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로 일본을 건강하게!” 12년 전, 일본 문화청에서 문화 정책 보고서를 발간하며 붙인 제목이다. 일찍이 일본은 지역성을 강조하는 문화 정책을 수립하며 지역 공동체의 가치 회복에 목소리를 높여 왔다. 문화예술교육이야말로 침체된 지역 사회를 활성화시키고 지역 구성원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중요한 열쇠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 경험한 지역 고등학생의 아픈 기억을 예술교육으로 치유하고자 했던 후쿠시마현 이와키 종합 고등학교의 연극 ‘블루 시트’, 마을 지역 주민들이 다 함께 기획한 효고현 오노시의 ‘우리 마을 전시’, 엑스포 개최 전후의 공간을 지역 아동의 예술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아이치현의 아동종합센터까지, 지역이기에 가능한 지역 연계 문화예술교육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푸른 하늘 아래, 땅이 흔들리던 날의 기억을 공연하다
후쿠시마현 이와키 종합 고등학교의 연극 ‘블루 시트(Blue Sheet)’

“그 날은 마치 파란 천이 제 몸을 감싼 것 같았어요.” 지난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현에 큰 해일이 몰려왔다. 지진이 일으킨 해일은 많은 마을을 물에 잠기게 했다. 바다와 접해 있는 이와키 종합 고등학교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국어교사 이시이 미치코(Ishii Michiko)는 학생들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은 무사했지만, 지진 전후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다. 생각할 틈도 없이 연이어 터진 원전 사고로 지역 주민들은 피난해야 했고, 학교가 다시 문을 열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학교에 돌아온 학생들은 그 날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면서도, 동시에 말하고 싶어 했다. “그 날 아침 솔개가 하늘 위로 날아가는 것을 봤어요.” “흙먼지가 춤을 추는 것 같았어요.” “진로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어요.” 평소 연극에 관심이 많던 이시이는 ‘학생들에게 그 날의 감정을 연극을 통해 표현하도록 한다면, 그들이 어두운 기억을 떨쳐 버리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이와키 종합 고등학교 연극 수업의 일환으로 예술가를 초청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시이는 극작가 아메야 요코(Ameya Yoko)를 초청했고, 아메야는 학생들이 가끔씩 한 마디씩 던지는 그 날의 기억을 기록했다.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예술가와 친밀감이 형성된 뒤, 학생들은 이시이와 아메야에게 먼저 다가와 그때 당시의 감정과 이야기를 쏟아 냈다. 학생들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원전 사고가 발생한 날의 기억을 재현한 연극 <블루 시트>가 탄생했다. 지진과 해일을 실제로 체험한 학생들의 기억을 구성하여 무대를 만들고, 그들이 직접 출연한 연극이었다. <블루 시트>는 일본 연극계에서 가장 큰 상 중 하나인 ‘기시다(國士) 연극상’을 수상하고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첫 공연에 참여한 학생들이 졸업하고 떠난 뒤에도 그 학교에서 계속해서 공연되었으며, ‘블루 시트’를 통한 연극 교육의 효과에 관한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연극 교사로서 활동하는 이시이는 <블루 시트>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저서에서, 연극에 참여했던 한 학생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진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 이후부터는 더 이상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모두의 마음속에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 연극을 하면서 우리가 했던 모든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 지점부터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이와 노인 사이, 세대를 넘은 교류를 담다
효고현 오노시의 ‘우리 마을 전시회’

  • 지난 2009년 아이들의 탐문 조사 전시 코너를 바라보고 있는 관람객

효고현 오노시에 위치한 시립 역사 박물관 호고관(好古館)은 지역 내 문화예술을 지역 주민들에게 선보이는 데 항상 주력을 다 하고 있다. 호고관에서 진행해 온 다양한 기획전시 중, 마을 주민 스스로가 지역 고유의 문화예술을 새롭게 발굴하여 기획한 ‘우리 마을 전시’는 문화예술 향유뿐만 아니라 지역 내 교류까지 이끌어낸 사례로 큰 호평을 받았다. 아가타(阿形) 마을의 전시로 첫발을 내디딘 이 전시는 마을의 초등학생 및 중학생, 학부모, 교사, 노인회와 박물관 관계자가 다 함께 협력한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전시의 주제는 ‘마을 그 자체’로, 전시 기획을 통해 참여자 모두가 마을 고유의 전통 문화예술에 대해 학습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아이들은 그룹을 이루어 마을의 유래와 예로부터 이어진 문화예술 행사를 비롯하여 마을 내 위치한 신사, 저수지, 비석, 호수 등에 대해 직접 조부모에게 이야기를 듣거나 노인회를 방문하여 탐문 조사를 했다. 방문한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정보를 알 만한 사람을 소개받아서 다시 그 사람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은 오랜만에 연락을 나누며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한편 박물관 관계자들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와 지도를 통해 마을의 역사 연구를 실시함으로써, 마을 아이들이 찾아온 전통 문화예술에 대한 이야기에 정확한 역사적인 정보와 근거를 제공하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힘썼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 마을 전시’에는 탐문 조사를 실시한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를 도운 노인들을 비롯하여, 전시 활동에 조금이나마 관련되어 있는 마을 주민들과 타 마을 주민들까지도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겨 관람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을 주민이 3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아가타 마을에서 전시를 시작한지 2주 만에 천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할 만큼, 지역 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지난 2002년 아가타 마을에서 시작된 이 ‘우리 마을 전시’는 현재 지역 내 다른 마을로 번져, 각기 다른 형태의 전시로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전시는 자라나는 세대인 아이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착과 친근함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전시를 통해 아이와 노인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되었다. 아이들은 노인들로부터 지식을 전달받음으로써 노인에 대한 존경심을 품게 되었고, 노인들은 자신의 지식이 전통문화의 계승으로 이어진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지역 구성원들이 전시를 통해 다 함께 소통함으로써, 지역 전체의 활성화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땀 흘리는 예술 놀이, 인터랙티브 아트
아이치현 아동종합센터

  • 아이치현 아동종합센터 외관
  • 인터랙티브 아트 프로그램 ‘비트 워치’를 체험 중인 아동들

지난 2005년 아이치 엑스포가 열렸던 광활한 자연 공원 한구석에 위치한 아이치현 아동종합센터는 ‘두근두근을 발견하는 놀이터’라는 표어와 함께 지역 아동들에게 예술과 놀이를 접목한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이때 ‘두근두근’은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의 설레는 마음과 더불어, 몸을 활발히 움직일 때 나는 심장 박동 소리를 의미한다. 거대한 자연 공원 속에 위치한 아동종합센터의 정체성을 반영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아동들에게 예술을 통해 오감 전체를 사용하여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고, 놀이를 통해 타인과의 소통을 배우는 ‘예술 놀이’ 프로그램을 정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하여, 예술가에게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아동종합센터에서 선보인 인터랙티브 아트 프로그램 중 ‘비트 워치(Beat Watch)’의 사례는 센터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취지를 잘 드러내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춤은 음악을 듣고 그 느낌을 몸으로 움직여 표현하는 데 있다면, 이 프로그램에서는 반대로 몸을 움직임으로써 음악을 만들어 내는 발상의 전환을 꾀하였다. 빛이 비추고 있는 바닥 위에 서있는 아동들이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악기가 하나씩 더해지며 음악을 만들어 낸다. 움직임이 클수록 바닥에 비춘 빛의 파장도 그 움직임에 따라 크게 출렁인다. 아동들은 청각적으로 음악을 느끼고, 시각적으로 빛의 움직임을 쫓으며, 기분에 따라 걷거나 달리며 자신의 몸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예술의 형태를 만끽한다. 14일간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는 약 7,600명의 아동이 참가하였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함으로써 앞으로도 지역 주민에게 지역 고유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주고, 지역 공동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안겨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곳에서만, 그곳이어야만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이 있다.

신일
신일_영화 연출가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 후 일본과 한국에서 방송, 광고, 뮤직비디오, 출판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영상 콘텐츠 제작 일을 즐겁게 해왔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영화분야 예술강사 활동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 영화를 만들며 문화예술교육에 눈을 떴다. 일본, 한국, 미국에서 각각 독립영화를 제작한 바 있으며 현재는 토론토 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캐나다에서 새로운 영화제작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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