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금천구 독산동에는 청년이 직접 주체가 되어 설립한 ‘청춘삘-딩’이 있다. 금천구청, 비영리민간단체 꿈지락네트워크(이하 꿈지락), 지역 청년들이 함께 운영하는 이 공간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자, 지역 내 청년 활동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한다. 2016년 11월에 개관한 청춘삘-딩은 인적이 뜸해진 청소년독서실을 리모델링하여 탄생한 공간이다. 청춘삘-딩이 조성된 후 금천구는 80여 개의 지역 청년 커뮤니티를 발굴했다. 청년들의 사소한 날갯짓이 금천구에 엄청난 ‘태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청춘삘-딩 외관
  • 청년커뮤니티지원사업 ‘두잇’
청년 자치 활동의 결과, 청춘삘-딩
금천구는 과거 경기도 시흥군에 속했던 지역으로 영등포구, 구로구에 편입되기도 했다가 1995년 마침내 지금의 금천구가 되었다. 하지만 계속 행정구역이 바뀐 탓에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서 구로공단의 배후단지로 기능할 뿐이었다. 그만큼 지역에 문화예술과 청년 활동이 활발할 리가 없었다. 2016년 매니페스토 협동조합이 발표한 ‘서울지역 자치구별 청년정책랭킹’에 따르면 금천구는 25개 자치구 중 공동 24위를 기록했다.
금천구에 변화의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였다. 금천구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주축인 꿈지락은 지역 내 청년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윽고 이들은 구청에 청년 공간의 필요성을 힘주어 설명했고, 관내 유휴공간을 조사했다. 그러던 중 독산동 내 구립 청소년 독서실의 활용도가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금천구에 독산3동 청소년독서실 기능전환사업을 제안하여 예산을 확보했다. 2016년 5월 공간 활용에 대한 청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오픈 테이블’을 개최하였고, 6월부터 리모델링이 시작되었다. 리모델링이 진행되는 동안 꿈지락은 4회에 걸쳐 ‘지역 청년 욕구조사(포커스그룹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놀랍게도 50여 명의 청년이 이들의 부름에 응답하였다.
“우리가 제안한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생각만으로 정책을 짜는 건 위험하거든요. 공공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한 사람의 의도대로 되면 안 돼요. 지역 청년 욕구조사에는 매번 10명 이상씩 왔었어요. 그때 부각된 것이 1인 가구에 대한 문제였는데, 가장 핵심적인 건 ‘먹거리’거든요. 혼자 살기 때문에 식기를 잔뜩 마련할 수도 없고, 식자재도 금방 버리게 돼요. 그래서 공간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게 대대식당(공유부엌)이었어요. 만약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업을 세팅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 박석준 꿈지락네트워크 대표
이 자리에서 나온 청년 개개인의 의견들은 금천구 청년 정책, 청년 기본조례, 그리고 청춘삘-딩의 지원사업을 세팅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2017년 1월에는 금천구 지역혁신과에 청년 업무 담당 부서인 ‘청년동행팀’이 신설되었다. 보통의 행정적 절차는 조례가 있고, 그에 따른 정책 결정자가 사업을 세팅한 뒤 공간을 만들고, 업체에 운영을 위탁한다. 하지만 청춘삘-딩의 경우는 청년들이 주도하여 역제안하면서 행정시스템이 만들어진 셈이다. 한때 문화예술, 청년 활동의 불모지였던 금천구에 국내 최초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한 청년 활동 공간이 생겼다.

콜라보 프로젝트 _ 청춘쌀롱
주인의식과 파트너십, 자발적인 주체로
빽빽한 골목을 들어가면 파란색 3층 건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영롱한 보랏빛이 들어온 ‘내 인생의 시발점’ 네온사인이 우리를 반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른쪽 벽에 탁구공으로 만든 샹들리에가 있다. 건물 외관과 내부 곳곳에는 참여자들이 꾸민 듯한 장식이 눈에 띈다. 1층은 금천구 청년 활동 지원센터로 청년정책 및 공공서비스를 안내하는 공간이다. 청춘삘-딩의 각 사업 담당 매니저들은 이곳에 상주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는 청춘홀이 있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유공간으로 전시, 공연, 영화상영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청춘삘-딩은 서울시 일자리카페로 지정되어 있어, 매주 화요일에는 일자리 관련 상담을, 토요일에는 격주로 창업과 취업에 관한 강좌가 열린다.
3층은 <응답하라 1988>에 주인공 택이 이름을 따서 뭔가 편안하고, 자유로운 아지트 느낌으로 만든 ‘택이방’과 ‘대대식당’이 있다. 전체 건물을 시공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여 부득이하게 3층은 청년들이 직접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고 한다. 독서실 책상과 나무판자 등 기존에 독서실에서 사용하던 자재들을 곳곳에 활용하여 친구 집 같은 좌식 공간을 만들었다. 대대식당에는 다양한 식자재와 조리도구를 보유하기 힘든 1인 가구를 배려하여, 각종 조리도구와 간단한 조미료가 항상 구비되어 있다. ‘공유’는 청춘삘-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철학이다.
“‘공유’라는 문화는 주인의식을 가진 개개인들이 모여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청춘삘-딩은 서로 물리적인 공간과 도구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일부를 보여주는, 그런 공간으로 공유되었으면 좋겠어요.”
청춘삘-딩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지만, 공공 공간인 만큼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사유 될 수 없다. 청춘삘-딩을 이용하는 청년은 ‘분양신청서’를 작성해서 ‘분양권(멤버십카드)’을 받는다. 분양권에 굉장히 특별한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공간에 대한 공동의 권한을 약속하는 것인 만큼 분양권을 받은 청년들은 주인의 입장이 되어 공간을 돌보기도 하고 운영 방식 등에 조언하기도 한다. 박석준 대표는 이러한 주체적인 활동이 가능하려면 청년 개개인에게 ‘시민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력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 주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선택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역량이다.
“시민력을 갖춘 시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가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래세대(청소년, 청년)의 문제가 모두 입시 교육과 취직에만 맞춰지다 보니까 자기 문제에 대해서 꺼내 놓지도, 선택하고 책임지는 방법도 모르는 거예요. 각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다르고, 서로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면 갈등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걸 시민력을 갖고 건강하게 해결하는 게 중요해요.”
N포세대,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청년실신(청년실업+청년신용불량자), 흙수저 등 오늘날 청년을 부르는 다양한 단어들은 주체성이나 시민력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한 공간에서 삶의 양식을 공유하려면 ‘주거문제’, ‘식생활 문제’ 등 각자가 가진 문제를 논의해야 하고, 모두가 주체적인 시민으로서 공간을 운영해야 한다.

콜라보 프로젝트 _ 공간참여디자인 워크숍(왼)과 워크숍 때 만든 탁구공 샹들리에(오)
청춘삘-딩의 ‘콜라보 프로젝트(공간문화사업)’는 시민력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사업이다. 청년 개인 및 단체가 제안하는 ‘제안형’과 청춘삘-딩이 구상하고 참여자들을 초대하는 ‘기획형’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청년들이 다 함께 공간을 운영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실험을 한다. 일례로 2017년에 진행된 디자인&리서치 하우스 소정당 협동조합과의 콜라보 프로젝트 ‘공간참여디자인’에서는 청춘삘-딩의 쓰임새와 디자인에 대한 논의하고, 건물 내·외부 공간을 직접 디자인하여 시공까지 해보는 작업이었다.
총 3차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 당시 가장 많이 논의되었던 이슈는 주차문제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청춘삘-딩 앞에도 좁은 골목에 주차 대란이 일어나면서 방문자들이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주차금지에 대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면서도 주민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 수 있는 디자인을 고려하게 되었고, 체스 게임판, 등대 모양 등 아기자기하고 유머러스한 주차콘(원뿔 모양의 교통 표지)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최종 디자인은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으로 결정이 났다. 주차콘은 갈색 페인트를 칠하여 아이스크림콘 모양으로 도색하고, 바닥에는 아이스크림이 흐른 것 같이 페인트를 칠해 설치미술 작품을 완성시켰다.
콜라보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들은 직접 운영 주체가 되면서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이 프로젝트는 청년이 단순히 일방향적으로 제시하는 서비스를 소비하기만 하는 이용자가 아니라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문화를 구성하는 ‘시민’ 주체로 성장하게끔 한다.
공간을 넘어 확장하는 청년 활동
청춘삘-딩의 청년 활동과 문화는 지역 공동체와 연결된다. 수많은 청년 커뮤니티와 작당들이 지역 내 주체로 성장하면서 지역에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청춘삘-딩에서 시작된 많은 활동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어요. 공간문화사업(콜라보 프로젝트)을 함께 한 소정당 협동조합은 현재 금천구 사회적경제 허브센터에 입주하여 지역 내 여러 활동을 하고 있고, 성교육을 진행하는 단체 ‘라라스쿨’은 저희가 연결해 준 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고 있어요. 같이 독서 모임을 했던 친구는 금천구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에 매니저로 취직했고요.”
청춘삘-딩은 금천구 지역에서 그 범위를 넓혀 서울시 도시 전체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서로 다른 삶들이 만나 문화가 된다면 그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와 장소도 중요하다는 게 박석준 대표의 말이다. 따라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도시라고 한다면, 도시 전체의 문제가 시민의 삶과 연관이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자본 축적의 기회가 없고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 공간 빈곤 세대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개인이 가진 시민력을 회복한다면, 하나의 공간에서 시작된 ‘내 인생의 시발점’은 지역으로, 도시로 확장할 수 있다. 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청춘삘-딩의 날갯짓이 우리 사회에 더 깊은 영향을 남기길 바란다.
[관련링크]
금천구 청년 활동공간 청춘삘-딩 http://youthblg.org/
사진제공_꿈지락네트워크
이태주
김다빈_자유기고가
사회적 경제, 마을 축제, 시장, 문화예술교육, 연극 등 다양한 판에서 문화예술기획자로 활동했다. 평범한, 보통의 무언가도 특별하다고 생각하기에, 곳곳에 묻어 있는 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를 수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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