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와 친근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음악이 된 아이들이 있다. ‘꿈의 오케스트라’가 일궈낸 마법의 하나다.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은 안락한 둥지 삼고 따스한 볕이었다가 시원한 물이기도 했을 음악을 양분 삼아 스스로를 힘껏 피워내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나를 닮은 악기를 만나다
싱그러운 봄 풍경과 봄비가 다정한 앙상블을 이루던 4월의 어느 하루.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 16회차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소월아트홀을 찾았다. 강의실부터 로비까지, 선생님과 단원들의 파트별 악기 수업이 한창인 가운데 중후하고도 묵직하게 들려오는 선율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지하 로비에 이르니 세 명의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체격보다 훌쩍 큰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의 자리는 맨 뒷줄이다. 바이올린, 플루트처럼 친숙한 인기를 누리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저음으로 여러 악기가 내는 소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속 깊은’ 악기다. 어린 학생들은 이 악기의 매력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콘트라베이스는 밑에서 받쳐주는 음을 만들어 내요. 저도 평소에 친구들을 챙겨주고 맞춰주는 편이라서 제 성격과 비슷해서 좋아요. ‘캐러비안의 해적’ OST처럼 신나는 곡을 연주하면 정말 신나요.”

– 이종윤 학생(6학년, 콘트라베이스)

“2년째 배우고 있어요. 처음엔 어렵지만 알면 알수록 매력 있는 악기예요. 선생님께서 운지법부터 자상하게 알려주시고, 쉬는 시간에도 장난치며 놀아주셔서 연습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오래도록 배우고 싶어요.”

– 정지민 학생(5학년, 콘트라베이스)

아이들도 악기를 닮아가는 것일까. 콘트라베이스와 첼로 파트 수업은 진지하고도 묵직한 분위기가 흘렀고, 플루트 수업은 시종일관 발랄하고 경쾌했다. 트럼본 파트는 에너지가 넘쳤고, 가장 인원이 많은 바이올린 파트는 활기찬 분위기에서도 섬세한 지도로 수업이 이뤄졌다. 이 모든 파트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악기를 잡았을 때의 단원들의 태도였다. 쉬는 시간 왁자지껄 뛰어 놀다가도 수업이 시작되면 눈빛이 달라졌다. 자세를 고쳐 앉아 악보대를 펼치고 조율하는 모습은 하나같이 단정했다. 옆의 친구와 음을 맞추고, 서툰 친구를 기다려주고, 선생님의 지도를 경청하는 학생들을 일컬어 윤용운 음악감독은 ‘기적’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저는 오케스트라로 음악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요. 도제식으로 악기를 배우다 곧잘 하면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꿈의 오케스트라에서는 ‘악기를 배우지 않은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하라’했어요. ‘그게 가능한가요?’라고 제가 반문했었죠. 저에게도 도전이었지만,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훌륭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아이들이 보여주었어요.”
  • 2017 신입단원들과 함께
  • 2016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 향상음악회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은 유대감이 강하다
현재 60명의 학생 단원과 10명의 교육강사가 함께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에서 6년째 활동하고 있다.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은 성동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예술단체 1호인 만큼 재단의 지속적인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연습무대인 소월아트홀이 도심에 위치해 아이들의 접근성이 편리하다는 점도 꿈의 오케스트라를 성장케 하는 원동력으로 꼽을 수 있다.
주 2회 2시간씩 모여 윤용운 음악감독의 지휘 아래 파트 선생님과 악기를 배우고, 해마다 4-5회 무대에 올라 자신의 실력을 펼친다는 점은 다른 꿈의 오케스트라와 다르지 않다. 참여강사들 자신이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의 강점으로 ‘끈끈한 유대감’을 이야기하였다. “학교도 나이도 다르지만 단원들 간 우애가 좋다”며 “음악으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아이들을 볼 때 음악가로서 행복하다”라고 전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애정을 갖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죠. 가끔 어떻게 연주곡을 선택하냐는 질문을 받아요. 저는 보통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를 고릅니다. 다를 게 없어요. 하지만 단원들의 실력에 맞게 이를 편곡하고 교수 방법에 대해서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교육강사들과 함께 치밀하게 준비를 합니다. 단원들은 아직 성장 중이어서 체력적인 안배도 해서 연습 시간과 강도를 정합니다. 이런 세심함이 강한 유대감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윤감독은 꿈의 오케스트라를 통해 단원들이 정말 배우게 되는 것은 ‘소통의 방법’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오케스트라는 다른 단원들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자기 소리를 화합하도록 내는 연습입니다. 끊임없이 어울림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죠. 그게 어긋나면 어떤 불협화음이 나고 차질이 생기는지 절로 알게 됩니다. 경청하고 이해하는 법을 몸으로 배워 나가는 과정입니다. 악기를 다루면 지능이 발달하고 노화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인생이 음악으로 더 풍성해지겠죠.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소통의 기술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게 바로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의 현재가 있게 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아이의 자존감을 춤추게 한다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은 2012년 35명의 단원으로 출범했다. 첫 두 달은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배우고 악보 훈련부터 시작했다. “너도 할 수 있어”, “포기하지마”라는 말이 입버릇이 되었을 무렵 그해 12월 부모님들을 초대해 연주회를 열었다. 간단한 동요곡이었지만 지휘하던 윤용운 음악감독도, 객석의 부모도 모두가 눈물을 글썽이고 만 기억이 생생하다. 믿고 기다려 주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증명해 낸 첫 ‘사건’이었다.
이날 학생들이 연습한 곡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Symphony No.9 ‘from the New)’이었다. 드보르자크가 아메리카라는 신세계를 경험하면서 인디언 음악과 흑인 영가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했다는 스토리가 어쩐지 ‘성동 꿈의 오케스트라’ 아이들과 닮았다. 알려진 대로 꿈의 오케스트라는 단원모집부터 저소득 ・ 차상위 계층 ・ 다문화 ・ 한부모 가정 등 음악을 배운 경험이 전혀 없거나 악기를 다룰 기회를 가지지 못한 아이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악기가 친숙하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꿈의 오케스트라는 든든한 울타리요, 도전하고 싶은 신세계가 아니었을까.
“머리가 복잡할 때 혼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해요. 한 음 한 음 집중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초등 3학년인 남동생도 함께 배우고 있어요. 동생은 클라리넷을 배우고 싶어 했는데 어리고 앞니가 없어서 바이올린으로 마음을 바꿨어요. 제가 적극 추천했어요.”

– 윤곤지 학생(중1, 바이올린)

“꿈의 오케스트라에서 배운 바이올린으로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좋아요. 연습 시간이 기다려져요.”

– 김연우 학생(4학년, 바이올린)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표현력이 부족하고 의기소침했어요.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죠. 그런데 오케스트라는 내가 좀 부족해도 옆 친구에게 의지할 수 있고, 친구의 실수를 나의 노력으로 감싸줄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유대감을 경험하고 안정감을 느껴요. 특히 스스로 어렵다고 생각한 곡을 열심히 연습해서 무대에 오르고 나면 아이들이 확 달라집니다. 감수성이 풍부해지니 표현력이 좋아져요. 음악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요. 오케스트라를 떠난 후에도 아이들이 늘 음악을 가까이 두고 즐기기를 바랍니다.”
– 윤용운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 음악감독)
윤용운 음악감독에게 꿈의 오케스트라는 ‘도전과 쉼’이다. 도전을 통해서 실력을 쌓으면 음악은 그 자체로 휴식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9월에 열리는 ‘숲속의 오케스트라’(구로, 서울숲)와 11월 ‘청소년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소월아트홀), 12월 ‘꿈의 오케스트라 성동 정기연주회’(소월아트홀)에서 이들의 뜨거운 도전과 음악이 주는 위안을 함께 경험해 보자.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
‘꿈의 오케스트라’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추진하는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교육 지원사업’이다. 아동‧청소년이 기존의 악기 중심의 음악교육에서 벗어나 오케스트라 합주교육과 음악 감수성 교육을 통해 ‘상호학습’과 ‘협력’을 경험하고, 자존감과 공동체적 인성을 갖춘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12년 2월 베네수엘라 시몬볼리바르음악재단(엘 시스테마)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기존의 도제식, 악기 중심의 음악교육에서 전면 탈피함으로써 오케스트라 합주교육을 중심으로 아동·청소년의 다면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2017년 현재 전국 37개 거점기관에서 아동·청소년들이 함께하고 있다.

김경민
김경민_자유기고가
2010년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주간조선>에 입사해 2014년까지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탈북자 문제 전문기자로서 <주간조선>에 탈북자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고, 다방면의 문화계 인사 인터뷰를 담당했다.
kyongmin0127@gmail.co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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