하여 밀양 부북초, 상북초(예술꽃 9기)에 밴드부 강사로 출강하면서 개인 레슨도 병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관계가 깊어지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박진명
박진명
생각하는 바다 대표. 예술가와 지역운동가 사이쯤의 문화기획자.
motwj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