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찍다’라는 의미를 가진 핵(hack)은 1950년대부터 MIT에서 통용된 은어로서 ‘건설적인 목표뿐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목적 없는 순수한 기쁨을 즐기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행위로 인식되어 왔다. 기술의 틈새를 파고들어 용도를 변경하고 전유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행위로 생각되던 이 단어가 이제는 기민한 제품 개발을 위한 행사를 일컫는 단어가 된 것은 새삼스런 일은 아닐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이 단어를 ‘혁신’을 드러내는 문화의 형식으로 만들었고, 이 문화는 이제 목적 없는 즐거움보다는 도약을 위한 경연의 장이자 빠른 프로토타이핑, 해결적 사고가 지배하는 장이라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 같다.
해커톤(Hackathon)에는 수많은 ‘고아 기술’(Orphan technology)을 만들어내는 얕은 행사라거나 ‘보여주기 좋은 관제성 짙은 행사’가 되어 버렸다는 투덜거림이 늘 따라다닌다. 하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몰입, 경쟁과 열린 생각을 통한 보다 나은 도출이라는 긍정적 특성에 기댄 일종의 휴먼 공학적 행사이기도 하다. 그러니 해커톤을 관람하거나 참여하는 것은 늘 얼마간은 희로애락 충만한 성장영화를 보는 듯한 두근거림이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져볼까? 당신이 ‘문화예술교육 + 비즈니스 적합성 +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주제로 내놓은 해커톤에 참여한다면 어떤 아이디어를 던져볼 것인가. 가장 흥미롭게 무언가를 관찰할 수 있는 건 늘 스스로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 동반될 때이니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문화예술 경험과 관계를 실험하기
2018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예술 해커톤: 차세대 문화예술교육’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지난 6년 동안 매해 다른 주제로 해커톤을 열어온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올해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무박 2일간 진행된 ‘예술 해커톤’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다양한 장르와 연령대의 문화예술교육자, 개발자, 공학자, 기획자, 디자이너 등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원했고, 사전 모임을 통해 70여 명이 6~8명씩 10개의 팀을 이루었다. 이는 허들 높은 조건이라는 애초의 우려보다 성공적인 호응이었다. 또한, 비즈니스 적합성을 내걸다 보니 스타트업을 준비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이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많았다는 것도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행사와 다른 점이었다. 한편, 이런 조건들 때문인지 개별 예술교육자의 역량과 스킬에 대한 접근보다는 문화예술의 경험, 관계를 새롭게 조직하는 플랫폼에 대한 제안이 많은 편이었다. 그 외에 창작을 도와주는 도구로써의 기술에 대한 접근, 예술 향유의 영역(감상과 창작)을 다르게 구성해 보려고 하는 접근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주제적인 면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앞세운 프로젝트가 우선 도드라졌다. AI 기반 만화 창작 및 시(詩) 창작 어시스턴트, AI 사물 인식을 통한 유아교육, AI 챗봇(Chatbot, 채팅로봇) 도슨트와 같은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외에도 프로젝션 맵핑을 활용한 공간교육 프로젝트, 드론과 코딩을 결합한 랜드아트 프로젝트, 블록체인에 기반한 그림 감상 및 표현 플랫폼, 노년층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큐레이션 플랫폼, 여러 명의 교육자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가상 창작 갤러리, 추천 알고리즘 기반 예술강사 협업 플랫폼 등이 제안되었다. 거기에 데이터 거래, 구독형 정액제, 디바이스 렌탈, 보팅을 통한 가상화폐 보상 같은 현재 진행형의 IT 비즈니스 아이디어들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해커톤에서 소개된 접근들은 전반적으로 앞으로의 방향을 기대해 보게 되면서도 기술인문교육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발전이 기대되는 프로젝트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기술적 조건들을 다루는 참가자들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사전 리서치가 많아 보이지 않았으며, 종종 장르를 끌고 옴에도 그 장르가 어떤 문화예술교육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안목은 약했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 이전에, 창작과 예술 감상의 막연한 진입 장벽에 대해 기술을 개입시켜 흥미를 유발시키겠다는 아이디어에 방점이 찍힌 경우 역시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실제 세계의 풍성함을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기술적 무대 위에 감각을 가둬버림으로써 창의성은커녕 자칫 수동적 상태에 빠트릴 위험이 있는 아이디어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단초
그렇다고 기술을 미숙하게 문화예술에 적용했다는 섣부른 비판이나 판단으로 이 해커톤을 볼 수는 없다. 이번 행사는 ‘기술사회를 위한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조직된 행사라기보다 현장의 움직임과 결에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목적이 더 큰 행사였다. 그러니 각 프로젝트에 내재된 함의를 발굴해보고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어떻게 넓힐 수 있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번 해커톤은 그런 인식을 따져보기에도 쉽지는 않았다. 기술적 적용뿐 아니라 비즈니스 적합성을 따지다 보니, 종종 의미 있는 생각에서 출발했음에도 결론은 디바이스 개발, 프로그램 개발로 흐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해커톤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그간 집중해왔던 예술교육 매개자 개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접근과 프로그램으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금의 기술사회가 문화예술교육에 어떤 영향을 가지고 올 것인가를 물어볼 수 있는 여러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이번 해커톤은 무척 고무적이었다. 그 중 주요하게 언급해야 하는 것이 10개 팀 가운데 최소 4개 팀이 언급한 인공지능과 창작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특히 시(詩)와 만화 두 가지 인공지능 창작 어시스턴트가 제안되었는데, 그중 이미 많은 데이터 입력과 그간의 작업이 있었던 ‘AI 시 창작 어시스턴트’를 보자. 기본적인 접근은 우리가 흔히 봐왔던 인공지능 기반의 창작과 다르지 않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본적인 인풋 문장을 넣어주면 아웃풋 문장을 생성해 주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팀 역시 인공지능 기반의 시 창작을 통해 0에서 1로 가기가 어려운 시 창작의 진입 장벽을 없애주고 싶다고 의도를 밝혔다. 사람이 내놓은 한 문장에 대해 인공지능이 그 다음 연결되는 여러 문장을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짜인 이 창작 어시스턴트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기술시대의 창의성’ 문제를 문화예술교육이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잠재성의 발견과 의문 던지기
과연 ‘인지적 자동화’라 할 수 있는 AI가 가지는 새로운 창의성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은 이런 접근에 대해 의문이 들것이다. ‘도대체 이런 자동화의 방식으로 여러 문장 중 선택하고 학습하는 것이 시 창작의 어떤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가’ 하는 전형적 의문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매칭’과 ‘선택’이라는 창작의 과정이 점점 범용화 될 것이 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그것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 또한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우리의 질문 역시 아직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AI에게서 창작의 영역이 기대할 수 있는 ‘전혀 다른 잠재성’을 발견하는 문제나 주체와 객체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상태에서 상호 적응하여 진화해 나가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러한 잠재성의 상태를 문화예술교육의 관점으로 지정하고 그것에서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고 직접 다루어 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한 관점의 지정과 의문 던지기가 이번 해커톤의 가장 큰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제안된 많은 프로젝트가 심사위원들의 표현처럼 “창작의 화두를 소비할 뿐” 그것에 대해 깊이 있는 접근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문제이다. 기술이 인간의 가능성을 다시 재정의 하고 있는 시대에, 창조력과 창작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키워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아직 누구도 뚜렷하게 대답할 수 없다. 어쩌면 현재의 기술 기반 문화예술교육을 좀 더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스마트폰을 둘러싼 부모와 기계의 투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막을 수도 없고, 쓰게 할 수도 없는 상황.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잘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 성숙하지 못한 기술인문적 상상. 사실 이것은 문화예술교육뿐 아니라 다른 영역들도 비슷하게 처한 고민이다. 이번 해커톤은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관점으로 봤을 때는 흥미롭기는 해도 기술과잉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움을 분명 잉태하고 있었으며 거기서 자라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켜봐야 하는 관점을 뚜렷하게 해준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접근은 과도하게 혁신기술에만 방점이 찍혀 기술고고학적 상상을 놓치는 ‘4차 산업혁명’의 울타리에서, 그리고 기술로 인해 변화할 사회적 갈등의 문제를 성찰하는 시민교육의 문제를 놓친 곳에서는 배태되기 쉽지 않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술 기반 문화예술교육이 인간과 인간의 매개가 아닌, 기술과 인간의 관계만을 다룬다면 실패를 예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간과 사회의 이해에 대한 퇴행일 수밖에 없다. 기술의 특이성을 이해하면서도 인간의 특이성을 묻는 문화예술교육으로 어떻게 만들어볼 수 있을까 하는 질문, 우연성과 전유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기술놀이로 어떻게 직조해볼까 하는 질문, 우리 모두 좀 더 예민한 질문에 착수해야 하는 시기이다.

예술 해커톤 : 차세대 문화예술교육
5월 26일(토) 오전 10시부터 27일(일) 오후 6시까지 문화비축기지 T2 실내공연장에서 문화예술(교육), 교육 스타트업, 기술 분야 등 서로 다른 영역의 참가자들이 모여 인공지능,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하여 예술적 감각과 경험을 확장하는 <예술 해커톤 : 차세대 문화예술교육>을 펼쳤다.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 10개 팀의 시연 및 테스트에는 김준섭 예기 대표, 민수라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부문 ECD,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센터장이 심사위원으로 나서 각각의 프로젝트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미래세대를 위한 미술교육과 드론을 활용한 코딩의 융합을 선보인 ‘해-하’, 초등학생의 아이디어를 만화로 구현하는 서비스를 개발한 ‘예민보스’가 우수상을, 주체적 감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블록체인 기반의 미술 감상 플랫폼을 만든 ‘발사미’와 미래기술을 접하기 힘든 계층인 시니어를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에 VR을 결합한 ‘루미너스’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최빛나
최빛나
작가로 활동하며, 기술사회에 대한 교육, 리서치, 전시 작업을 하는 언메이크 랩(Unmake Lab)에 속해 있다. 기술사회에 대한 비평적인 지식과 토론이 오갈 수 있는 자리로 ‘포킹 룸’ ‘기술놀이연구실’과 같은 일시적 학교를 열고 있다. 한국의 기술문화사를 키트를 중심으로 연결해 보는 ‘키트의 사회문화사’, 스마트 시티와 IoT 사물에 대해 탐색하는 ‘일반자연’과 같은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의 밝은 미래, 사이버네틱 환상》 《Do It》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unmakelab@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