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그의 저서 『과학 인문학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지난주 수요일에 나는 나의 컴퓨터가 교내 와이파이(wifi)에 접속하지 못해서 <업무지원센터>의 프랑크를 찾아갔지요. 나의 행위 경로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그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겁니다. 프랑크는 해결을 위해 그레그를 불렀고, 그레그도 해결하지 못하여 결국 마뉘가 온 다음에야 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컴퓨터는 단순한 컴퓨터에서 여러 기술자들이 자신의 지적경험을 나누는 다중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통합된 것에서 조화되지 않은 것이 되었고, 즉각적인 것이었으나 매개되었으며, 빠른 것에서 느린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상은 기술적인 것에서 사회기술적인(sociotechnique) 것이 되었습니다.”
위의 글에서 말하고 있는 사회기술은 사회의 구조가 편리함을 목적으로 압축시켜 만들었던 시스템을 하나하나 해체하면서 벌어지는 불편함, 그 불편함으로 인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지식을 구성원들의 집단 기억을 통해 복원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에 대하여 함축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관계는 구성원 간의 개별적 경험에서 오는 지식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확장되며 맺어지는 것으로서, 편리함을 위해 구조 속으로 감춰놓은, 그래서 그것을 찾아내려면 사회적으로는 능률적이지 못하고 개인에게는 불편한 노력을 통하여 맺어지는 것을 말한다. 마치 숨바꼭질 놀이처럼 말이다.
사회기술적 놀이로 관계 맺기
죤 듀이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는 다름 아니라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사고한 내용이 원래 주어진 대상들 속으로 통합되는 경험의 순간을 잘 포착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숨쉬는미디어교육 자몽(대표 장지훈, 이하 자몽)은 죤 듀이의 방식을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단계적 관계에 녹여 – 다시 말하자면 사회적으로는 비능률적이고 불편하지만, 관계 맺음에 있어서의 즐거움을 숨바꼭질 형태의 놀이로 경험의 순간을 포착하여 발전시킨 일종의 사회기술적인 활동을 – 진행하고 있는 단체이다. 그들이 지역을 발견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매체의 특성상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은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이나 프로젝트를 통해 발견되는 지역성은 지역민들에게 어렵지 않은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자몽은 5년간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마포 FM ‘정미소’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보이지 않으므로 얻을 수 있는 자유로움’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경험은 <호기심 프로젝트>의 마을방송국으로 이어지며 조금씩 더 개량되고 있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자몽이 진행한 <호기심 프로젝트>는 ‘호랑이를 기억하는 심상치 않은’ 인왕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무악동 작은도서관에서 교육을 하면서 인왕마을과 관계를 맺고 마을을 리서치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역 내부에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단체는 없었지만, 지역민들은 인근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문화예술 활동에 적극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뉴스’가 되는 지역 라디오를 기반으로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교육을 엮어 지역민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지역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요구와 맞물려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몽의 청사진(?)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한 활동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 단체의 요청을 받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정작 자몽을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요구만을 수용할 것을 바라는 태도를 경험한 적도 있고, 그러면서 지역 활동을 지속해야 할지 회의를 겪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사람들에게 집중했다고 한다. 단체의 요구가 아닌, 주민들의 요구에 응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재발견하는 방식으로 지역과 자몽 간의 합의점을 찾고 간극을 메워나갔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사람들과 편하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업이었고, 이를 통하여 지역민들 개개인과 소통하며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가장 최적화된 선택지였다고 말한다. 이는 담론의 형성보다는 지역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지역민 개개인의 이야기가 다시 타자에게 연결되고 그 연결의 반복으로 이어지는 ‘연약하고 느슨한 관계망’을 통해 지역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함이 내포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개념은 마크 프라우언펠더(Mark Frauenfelder) 의 『내 손 사용법』에 잘 드러나 있다.
“나는 불완전한 게 좋아요.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뭔가를 다시 만들고 손보는 과정을 통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완성되는 방식이 좋아요. 그러는 편이 뭐랄까 더…… (중략) 더 진짜 같아 보인다고 할까요?”
흔들흔들하는 개개인의 불완전한 이야기들을 엮어가면서, 계획되어 있지 않지만 의도치 않게 탄탄해지는 지역성을 발현해보고자 하는 자몽만의 작업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지역민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만들어지는 ‘연약하고 느슨하게 맺은 관계’를 통해서 말이다.

인왕마을에서 발견한 ‘실체 없는 공동체’
필자는 근래 ‘실체 없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외부로 드러나는 실체를 지니고 있지만 허울뿐인 공동체가 아닌, 지역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해프닝(예를 들면 지역민의 사고나 대소사 등)으로 인하여 순간적으로 발현되는 공동체적 의식(애도나 기쁨의 나눔)이야말로 실체는 없지만 공간을 공유하는 개개인이 참여하게 되는 지역성이 아닐까 하는 물음으로부터였다. 때문에 내게 있어 문화예술교육은 바로 이 ‘실체 없는 공동체’가 발현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는 일이다. 딱히 기억 속이나 데이터에 저장되지 않더라도 순간순간 사람들의 일상적인 접촉지점들이 의미화 되고, 또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 종래엔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고 태도가 되듯이 말이다.
자몽이 현재 인왕마을과 맺고 있는 관계는 연약하고 느슨하게 이어지는 실체 없는 공동체와 매우 많은 유사지점을 찾을 수 있다. 지난 추석, 자몽이 기획한 동네 축제에는 옆집 아저씨와 뒷집 아이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송편을 빚고 나누는 과정을 통하여 촉각적으로 끈끈해지는 사소한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축제에 맞춰 방송된 마을 라디오는 지역민 개인의 아주 작은 일상을 말하고 있었다. 청중들 모두 누군지 뻔히 알지만 ‘보이는 라디오’에 복면을 쓰고 게스트로 출연하여 명절에서 느껴지는 며느리의 불만들, 예컨대 너무 많은 집안일에 대한 부담감, 명절에서 차별받는 며느리도 자기 집에서는 어엿한 딸이라는 전제를 시댁에 유쾌하게 소리 질러 풀어내고 있었다.
또한, 아이들은 <호기심 프로젝트>에서 진행 중인 목공 수업의 일환으로 나무 피리를 만들고 고무총을 만드는 등 자그마한 지역 축제에서도 잊혀가는 놀이와 서로의 일상을 재발견하여 지역민들 서로를 씨줄과 날줄이 될 수 있게 엮어보려는 아주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행위를 통하여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이야기들이 시나브로 전파되는 과정은 과거 동네 사랑방의 역할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사소하게 끈끈해지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신뢰하는 연약하고 느슨한 관계
자몽이 인왕마을에서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바라보면 앞으로의 문화예술교육 지향해야 할 지점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보통 아름다운 포장을 원하는 지원체가 바라는 결과물에는 과정의 아주 일부분만이 반영되고 있음을 숙고하며 판단해야 하는 것이 그렇고, 지역의 이야기를 꺼내오는 것에 있어서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야 함이 그렇고, 거창한 무엇을 요구하기보다는 지역의 소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가 그렇다.
우리 사회의 많은 지원사업이 단 몇 회만으로 성과를 제출하라는 성과 위주의 지원으로 흐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몇몇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자몽과 같이 지역에서 일하는 많은 단체들에 결과물의 포장을 버리고 열린 가능성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의미한 사업들로 인정해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쉬운 점은 그런 지원사업이 흔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몽이 인터뷰 말미에 이야기한 것처럼, 지역의 특수성과 변별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수행 단체들이 제안하는 자유로운 문제제기들을 서로 숙고하고, 좀 더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를 단단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 사업의 발전적인 방향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원 주체와 수행 단체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연약하고 느슨한 관계망 형성이 중요하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미래를 열린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단체 ㅣ 숨쉬는미디어교육 자몽
미디어 문화예술교육 기획 및 연구, 실행 공동체로 2010년 설립했고, 2016년부터 종로구에서 지역의 특성에 맞는 문화예술교육을 기획·실행하고 있다. 아이부터 어른, 장애인, 외국인 등 모든 주민이 함께 마을 골목, 놀이터, 시장과 같은 다양한 일상생활 공간에서 함께할 수 있는 행복한 미디어 문화예술교육을 꿈꾼다.
* 홈페이지 : www.jamong.org
프로그램 ㅣ 호기심(호랑이 마을을 기억하는 심상치 않은) 프로젝트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역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문화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역의 의제를 발굴하고 소통하는 ▲인왕마을라디오, 마을 곳곳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마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사진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인왕마을사진관, 무악동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놀이 공간을 스스로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는 ▲인왕마을목공소 등 3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사진없음
양재혁_컬쳐커뮤니티 동네 대표
컬쳐커뮤니티 동네라는 단체에서 대표 직함을 맡고 있지만, 실상은 동네 실업자인 대한민국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