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에서는 정책사업과 다양한 방식의 지원사업을 진행해왔다. 변화하는 정책 방향이나, 4차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사회적 흐름은 물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심화 및 다각화에 관한 요구 등에 발맞추어 다양한 주제를 앞서 제시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개발하기 위하여 <콘텐츠 연구회>사업이 추진되었다. 예술강사, 전문가 및 연구자 등 전문성과 현장성을 갖춘 분야별 관계자들을 연구진으로 발굴‧양성하고, 함께 자발적인 학습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며 2017년의 연구회가 마무리되었다.
이번 [아르떼365]에서는 총 5개 유형(해외기관협력형, 융복합형, 문학기반 통합예술교육형, 매개자 역량강화 심화형, 공모형)으로 기획‧구성하여 추진되었던 <콘텐츠 연구회> 중 세가지 유형의 연구과정 및 주요결과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① <콘텐츠 연구회> 문학기반 통합예술교육형
② <콘텐츠 연구회> 해외기관협력형
③ <콘텐츠 연구회> 융복합형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 예술이 제공할 수 있는 시민들의 학습적 과정과 경험의 방식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안고 있는 교육진흥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교육에 새로운 영감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개발 방식의 하나로 국제적 기관과의 협력 방식을 취하고 있다. 2016년 국제티칭아티스트컨퍼런스(ITAC3)에서 영국 바비칸센터와 길드홀 음악연극대학교(이하 길드홀) 협력의 창의학습부서(Creative Learning Department)와 상호 관심의 접점을 확인하고 그간 협력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이번 연구는 양 기관의 일련의 상호협력 방안의 일환으로 특출한 예술가나 예술단체의 예술세계를 교육제도 내에 학생들에게 연계하는 ‘바비칸박스(Barbican Box)’ 프로그램이 함축하고 있는 핵심 요소와 운영모델을 분석하고 그 시사점과 새로운 예술교육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를 위해 예술경영 연구자이자 컨설턴트인 필자 본인과 예술작가이자 예술의 사회적, 교육적 실천에 리더십을 발휘해온 김월식 작가, 그리고 교육진흥원의 국제교류를 담당하다가 예술철학 학문의 길을 걷고 있는 권민영 연구자가 함께 했다. 연구진은 국내에서 많은 논의와 시도를 거듭하고 있는 예술의 본질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적인 창의학습 방법 내지는 매개방식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각자의 다양한 관점과 지식의 스펙트럼을 펼치며 바비칸박스 프로그램을 들여다보았다. 바비칸박스 프로그램 얼개와 내용은 물론 이와 관련된 지자체 의회자료를 검토하고, 영국 현지에서 주요 이해관계자들과의 인터뷰와 워크숍을 통해 프로그램을 깊이 또 맥락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해를 토대로 국내에서도 요구가 큰 예술기반 창의학습의 매개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그려보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바비칸박스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시사하는 바를 공유하고자 한다.

2017/2018 Tamasha 극단 바비칸박스 교사워크숍
바비칸박스란 무엇인가: 창작 활동의 원천
바비칸박스는 예술가(예술단체)가 기획, 제작한 박스를 학교교사에 제공하여, 한 학기에 걸쳐 학생들이 그룹을 이뤄 자신들 고유의 창작물 또는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을 학교 교과과정이나 동아리 활동으로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런던의 바비칸센터와 길드홀이 함께 추진하는 창의학습(Creative Learning)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진다. 사업을 주관하는 창의학습부서가 매해 음악, 시각예술, 공연 각 장르의 예술가(예술단체)에게 바비칸박스 제작을 의뢰하는데 박스는 학생들의 예술 창작에 영감을 주고 창의성을 촉발시키는 오브제, 도구, 재료, 자료와 텍스트 등을 담아 창작 활동의 원천이자 도구의 역할을 해야 하며 박스 자체를 예술작품과도 같이 제작할 것을 요구한다.
바비칸박스 프로그램은 참여에 선정된 교사와 학교에 바비칸박스와 함께 교수학습자료, 직무연수로 인정되는 워크숍, 예술가 멘토의 3회 방문과 수업자문, 바비칸센터의 공연이나 전시 단체 관람 기회와 최종 결과물을 바비칸센터에서 공연/전시하는 기회로 구성되어 있다.
프로그램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전달되는 박스 창작의뢰서(Creative Brief)의 지침은 예술가(예술단체)의 고유의 예술철학과 창작 메커니즘, 영감을 담아낼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예술가(단체) 선정에 있어서의 기준을 중요하게 두고, 예술에 대한 자기(단체)만의 고유한 접근을 갖고 특색 있는 창작방식을 구현하는 예술가(예술단체)를 검토하는데, 주로 바비칸센터에서 오랜 기간 공연을 올려온 예술가(예술단체)와 해당 해에 기획된 공연의 예술가(예술단체)나 전시 중에서 선정한다. 이러한 자신(단체)의 예술창작의 고유성을 교육적 맥락에서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열려있고 유연한 태도로 협력할 수 있는 지도 중요한 기준이다. 예술가가 멘토를 겸하는 경우 창작활동이 아이들이 관심과 접점이나 관련성을 지니는지도 살핀다.
바비칸박스를 활용한 교육이 예술가(예술단체) 고유의 창작 철학과 방법론, 창작과정의 경험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을 실행할 교사와 이들을 보조해줄 예술가 멘토 대상의 워크숍을 고안하고 실행하며, 교육 활동을 제안하는 ‘툴킷’과 교수학습자료도 함께 제공하는 것도 예술가(예술단체)의 역할이다. 예술가(예술단체)가 맡아야할 일련의 역할은 온전히 예술가의 몫으로 넘겨지기 보다는 예술가(예술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과 역량에 따라 바비칸-길드홀의 창의학습팀이 때론 기획사를, 때론 디자이너나 예술교육에 능한 예술가를 협력자나 조력자로 구성해주거나 직접 지원에 나서기도 한다. 시각예술 분야의 경우, 바비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회의 작가나 전시회 주제를 중심으로 바비칸박스를 기획하기도 하는데, 이 때 창의학습팀은 큐레이터의 역할을 협력 예술가와 함께 맡기도 한다.

바비칸박스에 대한 연구진의 해석: 앨리스의 ‘토끼굴’
일련의 자료와 인터뷰, 그리고 워크숍을 참여하면서 연구진은 바비칸박스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에 비교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를 따로 또 같이 존재하게 하는 바비칸박스는 그 자체로도 매력이 있는데, 바비칸박스에 담긴 오브제들의 존재는 다양한 독해를 열어놓는 역할을 한다. 오브제 자체의 기능적 활용 방안부터 상상력이 가미된 확장된 활용 방안까지, 병렬로 배치된 오브제와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에 담긴 구체적 힌트와 상징적 내포, 그리고 박스가 열리는 환경과 맥락, 탐색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상대적인 이해와 해석에 따라 창작의 단초들을 형성하는 상상과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마치 각 오브제나 오브제간의 관계가 새로운 상상력과 창작의 굴로 인도하는 “문”과 같다. 각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 관점을 동원하고 옆 친구의 경험과 상상이 보태지면서 그 굴의 굴곡과 방향의 역동성과 경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교사는 학생들의 감각적 관찰과 자율성을 연동시키고 각 개인의 과정과 그룹으로서의 과정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창작 과정을 촉매하는 조력적 프로듀서로서 역할을 한다. 교사로 인해 학생들은 주체적이며 주도적인 창작자로 작업을 설계해가는 것이다. 그 과정은 이해와 불일치가 공존하고 확산되었다가 수렴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창의적 학습 과정이자 예술가들의 내면적 과정의 경험이기도 하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도록 하는 것은 결과물을 도출한다는 의미보다 창작이 요구하는 고도의 집중과 수행, 요동 가운데에 스스로 질의응답하는 과정을 거치는 창의성 발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의미가 커 보인다. 이렇게 바비칸박스를 통해 학생들은 교실 내에서 예술, 교사, 예술가 멘토 등이 비위계적으로 존재하는 환경에서 자신들의 의도를 찾아가면서 구체화시키는 학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창의학습 생태계의 동반구조
바비칸박스를 이해하는 데에는 이 프로그램을 포괄하는 창의학습(Creative Learning) 사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창의학습은 런던의 대표적 아트센터와 예술대학이 21세기 창의학습의 변화를 위한 문화적 협력을 개척해가는 사업으로 2009년도부터 시작되었다. 2014년 “아동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창의적 목소리를 찾아주자!(Helping young people find their creative voice)”는 슬로건을 내걸며 창의학습 사업의 정체성과 역할의 사회적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두 기관의 비전과 미션, 가치를 관통하는 프로그램들을 구성하며 발전해가고 있는 이 사업은 특히 상대적으로 소외된 이스트런던 지역을 중심으로 학교 커리큘럼에 있어서 예술기관의 역할을 구체화하고 지역민 모두에게 예술을 통한 영감과 사회적 영향, 그리고 사회적 기회 제공을 목표한다. 지역민의 예술과의 첫 접점에서 전문예술가의 개발에 이르는 ‘학습 연속체’를 형성하는 이 사업에서 바비칸박스는 어린 학생들에게 일생에 걸쳐 지속될 수 있는 자기개발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증식모델’ 단계의 프로그램으로 위치하며 지역의 예술학습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창의학습 프로그램의 지향과 개념적 틀
창의학습 사업은 프로그램 실행에 있어서 참여자들의 경험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예술 본질의 핵심 가치와 경험의 과정, 즉 학습에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 철학적, 방법론적 지향 역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1) 창의적이고 즉흥 창작 방식으로 특정 문화와 지역사회를 참여시키고, 2) 비위계적이며 참여적인 프로세스를 지향하며, 3) 예술적 실행과 비판적 사고와 자기 성찰간의 관계를 형성해주며, 4) 위험을 감수하면서 발견하고 발명하는 활동을 지속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을 생성하는 새로운 지식을 인식하고 창조하고, 탐색할 수 있도록 함.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시민들의 문화적이면서 혁신적인 역량을 키워주는 데에 그 영향이 가늠되는 지향들이다.
또한, 학습에 접근하는 개념적 틀로 다섯가지의 학습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사회적 상호작용에 근간한 창의성을 촉진할 수 있는 대화와 상호작용이 통합된 창의적 학습을 정의하며 공통의 이해기반을 마련해준다. 그 정의에 의해 자연스레 따라오는 협력적 학습을 제시하며 답을 구하는 변증법적 소통보다는 대화적 소통을, 동정하는 나의 감정보다 상대의 감정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 중점을 두는 공감을, 서로 다른 관점과 상호주관적이고 협력적인 과정에서 앎을 확장해가는 학습을 강조한다. 경험적 학습에서 강조하는 학습자의 자기주도성, 자기 성찰과 평가, 의미 재구성의 학습의 과정적 특성과 학습자와 퍼실리테이터의 동등한 파트너십을 강조하며 맥락기반의 학습, 근본적인 전환적 관점이나 사고의 경험, 액션러닝 등의 접근을 고려하게 한다. 또한 반성적 학습에서의 비판적 성찰과 반응적 실천의 균형과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고 교차, 협업하는 장르융합학습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 요소들은 그저 제시된 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교육에 있어서 기관의 철학이 구체적으로 수립되어 실행관계자들과 교감되고 세부 프로그램의 실행에서도 실천적 철학과 방법론으로서 적용되고 있음이 바비칸박스의 면면에서 발견된다.
바비칸박스와 창의학습의 시사점: 동시대 반영 그리고 리더십 발휘
연구진은 바비칸박스를 ‘예술의 본질이 제공할 수 있는 복합적인 요소들을 경험적인 창의학습으로 전환하는 매개 프로젝트’로 정의하며, 프로젝트가 효과적인 매개성을 발휘하게 되는 주요한 요인과 시사점을 다섯가지로 추려보았다.
첫째, 예술과 예술가의 고유성과 동시대성을 반영해가는 예술교육이라는 점이다. 예술의 장르적 이해를 넘어 예술가에게 축적된 경험과 관점, 세계관이 응축된 매체를 학생들의 학습 자원으로 전환시켜주고 있으며, 매해 선발되어 바비칸박스를 큐레이션하는 예술가들을 통해 학교 예술교육이 예술의 동시대적 진화와 공진화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이다.
둘째, 예술교육의 지속적인 발전에 학교교사를 매우 중요한 매개자로 인식하고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비칸박스 기획의 시작은 ‘바비칸센터가 기대하는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예술적 경험의 기준과 학교에서 제공되고 있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질적 간극을 좁혀주기 위해 교사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바비칸 박스 프로그램을 분석하면서 예술교육의 질적 성장과 지속성이 예술가와 예술강사 못지않게 학교 예술교사 또는 융합교육 교사에게서 담보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교사’를 중심으로한 학교 지원구조의 모색, 교사의 능동성을 전제로 교육 수행의 책임과 주도권을 존중하고 촉매하는 접근이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하겠다.
셋째, 예술가와 교사 간 각자의 전문성이 발휘되며 공조하는 파트너십 구조다. 예술을 기반으로한 창의학습에 있어서 교사는 학생들의 주도적 학습에 ‘조력적 예술창작 프로듀서’로서 위치시키고, 예술가 멘토는 자신의 예술창작 기량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교사를 위한 ‘퍼실리테이터’로서 역할을 하며, 바비칸박스를 큐레이션한 예술가는 예술의 본질적 요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번안하여 매개체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의도와 확장성, 다공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예술가멘토와 교사의 협력적 역할의 구조는 기존의 예술강사 사업과는 다른 교실 내 창의학습 실행구조와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교사의 역량에 따라 상호 역할을 조정해가는 역할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창의학습 전개에 있어서 교사와 예술가의 협력역할모델에 대한 시사점은 제공한다.
넷째, 예술적 방법론에 기반한 창의학습의 구체적 상과 방법론이 미래 인재 역량 개발에 주요한 접근방법으로서 제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술가의 상상과 사고, 창작의 과정, 협업 방식의 경험을 매개하는 바비칸박스 프로젝트는 미래 인재의 취업스킬 개발에 효과적 환경과 과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예술생태계의 정수에 있는 전문예술기관(아트센터)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아동청소년의 학습 환경에 훨씬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세우고 지역 기반의 예술-창의학습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에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모든 아동청소년들에게의 접근성을 제공하는 학교를 통해 지역사회 아동청소년들의 삶에 예술의 중요성과 생활과의 관련성을 일깨워주고, 이들의 삶과 취업에 필요한 스킬과 역량개발 기여에도 중요한 자원이자 협력자로 좀 더 진보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프로젝트 단위를 넘어서는 영감과 성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문
연구진에게 이 연구는 예술경험, 예술교육이 무엇일 수 있는가의 범주와 깊이에 대해 새삼 다시 고민해보는 과정이었다. 또 평소에 갈증을 느꼈던 예술교육에서 예술과 예술가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동행이 당연시 된 듯했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교육제도 내에서의 예술과 교육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며 가능한 진일보를 그려보는 긍정적인 성찰의 과정이기도 했다. 지면관계상 최소한의 정보제공을 위해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현장 전문가들에게서 받은 영감은 시사점 못지않은 정보를 제공한다.
창의학습부서의 첫 수장이었던 션 그레고리가 전해준 바비칸센터와 길드홀의 협력부서를 탄생시킨 양 기관의 리더들과 그 복잡다난한 과정과 여전히 기관이 융합되어 존재하는 부서의 종종 복합적이며 다면적인 역할에서 부가되는 업무의 무게는 그의 여전히 상기된 목소리와 자세에서 자부심으로 전달되었다. 바비칸박스는 하나의 훌륭한 아이디어로 기획된 사업이라기보다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념을 전문지식과 실험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일련의 실천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지역의 여타 문화기관과 교육시설들, 지역정부의 니즈와 상호작용하며 기관의 전문성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협력적 역할로서 창발된 사업이다. 사업 실행 방식에 있어서 여전히 개방적으로 실험해보고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근간을 단단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또한, 이미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듯한 예술기관의 사회적 존재방식과 가치를 스스로 혁신해가는 운영에서 예술경영의 전문성이 두드러졌다. 창의학습부서장에서 이제는 바비칸센터의 학습·참여본부(Learning & Enagagement)를 총괄하는 션 그레고리를 이어 창의학습부서장을 맡고 있는 바비칸박스의 원기획자 제니 몰리카의 본부장 못지않은 신념과 자기 관점, 그리고 각 장르별 담당자들(프로듀서 또는 큐레이터 직함 부여)에게 충분히 공명되고 있는 창의학습 근간의 철학과 신념을 접하면서 우리의 예술기관들의 예술참여와 학습의 전문성과 리더십에 있어서 세대에 걸친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장기간에 걸쳐 철학과 지향과 실행을 누적해나가는 활동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준 이 프로그램과 순환보직제로 제너럴리스트로 양성하는 국내 문화기관의 운영제도를 겹쳐보며 국내 예술기관들에 교육적 역할에 발휘될 전문성과 그로 인한 영향이 축적되며 진화할 수 있는 제도와 사업에 전환적 접근의 필요성을 느꼈다.
예술가 멘토로 참여하는 현장 예술가와 바비칸박스를 기획한 예술가들의 인터뷰는 예술교육에서 예술가들의 교육적 역할에 대한 인식의 틀을 확장시켜주었다. 교육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은 교육적 지식과 역량을 갖춰야만 한다는 허들의 높이는 교육적 역할을 발휘하게 하는 기획과 매개방식이나 교사와의 협력 구조에 따라 낮게 조정될 수 있고, 예술가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고유의 예술적 전문성과 경험지식이 교육환경에서 충분히 가치있게 접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술가 멘토들은 자신의 예술 활동만큼 교육적 활동에서도 복합적 성장을 해간다고 느끼고 있었고, 예술가로서 존중받고 있음을 몇 차례에 걸쳐 강조하고 있었다.
그들의 강조뿐 아니라, 바비칸센터와 학교 간 계약서상에 예술가 멘토와 사전에 계획된 일정이 예술가 멘토의 본업인 예술적 활동을 위한 오디션이나 공연에 한해서 사전의 양해와 조정 요청에 응해줄 것이 명시되어 있는 걸 보면서 사업기획에 있어서 프로젝트 자체 뿐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의 우선되는 가치와 역할에 대한 복합적 고려를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예술교육이 예술을 교육적 경험으로 전하는 예술가의 존중과 가치에 비해 교육적 활동과 목적, 성과에 너무 몰입해온 건 아닌지 성찰이 필요해 보이는 지점이었다.
프로젝트 마무리와 시작
예술 기반 창의학습을 매개하는 프로그램 그 이상을 기대하며
바비칸박스 연구를 통해 세 명의 연구진은 예술계가 창의학습생태계 구축에 예술을 기반으로 진보적이며 상호적 방식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장기적인 상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바비칸박스에서 확인한 핵심 요소들과 메커니즘은 그 생태계의 역동성을 촉매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에 대한 신념이 생겼다. 분량의 문제로 교육진흥원에 제안한 프로젝트의 접근만 간략하게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하겠다.
교육진흥원의 정책 사업으로서의 예술기반 창의학습 프로젝트는 생태계 형성의 전환적인 촉매 역할자로서의 프로젝트로 구상해보았다. 전환적 촉매는 새로운 시도와 실험에 동참하고 협력하여야 할 핵심 이해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역량과 자원을 새로운 관점과 방식으로 활용하는 데에 있어서 창의학습의 근간을 형성하는 철학과 신념, 역할과 방법론에 대한 전환적 구성을 이루도록 한다는 데에 목적을 두자는 의미이다.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데에 있어서 주요한 전략적 요소를 세 가지로 잡았다. 예술자원을 교육적 자원으로 전환하고 전달, 창의학습의 구조와 실행이 실험되고 진화하는 플랫폼 형성, 이러한 활동에 예술기관의 교육적 리더십과 협력 개발이다.

이를 위한 프로젝트로 3년간의 랩 기반 파일럿 프로젝트를 제안하였다. 전환적인 촉매 역할자로서의 프로젝트가 3년간에 걸쳐 단단한 기반을 구성하는 과정으로서 제공되어 핵심 인력과 단체, 기관간의 협력과 상호작용, 연구, 실험과 보완 수정의 과정을 거치며 프로그램의 지향과 철학, 방법론 등을 구성하도록 하는 일련의 실행기반 연구개발 프로젝트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과 예술강사들간 실행학습으로서의 교육을 순차적으로 시도하고 지역문화예술기관 기반 운영 모델도 개발해볼 수 있는 과정으로 제안하였다. 또한 일련의 과정에서 바비칸박스 활용의 확장성에 있어서 문화 다양성 교육, 국제교류 차원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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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혜_인컬쳐컨설팅 대표
예술경영, 문화정책 분야 연구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예술이 사회의 다양한 접점에서 협업하며 시민의 삶의 결에 스며들 수 있도록 매개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세종문화회관, 한국콘텐츠진흥원, 꿈의 오케스트라네트워크지원본부를 거쳤으며, 저서로는 『한국형 엘 시스테마,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 일궈가기』가 있다.
jeehye.su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