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문화예술교육 탐방 프로젝트 <A-round>’(이하 <A-round>)는 국내 문화예술교육 매개인력의 해외탐방 지원을 통한 역량강화 사업으로 지난 2015년부터 시행되었다. 2017년에는 8월부터 12월까지 총 4팀 10명이 독일, 싱가포르, 이탈리아, 영국 등 각국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탐방‧조사했다. 문화예술교육 전문가로서의 고민과 탐구점 그리고 생생한 해외 문화예술교육 사례들을 [아르떼365] 독자들과 함께 네 차례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① 2017 글로벌 문화예술교육 탐방 프로젝트 <A-round> 탐방기 – 독일
② 2017 글로벌 문화예술교육 탐방 프로젝트 <A-round> 탐방기 – 싱가포르
③ 2017 글로벌 문화예술교육 탐방 프로젝트 <A-round> 탐방기 – 이탈리아
④ 2017 글로벌 문화예술교육 탐방 프로젝트 <A-round> 탐방기 – 영국
고래에게 미안해서 떠난 여정
푹푹 찌던 한여름의 어느 날, TV에선 2톤의 쓰레기를 뱃속에 채운 채 해안가로 떠밀려온 고래 사체에 대한 뉴스가 한창이었다. 인간은 자연에 어디까지 이기적일 것인가? 극도로 밀려오는 죄책감에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이기심에 상처받은 순수한 아이들이 고래 뱃속에서 일회용품들을 만나는‘요나이야기’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는 <요나이야기>가 연극작품이면서도 환경교육적인 요소가 녹아있기를 바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름시름 앓고 있는 바다의 아름다운 태초의 모습 그대로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었고, 그 위대한 자연을 지켜내자는 마음을 관객들이 스스로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활용한 국내외 자료들을 리서치 하던 중 몇 해 전 관람했던 델라 시베타 극단*(La Società della Civetta, 이하 시베타 극단)의 <또로록똑똑>과 T.P.O 그룹**(associazione culturale Teatro di Piazza o d’Occasione)의 <나비>가 모두 환경을 다룬 아동극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A-round의 공고가 떴고, 정희영 창작집단 소풍가는길 대표와 함께 이 두 극단을 방문하는 계획을 세워 공모에 선정되었다.
* 델라 시베타 극단 : 이탈리아의 볼로냐에 위치한 아동극으로 유명한 극단. 교사, 교육자, 심리학자들과 연극경험을 공유하는 등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스위스, 핀란드, 아일랜드, 터키, 루마니아, 미국, 영국 등 해외등지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투어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극단 TPO는 이탈리아 프라토의 떼아뜨로 메타스타시오 스타빌레 델라 토스카나에 상주하고 있는 단체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몰입극’이라는 개념으로 재정의 하며, 배우와 관객의 상호교류가 가능한 공연을 창작하고 있다.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던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제동이 걸렸다. 워크숍비의 집행을 위해 견적서를 두 곳 모두에서 받아야 했는데 이 기간이 하필 유럽의 휴가 기간이었던 것. 365일 연락이 끊기지 않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이 기간에 일과 관련된 어떤 연락도 받기를 원하지 않는 듯 했다. 끈질긴 시도 끝에 휴가기간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연락이 닿았고, 우리는 겨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당시엔 조바심이 나서 ‘어떻게 이렇게 비전문가적일 수가!’ 라며 툴툴 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일할 때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는 확실하게 쉬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전문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하는 예술가 그룹, T.P.O
첫 방문은 T.P.O그룹이었다. 이탈리아의 프라토***에 위치한 T.P.O 그룹은 생긴지 50년 정도가 되었고, 배우와 무용수를 제외하고도 15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는 꽤나 큰 프로덕션이다. 우리는 공동대표 중 한명인 프란치스코를 만나 우리가 참고하려고 하는 <나비>라는 작품에 대한 초기 단계 접근과 구현방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 프라토: 이탈리아 중부 프라토 시에 위치한 중세 이래 양모사업의 중심지. 현재는 폐건물과 공장들을 재생하여 사용하는 식으로 예술단체들이 계속하여 유입되고 있다.
“<나비>는 17년 전에 만들어져 꾸준히 다듬어져오고 있다. 기술적인 구현보다는 그 구현이 주는 효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효과는 비디오 게임같은 것이 아니라 그 장소(공연장)에 매료-압도 되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대 양쪽 측면에 윙의 구조를 두어 아이들이 장면 안에 들어와 있다고 믿게 만들 수가 있었다. 이러한 공간적인 요소뿐 아니라 극의 진행과 대사에 있어서도 아동심리와 아동행동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며 함께 작업 하고 있다. <나비>는 4살 아이에 맞추어 그 아이들의 발달 상태와 흥미 등을 고려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리서치 기간에 나비에 대한 오랜 시간의 연구를 통해 나비의 생애와 행동 등에 대해 알게 된 후에야 공연의 오브제인 대롱과 고치 등과 동작들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 T.P.O 대표 프란치스코

  • T.P.O 그룹 대표 프란체스코와 미팅중이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며
    이해하기 쉽게 천천히 설명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나비’리허설 중인 배우. 바닥에 센서가 설치되어있어서 배우가
    동작을 하면 누에고치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사운드가 발생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들의 나비에 대한 연구에 비해 고래의 습성이나 바다의 생태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좋은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여 관객의 성향 등은 고려하지 못한 일방적인 공연을 구성하고 있었다. 관객참여형 소통 공연을 만든다는 취지가 무색할 뻔 했던 나의 방향성을 프란체스코 대표가 정확히 읽어낸 셈이다.
이어, “극의 서사를 전부 보여주기보다는 고래 뱃속과 같은 중요 씬들에 더 집중을 하여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영상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배우의 수를 줄여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요나이야기>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T.P.O의 작업에서는 배역이 많을 시 그 배역을 영상과 사운드 등으로 표현하면서 기존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더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듯 했다. 무대의 빈 공간을 모두 배우와 오브제들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한 관념이 한 번 더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튿날 우리는 직접 작품 <나비>에 참여하였다. 찬란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경험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관객참여를 통해, 아이들을 공연 안으로 데려오고 다시 관객석으로 돌려보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공연 전에 ‘Pre-Study’ 방식으로 나비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들을 경험한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힘은 스토리에 있었다. 한국에서 내가 경험한 아동극들은 관객의 참여가 아이들과 부모들의 행복한 체험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들의 공연에서는 아이들이 주체와 객체를 넘나들게 하고 있었다. <나비>에서는 극의 초반에 아이들을 무대로 이끌어 화면 속 알과 애벌레 등에 반응하며 뛰어다니게 하는데, 이는 처음 온 공간에 두려움을 가진 아이들이 무대를 무서워하지 않게 함과 동시에, 관객들의 성향을 배우들이 파악할 수 있게 한 장치였다. 아동심리와 행동에 대한 오랜 연구가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 느껴졌다.

  • 정희영 팀원이 T.P.O의 작품‘나비’에 배우들과 함께
    참여하며 인터랙티브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있다.
  • ‘요나이야기’콘셉트 회의 중. 콘셉트드로잉과 대사 등이
    한 눈에 보이는 스토리보드노트를 모두 신기해하며 호기심을 보였다.
결국 T.P.O 그룹이 차용하고 있는 인터랙티브 미디어라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세련되게 구현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과의 소통의 매개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화려한 디지털 기기가 아니어도 소통의 도구로 쓰인다면 어떠한 것도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확인하였다. 한국에 돌아가 <요나이야기> 워크숍을 준비할 때에 꼭 참고할만한 중요한 지점이었다.
비언어극 전문 극단, 시베타 극단
프라토를 떠나 볼로냐로 향하는 마음은 새롭게 두근거렸다. T.P.O가 프로덕션이었다면 시베타 극단은 배우집단에 가깝기 때문에 조금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프라토에서 우리가 작품구성과 시스템에 대해 배웠다면 이보다는 배우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시베타 극단에서는 극에서의 배우의 몫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극장에 도착한 우리는 루마니아의 아동극페스티벌에서 이들이 공연하게 될 1+1**** 공연영상을 감상하였다. 시베타 극단의 대표 구글리엘모 파파(Guglielmo Papa, 이하 파파)는 관객들이 자신의 배경에 따라 1+1에 등장하는 두 역할을 남녀 간의 벽, 혹은 직장에서의 모습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을 듣는 것이 매우 즐겁다고 했다. 대사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넌버벌 극의 매력이란 이런 순간에 발휘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1+1 이탈리아의 극단과 이란의 극단이 만나 합작한 작품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세상에서 온 두 남자의 경계와 소통에 대해 다루었다. ‘파즈르 국제연극제’‘루마니아 국제 어린이극 축제’‘거창국제연극제’‘김천국제가족연극제’등에 초대받았다
“아이들의 솔직한 반응을 사랑한다. 어른들은 공연이 보고 싶지 않아도 예의상 앉아있지만 아이들은 재미없으면 울거나 나가버리는 등 즉각적인 피드백을 선물한다.”- 시베타 극단 대표 파파
파파는 <또르르똑똑>의 타깃층이 아동이기는 하지만 ‘아동극이라고 해서 과장되게 행동하고 배우가 광대처럼 보이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다소 강한 어조로 이야기 하였다. 아이들은 오히려 손에 한 방울씩 물을 선물하거나 양동이에 물을 퍼 나르거나 하는 현실적인 것들에 끌리고, 그러해야만 진짜라고 믿는다면서. 이러한 맥락에서 이어진 넌버벌 워크숍 시간에는 포장하지 않고 진실되게 감정의 1부터 100까지 클라이맥스를 찍고 내려오는 즉흥연기를 훈련했다. 나는 슬픈 감정을 끌어올려 눈물콧물을 다 쏟고 내려왔고, 다른 팀원은 의자라는 오브제를 사용한 절제된 연기를 했다. 즉흥연기는 극단에서도 흔히 경험한 것이지만 무대에 서 있으면서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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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허설 중에도 수시로 건강한(!) 논쟁이 벌어졌다. 앙숙처럼 언성을
    높이다가도 연습할 때는 다시 프로의 자세로 돌아오던 파파와 오미드.
  • 루마니아에서 열린 ‘국제 아동극 페스티벌’ 기간 중 각 단체의 대표들이 참가한
    예술교육 관련 컨퍼런스 참가하여 한국의 예술교육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시베타 극단과 함께한 워크숍은 루마니아의 국제 아동극 페스티벌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재미를 더해갔다. 도착 첫날, 우리는 시베타 극단과 함께 각 극단 대표들을 위한 콘퍼런스에 참여하였는데 ‘아이들을 위한 공연에서는 메시지와 주제를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라는 논제가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에 한순간도 놓칠 수가 없었다. 좋은 의견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리액션을 아이들에게 기대하지만 아이들은 사실 훨씬 더 열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을 위한 쇼 만큼이나 많은 리서치와 공부가 필요하다”
“어른들이‘시’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듯이, 아이들이 모든 것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을 본 후 아이들이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꼭 답을 주지 않아도 된다.”
우리 모두는 열렬히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방식으로 교사와 부모의 마인드가 열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지점 또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꼭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이 불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아이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저마다의 해석을 가져간다. 그 소중한 선물을 굳이 뜯어서 보여줄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이 컨퍼런스를 포함한 두 극단에서의 워크숍에서 우리가 새롭게 배운 것이 있다면 본질과 진정성은 과대포장과 언어가 없이도 충분히 관객에게 전달이 되며, 이때에 어떠한 도구도 인터랙티브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술교육과 공연의 결합’이 가능해지다
우리는 열흘이라는 시간동안 탑을 새로 쌓아올리기 보다는 관객들이 더 쉽게 오르게 하기 위해 우리가 불필요하게 쌓아두고 있었던 탑의 돌들을 걷어내는 작업을 두 극단과 함께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요나이야기>의 제작에 있어서 불필요한 대사와 오브제, 배우를 줄이고 바다에 대한 한층 더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또한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자 문화예술교육으로서의 <요나이야기>의 구성도 한층 명확해졌다.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고 공연 전에 관련된 액티비티 등을 경험하면서 내용에 대한 이해와 두려움을 완화 시키고, 공연이 끝난 후 테이블 드로잉 등 나눔의 시간을 가지며 관객들이 건강한 피드백까지 주고받을 수 있다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교육연극이 완성될 것이라 본다.
이탈리아의 따뜻한 두 극단을 만나면서 우리는 환경연극에 대한 집중력과 열정, 그리고 관객에 대한 애정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단체를 운영하며 예술교육과 공연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구조에서 그 둘의 결합이 가능하게 된 구조로 새로 리모델링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탐방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고래와 요나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오늘은 조금 더 오래 도서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을 생각이다.

박선옥
박선옥_문화예술기획자
창작집단 소풍가는길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도봉구 창동에 ‘반디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과 언론영상을 전공한 뒤 신문사 등을 거쳐 공연예술인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6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시시콜콜 사업 ‘반딧불이 낭독극장’, 2017년 문화가 있는 날 <간이역따라 시간여행> 등을 기획하였다. 현재는 예술이 가진 치유효과에 관심을 가지고 연극치유프로그램 <초록연어>를 진행하고 있다.
twinklesi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