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시 뉴스나 문화 이벤트 관련 소식을 들을 때 가장 빈번하게 듣게 되는 용어가 미디어 아트다. 박훈규 그래픽 디자이너는 이 생경한 동시대 미술을 그래픽 작업물은 물론 프로젝트 그룹 활동 등을 통해 구체적 이미지로 구현하는 이다. 음악과 영상, 비쥬얼과 사운드가 맞물리며 만들어내는 새롭고 역동적인 형상이 그의 주요 작업 대상이다. 디자인 관련 업종에서 일하는 40대 이상의 남녀라면 그를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여행자’로 기억할 것이다. 지난 2005년 출간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와 2007년 <오버그라운드 여행기>는 박훈규라는 청춘을 세상에 알린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책이 아닌 길에서 채집한 이야기에는 생기와 활력이 넘쳤고 차분한 글 솜씨와 개성 넘치는 그림 실력은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한국에 돌아와 그래픽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VJ와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 반경을 넓힌다. 음악계에서 그는 비쥬얼과 사운드를 결합한 아티스트그룹 뷰직(ViewZic)의 설립자이자 VJ 파펑크(Parpunk)로 더 유명하다. 에픽하이부터 지드래곤과 빅뱅까지 수많은 가수의 콘서트장에는 그가 만든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영상이 나온다. 무토(MUTO)라는 밴드의 일원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거문고 선율과 전자음악이 파격적으로 맞물리고 무대 뒤편의 스크린으로는 기하학적인 영상이 흐르는 무대. 새로운 기술과 매체를 빠르고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디자인전문교육기관 SADI를 포함해 여러 기관과 공간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논다’는 표현이 맞을 법한 자유분방하고 실험적인 수업은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에서 명예교사로 그를 초대해 미디어 아트를 주제로 ‘특별한 하루’의 진행을 부탁한 것도 이런 활동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미디어를 소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 명예교사 <특별한 하루> 사업에서 명예교사가 되어 수업을 진행한 것으로 아는데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지난 시간에는 아이패드로 각자 그림을 그리고 그 결과물을 프로젝터로 투사한 다음 스케치를 더하는 식으로 수업을 했다. 여러 명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두고 공동 작업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론이나 기법을 소개하거나 몇몇 디자인 스튜디오의 성공 사례를 나열하는 것보다는 놀이도 하고 실험도 하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쪽을 선호한다. 호기심을 보이며 집중하다가도 전문 용어나 기술을 언급하는 순간 수업에 흥미를 잃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런 얘기 없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는 11월에 대형 강연이 있는데 무토 멤버들 일정만 맞으면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 동시대 미디어 아트나 예술의 현장을 한층 신나는 분위기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간 참여자들이 수업을 지루해하다가도 빅뱅이나 지드래곤과 함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갑자기 눈이 반짝이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직접 연주를 들려주며 미디어 아트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한층 분위기가 좋을 것 같다.
미술, 미디어, 밴드 활동까지 굉장히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토(MUTO)를 결성하게 된 계기, 추구하는 음악 세계는 무엇인가.
무토(MUTO)는 한자로 ‘광활한 대지’를 뜻한다. 거문고 연주자인 박우재, 밴드 이디오테잎의 프로듀서인 신범호, 그래픽 디자이너 홍찬혁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제가 따로따로 알고 지낸 친구들로 평소 음악적 교류가 없다가 우연한 기회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합주를 했는데 에너지가 굉장했다. 그 기운을 좀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나누고 발전시키고 싶었다. 음악 세계는 일종의 ‘삼합’ 같은 거다. 거문고와 신디사이저 그리고 영상이 어우러지면서 거칠고 폭발적인 소리와 비주얼을 만들어 낸다. 첫 선율만 들어도 ‘아방가르드’한 느낌이 물씬 난다. 악기와 주법도 남다르다. 신디사이저만 해도 전 세계에서 공수한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기 때문에 기존 악기와는 무척 다른 소리를 낸다. 대중적인 음악은 아니지만, 작곡가이자 국립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원일 선생님이나 시각디자이너이자 파주 타이포그라피학교 교장인 안상수 선생님 같은 분들이 호평해 주셔서 힘을 내고 있다.
SADI를 포함해 오래전부터 기술과 음악, 비주얼과 사운드를 주제로 예술교육을 해왔다. 이번 ‘문화예술 명예교사-특별한 하루’ 프로그램을 통해 꼭 나누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미디어 아트를 포함해 새로운 예술의 주인공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사람이 주인공이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혁신적 기술과 프로그램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 만드는 이의 감성이나, 생각이 중요하다. 때문에 새로운 기술로 색다른 창작물을 선보이려면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책을 내고, 여행을 떠나고, 그림을 그리고, 밴드 활동을 하고, 계속해서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건 무엇보다도 그런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또 다른 프로젝트가 생겨난다. 최근에도 2,000만 원을 들여 친구들과 공연을 했다.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음악 활동에 투자하는 거다. 아내도 우리 밴드를 너무 좋아해 전혀 불평하지 않으니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웃음). 그렇다고 내가 남다른 예술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는 일을 할 뿐이다.

여행은 여전히 박훈규식 라이프스타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
여행책을 두 권 냈고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그 시절의 여행은 사실 ‘생존기’였다. 내 인생의 화두를 찾아 떠난 것이었고 해외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을 때가 많아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이 중요했다. 최근 무토 공연차 아르헨티나에 다녀왔다. 아마존에도 가고 빙하도 봤는데 그런 원시의 대자연을 경험하고 나니 그야말로 무한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아름답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미적 기준도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미술관이나 호텔, 정원처럼 잘 정돈되고 디자인도 훌륭한 곳을 가치 있게 생각했는데 날 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발산하는 곳이 새삼 경이롭게 와 닿았다. 생각을 바꾼다는 측면에서 여행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활동을 진행하다 보면 교육의 방법과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어떠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 이야기 해달라.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뛰어난데 그 기술을 활용해 만든 새롭고 창의적인 콘텐츠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설사 그런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유하는 무대나 네트워크가 부족한 것도 안타깝다. 이런 공공의 장이 없는 데다 최근에는 모두가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보니 대화를 하고 의견을 나누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다. 컴퓨터 앞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면 ‘제대로 소통이 되고 있나?’ 의아할 때가 있다. 수강생도 컴퓨터만 바라볼 뿐 제 존재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교실’에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극소수이다.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가 짐짓 충격적이었다. 약 7년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커리큘럼이나 수업 진행 방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늘 고민스럽다. 활발하게 대화하고, 결과물을 공유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새로운 미디어와 기법을 늘 빠르게 익히는 것 같다. 예전부터 ‘얼리 어답터’였는지 궁금하다.
딱히 그렇지도 않다. 드론도 산 지 꽤 됐는데 포장도 안 뜯고 갖고 있다가 자연경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최근에야 ‘개시’를 했다. 비주얼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려면 모두가 얼리 어답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1990년대 매킨토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미디어의 속성이나 프로그램을 이해한 것이 지금껏 큰 힘이 되고 있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매뉴얼이 채 20페이지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미디어 아트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리고 미디어 아트의 핵심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인간이 중심이 돼 기술과 공간을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테크닉과 소프트웨어의 힘을 빌려 자신의 생각과 비전을 비주얼로 구현하는 거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미디어아트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기술은 일부일 뿐 결코 전부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진부하지만 박훈규 명예교사에게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인지 듣고 싶다.
내가 하는 교육은 무조건 다같이 소통하게끔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 혼자서 잘해서 뽐내서 사진찍고 내세우는 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해서 자신의 작업과 다른 사람의 작업이 한 화면에 잘 어울리게 만들게 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 공간에서 같이 만나 새로운 작업을 함께 하는 의미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한, 참여자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온전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림을 그린다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보면서 일상의 일들을 잊어버린다거나, 공원을 걷는 등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여유를 갖고 재미있게, 자신이 쓰지 않은 뇌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가 단순히 테크닉으로 활용되기보다는, 미디어를 활용해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행동으로 이어지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란다.
2017 문화예술 명예교사 <특별한 하루>
‘문화예술 명예교사 <특별한 하루>’는 문화예술계 저명인사 또는 예술인이 명예교사가 되어 어린이‧청소년‧일반 시민과 직접 만나 문화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체험하는 특별한 하루를 선사하는 사업이다. <특별한 하루>는 명예교사에게는 창작활동에서 얻은 영감과 감수성을 시민들과 나누는 공유의 장이 되고, 참가자들에게는 특별한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는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링크] 문화예술 명예교사 사업 ‘특별한 하루’ 블로그
2017 문화예술 명예교사 <특별한 하루> ‘박훈규’ 프로그램
■ 일시: 2017년 11월 4일(토) 오후 4시~6시
■ 장소: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라이브홀 (7호선 학동역 근처)
■ 대상: 미디어와 음악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다양한 예술 장르를 접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누구나
■ 프로그램
– part1: 무토(MUTO) 밴드 공연
– part2: 박훈규 명예교사 강연
■ 신청방법: 온오프믹스에서 “특별한 하루” 검색
[링크] 2017 문화예술 명예교사 <특별한 하루> ‘박훈규’ 프로그램

박훈규_명예교사·그래픽디자이너

박훈규_문화예술 명예교사·그래픽디자이너

SADI(Samsung Art & Design Institute)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하고 싶은 것은 일단 시작하고 보는 배포를 동력 삼아 그래픽 아트는 물론 미디어 아트와 비쥬얼 영상, 맵핑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디지털 음악과 디제잉, 브이제잉 세미나도 병행한다. 2005년과 2007년 선보인 <언더그라운드 여행기>와 <오버그라운드 여행기>는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정성갑_작가
정성갑_작가
매일경제 문화주간지 <시티라이프>, 여행&라이프스타일 잡지 <도베>를 거쳐 2008년부터 <럭셔리> 피처 디렉터, <럭셔리M>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TV, 라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문 분야인 아트와 디자인,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공사에서 출간한 <취직하지 않고 독립하기로 했다> 한국판 필자로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