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국정 과제에 따라 문화예술교육이 유아, 아동, 청소년, 청년, 노년 등 생애주기별로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특히 50대 이상을 대상으로한 ‘생애전환 문화예술교육’이 실천과제 및 사업으로 제시되면서 노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가속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듦’을 잘 해내기 위한 노인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 또한 더없이 커지고 있다. <노년과 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이에 대한 정책적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그동안의 노인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점검하고, 노인 문화예술교육의 이슈와 쟁점은 무엇이며, 향후 어떠한 정책과 지원이 필요한지 의견을 청취했다. 현장에 있는 관계자 및 예술강사들과 고민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편집자 주>
ㅇ 주 제 : 고령 친화 사회를 향한 문화예술교육
ㅇ 일 시 : 2017. 12. 20.(수) 오후 3시 30분
ㅇ 장 소 : 종로 마이크임팩트
ㅇ 참석자: 강원재(경기상상캠퍼스 예술감독), 고영직(문학평론가), 김찬호(문화인류학자), 신동호(인문사회연구소장), 유해숙(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문제제기 : 노년의 삶에 문화예술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강원재: 오늘 주제는 노년의 문화예술이다. 최근 고령화가 이슈이고 노년과 관련한 사회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문화예술 영역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야 될 노년 관련 이슈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이야기 나누었으면 한다.
유해숙: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먼저 현재 우리사회가 노인들이 예술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슈를 제기하고 싶다. 노인(만 65세 이상을 일컬음)의 약 50%는 빈곤층이고, 생계 유지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7, 80대이며, 생존의 문제 때문에 문화예술 영역까지 나아가기 어렵다. 한편 새로운 노인들, 즉, ‘신노년(50~64세를 일컬음)’이라고 칭하는 베이비부머(전쟁 이후에 태어난 1955~1963년생 베이비붐 세대를 말함)는 또 다르다. 신노년의 인구는 700만 이상으로, 한국 인구의 14.5%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교육도 받았고 민주화도 겪어서 의식과 힘이 있다. 사회 참여의 경험이 있고, 욕구도 이전 세대에 비해 다양한 사람들이다. 현재 한국노인의 열악한 삶의 조건에 문화예술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가, 신노년에 대한 문화예술적인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해보고 싶다.
김찬호: 노년의 삶과 예술의 관계에는 긴장 관계도 있고 친화 관계도 있다. 예술이 대체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적 성격이 있다면, 노인은 보수적이고 가르치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보니 긴장 관계가 발생해 문화예술교육이 어렵다. 하지만 노년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잘만 이끌어내면 아래 세대에서 하기 어려운 학습활동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 노인이 나이가 들면서 예술의 필요성을 어느 상황에서 느끼는지, 예술에 대한 절실함을 언제 느끼는지 짚어보았으면 한다.
노인 ‘문제’가 아니라 노인 ‘존재’다
고영직: 서울시 ‘50+인생학교’ 등 노년의 인문학, 문화예술 쪽으로 관여해 왔는데, 지금의 노인문제를 노년의 양식(糧食/良識/樣式)이라는 말로 포괄해 풀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먹는 양식(糧食), 즉 먹고사는 문제로서 복지 영역을 의미하고, 두 번째는 ‘양식 있는 사람이다’라고 할 때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의미로서 양식(良識)이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사회가 노인을 문제가 아닌 존재로 바라보고 고령친화적인 사회 스타일을 형성할 것인가 하는 양식(樣式)의 문제가 있다. 노년의 양식을 이야기할 때, 한국인의 미학에서 중요시되는 ‘멋’에 관한 담론이 중요한 것 같다. 노년의 양식으로서 ‘멋’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할 때 ‘꼰대’가 아닌 ‘꽃대’와 같은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해숙: 노년의 양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노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 한국사회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노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성찰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프레이리(Paulo Freire)는 늙고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얼마나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즉 인식론적 호기심으로 늙음과 젊음을 구분하였는데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늘 그런 이’로 여기고 늘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늙은이’로서 돌봄의 대상이 된다. 반면 나와 나를 둘러싼 공동체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저를 묻는 이’ 는 젊은이가 된다. 이런 점에서 노인이 젊은이가 되어 풍요로운 삶에 대해 묻고, 실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인이 젊은이로서 성찰하고, 학습하고, 상상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현재 노인을 ‘선배시민’으로 호명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선배시민은 선배와 시민의 합성어다. ‘시민’은 신민에서 찾은 이름이다. 중세 사람들은 신의 백성인 신민이었다. 신이 생각하고 신의 생각을 알아내고 전하는 성직자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자각이 일어났다. 이 데카르트의 명언은 신민에서 시민의 탄생을 알린 것으로 이제 생각의 주체가 내가 된 것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가 되는 존재 즉 ‘시민’이 된 것이다. 시민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묻는다. 그리고 시민은 사회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실천하는 존재이다.
한편, 선배는 어떤 존재일까? 후배보다 더 많이 살았기에 경험과 지혜가 풍부하고, 선배이기에 후배를 돌보고 이끌어 줄 책임이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선배는 후배가 힘들고 길을 잃을 때 그를 위로하고 이끌어 주는 존재이다. 이런 면에서 노인은 시민이자 선배인 선배시민이다. 공동체의 주인으로 공동체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잘 알고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선배시민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와 후배들을 돌보는 돌봄의 주체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예술도 노년이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선배 시민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한다.
신동호: 노인들과 프로그램을 11년 정도 함께 해왔었는데,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노인을 ‘수혜자’가 아니라 활동의 ‘주체’로 인식하기 위해서 어떻게 프로그램을 구성할 것인가’이다. 또 실행 과정에서는 프로그램이 공동체의 결속력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때 노인이 가지고 있는 지혜, 구술세계를 끄집어내고 자기 내러티브를 끌어내는 호흡이 긴 프로그램이 지역사회에서 좋은 결과를 보였다. 이는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교육의 틀로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본적으로 노인이 자기 존재로서의 삶에 대해서 묻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다. 현재의 노인들이 마지막 구술세대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암묵적 지혜를 어떻게 끄집어내고 존중할 것인지, 상호학습구조, 주체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를 노인 문화예술교육에서 특히 강조해야 한다.
공동체 이야기를 했는데, 칠곡군에서 진행하는 성인문해교실에서는 글자를 배우다가 연극과 종이접기 활동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모델워킹교실을 결합해서 운영하고 있다. 칠곡 <실버문화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한 이 노인들은 다들 자세가 좋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70, 80대 노인들이 ‘허리는 못 펴도 바르게 걸을 수 있도록 해주자’는 취지에서 모델워킹교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과 글쓰기 프로그램이 같이 돌아가자 효과가 좋았다. 이렇게 프로그램이 유연성을 가지고 있을 때 더 잘 운영되는 것 같다. 최근에는 경로당을 어떻게 문화공간으로 다룰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마을은 공동체로 함께하는 활동들이 다양하게 이뤄진다. 공동체적으로 노인 문제에 어떻게 개입하고 함께 살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김찬호: 문화예술교육의 목표 중 하나는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많은 노인들이 고립돼 있고, 은둔해 있으며, 분노에 차 있다. 노년의 아노미 상태, 상실감의 정서를 잘 살펴보면서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지기능, 정서기능 등 기능적인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야 노인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가 보이는 것 같다.
고영직: 사회를 바꾸는 데는 노년에 대한 인식과 담론도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노화에 항거하는 항노화(anti-aging)가 대세인데, 노화를 긍정하고 나이듦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향노(向老)로 전환해야 한다. 일본에는 ‘향노학학회’가 있다. 협회 이사이자 일본의 유명한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うえのちづこ)는 향노에 관한 『늙어가는 준비』라는 책을 썼다. 한국 사회에도 ‘항노’가 아니라 ‘향노’로 전환할 수 있는 담론이 필요해 보인다.
김찬호: 비슷하게 일본에 ‘하산회’라는 모임이 있다. ‘내리막길을 잘 내려가야 된다’는 뜻이다.

관계의 틈에서 시작되는 노인 문화예술교육
강원재: 노년은 가난해서 바쁘고, 돈이 있어도 내일이 공포스럽다. 공동체가 없고 미래를 스스로 대응해가야 하는 공포로 인해 마음과 몸이 바쁜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교육이 개입할 틈이 있는지,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떤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인천에 있는 장난감 병원이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 공학을 하신 노인들이 어린이들의 장난감을 고쳐주는 ‘장난감 병원’을 차려서 전국에서 고장난 장난감 접수를 받고 있다. 또한, 시장에 있는 노인들이 당신들이 하는 일을 대상으로 시를 짓는 작업들도 문화예술교육이 노년의 사회에 개입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시장 노인들의 행위가 시로 표현되고 그것이 발표되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노년의 삶에도 문화예술이 개입할 틈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유해숙: 노인들이 지역아동센터, 어린이집에서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이는 그냥 책 읽어주기가 아니라 선배 시민이 후배 시민을 돌보고 힘을 주고 지혜와 경험을 나누는 책 읽어주기다. 이는 책을 매개로 공동체가 잘 형성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알려주는 작업이다.
많은 복지관에서 문화예술활동을 여가, 혹은 취미활동으로 하는데, 이는 기능적인 것이고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활동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공허해져서 프로그램 쇼핑을 하게 된다.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노인 개인과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데 효과가 적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해 묻고 돌아보게 하는 것인데, 과연 노인이 공동체의 어른으로 역할 하는데 도움이 되었는가 물을 때 취약한 지점이 있다. 멈춰 서서 지쳐있는 나의 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나를 지치게 만든 본질을 보게 해야 한다. 자신과 공동체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성찰하고 학습하고 실천을 매개해야 한다.
신동호: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인 문화예술교육을 봤을 때 여전히 우리는 문화예술을 여가활동, 향유로 보고 있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을 대접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노인복지관에 갔을 때 오케스트라 연습하시는 분들에게 시설을 벗어난 공간에서 활동할 것을 권해드렸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 느낌과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여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최근 칠곡군 사부작(四部作)학교에서 <마을셰프의 자연주의 밥상>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전문 요리사를 강사로 섭외하지 않고 노인들을 마을셰프로 초대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처럼 노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방향과 구조 문제를 전환하여, 제도 내에서 괜찮은 사례들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또 지난 4년간 가장 약화된 것이 협력기획의 장이다. 같이 논의하는 테이블이 없고, 집단 지성이 작동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졌다. 대부분의 지원제도는 공모지원 방식이고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방식이라 대체적으로 과정을 보기 어렵다.
고영직: 연령 폐쇄적인 시설에서 연령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의 한계가 심각한 것 같다. 노인복지관 안에 계신 분들은 ‘프로그램 쇼핑’으로 만족하시는 게 대부분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것은 ‘자기 잘난 체하는 얘기’가 아니라 ‘실패’를 이야기할 때 더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인들이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퍽 계몽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노인들의 경험을 아래 세대와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이 중요하다.
김찬호: 이러한 이야기가 교육 전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모든 교육의 핵심은 단순히 자기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 관계 내에 있다. 마을에서 예술에 참여하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던 경우를 보면 노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공공성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 제대로 표출되기 어렵다. 대전에 ‘뿌리와 새싹’이라는 마을 공동 보육시설에서 유년들이 노년들과 일상을 같이 나누면서 서로 알아가고 있다고 들었다. 이처럼 서로 만날 수 있는 계기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노년층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개념의 차이를 고려해야
김찬호: 지금 노년층을 한꺼번에 묶어서 얘기하고 있는데 노년 사이에도 세대차이, 남녀차이, 학력차이, 계층차이 등의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들을 염두해야 할 것이다.
강원재: 어떤 60대 노인은 복지관에 가면 심부름을 시켜서 안 간다고 하고, 80대 노인은 나이 드신 분은 빠져야 된다는 생각으로 복지관에 안 가신다고 한다. 다양한 세대 간의 연결과 ‘뿌리와 새싹’처럼 낯선 존재와의 만남이 가능한 환경을 문화예술교육에서 다루어야 한다.
유해숙: 노인을 사회적으로 크게 분류하면 우선 ‘돌봄의 대상’으로 복지관이나 시설에 격리된 노인들이 있다. 이들은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분리된 존재이다. 이들의 문화예술 활동은 여가나 취미생활 또는 조금 나아가 봉사에 국한되어 있다. 반면, 신노년으로서 노인이 활동적이어야 한다는 ‘활동적 노년(Active ageing)’,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생산적 노년(Productive ageing)’, 나아가 성공적 노년이 되어야 한다는 ‘성공적 노년(Successful ageing)’이 강요되는 부류이다. 이들은 개인이 노력하면 생산적이고 활동적으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성공한 노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불편한 시선이다. 성공한 노인이 강조될수록 노인을 우등노인과 열등노인으로 구분하고 격차가 심화된다. 또 성공신화가 있는 분들은 후배들과의 소통을 계몽이라 생각하고, 가르치려 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파편화되어 있는 문화예술교육이 어디로 향하는지 멈춰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학문별, 분야별 다양한 참여자들이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에 대해 성찰하고 교류와 협력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공유장치가 필요하다.
고영직: 어린이, 청소년, 노인이란 말 자체가 생애주기별로 분절화시키는 단어들이다. 사람의 삶이란 그렇게 분절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신노년과 70~80대 노인 사이에는 분명히 다른 색깔이 있다. 서울시 50플러스 인생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50+ 세대, 즉 신노년층과 어울려 봤는데, 참여자들이 대체로 자기 주도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분들이 자기 앞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동료와 함께 커뮤니티 활동 과정에서 성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노년은 전세대보다 자기 주도성을 구현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 같다. 반면 노인복지관에 이루어지는 70~80대 노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근본적인 쇄신이 필요하다.
김찬호: 1940년대 태생인 7080 세대가 살아온 역사적 배경을 보면, 그분들이 젊었을 때는 문화가 없었다. 무당이다 이러면서 옛 문화는 배척하고, 경제성장에 떠밀려 관심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베이비부머들은 도전과 개척에 대한 경험이 있고 문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어서 주체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사회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신동호: 정책 차원에서 제도 지원을 할 때도, 보다 섬세했으면 좋겠다. 연령대 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에게도 도시에서의 조건과 농촌에서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제도 지원을 촘촘하게 다각도로 포괄할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두고 짜야 한다.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이를 풀 수가 없다.

더불어 사는 사회적 전환과 세대 간 교류의 장
강원재: 사회 안에서 노인들이 그간 해왔던 역할 안에서 노년 세대의 기술을 학습할 수 있는 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경로가 있어야 한다. 세운상가의 ‘수리수리 협동조합’의 장인들은 분업화된 경제 시스템에 갇혀 수리작업을 계속 해왔던 분들이다. 젊었을 때는 그 기술로 먹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기술이 필요 없다고 느끼던 중에 청년들이 기획한 ‘수리수리 워크숍*’을 통해 여전히 이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달으면서 자존감이 올라간다. 아버지의 유품인 오디오, 첫 월급으로 산 마이마이를 고쳐주고 의뢰인들이 고마워하는 과정을 보면서 밥벌이가 사회적인 명예로 돌아오는 순간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활동을 기획한 청년들과 수리수리 협동조합을 같이 만드는 것에 이른다. 이처럼 노년과 청년이 연결되는 자리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인들 중에는 재활용품을 모아서 보관해 놓는 분들도 많은데, 이런 분들이 모여서 청년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교류할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의 역할을 하는 공간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만든 것들을 박물관에서 전시할 수도 있다. 공공의 장에서 해볼 만한 일인 것 같다.
* 수리수리워크숍: 전자제품을 수리하는 작업을 해오신 세운상가 수리 장인분들과 함께 고장났지만 버릴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묵혀두고 있는 물건을 고치면서 제품에 얽힌 기억들을 다시 꺼내는 작업이다.
신동호: 예전에 진도에 짚풀 공예를 하시는 분들이 거북선을 만든 일이 있었다. 평상시 하던 공예 작업이 아니라 거북선이라는 다른 도전과제가 주어졌을 때 인상 깊게 반응하시더라. 또, 남자 10명을 모아놓으면 그 중에 5명만 라면을 끓일 줄 알고, 밥을 할 줄 아는 사람은 2명 정도 된다. 이분들을 모아놓고 요리교실을 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그 후에 이들은 축제에 나가기도 했다.
김찬호: ‘세대 간 자서전 쓰기’의 방식도 해볼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노년 운전사고가 급증하고 있어, 면허증을 자진반납 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에서는 면허증을 반납한 노인을 대상으로 졸업식을 열어주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한다. 사회에서 밀려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과제를 통해서도 개인의 인생을 새롭게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것 같다.
고영직: 일본의 편의점 같은 경우도 노년이 중심이다. ‘로손’ 같은 편의점은 성인 상담사가 배치되어 있는 등 전반적으로 고령 친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결국,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맞물려야 한다. 서울시가 고령친화도시로 전환하려 하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정책들이 함께 가야 한다. 스웨덴 복지정책은 1930년대 인구정책에서 나온 것으로서 ‘예방적 사회정책’이라는 정책적 목표가 있었다. ‘더불어 살자’는 전환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유해숙: 한국에서 문화예술 영역은 필수재로 보지 않는다. 생존권에 집중되는 바람에 문화예술이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는다.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고 안전한 사회가 되었을 때 문화예술은 시민들이 향유하는 필수재가 될 것이다. 스웨덴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하고, 그 조건에 대해 토론했다. 바로 이런 시민들의 자각과 연대가 복지국가를 만들었다. 현재 우리는 생존조건이나 문화예술 등 모든 것이 가족이 책임지는 ‘가족의 집’이다. 스웨덴은 사람다운 삶의 최소조건은 국민이 함께 가족이 되어 만드는 ‘국민의 집’이다.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 총리는 1928년에 “어느 좋은 집이 억압을 받는 자와 특권을 받는 자로 나누어지겠는가”, “좋은 집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고, 서로 배려하며, 협력 속에서 함께 일한다.”라고 전하며 국민의 집 모델을 주창했다. 이것이 40년대 중반에 현실화 된 것은, 시민들의 학습과 소통의 힘이었다.
우리사회에서 문화예술이 부각되고 효과를 고민하는 것은 고무적 현상인데 스웨덴처럼 생존권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문화권이 확보될 수 있다. 그런데 향후 이런 사회가 되는데 문화예술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이 매개가 되어 시민들이 자각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해 토론하면서 희망의 근거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고영직: 스웨덴에서도 1950년대부터 내전에 가까운 담론 투쟁들이 있었다. 그때 사회복지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복지사들이 정부정책에 대해 ‘수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원재: 사회복지사들의 수동성도 인정하지만, 나름대로의 힘든 점들이 있다. 사회복지사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 영역 안에서 같이 다루어 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어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다 연결 되어있는 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노인 문제에 대한 인식, 패러다임 전환 문제, 문화예술은 어떤 예술과 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젊은층과 노년층 간의 세대 간의 연결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공동체를 기반으로 노인들을 공공의 장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 돌봄의 ‘대상’이 아닌 돌봄의 ‘주체’로의 전환, 60대와 70대, 남녀, 지역과 도시 등 노년 안에서의 세분화의 필요성, 새로운 노년의 영역에 있어 메이커 스페이스의 필요성, 공공적 의뢰 교육에 대한 고민의 필요, 사회 안에서 노인 문제가 함께 작동되어야 하는데 문화예술교육 따로 노인 문제 따로 다뤄지는 한계, 그렇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고민 속에서 노인 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공동체의 접점을 만드는 문화예술, 대안적 길을 열다
신동호: 문화예술이 우리 사회에 필수재가 아닌 것도 문제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현장에서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도구적이라는 것이다. 학교 문화예술교육 자체가 기능적이어서 예술가로 태어난 아이들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복지관이나 예술 강사에게 프로그램 현장 운영을 위한 비용을 많이 주는 것보다 과정에 대해 많은 비용을 주는 것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 생태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인복지관의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함께 공동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사회복지사들의 자존감도 올려주고,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노인들과 섞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태계 지원이라는 방식을 통해 협력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해보며 이들 스스로가 상호 학습 과정에서 공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한다.
유해숙: 한국 사회의 전반적 모순의 응집체가 노년이다. 소득, 건강, 가족, 심리 정서적 문제가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사회복지사가 한 분의 노인을 만난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다 떠안는 셈이다. 사회복지사와 기관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노인 문제가 발생하면 기관의 문제, 담당자의 문제, 또 다른 개인의 책임이 된다. 역할이 많아지다 보니 지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관별로 따로 분리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고, 같은 기관 안에서도 팀별로, 사업별로 분절화가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행정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벅찬 상태이다. 사회복지사가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본다. 선배시민대학을 볼 때, 실무자에 따라 노인과 기관, 마을의 변화가 달랐다. 현장실무자는 핵심적인 변화의 주체들이다. 그들이 바뀌고 힘을 얻어야 노년과 우리 공동체가 달라진다.
김찬호: 문화예술교육이 사회복지사들에게 또 하나의 일거리가 되기보다는 이걸 통해서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에 보면 뉴욕 외곽 체이스 요양원에서 노인들의 무력감과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앵무새, 고양이 등을 키우게 하는 사례가 나온다. 처음에는 노인들이 동물까지 돌보아야 하냐고 반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노인들은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활력을 되찾았다고 한다. 문화예술교육도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의 예로, 어느 노인복지센터에서 어디에나 있는 진상, 민원을 내는 것으로 분노의 언어를 표출하던 분이 어느 날 잠잠해서 알고 보니 연극을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노인들의 박탈감, 피해의식을 잘 승화시키면 문화예술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자아의 통합, 빛과 그늘의 통합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술은 어린이의 무의식과 어른의 의식을 성숙하게 통합시킨다. 예술을 통해 어린이의 순박한 모습과 인생 경륜을 연결해 온전히 통합된 존재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멋이라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으로 나타난다. 노년의 삶으로 사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는 기운으로 형성된다면 좋을 것이다. 실체로 다가올 때 서서히 설득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영직: 결국, 자기 앞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 속에 어떻게 의미를 불어넣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개인적·사회적 차원에서 만들어내는 것을 나는 ‘멋’이라고 본다. 그런 멋진 것들이 나올 때 문화적인 새로운 대안들, 누군가가 참조할 수 있는 삶의 모델들이 만들어지고,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 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 같다. 너의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되고, 나의 문제가 너의 문제로 공유되는 지점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해숙: 주체가 된다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확인될 수 있다. 노인들이 왜 복지관에서 악성민원인이 될 수밖에 없냐면 사회가 노인을 잉여인간으로 취급하고 분리시켜놓기 때문이다. 그 억압들로 인한 분노가 실무자나 기관에 표출되고, 이는 다시 부정적인 노년의 상을 만드는 악순환이 된다. 노인이 문화예술을 통해 선배 시민으로 자각하고 후배시민과 공동체를 돌보는 주체로 설 수 있는 기회가 문화예술영역에서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이다. 오늘의 이런 자리가 의미있는 시도라 본다. 향후에도 문화예술의 방향과 효과를 점검하는 공론장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단초이기 때문이다.
신동호: 문화예술이 수단, 매개라는 얘기를 했는데,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는 말을 했다. 나는 이것이 앵글 빼앗기라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타자를 바라보는 앵글이 있는데 그 앵글을 끊임없이 뺏어서 차단하면 수단화, 도구화가 될 수밖에 없다. 김영남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사진을 찍는 것은 피사체가 아니라 피사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을 찍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부분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여전히 ‘예술’이 되고 있지 않은데, 현장에서 어떻게 바꾸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과정 자체를 바꾸어야 되지 않을까 한다.
김찬호: 현재의 문화예술교육은 삶을 직접 녹여내기보다는 장르에 치우쳐 있다. 삶에 대한 창조 능력 회복이 필요하다. 강사, 실무자들도 자기 삶을 창조하고 회복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고영직: 몇 년 전 헬레나-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를 다시 읽었다. 80세의 노인이 지붕을 고치다가 다음날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호랑이의 줄무늬는 몸 밖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몸 안에 있다”는 말을 하더라. 여기서 ‘사람의 줄무늬’란 인문(人文/人紋)이라고 생각한다. 노인 한 분 한 분의 삶의 무늬를 성찰하려는 차원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무늬라 할지라도 괜찮다고 인정해주면서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느냐보다는 지금 이 현재의 순간 사회 속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로 전환하려는 태도의 변화가 중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이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강원재
강원재

울산대에서 산업공학을, 홍익대에서는 미학을 공부했다. 강구야로 불리기를 더 좋아한다. 대안교육, 축제기획, 전통시장특성화, 문화재생과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기획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현재는 땡땡은대학연구소 1소장으로 다시세운협업지원센터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고영직
고영직

문학평론가. 사람은 이야기로 구성된다고 믿는 인문주의자이며, 베이비부머 및 노년을 주제로 한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와 「노년예술수업」등의 책을 기획하고 썼다.

김찬호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교육센터 <마음의 씨앗> 부센터장이다. 사회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는 문화인류학, 교육학 등을 강의하고, 다양한 주제로 대중적인 인문학 강의와 글쓰기를 해왔다. <문화의 발견> <교육의 상상력> <돈의 인문학>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눌변> 등의 저서가 있다.

신동호
신동호

문화정책, 축제/문화행사, 문화예술교육, 마을/공동체/지역재생, 사회적기업/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평가위원 및 컨설턴트, 대구예술발전소 운영위원, 경상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12년부터 칠곡군 인문학도시 사업단장을 맡아 주민들과 함께 협력하며 10년 이상 평생학습 체제를 구축하고 주민주도형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칠곡 할매들의 시를 묶은 『시가 뭐고?』(2015) 매물도 섬놀이를 담은 『이 바다를 너와 함께 함께 걷고 싶다』(2012) 등 10여권의 책을 기획/출판 했으며, 현재 (사)인문사회연구소 상임이사 겸 소장, 코뮤니타스 대표를 맡고 있다.

유해숙
유해숙

영문학과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매개로 풍요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현재 서울사회복지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시민교육과 사회정책을 위한 사단법인 마중물‘ 이사장으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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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_국제협력팀, 채널원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