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막바지에 찾은 홀트학교(Holt School)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학인데도 가야금과 모둠북 소리가 비를 뚫고 뚜렷하게 들려왔다. 단정하게 정돈된 교정의 이층 건물은 오롯이 국악 수업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어 이 학교가 국악 수업에 쏟는 정성과 그간의 성과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홀트학교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에 있는 특수학교이다. ‘사랑을 행동으로’라는 교훈 아래 특수교육 대상자의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도모하기 위한 언어치료, 감각운동지각훈련, 작업치료의 치료교육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홀트학교에서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2017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국악 예술강사가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다른 학교에 비해 담임교사와 예술강사와의 협력 관계가 좋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개량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강정근 담임교사가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Q. 홀트학교의 국악부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홀트학교 국악부 활동은 지난 2003년 ‘너와 내가 함께하는 공연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취지하에 ‘우리랑’이라는 동아리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국악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 의욕과 사회적응에 대한 의지를 높여보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하였다. 학기 중에는 평일과 토요일에 방과 후 특별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삼도 사물놀이와 가야금 연주, 모둠북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동안 **사람, 사랑 세로토닌 드럼클럽으로 주로 운영해오다가 2014년에 7명을 모아 가야금반을 만들었다. 지금은 가야금반 16명, 모둠북반 19명이 활동 중이다. 홀트학교가 추구하는 ‘1인 1악기 다루기’라는 목표에 부합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방학 동안 비장애인과 학교에서 숙식을 함께하는 풍물 캠프를 진행했는데, 올해부터는 풍물 페스티벌로 명칭을 바꾸고 진행 방식도 정비했다. 이전과 달리 등하교 형태로 유지하되, 지난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 동안 국악 집중 연습 기간을 갖고, 이 기간에 학생들은 오로지 국악 수업만을 받았다.
*삼도 사물놀이: 웃다리 사물놀이, 영남 사물놀이, 호남 우도 사물놀이 3개 가락을 모아서 하나의 악곡으로 편성한 것이다. 보통 호남 우도 대부분, 영남의 별달거리, 웃다리의 짝두름을 이어서 연주한다.
**사람, 사랑 세로토닌 드럼클럽: 삼성생명이 청소년들의 정서 순화를 돕기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사업이다.

Q. 홀트학교 국악부의 그동안의 성과를 소개해달라.
홀트학교 국악부에선 지난 2003년 ‘우리랑’이 결성된 이래로 2014년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 공연 참가를 비롯한 교육청 지원 초청공연과 지역사회 초청 공연, 사람, 사랑 세로토닌 드럼클럽 공연 등 매년 30회 이상 대외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국제 타악기 경연대회, 대한민국 창의체험 대회 등 국제대회와 전국적인 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또한 정기적인 공연·문화 관람과 문화나들이를 통해 학생들의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고 있다. 방학 중에도 풍물 캠프를 개최하고 삼성생명이 후원하는 ‘사람, 사랑 세로토닌 드럼클럽 캠프’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더해서, 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평생교육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통하여 재학생은 물론 본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가야금과 모둠북 배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학교 행사 때에는 가야금과 모둠북 공연 활동을 펼쳐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고취하고 있다.
Q. 참여 학생들의 변화에 대해서 말해달라.
장애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홀트학교 학생들이 가야금을 배우려면 앞에서 언급한대로 무한 반복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손가락이 아프다며 칭얼대거나 지루해 할 때도 있지만, 다들 잘 참아내고 있어 기특하다. 학생들이 ‘공연이 언제예요?’, ‘선생님 우리 열심히 해서 대회에 나가면 일등 해요’라며 오히려 먼저 다가와 묻기도 하고 격려해주기도 한다. 교사로서는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다. 학생들은 가야금을 배우면서 비로소 행복해지는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다른 수업보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이 진행될 때 표정이 더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선생님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대회를 앞둔 학생들의 경우 솔선수범해 대회 일정을 챙기거나 집에 가서도 준비물 등을 스스로 챙기는 등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보통의 아이들도 이런 수준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가야금 수업이 가져온 변화는 예상했던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특수교육에 가장 강력한 강화요소라고 생각한다.
Q.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예술강사와 담임교사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가야금 수업을 예시로 들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달라.
담임교사는 뒷자리에 앉은 관찰자가 아니라 예술강사가 가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수업에 적극적인 조력자이자,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담임교사가 국악에 관심이 많아 가야금을 연주할 줄 안다면 연습 시간에 반주와 꾸밈음을 더하면서 합주를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 또한 필요한 경우 일대일 지도도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예술강사 혼자서 17명의 장애 학생을 이끄는 일은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가야금을 연주할 줄 모르는 담임교사도 참여할 수 있다. 처음으로 특수학교 학생들을 만난 예술강사는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하여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때에 따라서는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때 담임교사가 수업의 분위기를 잡아줘야 한다. 수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담임교사가 상황 관리자의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예술강사의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함께 하는 방법을 배워 나갈 기회도 얻게 된다.

Q. 특수학교의 수업에 참여하게 될 예술강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특수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은 분명하게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과는 다르다. 그들만의 언어와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예술강사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엔 모든 상황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다. 주어진 시간을 장애 학생들과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 뒤 긴 호흡으로 맞춰나가야 익숙해질 수 있다. 또한 예술강사의 수업도 교육의 일부다. 따라서 교사로서 차분하고 성숙한 태도를 한결 같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혹 어떤 예술강사는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기다리는 일을 어렵게 생각해서 수업을 아예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예술강사도 행복해지고 부모님과 주변 모두가 행복해진다. 문화예술교육에는 이런 힘이 깃들어 있다. 예술강사는 이 행복의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Q. 홀트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의미인가?
우선 문화예술교육의 범위를 단순히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학습 과정으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 특수학교도 똑같이 국악을 배우거나 무대에 서서 공연도 한다. 물론 다른 팀들과 당당히 경쟁하기도 한다. 성적도 좋다. 지난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 공연에 참여하는 기회도 있었으며, 2015년 ‘제7회 고양시 장애인 음악제’에서 은상을 받는 등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학생들은 국악을 통해 ‘기적’을 직접 만드는 체험을 하게 된다. ‘나도 할 수 있구나’, ‘사람들이 내 공연에 환호하고 즐거워 하는구나’라고 감탄하며 행복을 경험하고 자긍심과 도전의식을 갖게 된다. 사회 적응능력도 크게 발달하게 된다. 문화예술교육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특수교육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효과는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있다.
문화예술은 누구나 누릴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이자 기쁨이다. 홀트학교는 배움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려고 노력해왔다. 보통 장애라는 판정을 받아도 개인차가 천차만별이다. ‘우리랑’ 가야금부는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뉘는데, 장애 정도가 낮은 중급반은 예술강사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으면 혼자서도 가야금을 다룰 수 있는 수준이다. 이에 비해 초급반은 반드시 일대일로 연습을 해야만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홀트학교는 문화예술을 누리는 자격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더 많은 인력과 시간, 자원을 배치하여 모두가 원하는 만큼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 점이 홀트학교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Q. 특수학교에 국악을 보급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주변에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반대에도 무릅쓰고 관련 전공으로 진로를 택한 후 특수학교 선생님이 된 지 20년이 넘었다. 지금도 출근이 즐겁고 아이들의 웃음에서 에너지를 받고 있다. 스스로 ‘잘 선택했구나’라며 칭찬하기도 한다.
국악은 대학 때부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4학년 때 장구의 매력에 빠진 것을 시작으로 졸업 후에는 사물놀이, 그리고 신혼 때는 남편의 눈총을 받아가면서 민요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어느 날은 홀트학교에 국악부를 만들어야겠다고 문득 생각이 들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악기를 구하여,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성공적인 공연도 진행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회의적이었는데 보란 듯이 성과를 내서 학교 측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됐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욕심이 들어 국악 연습을 많이 했다. 그렇게해서 가야금도 배우기 시작했고 이제는 반주도 하고 꾸밈음도 어렵지 않게 넣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해가 생기고 나니, 더 나은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끔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특수학교에서 보통 오케스트라 활동은 많이 하는데 국악관현악단은 본 적이 없다. 예측컨대, 국악에 대한 이해가 약하고 전공 선생님들이 많지 않아서일 것이다. 국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의 꿈은 장애인 국악관현악단을 만드는 일이다. 타악기와 현악기는 이미 수업을 하고 있어 관악기를 더하기만 하면 된다. 그 목표는 혼자서는 이루기 어렵다. 홀트학교에는 선생님들이 모여 만든 국악 동아리가 있어서 학생들의 가야금 연습을 틈나는 대로 도와주고 있다. 이 수업을 위해 지역사회의 자원봉사자들, 기업, 공공기관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여러 커뮤니티가 함께 하는 홀트학교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언젠가는 힘을 얻어 완성되리라 기대한다.

사진없음
채널원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