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판을 닮은 위험한 놀이터가 주목받고 있다. 이 놀이터가 연상시키는 것은 ‘잡동사니’, ‘위험’, ‘건축’, ‘제작’, ‘자유’의 단어들이다. 안전규제와 이해 단체의 개입, 그리고 양산되는 놀이기구에 의해 구조화된 놀이터가 등장하기 전, 자유롭게 뛰어 놀던 마을 앞 공터나 버려진 공사판이 연상된다. 1960~7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들은 방과 후 잡동사니가 쌓인 곳으로 몰려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놀이들을 발견하며 놀았다. 모험놀이터는 그런 곳을 닮았다.
 
안전 관련 소송이 빈번하지 않은 유럽에는 이런 모험놀이터가 1,000여 곳이 넘는다. 영국 런던에만 80여 곳에 모험놀이터가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모험놀이터는 단 3곳 밖에 없는데, 모두 캘리포니아에 위치해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모험놀이터가 자주 회자되고는 있지만 종종 상업화된 어드벤쳐 파크(Adventure Park)로 오해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에서 모험놀이터가 실제 구현된 곳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단지 모험놀이터(Adventure Playground)에 대한 이해 없이 이름만 따다 붙인 또 다른 의미의 테마파크가 있을 뿐이다. 놀이터의 혁신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세계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모험놀이터를 좀 더 깊게 이해해보도록 하자.

버클리 마리나 모험 놀이터(Berkeley Marina Beach Adventure Playground)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위치해 있는 버클리 마리나 모험 놀이터(Berkeley Marina Beach Adventure Playground)는 버클리 마리나 쇼어버드 공원 안에 1979년 개장했다. 이 놀이터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10대 놀이터 중 하나로, 2016년 샌프란시스코 잡지가 선정한 최고의 놀이터이자, 디아블로 잡지가 선정한 가장 창조적인 놀이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에 한껏 기대를 품고 이곳을 찾는다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곳은 폐자재, 폐목재, 밧줄과 온갖 잡동사니로 만든 판자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판자촌을 연상시키는 모험 놀이터
  • 망치와 톱 모양으로 만들어진
    버클리 마리나 모험놀이터 입구
  • 다양한 잡동사니와 폐자재로 만들어진
    버클리 마리나 모험 놀이터의 놀이기구

망치와 톱 모양으로 만들어진 입구는 이 놀이터가 ‘놀이 건축(architecture of play)’의 현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모험놀이터 연구자인 닐스 노만(Nils Norman)은 그의 책 ‘놀이의 건축 : 런던의 모험 놀이터 조사’(An architecture of play: a survey of London’s adventure playgrounds)에서 모험 놀이터를 ‘놀이의 건축(Architecture of Play)’이라 표현했다. 버클리 마리나 모험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못, 망치, 톱, 페인트와 붓, 다양한 폐목재들과 잡동사니들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놀이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곳은 7세 전후 아이들의 창작 욕구를 자극한다. 얼핏 모험놀이터는 다소 위험하고 더럽고 지저분하게 보인다. 잡동사니 놀이터(Junk Playground)로도 불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놀이의 건축을 위해 적절히 위험을 받아들일 때 아이들의 역동적인 공간 감각이 충분히 개발된다.
 
이곳에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놀이기구나, 또는 놀이방법이 구조화된 놀이기구가 아니라 어린이 자신이 놀이 환경을 조성하고 바꿀 수 있으며, 놀이를 창조하고 선택할 수 있다. 아이들은 모험놀이터에서 작은 판잣집, 돌출된 데크, 사다리, 무대, 전망대와 같은 구조물을 만든다. 복잡하게 연결된 구조물로 구성된 작은 놀이 마을이 만들어지곤 한다. 모험놀이터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참여적 놀이공간이다. 이곳에서 어른들의 허락은 필요치 않다.

헌팅턴 비치 모험 놀이터(Huntington Beach Adventure Playground)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 중앙 도서관 옆 언덕에 위치한 이 놀이터는 5~12세의 어린이들에게 적합한 자연주의 모험 놀이터이다. 모험놀이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덴마크 조경사 칼 테오도르 쇠렌센(Carl Theodor Sørensen)은 자연 녹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931년 그는 나치 치하에서 자유와 희망을 갈망한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덴마크 주택공원협회’를 위한 새로운 무정부적 놀이터 디자인 구상을 발표하면서, 너무 작지 않으면서도 외부와는 자연 녹지로 잘 차단되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초의 모험놀이터는 1943년 코펜하겐 외곽 엠드럽(Emdrup)에 문을 열었다. 당시 만들어진 모험놀이터는 대개 경사진 대지나 관목 덤불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는 어린이들이 외부로부터 독립된 느낌과 안정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외부 관찰자의 개입과 소음을 막는 장벽 역할을 했다. 쇠렌센과 그의 동료들은 아이들이 자연과 유사한 환경에서 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자연을 놀이터 안으로 가져왔다. 모험놀이터 주변의 숲과 초원, 시골을 연상케 하는 드넓은 자연 환경도 디자인의 일부였다. 이외에도 이들은 모험놀이터에 정원, 텃밭, 토끼, 염소를 키울 수 있는 작은 축사를 만들고, 물을 끌어들이고, 불을 피울 수 있도록 해서 전통적 놀이터보다 훨씬 다채로운 재미와 활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초기의 모험놀이터에서 현대 도시에서 새롭게 주목되고 있는 도시농장과 도시정원, 도시작업장, 놀이터의 조합을 발견할 수 있다. 엠드럽의 모험놀이터는 온갖 버려진 악기와 건축 자재, 종이박스, 덤불, 폐타이어, 폐차 등 잡동사니 조각을 끌어 모아 아이들이 자유롭게 만들고 놀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러한 최초의 모험놀이터에 비하면 헌팅턴의 자연주의 모험놀이터는 보다 단순해졌고, 잡동사니 보다는 자연, 특히 ‘물’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헌팅턴 비치 모험 놀이터 흙탕물 연못에서의 뗏목 체험

관련 링크(이미지 출처)
http://blog.planadayout.com/page/7/
아이들은 헌팅턴 모험놀이터 한가운데에 있는 45~60cm 정도 깊이의 흙탕물 연못에서 뗏목을 탈 수 있다. 이 연못에는 12m 길이의 밧줄로 만들어진 출렁다리가 걸려있고, 진흙 구덩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자연 경사로 미끄럼틀을 탈 수도 있다. 타이어 짚라인(Zipline), 등반 사슬도 있다. ‘건축 영역’에선 작은 요새를 만들 수 있다. 이곳은 지역주민이나 부모들로부터 각종 목재와 폐 판넬을 기증 받는데, 아이들은 못과 망치, 톱을 이용해서 사다리와 성채, 뗏목을 만들 수 있다.
 
지도원들은 단지 시범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칠 뿐이며,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창작본능이 구현되도록 한다. 아이와 지도원의 비율은 10:1을 넘지 않는데, 지도원들은 연못과 건축 영역 등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 올 때는 옷과 몸이 흙탕물로 더러워질 것을 각오해야지만, 야외 샤워기외에는 락커가 구비된 탈의실 같은 것은 따로 없다. 아이들은 갈아입을 옷과 비닐가방, 여유분 신발, 수건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시설을 이용할 때 아이들은 지도요원들의 안내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안전과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건축 현장에서 놀이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어바인 대학 공원 모험 놀이터(Irvine’s University Park Adventure Playground)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 현대적 모험놀이터는 드물다. 안전규제, 놀이터 건축과 관련된 법과 제도, 문화적 선입견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어바인 대학 공원 모험 놀이터는 1970년대 몇몇 도시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간섭을 피해 놀기 위해 버려진 건축현장에 잡동사니를 끌어 모아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만든 놀이 영토는 1990년 문을 닫았지만 2016년 다시 시민활동가들과 그곳에서 놀면서 자란 지역 주민들, 지자체가 힘을 합쳐 새로운 현대적 모험놀이터로 재개장했다.
 
이곳에는 3개의 펌프와 시멘트 미끄럼틀, 수직 봉, 모래밭, 수초가 자라는 작은 웅덩이, 숨바꼭질 장소로 사용할 수 있는 대나무 숲, 텃밭정원 그리고, 밧줄과 그물, 놀이탑이 결합된 대형 현대식 조합놀이대가 있다. 이것만으론 이곳이 과연 과거의 비구조적인 모험놀이터인지 알 수 없다. 이곳이 과거 아이들의 건축 놀이터라는 점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놀이터 마당에 펼쳐진 대형 레고블록 더미들이다. 아이들은 이 대형 레고 블록을 폐자재 대신 사용하며 자신들의 상상대로 놀이구조와 공간을 만들 수 있다.

  • 대형 레고블럭으로 시도하는 놀이건축
  • 놀이터 안에 마련된 수초가 있는 인공 습지
  • 놀이터 안에 조성되어 있는 텃밭 정원
  • 어바인 대학 공원 모험 놀이터 전경

현대 모험놀이터에서는 어바인 대학 공원 모험놀이터와 같이 위험한 잡동사니(Junk)가 축소되거나 사라진 대신 도시농장, 도시정원과 같은 생태적 요소와 자연 수로, 대나무 숲과 같은 환경적 조경미학이 결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현대 모험놀이터들은 개발을 저지하는 도심의 중요한 생태공간이 되고 있다. 몰론 놀이터에서 키울 수 있는 가축들은 점점 적어지기 시작했지만 한편에선 야생동물이 서식할 수 있는 도시의 틈새 서식처가 되었다. 이렇게 모험놀이터는 현대 도시에서 산업화된 도시를 복구하는 도시재생의 공간이자, 도시 어린이들이 생태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과 모험놀이터
런던에 있는 많은 모험놀이터들은 과열된 부동산 투기 지역의 가장자리에 위치해있다. 모험놀이터는 개발을 위한 철거,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선 세입자, 상인, 저소득층을 비롯한 시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한 결과이거나 투쟁의 현장이었다. 이들은 투쟁과정에서 공공 공간의 가치를 재발견하면서 모험 놀이터, 도시 공유 작업장, 도시 정원이 결합된 공간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경우 놀이터 조성 자금이 거의 없는 상태로 놀이터들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건축놀이라는 모험 놀이터의 철학을 반영한 까닭에 모험놀이터 그 자체는 결코 완성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미개발 상태, 비구조화된 재생지로 남았다. 놀이터 밖은 부동산을 둘러싼 계층과 계급 갈등의 현장이지만 이곳에선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어린이들이 만나서 집단적으로 건축놀이를 하면서 협력하고 소통한다. 이렇게 집단적 건축 놀이와 생태적 디자인이 결합된 모험 놀이 공간은 현대도시에서 일종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급진적이고 매우 중요한 사회통합적 가치를 가지는 공공 공간 모델이 된다.

모험 놀이터의 폐쇄를 반대하고 있는 아이들과 런던지역 주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험놀이터는 현대 산업도시에서 종종 타협하기 어려웠다. 2013년 런던의 배터씨 모험놀이터(Battersea adventure playground)에선 안전과 현대화를 빌미로 모험놀이터를 폐쇄하려는 시정부와 주민들이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놀이터 인근의 다민족, 다인종으로 구성된 아이와 부모들은 놀이터의 폐쇄를 막기 위해 장기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반면 포괄적 복지가 중요한 스위스에선 로빈슨크루소 놀이터(Robinsonspielplätz)가 등장하며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이 유형의 놀이터는 1950년대 전후 스위스 놀이터의 영웅으로 잘 알려진 알프레드 트락셀(Alfred-Trachsel)이 주도한 모험놀이터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트락셀은 기계화된 현대도시에서 아이들의 잃어버린 놀이와 창작의 공간을 제공하고, 아이들의 전쟁 트라우마가 치유되기를 바랐다. 트락셀은 모험놀이터와 마을센터, 전통놀이터가 결합된 ‘마을의 (정신적) 나무’로써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놀이터를 디자인했다. 이렇게 공공놀이터 안에 모험놀이터를 통합함으로써 모험놀이터를 공공영역에서 수용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획일적 놀이터에 대한 반성과 함께 혁신적인 놀이터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모험놀이터는 오늘날 놀이터에 지속적인 영감을 제공해 주고 있는 하나의 문화예술교육운동이다. 모험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자율성, 독립성, 창조성, 안전감각, 동적인 공간감각, 생태감수성, 사회적 통합력과 소통력을 키울 수 있다. 놀이의 건축 현장인 이곳에서 아이들은 비록 허접하고 완성되지 않은, 반쯤은 파괴되어버린 놀이구조들을 만들지만,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처럼 위험하면서도 창조적인 모험 놀이터에서 뛰어 놀며 자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서구에서 모험놀이터는 지켜야할 사회적 유산이지만 이제야 자율적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있는 한국에서 모험놀이터는 여전히 힘겹게 도전해야 할 사회적 혁신의 과제이다.

김성원_적정기술, 기술놀이교육 연구가
김성원_적정기술, 기술놀이교육 연구가
적정기술, 기술놀이 연구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생활기술과 놀이 멋짓 연구소’ 마루.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매니저, (주)숲과도시 이사. 저서로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들녘, 2009), 『점화본능을 일깨우는 화덕의 귀환』(소나무, 2011), 『화목난로의 시대』(소나무, 2014), 『근질거리는 나의 손』(소나무, 2015), 『시골, 돈보다 기술』(소나무, 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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