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어떻게 건강하고 의미 있는 노후를 보낼 것인가는 전 세계적인 과제가 되었다. 고령사회를 앞서 경험하고 있는 구미시에서는 ‘창의적 노년’ 등을 화두로 다양한 문화예술활동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또한 한걸음 더 나아가 치매 노인을 위하여 문화예술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다양한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전세계 치매 환자는 4천4백만 명, 2030년도에는 7천5백만 명, 2050년도에는 1억3천5백만 명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예술이 갖는 치유의 힘을 활용해 치매 노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가가는 서구 박물관·미술관의 문화예술교육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덴마크 야외민속박물관의 ‘기억의 집’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르후스에 있는 민속촌 ‘올드 타운’은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덴마크 마을과 집을 체험할 수 있는 인기있는 박물관이다.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덴마크 마을과 집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 중 하나이다. 이 박물관에 ‘기억의 집’이라는 특별한 전시가 있다. 1950년대를 재현한 아파트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다른 민속촌의 전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지만 이곳은 일반 관람객을 위한 전시가 아니라, 노년층 특히 치매나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인근의 노인 요양시설에서 소규모 단체로 방문하게 되면 먼저 건물 1층의 50년대 전파상과 수예점을 지나 계단을 올라 아파트의 문 앞에 도달한다. 방문객들이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려도 안에서 기척이 없다. 다시 초인종을 누르자 그때서야 아파트 안에서 50년대 옷을 입은 여성이 반갑게 손님들을 맞이한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보시다시피 아직 손님 맞을 준비에 바빠서 그랬다며 안으로 안내한다. 전시 관람은 이렇듯 훈련된 전문가에 의해 50년대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역할극 형태로 진행된다.
치매 노인을 위한 이 프로그램은 2004년에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산파인 헤닝 린드버그 박사에 의하면, 처음 아이디어를 내었을 때 긍정적인 반응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치매 환자들이 자동차로 민속촌으로 이동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20분 이상은 피곤해서 어려울 거라는 애초의 예측과는 달리 대성공을 이루었고, 이제는 3시간도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한다. 2012년에는 이 프로그램만을 위한 전용 전시인 ‘기억의 집’을 개관하였다.
노인들에게 전 생애에 대한 자서전적 기억을 회고하게 하였을 때,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의 기억을 가장 많이 기억한다고 한다. 이 ‘회고 절정’ 이론을 기반으로 지금 치매를 앓고 있는 노년층이 젊은 시절을 보낸 1950년대의 환경을 조성한 것이 ‘기억의 집’이다. 집안의 벽지, 침실에 놓여져 있는 당시의 전화번호부, 의상, 부엌에 놓인 찻잔과 그릇, 커피와 다과 그리고 유행음악 등 세심한 부분까지 당시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다감각적 체험을 통해 어느 순간 젊은 시절의 기억과 만나게 되면서 활기를 되찾게 된다.


프로그램 참가자 중 잊었던 기억을 되찾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과거 속의 자신과 만나는 경험을 한 셈이다. 과거 속 자신과의 만남은 불쑥 우연찮게 이루어진다. 한 할머니는 거실에 놓여있는 피아노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피아노를 치면서 불어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불어를 할 줄 아냐는 질문에 ‘젊었을 적에 프랑스에서 간호사를 했어요’라며, 몇 년간 같은 요양원에서 생활했어도 아무도 몰랐던 그녀의 회고가 이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놀라운 경험은 ‘기억의 집’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현재 ‘기억의 집’에서는 매일 2회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번은 인근의 요양원 등의 치매 노인을 대상, 또 한 번은 치매 노인을 돌보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다. 이 프로그램의 괄목할 만한 성과에 힘입어, 오르후스 시에서 간호조무사 그리고 헬스케어 관리사가 되기 위해서 들어야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르후스대학 심리학과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치매 노인들은 행복감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영국 리버풀국립박물관의 ‘기억의 집’

영국 리버풀국립박물관은 지난 2000년부터 고령화 시대 문화사 박물관의 역할과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기억’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이것이 주목을 받으며 성과를 이루자 2010년대에는 치매 노인을 위한 ‘기억의 집’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확장하였다.
‘박물관에서 나를 만나요’ 는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이다. 박물관 안에 치매 노년층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나간 기억을 되살리는 역할을 하는 사진과 실물자료가 담긴 ‘기억 상자’를 박물관 내부는 물론 박물관 밖 필요한 곳으로 대여해 주고 있다. 리버풀 역 포스터, 포드 자동차 모형, 놀이, 패션과 음악 등 관련 일반적인 자료가 담긴 기억상자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카리브해의 기억, 리버풀의 아일랜드 사회 등 다양한 주제의 기억상자 또한 제공한다.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내 기억의 집’이라는 앱까지 개발하였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전문가 및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 또한 ‘기억의 집’의 중요한 일부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3~7세의 어린이가 조부모 또는 노년층 친척과 함께 박물관을 탐색하는 세대통합 프로그램이다. 배낭을 매고 전시실을 돌아다니며 보고 이야기한 것을 ‘내가 어렸을 적’ 앨범에 작성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어린이와 노년층이 함께 즐기며 조부모 세대의 어린 시절 기억을 회상하고 공유한다. 학교 보급하기 위한 ‘내가 어렸을 적에’ 프로그램도 개발하였다.
영국 내 치매 인구는 89만 명, 2021년에는 100만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치매 친화적(dementia friendly)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치매 노인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 그리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박물관에서의 이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와 살아가는 노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미술관에서 나를 만나요’

뉴욕에 있는 현대미술관(MoMA)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휴관일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치매 노인과 그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미술관에서 나를 만나요’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잘 훈련된 에듀케이터들과 함께 미술관이 자랑하는 피카소, 마티스, 잭슨 폴락 그리고 앤디 워홀 등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한다. 이 프로그램은 미술사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참가자들이 활발하게 토론에 참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치매 노인들은 적절한 지원만 한다면 일상생활을 수행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현대미술관에서는 2003년에서 2006년까지 알츠하이머 가족 재단의 지원으로 예술가들과 함께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을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미술관에서 나를 만나요’ 프로그램은 2006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는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본격 미술관 프로그램으로는 가장 먼저 시작한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미술관에서 나를 만나요’ 프로그램의 성공에 힘입어 미술관은 이 프로그램을 확산하는 MoMA 알츠하이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치매 노인들의 예술 경험에 관심을 가진 미술관, 예술가 그리고 관련 시설에서 이용할 수 있게끔 미술관의 축적된 경험을 자료로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다. 또한 관계자를 위한 트레이닝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고,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관에게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문화예술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최근 발행된 영국의 ‘창의적 건강 : 건강을 위한 예술’ 보고서에서는 ‘예술은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고 회복을 도우며 더 오래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지한다’라고 2년간의 연구결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문화예술 활동에의 참여가 기억 회복을 돕는 것은 물론 치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 그리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70만 명을 넘어서, 인구 65세 이상 인구 중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또한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치매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2025년도에는 100만 명, 2035년도에는 200만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에 국내에서도 문화예술을 통한 치매 치유활동이 시작되고 있다. 환기미술관에서는 2013년 뉴욕 현대미술관 알츠하이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노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대한치매학회와 손잡고 ‘일상예찬, 시니어 조각공원 소풍’ 등의 프로그램을 3년째 진행해 호응을 얻고 있다. ‘치매 국가 책임제’가 국정 핵심과제로 선정, 복지 차원의 정책이 실행되리라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이제 문화예술교육 차원에서 고령화 사회 치매 환자들에 관한 접근이 더욱 필요하다. 문화예술을 통해 자신은 물론 세상과 대화하면서 자존감을 높이고, 치매 환자 가족들에게도 위로가 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이은미
이은미_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박물관교육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토 도시샤대학 문화사학과에서 일본 문부성장학생으로, 코펜하겐 덴마크국립박물관에서는 객원연구원으로 체류하면서 문화예술교육과 박물관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박물관‧미술관을 방문하였다. 독립기념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현재는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이다. 문화다양성 이해를 위한 문화상자 ‘다문화꾸러미’를 개발하였고, 어린이박물관의 전시 기획과 운영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