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로브스키(Swarovski)는 크리스털 보석과 장식, 조각, 샹들리에로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는 브랜드이다. 1995년 창사 100주년을 기념해 오스트리아 바텐스 인근에 개관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드(Swarovski Crystal Worlds) 박물관 역시 유명하다. 인테리어와 모든 설비를 크리스털로 장식했기 때문이다. 2015년 새롭게 재개장한 크리스털 월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조물은 남쪽 끝에 세워진 20m 높이의 놀이 탑이다. 이곳은 가족들, 특히 아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히 멋진 곳이다. 혁신적이고 독특한 공간들로 구성된 4층의 놀이 탑에서 어른과 아이들 모두 다양한 놀이 경험과 탐험을 즐길 수 있다. 놀이 탑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거대한 그물 때문이다. 탑 내부에 만들어진 높이 약 14m, 너비 1,044㎡나 되는 그물 공간(Space Net)이 있다. 그물 공간은 밧줄로 얼기설기 엮은 등반 그물, 출렁거리는 층간 바닥 그물, 원통형 수직 그물 통로, 통통 튈 수 있는 그물 트램펄린(Trampoline)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물 공간은 120명의 어린이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재개장한 크리스털 월드의 놀이 탑에서 밧줄 그물이야말로 최고의 놀이 공간을 만든 결정적 한수다.
  • 놀이 탑의 그물 트램펄린
  • 놀이 탑의 등반 그물
흔들리고 출렁이는 놀이터
밧줄 그물은 서구의 놀이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놀이 요소 중 하나다. 밧줄 그물은 비록 가볍고, 엉성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며 끊어질 듯 보이지만 경제적으로 신속하게 놀이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놀이 탑에서 보듯이 밧줄 그물은 등반 그물, 그물 바닥, 그물 원통 외에도 그물 경사로, 그물 그네, 그물 침대, 그물 다리 등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 그물은 거의 모든 놀이 경관과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다른 놀이기구들과 쉽게 조합할 수 있다. 밧줄 그물은 정신력, 운동 능력 발달과 시각적 사고를 발전시키는 도전적 놀이 경험을 제공한다. 밧줄 그물은 아이들의 동작에 반응하며 가변적으로 흔들거리고, 가볍게 진동하고, 출렁이거나 튀어 오르기 때문에 걷거나 오르기 힘들다. 그만큼 아이들은 즐겁게 긴장감 있는 도전을 경험할 수 있다. 밧줄 그물이 수많은 놀이터에서 애용되는 또 다른 결정적 이유다.
트리탑넷 트램펄린 공원
관련링크 (이미지 출처)
https://www.treetopnets.co.uk/gallery
막대한 자금을 투여한 스와로브스키의 놀이 탑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다. 자금은 부족하지만 만약 키 높고 굵은 나무들과 울창한 숲이 있다면 80%는 준비되어 있는 셈이다. 영국 잉글랜드 컴브리아 주 브록크홀(Brockhole)의 울창한 숲 속에는 10m 높이의 나무꼭대기들 위에 대형 그물로 만든 트리탑넷 트램펄린 공원(Treetop Net Trampoline Park)이 있다. 1,200㎡ 로 그리 넓지 않지만 그 어떤 어드벤처 파크보다 큰 즐거움을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선사한다. 이곳은 영국에서 최초, 세계에서 16번째 그물 놀이터인데, 선박용 밧줄과 그물로 만들어졌다. 트리탑넷은 선원이자 세계적인 밧줄 전문가 중 한 명인 세드릭 쇼바우드(Cedric Chauvaud)와 일곱 명의 전직 어부였거나 선원이었던 사람들이 6주 동안 함께 만들었다. 이들은 높은 나무에 사다리를 걸치고 그물과 밧줄을 설치했다.
소소한 삶의 기술이 놀이가 되어
마을 숲 놀이터를 만들고자 한다면 놀이 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울창한 숲 외에 나머지 20%가 필요하다. 그것은 세드릭 쇼바우드와 일곱 명의 전직 선원들처럼 엮고 깁거나 잇는 등 그물을 잘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일이다. 다행히 그물을 다루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산업적으로 양산된 그물이 나오기 전 바닷가 어촌 마을이나 호수, 강가의 어부들은 오래전부터 그물을 짜는 기술을 익혀왔다. 단지 어망에만 그물이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해먹(Hammock)을 만들거나, 식재료 주머니나 그물 장바구니(Mesh bag), 망태, 등반 그물, 화물 안전망, 넝쿨 식재를 위한 농사용 그물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꼭 어부가 아니더라도 그물 직조는 웬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익히고 사용하던 생활기술이었다. 아쉽게 그물이 상업적으로 생산되면서 그물 직조는 빠르게 잊혀가는 기술이 되었다. 산업화는 너무 많은 기술기억을 몇 세대 만에 사라지게 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그물직조 워크숍
[사진제공] 김성원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2월 23~25일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요청으로 ‘그물 직조’를 예술체험과 기술놀이로 풀어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전통적인 그물과 달리 다양한 재질과 색상의 실로 그물을 짜보고, 유사한 망 구조의 직물을 맨손으로 함께 짜보는 과정이었다. 최근 거처를 옮겨 일하게 된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내 ‘생활기술과 놀이 멋짓 연구소’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첫 수업을 그물 직조로 시작한다. 학생들이 직접 짠 밧줄 그물로 다양한 놀이 그물을 설치하고 해먹과 그물 가방을 만들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소소한 기술을 익혀 자신들이 뛰어놀 공간과 소품을 만드는 활동은 그 자체로 즐거운 놀이다. 기술놀이는 놀이가 삶을 살아갈 정신력, 체력, 감각을 키우는 활동이라면 생활기술도 강박 없이 배우고 익히고 도전할 수 있다면 충분히 놀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좋은 숲과 기술이 있다면 스와로브스키의 놀이 탑보다 더 재미난 그물 놀이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두 놀이 공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소한 기술들을 하나둘씩 익혀 가면 어떨까?
세 가지 그물 직조 방법
(이미지 : 인터넷 자료 조합)
김성원
김성원
적정기술, 기술놀이 연구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생활기술과 놀이 멋짓 연구소’ 마루.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매니저, (주)숲과도시 이사. 저서로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들녘, 2009), 『점화본능을 일깨우는 화덕의 귀환』(소나무, 2011), 『화목난로의 시대』(소나무, 2014), 『근질거리는 나의 손』(소나무, 2015), 『시골, 돈보다 기술』(소나무, 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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