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상회는 2014년부터 평택 지역에 주목하였고, 2015년부터는 지역의 맞춤옷 장인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 <안정맞춤>을 진행해오고 있는 단체이다. 또한 지역민을 강사로 세워 지역민과 미군 가족을 대상으로 공예 수업과 재봉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4년째 안정리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있는 이웃상회의 예술적 지향과 사회문제의 조응 과정, 예술활동과 문화예술교육의 접점을 살펴본다.

안정맞춤제작소
캠프 험프리스, 마을 풍경의 변화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군이 주둔하게 되고, 기지 주변으로 일거리를 찾아 모여든 이주민들이 증가하면서 형성된 곳이다. 마을에는 미군을 위한 유흥, 서비스업이 주를 이루었고, 그 사이 일을 찾아 이주해온 외국인 노동자도 많이 늘어났다. 게다가 2017년 7월, 미8군사령부를 시작으로 용산 미군기지가 올해 연말까지 모두 평택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미군 수도 크게 증가하고, 마을의 풍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고층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부동산값은 치솟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세입자가 떠나고 비어 있는 건물도 많다. 미군기지 내에는 완벽한 생활권이 조성되어있어서, 굳이 마을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동안 미군과 지역 간에 공식적인 문화적 교류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평택시는 주한미군기지의 대규모 이동을 앞두고 거주민과 ‘단기 이주민’인 주한미군과의 문화교류를 준비했고, 2013년부터 3년간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안정리 마을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축제를 개최하고, 문화예술 프로젝트와 마을환경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4년에는 옛 보건소를 리모델링한 ‘팽성예술창작공간 아트캠프’를 개관해 일상적인 지역 문화예술거점을 만들었다. 당시 이웃상회 이미화 작가는 ‘안정리 생활사박물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안정리와 인연을 맺었다.

팽성예술창작공간
인터랙티브한 관계 속에서, 유용성과 유의미성 사이에서
이웃상회는 2009년 신당동 재래시장 한쪽 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전부터 작가가 모든 결론을 내리고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작업이 아니라, 인터랙티브한 관계 속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을 해왔던 이미화 작가는 다양한 장르의 작가와 생활기술을 가진 지역 장인을 만날 수 있는 그 공간이 무척 흥미로웠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지역의 이웃들과 함께 밀도 있게 정리된 오브제를 만들어 일상의 숨은 가치를 드러내는 실험을 하며, 유용성과 유의미성 사이에서 창작활동을 해왔다. 신당동 재래시장에서의 <신당 생활사박물관>, 도심제조 공공미술 프로젝트 <을지 금손 박물관>, 청계천 장통교에서 진행한 <다문화 다리 프로젝트>에서 만난 유수옥 어르신과 함께 한 노동의 가치에 대한 헌사인 <노동찬미>, 다이얼로그 워크 <나의 마무리 옷>은 이웃상회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작가에게 안정리는 아픔의 흔적을 간직한 곳, 변화의 지점에 있는 레지던스였다. 안정리는 이웃상회가 지향하는 콘셉트가 가장 잘 들어맞는, 그 동안 진행해왔던 것들을 펼쳐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작가는 안정리에서 작업하며 테일러샵과 양복 양장 기술을 가진 분들을 많이 발견했고, 이분들의 기술력을 부활시켜 함께 예술작품을 만들어보고자 하였다. 안정리의 풍경 속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미군 군복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제작하고 생활사박물관에 전시했다. 이 작업을 바탕으로 2015년에는 지역 브랜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지촌이라 불리며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찍힌 안정리에 예술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지역민들에게도 자긍심을 주고자 하였다. ‘마을예술상점 프로젝트 – 이웃상회 in 안정리’는 지역민의 유휴 기술력을 재가동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주민들의 공통 관심사를 만드는 한편, 주한미군에게 지역을 알리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2개의 브랜드, 40종의 지역 예술상품을 개발해 ‘안정리 마을브랜드 제작소’에서 선보였다.
첫 번째 브랜드 ‘안정맞춤’은 미군의 수요에 의해 개발되어온 지역 장인들의 재봉, 실크스크린, 티셔츠 디자인 기술력이 예술가의 제안과 만나 완성되는 ‘지역 자산 활용형 핸드메이드’ 브랜드이다. 가방, 쿠션, 파우치 같은 생활용품 위주로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다. 제품의 원단에 평화와 마을의 역사, 서정적 풍경 등의 이미지를 담았다. 두 번째 ‘브랜드 컬처레이션(Culture-Ration)’은 이웃상회의 ‘아트 에디션’이다. 미군 전투용 개인 식량을 의미하는 씨레이션(C-Ration)을 차용해, 안정리의 문화유산과 정서를 담은 문화배급 패키지로, 호전적 열량 소비를 문화 소비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수첩, 자, 메모지, 스카프에 안정리의 문화유산과 풍경을 담았다. ‘안정리’라는 이름조차 모르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주한미군에게 안정리를 알려주고자 하는 목적이 컸던 만큼, 미군 가족의 호응도 좋았다고 한다.

  • 안정맞춤 굿즈
  • 이웃상회 아트 에디션
지역주민, 운영의 주체로 등장하다
‘안정리 마을브랜드 제작소’는 팽성예술창작공간 1층 보글보글카페에 자리 잡고 있다. 2015년까지 사업을 운영했던 경기문화재단이 떠난 후, 비어있던 자리에 제작소를 조성하고 공업용 재봉틀, 원단 재단기 등을 설치해 상설 운영하고 있다. 상품제작과 수업도 하고, 동네사랑방 역할도 한다. 2016년에는 지역 장인으로 ‘안정맞춤’ 예술상품 제작에 참여했던 김기분 어르신을 강사로 모셔 재봉 워크숍을 열었다. 미군가족을 대상으로 동네 탐방과 드로잉 워크숍도 진행했다. 지역을 홍보하고 팽성예술창작공간을 알려서 지역 문화교류의 거점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해 말에 진행한 재봉 워크숍은 ‘군복의 재활용’을 주제로 창작한 결과물을 전시해 호응을 얻었고, 미군 가족의 드로잉 작업들은 작가와 기술 장인의 가공제작으로 목베개나 파우치로 만들어져, 본국으로 복귀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이 되었다.
2017년에는 주민강사뿐만 아니라 지역 장인 등 주도적인 주체들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김기분 어르신의 미싱교실이 정기적으로 열렸는데, 안정리 로데오거리에서 열리는 가장 큰 문화행사인 마토예술제 플리마켓에서 미니어처 한복을 만들어 판매했던 주민을 안정맞춤 제작소 공예 수업 강사로 참여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지역 장인이 강사로 참여하는 과정은 스스로에게도 자부심을 만들어주었고, 지역주민의 참여를 촉진하는 동기가 되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이들은 문을 열어놓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아직은 안정맞춤 제작소의 제작수업이 예술상품을 제작하는 인력을 양성하거나 지역의 문화를 담는 ‘문화전도사’로서의 공감대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지역주민의 참여를 확장하며, 자발적인 참여와 스스로의 역할을 찾아내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고 보여 진다.

안정맞춤제작소 김기분 장인
생산에서 유통까지, 주민 주도와 순환을 위한 분투
안정리 프로젝트가 4년차에 접어든 올해는, 심기일전해 하반기 제작소 프로그램 기획도 하고, 상품개발도 준비 중이다.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지역 인력도 확보할 계획이다. 가까이는 웹사이트 구축도 필요하고, 운영의 안정성을 위해 참여자를 중심으로 임의의 단체를 만드는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현시점에서 이웃상회는 생산만큼이나 유통에 대한 고민도 크다. 안정맞춤 제작소의 지속가능성은 지역의 관계망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민의 참여와 창의적인 기획력을 바탕으로 의미와 사회적 가치를 담은 지역 예술상품을 문화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하는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몰아트 개념으로 대중적 소비를 위한 유통망을 만들기 위해 백남준아트센터나 서울시 북서울미술관 등 뮤지엄 아트숍에도 ‘안정맞춤’ 브랜드를 단 예술상품을 입점 시켰다. 재질과 마감이 좋고 상품이 튼튼하다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지원의 다각화를 위해 중소기업진흥원 등의 새로운 재원도 모색 중이다. 이미화 작가는 심기일전해 유통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각오를 다졌지만, 마케팅은 또 다른 영역이라 외부의 지원과 협력이 절실해 보인다.
수작업을 통해 제작하는 예술상품 자체가 가진 한계도 있다. 유통망을 넓힌다고 수급을 조달할 수 있을까, 대량생산 공장생산이 예술상품의 의미와 가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을 콘텐츠로 보아야 할까, 작가로서의 역할은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까지가 아닐까 등. 주한미군 역시 2년마다 교체되는 ‘임시거주자’여서 지속적인 관계를 쌓기 쉽지 않다는 것도 어려움이다. 팽성예술창작공간 자체도 이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유대감이 생기고 사업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고, 워크숍 참가자를 통해 교류의 폭이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 한복 미니어처, 전통매듭 제작워크숍
  • 2016년 소풍
지속가능성 : 기획자의 기획력, 주민의 자발성, 행정의 협업
활동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예술가·기획자의 기획력, 주민의 자발성, 행정의 협업이 필요하다. 2015년까지 평택시와 경기문화재단이 함께 했던 문화예술 사업이 끝나고 지금은 평택시국제교류재단이 팽성예술창작공간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아직은 안정적인 지원 기반을 갖추지 못해 이웃상회가 안정맞춤 제작소를 이끌어가는 상황이다. 공간 운영 인력이 자주 바뀌어 중장기 계획을 논의하기가 쉽지 않고, 지원이 없다 보니 참여자들의 자발적 의지에 기대어 운영되는 상황이다.
한편, 평택시에서는 2015년부터 안정리 중심가에 예술인광장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예술인광장이 조성되는 것에 따른 새로운 변화도 기대해본다. 마을예술상점 역시 이곳에 활동 거점이 마련된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미화 작가는 이에 대해서 쇼룸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웃상회 하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예술가들과의 협업도 중요하고, 여러 단체들이 들어와 연대하고 선의의 경쟁도 한다면 지역 활성화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안정리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계속 관심을 갖는 이웃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이웃상회의 작업을 누구는 ‘아트워크’로 보고 누구는 ‘아트상품’으로 본다. 그리고 온전한 나의 작품을 보여 달라고 한다. 나 혼자의 작업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작업, 과정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결과물을 만드는 것 자체가 나의 ‘아트워크’이다. 어떤 때는 작가로, 어떤 때는 매개자로, 어떤 때는 문화예술교육자로 나의 역할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결국 예술은 삶 자체이다.”
– 이웃상회 이미화 작가
사진제공 _ 이웃상회

최순화

최순화
서울프린지네트워크에서 축제와 공연기획, 문화기획 활동을 시작했다. 아시아 국제교류, 지역 커뮤니티, 공공 공간 관련 문화기획을 하고 있다.
suna.cho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