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시대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니 공업 도시 울산에서도 꽤나 필요한 고민이다. 지난해 공단 내 기업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문화예술스튜디오 ‘노래숲’을 취재했던 인연으로 한 번 더 울산을 찾았다. 이번에는 워라밸 시대에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쓸모가 있을까 하는 물음 외에도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실행하느라 격무(?)에 시달리는 기획자의 워라밸에 대한 궁금증도 품고서 문화예술스튜디오 노래숲 김수연 기획팀장을 만났다.
극단 음악감독, 노동자 노래패 음반제작 등을 하시다가 2009년부터 지역아동센터,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등 본격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셨다.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을 바라보는 태도나 관점의 변화들이 궁금하다.
울산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먼저 시작한 1세대라 어떤 자리에 가면 시조나 화석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웃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창작활동을 시작했는데 울산이 노동자들의 도시다 보니 노동자 문화예술교육도 쭉 진행해오긴 했다. 그 당시에는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자 권익을 위한 투쟁의 도구로 춤, 풍물, 노래 등 문화예술교육이 많이 활용된 측면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이 막 시작되던 시점이라 정확하게 어떤 지향과 고민을 담아 사업이 진행될지 모르던 시기였다. 지역에 저런 공모사업이 있구나, 지원금이 나오니 창작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면서 큰 감동을 받았고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에 대해서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재미있고 가치 있는 경험, 큰 힘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한 해를 딱 겪어보고 나서 다른 강사들과 이렇게 평가했다. “이거는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것(창작활동에 금전적인 도움이 되는)이 아니다.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다.”(웃음) 이후로 문화예술교육 연구모임과 워크숍 같은 것을 통해 공부하면서 지역에서 제대로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동센터에서 시작해서 다문화가족 여성들, 어르신들, 주부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어떤 콘텐츠와 태도로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10년 정도 이어왔다.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예술교육으로 만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고, 성취나 즐거움도 있을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일이 가장 큰 성취로 남는 것 같다. 지자체와 함께 잘 활용되지 않던 지역의 유휴공간을 문화거점으로 만들자고 3년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마을 통장님과 아주머니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처음에는 퉁명스럽거나 뭐 하는 건지 보자는 식이었다. 그래서 역으로 뭘 해보고 싶으시냐고 의견을 물어서 데모 프로그램(demo program) 같은 것을 진행하고 나니까 이분들이 “이런 것이 다 있냐”고 감동을 하셨다. 나중에는 제가 하는 거는 무조건 믿는다고 할 정도로 신뢰가 생기기까지 3년의 과정을 겪었다. 또 다른 경험은, 2011년에 딱 한 번 큰 예산으로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캠프를 진행했었다. 지역에 있는 10개의 예술단체와 청소년단체가 협업해서, 3박 4일 동안 150명의 아이들과 함께 했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이때 참여했던 중3, 고1 아이들이 지금은 예술강사가 되어서 저와 같이 프로그램을 하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만나면 당시의 즐거움에 대해서 아직도 이야기한다더라. 극단 활동을 한다든지 예술 관련 활동을 하게 된 친구들이 많이 생겼을 만큼 3박 4일 동안 예술에 푹 젖어본 경험이 좋았던 것 같다. 우리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이다.
다들 삶을 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 흘러가고, 또 한편으로는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문화예술교육자이자 기획자로서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지?
요즘은 개별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많은데 문화예술교육이라 하면 공동체 속에서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 결국은 인간과 기계가 주고받을 수는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눈빛 속에서의 ‘위로’와 ‘공감’ 같은 것이 예술과 결합하면서 ‘쿵!’ 하는 충격이나 울림이 오는 것 같다. 많은 취미활동을 찾아갈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뭔가를 시작하기는 여전히 어렵고, 스스로 만들어보는 경험까지 해보는 것은 여전히 귀한 것 같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기업과 함께 노동자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너무나 낯설고 어색해한다. 태어나서 첫걸음마를 떼는 것 같다. 강사들도 그 어색함을 깨는 부분을 제일 힘들어한다. 노동의 현장에서 그곳(수업 장소)으로 오게 하는 것이 어렵다. 노동하던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하는 것을 어색해한다. 마음을 두드리는 것 자체가 제일 힘들었다. 서로의 얼굴을 그려본다든지, 노래를 배워본다든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어색함을 줄여가는 속에서만 문화예술이 놓일 자리가 생기는 것 같다.
노동자, 아동, 청소년, 여성, 어르신 등 폭넓은 대상과 만났다. 연령이나 계층에 따라 라이프스타일도 달라서 그들의 ‘삶’을 어떻게 문화예술로 연결할지 접근법도 다를 것 같다. 팁을 공유해주신다면.
처음에는 공연기획, 작곡, 밴드 음악 활동을 하다가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면서 ‘누구나 노래를 만들 수 있다’ ‘누구나 삶의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모토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 아이들을 만나고, 청소년, 주부들과 함께 뮤지컬도 만들고, 마을이나 시장에서 어르신들과도 함께 했다. 거의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과 집단창작으로 노래를 만드는 작업을 해본 것 같다. 그 과정을 통해 음악 놀이를 하면 아이들은 집중하지만, 어르신들은 유치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신 어르신들하고는 노래 교실을 빙자해 3주 정도 신나게 트로트를 부르며 논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삶터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면 그게 가사가 되고, 흥얼거림은 노래가 된다. 어르신들이 노래를 만들면 대부분 그들이 좋아하는 뽕짝처럼 된다. 청소년들은 주로 힙합이 되고. 이런 식으로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지금은 연령에 따라 커리큘럼이 다 있다. 강사들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숱한 과정을 통해서 대상에게 맞는 방법들을 찾아 왔다. 하지만 연령이나 장르에 상관없이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와 애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기술)을 전달하려는 관점을 깨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참여자에게 어떻게 녹아들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자고 이야기한다. 기업 내 노동자들과 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모집이 안 되거나, 회사에 일이 있어 단체로 수업을 못 하게 되거나, 직급에 의한 내부적인 갈등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 실망할 일도, 힘 빠질 일도 없다. 서로를 다독이며 함께 하는 강사들과 팀워크를 다져가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기획자, 매개자, 강사 등 역할을 넘나들게 된다. 문화기획자의 워라밸도 있을 것 같은데.
문화기획자들은 밤도 없고 낮도 없다. 기획자나 강사들 사이에서 보따리장사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길면 1년, 짧으면 6개월 만에 끝날 정도로 한시적이고, 늘 새로운 대상을 찾아가야 하고, 내년에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들은 긴장감과 더불어 아프기도 한 과정이다.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준비, 공모사업 지원, 참여자들과의 소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기는 하다. 저도 몇 년 전에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근데 “누가 시켜서 했나, 네가 좋아서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힘들어도 기획자는 제안이 오면 다 하게 되더라.(웃음) 그러면서 멈추는 것을 훈련하는 시기가 있었다. 올봄부터 취미생활을 하나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재봉틀 수업에 간다. 사실 한 마을공동체에서 아주머니들 대상 재봉틀 교육하는 곳에 컨설팅하러 갔다가 너무 좋아서 그다음에 찾아가서 저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웃음) 소품도 만들고 하는데 굉장한 몰입과 더불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재미난 경험을 하고 있다.
창작활동으로 보면 15년, 문화예술교육 활동으로 보면 10년이 넘었다. 창작자이자 교육자, 기획자인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질문 같은 게 있을 것 같다. 혹은 앞으로의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고민의 키워드 같은 것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창작도 문화예술교육도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주체들이 지역 문화생태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지속가능할 것인가, 대중과 만날 때 소비하는 형태가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참여해서 주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저는 공대를 나왔고, 학생 문화 운동을 했고, 사회에 나오면서도 밥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저에는 ‘사람’이 늘 있었다. ‘예술’이 지니고 있는 힘으로 ‘사회’ 속에서 가치 있는 자신의 역할과 관계를 고민하는 것에 주목해왔다. 문화예술교육 예산이 커지다 보니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모니터링을 하러 가서 학습자와의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든가, 기술적으로만 접근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잘 실현할 수 있는 지역의 생태계가 잘 만들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생태계 안에서 꾸준히 잘 해오고 있는 단체들이 쓰러지지 않고 버텨줬으면 좋겠다. 정책이 만들어질 때 이런 현장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반영되면 좋겠다. 그래서 문화적인 정책의 방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연구모임, 소소한 모임을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김수연

김수연

대학 시절 학생 문화 운동으로 시작해 ‘노동자들의 도시’ 울산의 노동 현장에서 노래를 바탕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마당극단에서 음악감독으로 10년 동안 창작활동을 했고, 더불어 노동자 노래패, 지역아동센터 아동, 가족, 공단 내 노동자, 이주민 여성, 지역의 어르신 등 다양한 계층과 워크숍이나 강의를 통해 집단 창작으로 노래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해오고 있다. 음악과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교육과 기획사업을 진행해오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컨설팅과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영상 _ 최영섭, 박영균(영상작가)
프로그램 사진 제공 _ 문화예술스튜디오 노래숲
박진명
박진명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 지역문화실장. 예술가와 지역운동가 사이쯤의 문화기획자.
motwj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