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시재생과 관련한 일로 여러 지역에 자문을 다니고 있는데, 대부분 오래된 산업시설을 문화복합시설로 만들기를 원하거나, 해외 사례를 보고 온 행정가들이 자신들의 지역에 그 사례를 접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고 듣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오래된 지역에 순간적인 신선함을 줄 수도 있겠지만, 과연 지역의 정체성에 기반하고 보존을 염두에 둔 계획인지 확인하고 또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삶’을 중심으로 지역성을 보존하며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는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 가소메타 B동 기숙사
  • 가소메타 연결브릿지
사회기반시설에서 생활기반시설로
– 오스트리아 ‘가소메터 시티’
1870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건설한 사회기반시설 ‘가소메터 시티(Gasometer City)’는 빈 전역에 가스를 공급했던 거대한 가스저장소 4동으로서 그 규모와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한때 빈의 랜드마크였다. 1981년 보호 건축물로 지정되었고, 1986년 도시 전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면서 가동이 중지되자, 역사적인 산업유산으로 보존하기로 했다. 이후 빈시는 이 건물을 재활용하기 위해 건축가, 도시계획가, 민간 개발업자, 문화 담당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7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빈 11구 지역에 위치한 가소메터 시티가 대중교통으로의 접근은 쉽지만,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에 비해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다는 점에 집중했다. 빈의 11구 지역을 전체적으로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자와 방문자가 필요했다. 이에 지역 전체의 개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촉매제로 가스저장소의 활용은 적절했다. 1995년, ‘예전 건물의 외형을 남긴다’는 기본적인 조건 하에서 사람들의 생활 반경을 이 건물 안으로 모으기 위해 4개의 원기둥 건물을 4명의 건축가에게 제안해 리모델링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그렇게 2001년에 이벤트홀, 사무공간, 쇼핑몰, 기숙사, 아파트가 어우러진 새로운 ‘가소메터 시티’가 만들어졌다.
  • 가소메타 C동 상부
  • 가소메타 내부
가소메터 A동은 12층 높이, 9개의 주거타워를 기존 가스저장소 안쪽에 세우고, 저층에는 지하철역과 연결로를 만들었다. 오픈 스페이스인 중앙 보이드(void)를 마련해 각종 음식점, 옷 가게, 슈퍼마켓 등 다양한 생활 편의시설을 구성했다. 가소메터 B동은 서쪽에 방패 모양으로 유일하게 새로 건축하여 덧붙인 형태로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새로 만든 현대적 건물은 학생 임대 아파트로 운영한다. 가소메터 C동은 지하주차장을 만들고, 최대한 기존 가스저장소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디자인하고 주거공간마다 작은 정원을 조성해 울창한 녹지를 이루도록 만들었다. 가소메터 D동은 빈시 자료관, 극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가소메터 시티 곳곳에 친환경 설계를 적용했다. 모든 동 전체에 유리 천장을 설치해 이용객들이 최대한 자연광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주택 거주자의 환경을 위해 내부 창의 면적을 넓힌 아트리움(atrium) 형태를 활용했다. 그렇게 가소메터 시티에는 소유, 공동, 임대 아파트 등 다양한 크기의 615개의 아파트와 247명이 살 수 있는 학생 임대 아파트가 있다.
도시 속 도시 다시 세우기
– 네덜란드 ‘NDSM’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무료 셔틀 페리를 타고 강 건너로 가면 ‘NDSM(New Dock activities Stories Members)’이 나온다. 1922년부터 운영되던 조선소가 1984년 파업을 하면서 문을 닫은 후 그대로 방치된 채 남겨졌다. 축구장 10배가 넘는 크기와 심한 오염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불법 거주자의 천국으로 변모하여 버려진 땅으로 알려졌다. 오래된 산업 건물에 문화유산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재건축보다는 재생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네덜란드 정부의 재생 사업으로 건축그룹 ‘스페이스 앤 매터(Space & Matter)’가 10년간 임대받는 조건으로 재생이 시작되면서 지역민과 예술가들의 힘이 더해져 복합적인 문화공간으로 변화했다.
(위) 쿤스트스타트, 무료셔틀페리
(아래) 더블트리힐튼호텔, 컨테이너기숙사
NDSM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조선소 창고는 ‘쿤스트스타트(Kunststad, 예술도시)로 바뀌었다. 이곳은 약 400명의 예술가와 디자이너, 건축가, 무대 디자이너가 살면서 작업하는 공간이며, 현재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예술가 레지던시 중 하나가 되었다. 매달 유럽 최대의 아트마켓인 ‘아이할렌(IJ-Hallen)’을 비롯한 ‘아이 페스티벌(Over het IJ Festival)’ ‘디지티엘(DGTL)’과 같은 연극, 음악 축제와 다양한 문화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오래된 크레인을 개조해 2014 오픈한 ‘팔랄다 크레인 호텔(Faralda Kraanhotel)’은 높이가 50m이며 하룻밤에 500유로나 하는 고급 호텔이다. 또한 버려진 배를 활용하여 오픈한 호텔 ‘보텔(BOTEL)’, 공장을 지붕으로 활용해서 만든 ‘더블트리 힐튼 호텔(Doubletree Hotel by Hiton)’도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숙박 시설 중 하나이다. 또한 비치 콘셉트의 레스토랑 ‘플렉(Pllek)’, 전시회, 스포츠 행사, 음악공연 등 누구나 하루 동안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클럽 ‘섹시랜드(Sexyland)’ 등 다양한 공간들이 오픈되어 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NDSM은 주거 중심의 공간으로 변화해갈 계획이라고 한다. 암스테르담의 중기지방개발전략 ‘코스 2025(Koers 2025)에 따라 정부는 2025년까지 연간 5,000채, 총 50,000채의 주택을 건설할 계획이고 그 중 NDSM에 2,100채를 건설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컨테이너로 만든 기숙사와 다양한 주택을 보급했고, 계속해서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

2018 아이 페스티벌
[영상출처] YouTube
지속가능한 삶터로의 재생
앞서 이야기한 가소메터 시티를 보면, 전통적인 노동자 구역이었던 도심 외곽에 자리한 11구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호텔보다 더 나은 수준의 다양한 주택이 필요하다는 판단은 적절했다. 당시 대부분 산업유산이 박물관이나 문화예술시설로 탈바꿈되던 유럽의 분위기 속에서 공동주택을 기반으로 한 문화시설의 재생이라는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낸 것이다. 또한 완공 후에도 빈시는 지원 정책을 만들어 거주민들의 월세를 보조하고, 상가에 처음 입주하는 업체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닌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후관리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NDSM의 재생 핵심은 ‘도시 안에 있는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주하고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창의적인 사무실과 새로운 가게, 레스토랑, 슈퍼마켓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부분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예술 활동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축제로 매번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예술가, 창작자, 젊은 기업가 등 문화와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하나의 도시를 개척하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도시재생 지역 중에 오래된 산업시설 건축물이 있는 경우, 대부분 문화시설이나 청년창업 시설로 만들려는 의지가 강하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그러한 시설이 태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활동할 새로운 탐구자나 창작자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청년에게 바라고 있는 비중이 큰 실정이다. 문화적 도시재생, 또는 대안적인 도시재생에 청년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델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재생 방식은 아직까지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없는 행정의 톱다운(top-down) 방식의 재생 모델이다. 위의 두 사례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기존의 틀이 아닌 새로운 틀을 만들 수 있는 장소와 행정을 제공한다면 삶과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창조적 도시재생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관련링크
가소메터 시티 www.gasometer.at
NDSM www.ndsm.nl
아트마켓 아이할렌 ijhallen.nl/en/index.php
사진 _ 나태흠
나태흠
나태흠
사회적기업 안테나 대표. 디자인 사고를 기반으로 기존의 커뮤니티 디자인을 넘어 지역재생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며 사회적기업 안테나를 운영하고 있다. 다년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디자인콜라주워크숍(desgin collage workshop), 지역커뮤니티 북카페 치포리(chipoli), 코워킹&코리빙 아츠스테이(artxstay)를 6호점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사회적기업육성사업 도시재생부분 운영, 국토교통부의 청년도시재생해커톤 기획 운영과 다양한 문화적 도시재생부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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