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에서는 정책사업과 다양한 방식의 지원사업을 진행해왔다. 변화하는 정책 방향이나, 4차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사회적 흐름은 물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심화 및 다각화에 관한 요구 등에 발맞추어 다양한 주제를 앞서 제시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개발하기 위하여 <콘텐츠 연구회>사업이 추진되었다. 예술강사, 전문가 및 연구자 등 전문성과 현장성을 갖춘 분야별 관계자들을 연구진으로 발굴‧양성하고, 함께 자발적인 학습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며 2017년의 연구회가 마무리되었다.
이번 [아르떼365]에서는 총 5개 유형(해외기관협력형, 융복합형, 문학기반 통합예술교육형, 매개자 역량강화 심화형, 공모형)으로 기획‧구성하여 추진되었던 <콘텐츠 연구회> 중 세가지 유형의 연구과정 및 주요결과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① <콘텐츠 연구회> 문학기반 통합예술교육형
② <콘텐츠 연구회> 해외기관협력형
③ <콘텐츠 연구회> 융복합형
구글 데이터 센터의 흰 연기, 그리고 직면한 변화
흰 연기를 뿜어내는 구글 데이터 센터의 사진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것을 굴뚝으로 연기를 내뿜는 산업제조사회의 공장 사진과 나란히 놓게 되면, 지금의 사회 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배치 같아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물론 데이터 센터에서 뿜어내는 흰 연기는 컴퓨터 서버들을 식히기 위해 공급되는 물의 증발로 인한 수증기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데이터 센터가 드러내는 ‘구름 공장’의 모습은 데이터기술사회의 급속한 성장을 보여주면서, 이와 함께 100여년의 포디즘(Fordism)의 역사가 발전시킨 대량 생산, 대량 고용 시스템의 변화, 그리고 그것과 연동된 교육, 문화, 경제, 정치 구조의 해체와 변화를 절감하게 한다. 진화된 하드웨어 및 알고리즘 기술은 유기적으로 삶의 양식을 조형하고 있고,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이 드러내는 인지적 자동화는 보다 근원적 차원에서 인간의 교육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과거와 다른 지식의 체계, 관점이 현재 요구되는 이유이며, 간학제적 융복합, 기술 기반 융복합이 요청되는 이유기도 하다. 좀 더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이러한 요청들은 그간 간과 되어왔던 과학기술교양을 변화된 기술사회를 읽는 기본적인 인문교양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융합, A를 얘기하는 것이 B이기도 한 것
이처럼 인문을 이해하는 방식에 과학기술에 내재된 구조와 함의를 읽고 쓸 수 있는 리터러시(Literacy)가 더욱 중요해지지만 은연 중 기술을 반인문적인 것으로 보는 오랜 시선 혹은 ‘유기적이 되어 가는 기계 vs 유기성을 잃어 가는 인간’이라는 대비적 공포가 여전한 상황이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공포도 기술인문교육의 부재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역으로 기술에 대한 과도한 낙관이 지배하는 ‘테크노 판타지(Techno Fantasy)’의 시선 역시 기술인문교육의 문제와 동일하게 관련 있다.) 기술인문교육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기술과 어떻게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지, 그로 인한 스스로의 확장과 축소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또한 기술로 인한 사회 구조의 변화와 문제, 가능성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여러 분야의 학문적 성취와 시민문화의 토대를 결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술 기반 융복합 교육 역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융복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먼저 던져두려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출발해야할까?
AI와 같은 인지적 자동화 기술은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과정에서도 재료, 형식, 제작, 감상, 유통 등에서 다른 접근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된 기술사회의 상황에 적극적 해석과 조응을 하는 예술가와 작품의 층위는 아직 두텁지 않은 편이며 이와 연동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 역시 이러한 기술 사회의 변화를 담은 프로그램과 리소스가 아직 많지 않다. 아직 기술 미디어를 재현의 도구로만 활용하거나 기술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프로그램이 많은 편이며, 그러한 프로그램은 스토리텔링 혹은 툴 리터러시와는 연관되나 기술과의 관계를 내재적으로 들여다보고 변화된 기술 감수성에 조응하는 면모는 약하다. 그 이유에는 기술적 장벽이 작동하고 있어서가 1차적 이유이겠으나 그 이전에 여전한 분과적 장벽의 차이를 번역하고 연결하는 매개자의 부재, 다양한 오픈소스를 공유하고 검색, 활용하는 문화의 부재 문제가 더 클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변화를 만들고, 시작점을 잡아볼 수 있을까? 우리는 기본적으로 기술인문교육의 가능성을 내재하면서도 낮은 문턱을 가진 메이크 문화*의 생태계를 참고해 보려고 한다.
* 메이크 문화: 오라일리 출판사(O’Reilly Media)에서 펴내는 메이커 잡지(Maker magazine)의 창간을 시작이 발단이다. 전시 마켓인 메이커 페어(Maker Fair)의 개최, 마이크로 컨트롤러인 아두이노(Arduino)의 출시가 이루어진 2005년경부터 ‘만드는 사람들 : 메이커(Maker)’라는 이미지의 상징화가 일어났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문화로 성장해 현재의 정보기술에 기반한 메이크 문화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메이크 문화 생태계
메이크 문화는 오랜 자작 문화의 전통, 공예 기술에 더해 컴퓨터 코드, 디지털 하드웨어의 기술이 합쳐져 다양한 타임라인의 기술을 수용하면서도 오픈소스 문화의 영향으로 ‘개방된 접근(Open Access)’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형성하고 있다. 오픈소스의 이런 ‘개방된 접근’의 태도는 사실 메이크 문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학제간의 벽을 허무는 융합성이 태동하는 환경을 배양하는데 좋은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런 문화는 초보자를 위한 지식의 층위가 상대적으로 잘 조성된다는 것, 관심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비교적 격의 없이 소통하고 그 안에서 지식과 노하우, 산출물들이 공유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라는 것에서도 중요하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런 오픈소스, 오픈 액세스 문화가 아무리 장점을 가지고 있어도 특정 사회가 가진 문화 안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작동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려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을 내재한 메이크 문화를 정보기술적 사고방식과 지각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매개 문화 혹은 기술인문교육의 접면으로 배치해 보는 것에는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최근의 메이크 교육의 정책적 흐름 때문에 이 문화를 문화예술교육의 한 방편으로 삼자는 것이 아니다. 메이크 문화를 이 시대의 예술적 감수성이 조응해야 할 정보기술적 사고와 창제작의 방법을 내재한 메타 문화라는 관점에서 참조하자는 것이다. 즉 메이크 문화와 메이커 교육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생태계와 리소스, 내재된 원리를 메타 사유로 참조하되 그것들을 오랜 문화예술교육의 기술, 방법, 철학의 연장에서 흡수하자는 제안이다.
정보를 통한 스포일러적 체험 그리고 제작적 배움
메이크 문화는 그간 행정 주도의 메이커 운동 정책으로 인한 여러 아쉬움 속에서도 교육의 느린 시대 대응력과, 학문간 벽이 쌓인 교육 여건의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또한 기존의 구성주의 교육, 노작 교육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메이커 교육을 다루려는 관점이 커지고 있다. 이는 점점 더 해상도 높은 정보적 경험을 통해 ‘스포일러적’ 체험이 가능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도 가닿는다. 즉 정보적 경험의 풍성함 속에 지식을 중심으로 한 이제까지의 교육은 큰 전환에 직면하고 있다. ‘탐구’와 ‘제작적 실행’이라는 배움의 형태로 말이다. 이는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교육의 오랜 요구에 더욱 강하게 직면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는 법을 배우라’라는 요구 말이다.
이러한 교육적 요구를 메이크 문화와 조금 더 연결해 보자. 메이크 문화의 ‘스스로 하기’에 내재된 자기 연구의 논리는 ‘학습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지식이 개인 안에서 재구성되는 것’ 이라는 구성주의 교육의 토양을 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직접 해봄으로 알기(Learning by doing)’라는 지식과 실천의 동시적 작동은 신체, 감각, 감성, 인지적 작용이 같이 일어날 수 있는 접근법이라는 것 외에도 지식을 왜 배우는지, 어디에 사용하는지를 이해하는 실제적 감각과 함께, ‘다른 이들과 같이 스스로 만들기(do it yourself with others)’를 통한 감응적 협업은 문화예술교육의 장점과도 공유될 수 있는 기본적 가치를 가진다. 특히 예술적 몰입의 경험은 행위와 인지가 같이 작동하며 자기 목적을 가진 표현일 때 가장 두드러진다고 할 때 메이커 교육이 융복합 문화예술교육과 공유할 수 있는 단초는 보다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라 불리는 제작 공간은 ‘연구실과 커뮤니티’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는데, 이는 반드시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 환경 안에서의 만들며 배우기를 강조하는 메이크 문화의 특성상 유무형의 커뮤니티 자체가 공간성이 될 수 있으며, 그런 면에서 메이커 스페이스를 물리적 공간보다는 이때까지 벽이 있어왔던 이론과 실습, 교과 사이, 시민교육의 분리를 허무는 공간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는 실제적인 해결책을 고민하는 참여적인 시민성과 공공성의 감각과도 연결될 수 있다. 이는 앞으로의 기술적 변화에서 바뀌는 삶을 판단할 수 있는 시민 교육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역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이러저리 개조하기, 즉흥적으로 만들기(Tinkering, 이하 팅커링), 무목적으로 만들기 혹은 용도변경하기(Hacking, 이하 해킹) 등, 메이커 문화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만들기의 방식은 흥미롭게도 문화예술교육의 놀이와 전유의 함의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특히 팅커링과 해킹은 메이킹의 출발이면서 가장 놀이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 볼 수 있다. 팅커링과 해킹은 ‘두서는 없지만 융통성 있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고치거나 용도변경을 시도하는 것’으로, ‘축적적인 창조성’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행위는 가장 놀이적이면 자기 이론과 은유가 작용할 수 있는 문화예술적 행위로도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축적적 창조성’은 그간의 ‘번뜩이는 창조성’ 이란 예술적 신화를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문화예술교육의 주요함은 다중 감각이 동시적으로 다루어지는 ‘표현적 경험’에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사실 기술 미디어를 통해 흥미로운 확장 가능성이 더욱 배가 된다. 이는 메이크 문화에서 다루는 기술 매체를 통해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결합 될 때 우리는 다른 기술적 감수성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미적 감각은 다르게 보기, 변환적으로 보기를 거쳐 현실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특별한 알레고리를 발명하는 것을 향하고 있으나 이러한 자기 은유와 미학적 관점은 기술교육의 주요 생태계를 이루는 STEAM교육이나 메이커 교육에서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특히 STEAM교육은 과학 기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유도하고 ‘문제를 해결하기’이라는 방향이 강하여, 자칫 예술의 역할을 과학기술의 결과를 가시화하는 ‘테크닉’ 으로 위치시키는 아이러니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문화예술교육은 ‘문제해결’이라는 방향이 아닌 ‘경험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자기 은유로의 질문과 응답을 구성’하도록 하는 것에 있는 만큼 STEAM교육, 메이커 교육과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성은 갈라지는 지점이 생긴다. 그럼에도 메이크 문화는 시대가 요청하는 ‘생각하고 탐구하는 법을 배우기’, ‘제작적 지식’, ‘기술적 상상’이라는 교육적 요구와 조응하며 배움의 시공간을 재구성하기 위한 매개 문화로 작동할 수 있으며 이는 기술 융복합 문화예술교육 역시 참조할 수 있는 기본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사례 : 소리 드로잉, 데이터 레시피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 개념과 질문을 던지고, 정보기술적 사고와 기술을 담아볼 수 있을까. 보고서에 담은 3개의 프로그램 중 여기에 두개의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내용은 연구원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던 워크숍 프로그램을 정리한 것으로 기술 융복합 문화예술교육의 적정한 사례로 제안하는 것은 아님을 밝힌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의미를 압축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소리 드로잉
<소리 드로잉>은 기술 매체의 다중 감각적인 특성, 즉 시각, 촉각, 청각등의 동시적으로 변환되는 매커니즘을 탐색하고, 일상적인 매질 속에 숨어 있는 전도성을 이용해 감각을 구성해 볼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또한 드로잉을 다르게 사유하는 방식이자 촉각적, 청각적 감각으로 탐색하기 위한 과정으로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참여 가능하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초보자에게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을 수 있으나 이 프로그램 자체가 MIT 미디어 랩의 ‘평생 유치원 그룹(Lifelong Kindergarten Group)’에서 발표한 드로디오(Drawdio)라는 오픈소스에 기반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여러 경로를 통해 리소스를 구할 수 있다는 면에서 포함시켰다.
참여자는 회로도를 추상화된 드로잉으로 이해하고, 간단한 전자부품과 전선을 연결해서 소리 드로잉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 여러 전도성 매체인 몸, 사물, 식물, 흑연, 에너지를 주변에서 찾고 그것으로 회로를 작동시키는 드로잉 도구로 만들어 소리로 변환해 본다. 이 과정을 통해 전자 회로와 도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주변에서 발견한 것을 전기적 음향 신호로 변환해 보는 디지털화를 경험한다.
데이터 레시피
<데이터 레시피>는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데이터를 다루어 보는 프로그램이다. 데이터라는 비가시적인 것을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시각화’, ‘미각화’, ‘후각화’ 해봄으로써, 데이터를 인지적인 것으로 변환해 보고, 그 과정에서 참여자 스스로 데이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사회의 이슈와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얘기하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요리이면서 데이터를 감각화한 놀이이기도 하다. 정보기술사회에서 데이터는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영역을 움직이는 주요한 미디엄이다. 따라서 데이터를 다루는 관점은 현재의 정보기술사회를 읽는 방법과도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는 선택한 데이터에 의미를 담아 요리로 표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의 변환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또한 어떤 데이터를 선택, 마이닝 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SNS 데이터부터 공공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며 개인에 대한 이야기 혹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을 표현해 볼 수 있다. 재료 역시 어떤 재료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조형적 성질을 적용해 볼 수 있다. 현재의 정보 기술 사회가 데이터라는 주요한 물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인식을 중심에 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실제 기술 기능적 스킬은 전혀 필요하지 않지만 정보기술적 사고로의 전환만으로도 충분히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에 중심을 둔 것이기도 하다. 사실 기술 기능 이전에 이러한 정보기술적 관점으로의 전환이 더 핵심이라는 것은 기술 융복합 문화예술교육의 시작을 위해 더없이 중요한 부분이다.

  • 데이터 레시피
    얼굴 감정 데이터를 추출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팬케익을 만들었다.
  • 소리드로잉
    여러 가지 전도성 매질을 활용하여 드로잉을 소리로 변환시켜
    볼 수 있는 매커니즘을 구성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 그리고 ‘융합’ 혹은 ‘융화’
지금까지 기술사회의 변화, 그리고 기술사회의 인문기술교육의 가능성을 가진 생태계로 메이크 문화와 그것의 문화예술적 함의, 그리고 사례를 살펴보았다. 기술 융복합 문화예술 교육을 위해 좀 더 추가적인 제언을 하자면 아래와 같은 부분까지도 같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우선 기술적 매체가 가지고 올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감각성, 코드의 감각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환이 있어야 한다. 많은 문화예술교육자들이 이러한 코드적 감각성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거나 생각을 해보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접근이 가진 맹아를 읽어 주고 피드백 해줄 수 있는 중재적 문화예술교육자들의 존재도 많지 않다. 이는 현재 컴퓨터나 기술 장치와의 접촉을 통해 늘어나는 연산적(Computational) 감각의 문제를 짚는 것이기도 하다. 즉 기술융합 문화예술교육이 달라지고 있는 감각의 문제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또한 기존의 기술 융합 교육이 ‘연산’ 혹은 ‘연산적 사고’에 머무는 것과 달리 문화예술교육은 이를 넘어 ‘극화(Dramatization)’, 즉 ‘인간이 참여할 수 있는 행위와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으로 향하게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더없이 중요하다.
** 『컴퓨터는 극장이다(Computer as theatre)』, 브렌다 로럴 지음, 유민호 차경애 옮김, 커뮤니케이션 북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술 기능 없이도 정보기술적 사고로 접근하는 것을 우선은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스스로 직접 기술을 다루기 못해서 기술적 매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리터러시, 그리고 이런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는 매개자들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또한 그러한 기술예술적 상상을 논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이룸으로써 실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구현해 가는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손기술을 포함해 기술 고고학적 상상에 대한 환기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프레임은 종종 혁신기술로의 접근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프레임이라는 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이 프레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다양한 타임라인의 기술고고학적 상상을 문화예술교육이 놓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기술 융복합 문화예술교육은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구 미디어에 대한 이해까지 포괄해야 한다. ‘새로움’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타임라인에서 새로운 특성을 발굴해 내는 것에서 찾아낼 수도 있음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기술이 가진 축적적인 창조성을 그것이 적용된 사회상과 함께 바라봄으로써 현재의 기술을 새롭게 인식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기술 융복합 문화예술교육이 기술의 감각적 유흥 혹은 과도한 정보적 경험으로 지식을 먼저 구성해 버리는 현재의 상황을 다루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실제적인 실행에서 주의 깊게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기술적 접근이 기존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 상충하는 것이 아닌, 단지 양쪽을 통합적으로 실험할 시간이 충분한가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 접근이 같이 갈 때 시간이 훨씬 많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의견은 실제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의견이다. 앞으로의 융복합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설정할 때 꼭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 외에도 기술 융복합 문화예술교육이 특정 장비를 필요로 하거나 일선 학교의 기반 시설에 더욱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여러 가지 기술적 인프라가 필요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로테크(Low Tech)에 대한 환기를 해보아야 한다. 특히 로테크를 하향적 기술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기술’로 이해해야 한다는 일선의 목소리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미 기술융합 교육이 상품화된 키트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문화가 표준화된 문화예술교육의 여건에 들어오기 쉬운 상황이 될 것에 대한 우려 역시 귀담아 들어야 한다. 작가, 교육자 개인의 정체성이 부여되지 않는 엇비슷한 교육 프로그램이 기술 융복합 교육에서 더욱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하다. 키트(Kit)는 일반적으로 부속과 그것을 조립할 수 있게 하는 매뉴얼로 이루어진 패키지이며 이러한 키트는 만질 수 있는 지식의 도구이자, 공학, 과학 기술 지식을 연결하는 좋은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간단하고 수월한 교육을 위해 시간 내의 완성을 목표로 키트를 교육의 주요 매개물로 사용하는 현상은 ‘보여주기식’ 교육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주요한 고려 사항으로는 기술 융합 교육에서 있을 수 있는 젠더 차이에 대한 것이다. 현재의 기술적 경험을 위한 도구, 언어, 공간등이 여성에게 ‘차가운 환경’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 강사에 여성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이들이 성장하며 받아온 정규 교육 자체에 기술교육이 굉장히 희박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기능 교육으로의 예술 교육이 보편적 예술적 감성을 기르기 위한 현재의 문화예술교육으로 전환될 때, 그것은 예술의 기능을 넘어 그 시대에 조형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인문의 요소를 포함시키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결국 기술 융복합 문화예술교육 역시 기능적 기술교육을 넘어 인문기술교양적 접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것은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표현보다는 ‘기술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기술’를 생각하는 융화(harmonizing), 그리고 그 토대를 다양한 인문의 결에서 찾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다양한 과학, 공학, 예술이 가진 ‘기술’의 근원을 포함하는 것이면서,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다양한 인문적 ‘기술’과도 다르지 않은 것일 테다.
* 이 글은 김승범, 송수연, 최빛나 3인이 2017년 10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콘텐츠 연구 중 하나로 이루어진 <예술로서의 기술, 기술로서의 예술 – 메이커 문화 생태계와 연결한 기술 융복합 문화예술교육 연구>에 기반한 글입니다.

사진없음
최빛나_언메이크랩
제작기술문화를 접면으로 기술사회에 대한 교육, 연구, 전시 작업을 하는 언메이크 랩에 속해 있다. 기술사회에 대한 비평적인 지식과 토론이 오갈 수 있는 자리로 <포킹 룸>, <기술놀이연구실>과 같은 일시적 학교를 열고 있으며, 한국의 기술문화사를 키트를 중심으로 연결해 보는 <키트의 사회문화사>와 같은 연구를 진행했다. 전시로는 <사물학2:제작자들의 도시>, <Do It>등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unmake@unmakela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