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술가(ㅇ)사’
아이쿠, 이거 어떻게 읽는 걸까? 예술가사? 예술강사? 예술가앙~사? 예술가(와!) 예술사? 도대체 독음이 난해한 전시 제목에 물음표를 잔뜩 달고 충무로의 작은 전시장을 찾았다. 6명 사진가의 작품과 아이들의 모습이 눈길을 끄는 이 전시는 사진분야 학교문화예술교육 예술강사(이하 학교 예술강사)들의 사진전이었다. 사진분야 학교 예술강사가 유난히 적은 수만 선발되었던 2011년, 2기로 모인 이들은 7년차 예술강사들의 활동과 학교 현장을 보여주자는 말에 의기투합하였고 그 작은 결과가 이 전시다.
“사진 예술을 하는 예술가와 사진을 가르치는 예술강사라는 위치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겪은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학교 현장에 대해, 그리고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다. 막상 전시를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전시 준비가 가능했다. 갤러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디자인이나 리플렛도 함께 만들고, 그 과정에서 기획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 전시는 수가 적었던 만큼 더 열심히 뭉치고, 부족함을 채우려 더 열심히 서로의 활동을 격려했던 우리들의 7년간의 신뢰가 쌓인 전시다.”
6명의 예술강사가 서로 조금씩 다른 부분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이번 전시에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모습과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의 삶의 행복과 희망을 나누고자 하는 사진 예술강사 6명의 시간이 작지만 오롯이 담겨 있었다.

작은 풀, 떨어진 나뭇잎에 주목하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소소함의 가치를 읽어내는 안성경 예술강사의 시선과 아이들이 떠난 교실 공간을 담은 정희정 예술강사의 시간, 수천 장 어르신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모아 예술 활동을 하는 어르신들의 삶을 응원하는 김근식 예술강사의 마음,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을 예술 작업의 주인공이자 공동 생산자로 캐스팅하는 고정남 예술강사의 작업, 세상을 바라보고 읽어내는 사진가로서의 위치를 보여주려는 이승주 예술강사의 열망은 예술강사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전남 완도의 너른 바다를 등지고 앉아 작고 통통한 두 손으로 카메라를 잡은 아이들, 카메라의 눈으로 예술가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있는 꼬마 사진가, 전성진 예술강사의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서 꼬물꼬물 웃음이 올라온다. 이 아이들이 구석구석 담아낸 사진들은 어쩌면 사라져 갈지 모르는 시골학교의 기록이 되고, 섬 마을의 기억이 될 것이다.
이 소소하지만 소중한 시선이 담긴 전시에서 아주 오랜만에 예술강사이자 예술가인 고정남 예술강사를 만났다. 오 년 만에 만난 고정남 예술강사의 사진교육에 대한 관점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했다.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사진 찍기’
“요즘은 주로 중학교로 수업을 나간다. 예전처럼 초등학교 아이들과 나뭇잎을 줍고 풀잎을 보는 자연주의 활동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방식의 수업을 한다. 다양한 매체의 사진을 활용하고, 영상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사진만을 보는 것이 아닌 통합적이고 융합적인 수업을 하고, 개인적인 예술작업도 아이들과 같이 한다.”
고정남 예술강사를 처음 만난 건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에서였다. 느린 말투와 사람 좋은 동네 아저씨의 표정으로 연수 내내 잘 웃던 그는 매번 한 학기 동안 아이들과 얼마나 신나는 시간을 보냈는지 매년 연수에서 열정적으로 보여주곤 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하며 즐거움이 가득 담긴 그의 눈빛에서 나는 사진수업의 행복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중학생들과 하는 수업은 너무 행복하다. 아이들이 보기에 제가 삼촌쯤 되니까 편안하게 이야기도 하고 마음도 여는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노하우는 강요하지 않고 들어주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예술 수업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 차근히 이야기해 주고, ‘너도 한번 해볼래?’ 라고 살며시 제안하면 아이들의 태도가 바뀌더라. 혹시 수업 시간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했을 때도 마주보고 ‘다른 친구를 방해하지 않는 게 어때?’라고 물으면 스스로 생각해 보고 행동을 한다. 또,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SNS에서 친구도 맺어 서로의 일상도 나누며 관계를 쌓아간다. 하지만 아이들의 삶에서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은 관여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엿보는 느낌이 들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는 학교 예술강사로, 사회 예술강사로, 숱한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로 전천후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동안의 활동과 문화예술교육으로서 사진교육의 방향과 의미, 점차 경계가 사라져 가는 예술가-예술강사, 예술 활동과 교육 활동, 예술교육자와 교육참여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았다.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 사진 찍는 수업을 하려고 한다. 사진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찍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생각해 보라고 한다. 사진 한 컷에 순간을 담아내는 것보다 여러 장을 연결하여 자신을 표현하게 하고, 그러한 생각과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국어와 시를 좋아한다. 사진은 시와 긴밀하게 맞닿아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현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일상성이 내포되어 있는 현대 시를 선택해서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가장 열심히 했거나 또는 가장 산만했던 친구에게 시를 낭송하게 한다. 중학교 남자아이들이지만 그 시간을 좋아한다. 또한, 사진작품을 많이 본다. 동시대 사진작가의 작품을 소개, 분석하고, 이 작가가 어떤 경로로 사진가가 되고, 어떤 것을 왜 찍게 되고,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자기 삶을 대입해보는 과정을 체험한다. 현대 시나 현대 사진 작품은 동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매우 좋은 도구이다. 수업자료로 아르떼365도 많이 활용한다. 기사에 실린 사람들 이야기와 국내외 소식을 함께 보면서 ‘아, 이런 일들이 이렇게 만들어 지는구나’ 공감한다.”
‘사진 찍기’를 통해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다
고정남 예술강사의 수업 방법은 노인복지관에서의 수업에서도 비슷했다. 사회 예술강사로서 그가 김제와 산본 등 위성도시에 있는 복지관에서 만나는 참여자들은 취미로 사진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사진으로 생각하고 생각을 담는 방법은 익숙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정남 예술강사는 ‘사진이 가진 힘이나 매력은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평생 서울의 골목길을 찍었던 김기찬 작가나, 딸의 성장을 찍은 『윤미네 집』과 같이,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한 작가들의 작품집을 함께 본다.
“교육 참여자들과 전시장에도 가고,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이 있는 곳에도 함께 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참여자들의 관점이 바뀌기 시작하고, 사진이 장비나 기술이 아니라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 이후 어르신들도, 아이들도 무작정 사진을 찍기보다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 사진 찍기’는 사진의 가장 큰 강점 중에 하나이다. 사진가와 카메라, 사진 찍히는 대상만 남아 자신의 눈과 자신의 생각에 오롯이 집중하는 ‘사진 찍기’의 경험은 자신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많고 많은 매체와 이미지 홍수 속에서 사진은 역설적으로 수많은 이미지가 아닌 ‘나’에게 집중하고 ‘한 장의 사진’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사의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예술강사이자 예술가인 고정남 예술강사의 특별함은 교육에 있기보다 교육과 예술의 경계를 따로 두지 않고, 작업 과정과 교육 과정을 오가며 경계를 사라지게 하고, 그가 만나는 참여자들을 두 과정 모두에 참여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교육 참여자와 예술가로서의 경험과 삶
디자인과 사진을 전공한 고정남 작가는 그동안 일상의 풍경과 그에 내재된 역사성을 요란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작품에 담아냈다. 일본 유학 시절 적산가옥이 많았던 고향 장흥의 기억과 도쿄 풍경이 중첩되는 일상을 평범하지만 낯설게 담아냈고, 그 작업 경험이 귀국 후 한국의 풍경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예술강사 활동을 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발견한 전라도 지역의 한국성과 역사성을 <호남선>이라는 주제에 담아 작업한 작품으로 전시를 열고, 출간을 하였다.
“익산-김제-군산-정읍-영산포-목포로 이어지는 호남선 주변의 소박하고 적막한 풍경을 담은 <호남선>은 마을 곳곳에 한 세기가 지난 일제 강점기 가옥과 곡물창고가 덧없이 남아 수탈의 역사를 뚜렷하게 기억하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장소에 서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막막함과 절망이, 우리 시대의 삶과 저항이 담겨 있는 작업이다.”
1921년 일제가 만든 조선 전국의 철도 노선도 사진으로 시작하는 작품 <호남선>에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풍경 사진들 사이에 몇 장의 인물 사진이 들어 있다. 호남선에서 만났던 사람인가 했던 사진 속 인물은 사실 고정남 예술강사가 학교에서, 복지관에서 사진수업을 함께 하는 참여자들이다. 그는 수업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절이 바뀌도록 수업을 함께 하면서 생긴 관계와 사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인 작업 안으로 사람들을 참여케 한다.
“사진에 대해, 작업에 대해 이해가 있는 사람들만을 모델로 촬영한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예술가와 비예술가, 본인의 예술작업과 교육활동에 따로 구분을 두지 않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교육 참여자이자, 작품 참여자, 그리고 예술가이다. 참여자들은 사진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나는 그들에게 지역의 삶과 문화, 역사를 배운다. 이젠 단순한 반복 수업이 아니라 참여자들과 함께 지역과 문화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보려 한다”
그의 계획을 들으며, 예술가와 참여자 둘이 만나 사진작품을 만들 때 그것은 교육이 이룰 수 있는, 예술이 이룰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유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지난주에 이런 일이 있었어, 이런 사람을 만났고,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 이런 작품을 찍었고…”로 시작하는 그의 사진수업은 작가의 일상, 예술의 일상에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불러들이고, 개입하게 하고, 참여하게 한다. 교육 참여자들은 그의 예술 과정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경계 없이 순환한다.
“나는 예술을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냥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고 행복하다. 이젠 아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달리기보다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다.”
유쾌한 그의 웃음소리가 즐겁다.

현혜연_문화예술교육 기획자
현혜연_문화예술교육 기획자
사람에 관심이 많아 사회복지, 사진예술, 사진이론, 인류학을 공부하였다. 1997년 어린이 사진캠프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모험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에서 가르치며 문화예술교육 실천과 공부 중이다.
hyhy1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