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의 도시를 걷다 보면 좁은 골목들 사이로 즐비한 실외기를 마주한다. 끊임없이 경쟁하듯 실내의 더운 공기를 실외로 내뿜는다. 후텁지근한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드는 생각 하나, ‘비단 뿜어져 나오는 것이 제 몸 하나 시원하자고 밖으로 보내는 이기적 공기뿐일까?’ 편견, 욕망, 욕심 등 수많은 이기적인 것들을 안으로 품어내지 못하고 밖으로, 밖으로 내뿜고 있으니 이 도시가 더 더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누구라도 지칠 수밖에 없는 이 더운 날에도 ‘안으로, 안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공간인 마을에서 더불어 잘 사는 삶을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엄마이자, 기획자이며, 예술강사인 마음놀이터 김옥진 대표를 만났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휴가를 보내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데, 하시는 일 외에 어떤 것들로 에너지를 충전하시나?
워낙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힘들어한다. 예술강사로 기획자로, 엄마로, 때론 악처(?)로, 또 최근에는 마을 코디네이터 역할까지 맡아서 쉴 틈이 없다. 하지만 그게 내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 이상하게 힘이 난다. 천성적으로 사람들 속에서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캐릭터인가 보다. 진심이다.(웃음)

삶을 이끄는 힘, 에너지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하나?
제가 보기에는 이렇게 선머슴처럼 생겼어도, 알고 보면 천생 여자다. 감성도 풍부하고 겁나 부드러운 사람이다.(웃음) 아마 성장기 때 부모님에게 관심받고 인정받으려고 일부러 사내아이 같은 행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게 몸에 배어서 성장한 후에도 그렇게 보이는 것 같은데, 내면은 다르다. 그런 성향이 아마 감성적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모티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을 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흔히 말하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미혼모, 장애인 등 어떻게 하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나 힘을 줄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계도 느꼈다. 내가 하는 프로그램이 그들의 전반적인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 시스템의 한계 같은 것을 느꼈다.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공감 가는 부분이지만, 대부분은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해나가지 않나. 그런데 지금 하고 계시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보면 그 고민을 극복(?)한 흔적이 보인다. 한 단계 올라선 느낌이랄까. 어떤 계기가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몇 년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열심히 살았다. 특별할 것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강사 역할 잘하고 나름 자부심을 갖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삶을 바꾸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세월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뉴스로 접하고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어느 날, 고등학교 수업을 하러 갔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희생을 당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머리에 무언가를 맞은 느낌이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참을 울었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다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광주시민 상주 모임’에 들어갔고, 이후 3년 동안 마을과 공동체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촛불을 들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활동을 하면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반화된 여러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아닌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저 평범한 개인으로 살던 저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지금 마음놀이터에서 하고 있는 엄마들과의 작업도 그때를 계기로 이루어지게 된 것인가?
그렇다. 엄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전에 엄마인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면 ‘엄마’라기보다는 ‘여자’라는 자기정체성을 잊고 살아온 중년의 여성들이 낯설고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콘텐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웃음) 그런데 그동안은 사실 ‘이렇게 해봐야겠다’는 기획에서 출발하지 못했다. 자발성이 떨어졌다고 할까?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부분을 공감하면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아니, 사실 따로 기획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교육 모토가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이다. 그냥 마중물 붓듯이 살짝만 건드려 주면 되는 거였다.
이를테면 힘을 뺀 것인가? 그건 굉장한 내공이 필요한 부분인데, 어떻게 가능했나?
아까도 말했듯이, 내가 잘한다!(웃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뭐라도 배우려고 온 엄마들은 지속하지 못했다. 그래도 꿋꿋이 절대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는 방법도, 만드는 방법도. 그냥 약간의 오브제를 선택하고 함께 해 보자고 했다. 근데 거기에서 힘이 생기더라. 함께 바느질하면서, 자화상을 그리면서, 손 석고를 뜨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고 공감해 주는 일이 시작된 거다. 일부러 프로그램을 짜고 촘촘히 시간에 맞춰서 하지 않는다. 편하게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며 같이 하다 보면 거기에서 생기는 에너지가 있다. 그 힘을 믿고 가는 거다. ‘그 힘’을 이야기하라면 강사인 제가 살면서 스스로 경험하고 인식한 나의 감각을 믿고 가는 부분이 있다. 그랬을 때 대상도 더 명확하게 보이고 콘텐츠도 분명해진다.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미술 외에도 춤, 연극, 인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녹여내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솔직히 말하면 내 영역이 아니어서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미술은 하려고 하면 먼저 긴장되고 경직되지 않나. 그런데 다른 영역은 그렇지 않다. 그냥 하면 된다. 춤추고 움직이고 글 쓰고. 그냥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 것들이 주는 힘이 좋다. 게다가 내가 춤도 잘 추고 연기도 잘한다.(웃음) 기획자이고 강사이지만 엄마들 속에 들어가 함께 춤추고 연기하면 전라도 말로 ‘겁나’ 좋아한다. 지역의 좋은 분들과 네트워크를 하고 있는 것이 내 자산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즐기는 자를 이길 사람은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문화예술교육을 일이 아닌 즐기는 삶으로 연결해 나가는 김옥진 대표의 실력이 느껴져서 부럽다. 그 에너지를 확장시켜서 마을 일도 하신다고 들었다.
올해부터 광주시에서 뽑은 ‘마을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제가 하는 일이 마을 안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을에 관심이 간다. 어쩌면 이것은 제가 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다 보니 오게 된 필연적인 일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지치지 않고 즐겁게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려면 공간도 필요하고 친구도 필요하고 이웃들의 잘한다는 칭찬도 필요하다. 그래서 마을과 연계된 일에 관심 가지고 함께 도모해 보려고 한다. 10월에는 마을 주민 스스로 만드는 축제도 기획하고 있다. 마을에서 함께 서로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것이 의미 있지 않나. 참고로, 좀 더 본격적으로 해 보려고 얼마 전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주민자치위원회에도 들어갔다.
삶의, 문화예술의 확장성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지는 인터뷰였다. 지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마을에서 일과 삶이 하나 되는 즐거운 소통을 계속 이어가길 응원한다.
김옥진

김옥진

통합예술교육연구소 마음놀이터 대표. 대학에서 공예를, 대학원에서 미술치료를 전공했다. 2015년부터 ‘엄마 꽃이 되다’ ‘엄마 함께 걷다’ ‘엄마꽃 예술놀이터’ 등 중년 여성의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편안하게 자신을 표현하도록 돕는 문화예술교육 과정을 진행해왔다. 공예부문 학교 예술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영상 _ 박영균(영상작가)
김혜일
김혜일
문화공동체 아우름 대표, 문화기획자. 지역에서 10년 넘게 어린이·청소년, 가족을 대상으로 음악을 매개로 한 문화예술교육을 해왔다. 소소한 일상의 삶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스토리를 공연, 전시, 축제의 모티브로 활용한 문화기획을 하고 있다. 광주아시아아카펠라 페스티벌, 오카리나시민축제, 광주사직통기타거리축제 등을 기획·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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