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의 근원을 ‘몸’이라는 화두로 45년 동안 관객과 소통해 왔다. 그간 다양한 공연과 축제의 예술감독을 지내고 최근에는 음악, 미디어, 페인팅,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의 젊은 예술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이루며 마임의 새로운 형태를 구축해가고 있다. 바로 대한민국 1세대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얘기다. 이번에는 문화예술 명예교사가 되어 청주의 동부창고에서 ‘특별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몸의 해방’이라는 주제로 강연과 공연은 물론 참여자들과 함께 움직이는 체험으로 한데 어우러져 시끌벅적한 난장이 벌어졌다. 유진규 명예교사는 기존의 예술 개념과 몸짓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유도해 상상력은 물론 몸의 해방이 곧 예술행위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갔다.

이성을 지우고 감각을 깨우다
특별하게 연출된 홀에 입장하기 전, 참여자들은 입구에서 하얀 가운의 의사를 만나 간단한 상담을 나눈다. 그다음 자신의 마음 상태를 직접 얼굴에 그리고 간호사로부터 알약을 받아서 먹는다. 알약에는 홀 안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글이 담겨 있다. 참여자들이 직접 자신의 얼굴에 페이스페인팅을 한 뒤 눈을 가리고 앞사람을 따라 어두운 홀 안으로 입장하면서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참여자들은 지속적으로 단음의 사운드를 들으며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홀 안에서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을 탐지해야만 한다. 무언가 바스락거리며 바람에 날리는 긴 수술들의 터널을 통과하고 꿀렁꿀렁한 튜브 위로 뒤뚱뒤뚱 걸어간다. 참여자들은 눈을 가린 채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생소한 공간을 경험한 후 안내자의 인도를 따라 자리에 앉아, 안대를 벗고 유진규 명예교사를 마주하게 된다.

나의 몸은 온전히 나의 것인가
“여러분, 이곳에 올 때 누구랑 같이 오셨나요? 어떻게 오셨든지 잊지 않고 데리고 온 게 있죠? 어떤 경우든 나와 함께 다니는 것, 그게 뭘까요?”
유진규 명예교사가 말하는 ‘그것’은 무엇일까? 핸드폰? 가방? 정답은 ‘몸’이다. 이 문답은 ‘나’라는 존재를 ‘나와 나의 몸’, 즉 ‘정신과 육체’ 두 개의 개체로 구분해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다. 몸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현재까지 함께 있으며, 죽음을 맞이할 때 비로소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껏 움직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유진규 명예교사는 ‘아니요’ 라고 말한다. 가정, 학교, 사회, 국가가 형성해 놓은 정형화된 예술교육 시스템의 틀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시스템만의 문제인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각각의 개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마임 한편으로 삶을 돌아보다
젊은 마임이스트 이정훈의 마임 공연이 펼쳐진다. 지하철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출근하는 직장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벽으로 변해가고 오직 자신의 승진만을 위해 일에 빠져,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도 거부한 채 스스로를 옥죄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다 결국, 실재하지 않는 벽에 갇혀 스스로 사라지게 되는 몸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다면 벽은 누가 만든 것인가. 그 벽이 실제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에 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가.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원치 않는 벽을 허물고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를 새롭게 인식하고 살아갈 방법은 없는가.

몸의 감각을 깨우는 일의 시작
“자신의 몸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뜨는 순간 ‘나의 몸’보다는 다른 사람의 몸에 집중하게 되면서 비교하는 마음이 생기고, 몸의 가치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게 된다.”

-유진규 명예교사

유진규 명예교사가 제시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우선 자신의 몸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나’를 새롭게 인식하고 ‘나의 몸’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눈을 감고 ‘나의 몸’의 기운을 천천히 느끼면서 지금 여기에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눈 위에 손을 천천히 가볍게 얹고 안구의 둥근 형태를 감지하면서 눈이 해왔던 일들에 감사하고 격려하면, 이전과는 달리 눈이 상당히 맑게 느껴진다. 같은 방법으로 팔, 다리, 허리, 어깨 등 온몸에 말을 걸고 소통하고 나면 이전보다 훨씬 몸이 가벼워짐을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적은 노력으로 ‘나의 몸’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몸의 자유를 가로막는 벽, 트라우마
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각자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트라우마를 꺼내어 직면하고 극복하는 작업이다.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참여자들은 종이와 색연필을 들고 각자 나름의 고통과 상처를 떠올려 본다. 이때 디제이 재즈말의 자극적인 사운드와 배우 안현정, 마임이스트 이정훈의 거친 욕설, 비방, 비하, 적대적인 발언이 담긴 배경음이 흘러나온다. 참여자들의 흥분이 고조되면서 억눌려 차마 꺼내기 힘들었던 각자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한다. 참여자들은 때로는 거친 질감으로, 때로는 반복된 형태로 각자가 표현할 수 있는 색을 사용하여 자신의 트라우마를 종이 위에 표현한다. 다소 무겁고 버거운 마음으로 트라우마와 마주하는 한동안의 작업을 마치고 난 뒤, 진행자는 긴 호흡을 반복하게 함으로써 참여자들의 불편하고 힘겨웠던 심리 상태와 불안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종이 위에 그려진 참여자들의 트라우마는 그들과 분리되어 사라질 수 있도록 부숴버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감각의 해방으로부터 얻는 몸의 움직임
이 단계에서 참여자들은 어렵게 내놓은 상처들과 마주하고 극복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몇 가지 물리적인 장치들을 사용한다. 종이상자로 만든 커다란 사각기둥에 몸과 마음을 억압했던 상처의 조각들을 그림으로 붙이고 야구 방망이로 마구 두들겨 산산조각을 낸다. 이때 배경음악으로는 속도감 있는 비트와 스크래치가 섞인 힙합이 흘러나온다. 참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과격한 몸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부숴버린다.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면 홀 한쪽을 가리고 있던 검은색 커튼이 열리면서 여러 색깔의 풍선이 밀려 나오고 좀 더 극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참여자들은 아이처럼 주변에 있는 풍선을 하나도 남김없이 터뜨린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강한 비트의 힙합 음악이 갑자기 멈추고 소등됨과 동시에 정적이 흐른다. 갑자기 홀 한쪽에 있던 비상출입문이 열리면서 어두웠던 장내에 밝은 빛이 들어온다. 참여자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문 앞을 기웃거리다가 하나둘씩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간다. 이때 그들은 마치 엄마의 자궁에서 탄생한 신생아의 기분, 또는 깊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을 느끼며 모든 과정을 마친다.
이제 참여자들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간 교육된 ‘우리의 몸’을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나의 몸을 새롭게 인식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 주어진 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기에게 밥을 먹여주는 건 어쩌면 아기가 스스로 밥을 먹게 하는 것보다 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엄마는 주변을 더럽히지 않고 아기에게 깨끗하게 밥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기의 입 주변과 식탁이 지저분해지더라도, 아기는 스스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밥을 떠먹을 수 있어야 한다. 아기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음식을 먹고 맛을 보는 행위에는 엄마가 떠먹여 주는 음식의 맛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으며, 몸이 느끼는 반응도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나의 몸과 마음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만큼 소중한 삶의 경험이 또 있을까?

몸으로 익힌 것들은 평생 간다
예술행위의 시작은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치에서 출발하며, 체험하는 몸은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치를 갖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데카르트(Descartes)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주체의 중심을 사유에 두었다면 몸의 철학자, 살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머리로 사유하기 이전에 신체적인 체험이 가장 먼저의 경험이고, 그것을 체험하는 ‘나’가 ‘근원적인 나’, ‘세계에 접촉해 있는 나’이다”라며 인간은 생각하기 이전에 몸의 감각으로 체험하는 존재임을 주장한 바 있다.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사유의 행위도 중요하지만, 직접 눈이나, 입 등을 움직임으로써 살아있다는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존재감의 표현을 강조한 것이다.
몸으로 겪는 생생한 체험이란 신체 본연의 가치인 ‘움직임’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렇게 형성된 경험치는 이성으로 알게 되는 앎의 형식과는 다르게 신체에 각인된 인식 체계가 되어 ‘나만의 고유성’을 형성하게 되고, 그렇게 체화된 속성은 몸이 살아 있는 동안 세상과 소통하는 주요한 통로가 되는 것이다.

몸의 해방이 주는 가능성
평소 ‘기획자와 참여자 모두 미치지 않는 축제는 축제가 아니라 그저 행사일 뿐이다.’라는 지론을 몸소 실천해 온 마임이스트 유진규가 ‘문화예술 명예교사’로서 보여준 이번 교육현장에서 참여자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다양한 분야의 참여자들을 살펴본 결과, 익숙했던 주변 환경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신체의 부분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해 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평소 잊고 지냈던 몸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며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조금 불편했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행위로서 벽을 때리며 풍선을 터뜨리는 순간 해방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일부 참여자들은 스스로 ‘이게 뭐지?’라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태도만으로도 삶을 대하는 방식이 새롭게 바뀔 수 있다고 감히 단언해본다. 몸으로 인식된 지각의 변화는 생각보다 큰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를 예쁘고 아름답게만 표현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우리의 몸이 자유로울 때, 모든 것을 발산시킬 때 예술도 나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끄집어내고 터뜨리는 것이 예술이다.”

-유진규 명예교사

“머리로 사유하기 이전에 신체적인 체험이 가장 먼저의 경험이고, 그것을 체험하는 ‘나’가 ‘근원적인 나’, ‘세계에 접촉해 있는 나’이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최근 필자는 <어루만지는 몸>, <왜놈대장 보거라, 우리의 자유를!>, <스스로 축제 당당당> 등과 같은 공연을 마임이스트 유진규와 함께 작업했다. 그가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삶의 모습에서 위로, 치유, 공감 등의 감정은 물론, 마임의 비언어성으로 다가오는 신선한 자극과 역동적인 몸의 움직임이 전해주는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몸의 자유가 예술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참여자들이 직접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트라우마를 꺼내보는 과정과 스스로 공연자가 되어 몸을 움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다양한 접근 방식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는 참여자들이 예술로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깊이 있게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공자_설치미술가, 팟캐스터
정공자_설치미술가, 팟캐스터
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공부하고 졸업과 동시에 광고기획사에 입사하여 20여 년간 기업 브랜딩, 전시 및 공연 홍보, 출판물, 영화 광고 등 다양한 분야의 시각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 전시와 디자인 강의, 팟캐스트 진행 등을 해왔다. 최근에는 커피와 먹을 사용하는 페인팅과 그 제작 과정을 음악가들과 함께 하는 퍼포먼스 작업으로 머리보다 몸을 사용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와는 지난 2016년 ‘8.15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한 공연을 함께 했다. 현재는 자연, 사람, 예술가 모두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한 프로젝트인 ‘스스로 축제 당당당’이라는 예술캠프를 석 달간 강원도 지역 특화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jgongj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