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은 치유의 힘이 있다. 이러한 예술교육의 치유적 속성은 지난 2011년, 유네스코 총회가 채택한 ‘서울 어젠다’에서도 ‘예술교육의 치유적, 보건적 측면 및 갈등이나 재난 경험 이후에 예술교육의 치유 능력을 인식하도록 장려’하자는 주제로 다루어졌다. 문화예술교육이 치유의 영역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범위의 확대가 필요함에 따라 채택된 내용이다. 이 같은 배경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문화예술치유 프로그램 지원 사업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자 해외에서 도입된 예술치유의 학문적 특성을 고려하여 유럽의 예술치유 관련 기관을 방문하였다. 관련 기관 전문가 및 담당자 인터뷰를 통해 예술의 치유·보건적 측면을 탐구하고 커뮤니티 문화예술치유 프로그램의 사례를 조사하였다. 그중 그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독일의 피나 바우쉬 재단(Pina Bausch Foundation)과 콘페티 카페(Konfettie Cafe) 사례를 소개한다.
  • 피나 바우쉬(안무가, 1940~2009)
  • 콘페티 카페
‘나’로부터 시작하는 예술적 성찰
피나 바우쉬 재단은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아들 잘로몬 바우쉬가 2009년 설립한 단체로 피나 바우쉬의 업적을 보존하고 그녀의 생전 작품과 그와 관련된 다양한 공연 및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 밖에도 정부, 지자체 기관과의 협업을 통한 가족, 아동, 청소년을 위한 사회지원 프로젝트와 공연을 기획 지원한다. 피나 바우쉬 재단에서 관련 프로젝트를 이끌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참여자의 자발성과 전문성을 가진 프로그램 구성이다. 그에 따라 프로젝트 참여자는 포스터, 인터넷 등의 광고를 보고 직접 참여 의지를 밝힌 대상으로 구성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예술가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발된다. 피나 바우쉬 재단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기 위한 자격조건은 아동·청소년과 함께한 활동 경력 등 사회적 경험과 다양한 소재 활용도, 세계적 수준의 예술적 역량(공연 경험) 등이며, 이러한 자격을 검증받기 위해 예술가들은 일정 금액의 비용을 지불한다.
피나 바우쉬 재단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로 ‘융 운트 라우트(jung&laut)’, ‘넬켄라인(Nelken-Line)’이 있다. ‘융 운트 라우트’ 프로젝트는 자발적으로 모인 대상자를 위해 진행되는 탄츠테아터(tanztheater, 무용극) 필름 프로젝트이며, 참여하는 대상자는 무용 및 연극에 대한 경험이 없는 난민 청소년, 이민자 등 14세에서 16세에 속하는 청소년 18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된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움직임을 통해 참여자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가 프로젝트 과정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며, 참여자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깨고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피나 바우쉬 재단은 예술성이 높은 참여인력과 음악‧무대‧복장을 비롯한 수준 높은 공연 환경 등 전문적인 구성도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히 참여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뿐 아니라 마지막 회기에 진행되는 최종 공연의 질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융 운트 라우트
영화감독과 함께 프로젝트를 촬영하는 영화팀과 안무가와 함께 공연에 오르는 연극팀으로 나뉘어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가며, 영화감독과 안무가는 성별 및 국적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전문가가 참여자와 다른 언어 사용으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움직임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 영화팀과 연극팀은 같은 건물의 위, 아래층을 사용하여 각자 연습한 부분을 수시로 관찰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결과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결론적으로 ‘융 운트 라우트’는 단순한 학생 프로젝트가 아닌 청소년들이 전문성을 띤 예술가와 그에 따른 좋은 환경 속에서 전문적인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왜 나는 움직이는가?’ 보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에 대한 성찰을 지속적으로 하는 시간을 가지며, 타인의 시선보다는 나에게 집중하여 함께 일하고 서로 관찰하며 청소년과 예술가 모두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넬켄라인(Nelken-Line)’ 프로젝트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동작 중 한 부분인 ‘넬켄라인’ 동작을 익히는 프로젝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표현한 통합적이고 원천적인 터칭, 댄스를 통해 누구나 쉽게 피나 바우쉬의 움직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피나바우쉬의 좋은 움직임을 함께 나누고 움직이며 공동체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현재 다양한 나라에서 ‘넬켄라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며, 더욱 많은 나라에 피나 바우쉬의 움직임을 전파하는데 힘쓰고 있다.
예술은 마음의 안정을 이루기 위한 수단
피나 바우쉬 재단과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예술치유를 대하는 태도였다. 독일에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나로부터 자아를 탐구하고 심리를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해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때문에 예술가가 직접 치유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무리가 없다는 인식이었고 예술과 예술치료의 가치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진행자가 예술가 또는 예술치료사일 때 비교해 이점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기관 담당자는 예술은 움직임, 마음에 안정 등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목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치유’는 참여자의 결함을 없애고 좋은 자원으로 바꿔주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 피나 바우쉬 재단은 피나 바우쉬의 좋은 움직임을 참여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그 움직임을 나누는 것만으로 특별함이 있다고 했다. 좋은 움직임 즉, 예술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넬켄라인
치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지역사회와 연결하기
콘페티 카페는 치매 환자 사진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은 사진작가 미하엘 하게돈(Michael Hargedorn)을 주축으로 2012년 출범한 ‘콘페티 임 코프(konfetti-im-kopf)’ 단체가 운영한다. 콘페티 임 코프는 ‘치매’라는 정신질환을 우리의 생활 속에 개방하여 함부르크 내의 우수 커뮤니티 기관으로 선정된 바 있다. 콘페티 카페의 목표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치매 환자를 하나의 일반적인 시민으로 인정하면서 치매라는 테마를 우리 일상에서 쉽게 공론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더불어 치매 노인 개인에게는 인생의 즐거움과 존엄을 가시화하고 그의 가족들에게는 치매 노인에 대한 도움을 지원함으로써 가족 간의 원활한 관계 형성을 돕고 있으며 더 나아가 지역사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 공간인 콘페티 카페는 평상시에는 일반 카페로 활용되며,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치매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콘페티 임 코프에 소속되어 있는 예술치료 전문가뿐만 아니라, 함부르크 메디컬 스쿨(Medical School Hamburg)의 미술치료학과 학생, 일반 음악학과 학생 등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이 피에로 공연, 미술치료, 음악치료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콘페티 카페의 피에로 공연은 인상적이었다. 피에로 공연자는 우스꽝스러운 옷과 분장을 하고 등장해 치매 노인에게 말을 걸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경직되어 있는 노인들이 웃을 수 있도록 재미있고 편안한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치매 노인을 일반인과 분리하여 프로그램을 제한하지 않고, 지나가는 유치원생, 지역 주민들도 언제든 들어와 함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누구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오픈 그룹’ 개념인데, 외부와 폐쇄된 집단의 참여자를 자연스럽게 사회복귀로 연결시켜 주고 지역사회와 융화될 수 있도록 돕는 형태로서 치매 노인들을 슬프고 외롭고 아픈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이다. 더불어 이러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모습을 대표인 미하엘 하게돈은 사진으로 남겨 사진전을 열기도 한다. 사진전을 통해 그간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간접적으로 치매 노인들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고 일반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콘페티 카페
예술에 담긴 치유의 속성과 앞으로의 예술치유
이번 유럽 해외사례 조사로 예술이 가지는 치유적 속성과 우리의 문화예술치유 사업에 대한 적용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사회의 문화적 차이와 갈등은 예술의 창조성과 상상의 힘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치유 프로그램 내에서는 환경과 심리적인 상처를 가진 대상이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다른 어떠한 방법보다 예술 매체를 통해 이야기할 때 더욱 전달력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은 마음의 안정 등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므로 프로그램의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을 더욱 중요시해야 하며, 미학적 예술활동으로 접근하여 창조의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참여자 유형에 따라 구분하여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존의 문화예술치유 사업 대상에는 그림과 같이 회복, 재활, 경미, 증진, 예방 등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이를 정상에 가까운 예방적 유형, 실제 극복할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역동적 유형, 장기적 심리 치료형 3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하여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 것이다.
참여자 스스로 자신을 깨닫고 소극적으로라도 사회복귀의 힘을 가진다면 예술치유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앞의 결과가 아닌 대상자들의 긍정적인 면을 찾고 사회, 문화, 관계 등을 더하여 참여자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다가간다면 천천히, 느리게 예술치유를 통해 참여자들은 타인, 나아가 사회와의 관계 회복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관련링크 (사진 출처)

· 피나 바우쉬 재단 홈페이지 www.pinabausch.org
· 융 운트 라우트 프로젝트 블로그
· 콘페티 임 코프(콘페티 카페) 홈페이지 www.konfetti-im-kopf.de
김다빈
이다연 _ 사회교육팀
leedayeon1@arte.or.kr
차은비 _ 사회교육팀
ebcha@art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