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놀이터는 공간본능을 자극한다. 일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공간에서 반짝이는 탐색 욕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낯선 세상을 탐험한다. 본능적으로 익숙해진 곳을 목록에서 지워가며 새로운 탐험지를 발견해간다. 그 결과 세상의 모든 놀이터는 아이들로부터 버려질 운명에 처해있다. 아이들이 바꿀 수 없다면 그곳에서 미지의 세계는 사라진다. 아이들이 발견하거나 창조하는 공간에는 낯선 소리와 리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빛과 색상, 형태와 구조가 있다. 다만 정밀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뿐, 아이들은 자신의 더듬이로 공간의 차이를 파악한다. 그럴 수 없다면 놀이 공간이 아니다.
오래 머물 수 있는 놀이터는 상상을 자극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아이들은 각자 상상의 공간을 다르게 덧붙인다. 그 결과 그곳엔 수많은 상상 놀이터가 부풀어 오르고 재잘거리는 이야기로 가득해진다. 아이들은 낮에도 꿈을 꾼다. 걷고 뛰고 앉아 있고, 놀고 있는 매 순간 꿈을 꾼다. 어쩌다 어른이 되어 낮에도 꿈을 꾸지 못하게 된 우리는 아이들의 백일몽을 인정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세계는 현실과 꿈이 뒤섞여 있다. 놀이의 순간은 시간이 정지하는 몰입의 시간이다. 현실과 꿈이 뒤섞이는 시간. 이곳에서 놀이의 시간에 균열을 내는 도시의 소음과 형태, 시선은 차단되고 걸러져야 한다. 이러한 놀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도시는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색하다. 좁은 인도, 부족한 벤치,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쉽지 않은 그늘, 시끄러운 소리와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차들과 압도적 건물들. 도시에는 더 많은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 아직 사용되지 않은 도시 유휴 공간을 찾아 새로운 쉼터와 상상의 놀이터를 만들 수는 없을까. 에어버블 놀이 공간(Air Bubble Playspace)은 도시 곳곳 다른 맥락 속으로 이동하며 우리가 기대하던 공간을 마법처럼 가볍게 만들어낸다.
  • 타이베이시 고가 밑에 설치된 버블 스테이션 @도시효모(都市酵母)
  • 버블 스테이션 내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도시효모(都市酵母)
관련링크(이미지출처)
https://www.facebook.com/CityYeast/?fref=ts
도시에서 쓰레기로 버려지는 비닐봉지와 공기로 마법의 에어버블 놀이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바수라마(Basurama) 그룹은 전 세계 도시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이름을 가진 비닐 공기주머니 놀이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모인 비영리 단체로서 환경보호와 재활용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유휴공간을 공공공간으로 바꾸는 예술‧문화적 개입을 위해 15년 동안 활동해왔다. 2001년부터 전 세계 40개국에서 120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잡동사니의 활용, 공공공간,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들이 타이베이 도시재생 프로젝트 ‘도시효모(都市酵母)’ 사업의 하나로 수행한 ‘타이베이 동네공원 뒤집기((RE)_CREATE TAIPEI 台北鄰里公園翻轉計畫)’를 통해 ‘2016 세계디자인수도 타이베이(WDC Taipei 2016)’ 축제 기간 동안 버블 스테이션(bubble station)이 설치되었다.
버블 스테이션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참여자들과 함께 도시 내 유휴공간을 탐색하고 공공공간으로의 변화를 상상한다. 그리고 도시 내 비닐봉지 쓰레기가 발생하는 장소와 수거되고 처리되는 곳들을 탐색한 후, 수집한 비닐을 세척하고 건조하여 색상별로 분류한다. 미리 도안을 나눠 받은 참여자들은 비닐봉지를 정렬하여 투명 테이프로 이어붙이고, 매직으로 비닐에 도안을 옮겨 가위나 칼로 재단한다. 이때 몇 개의 면과 구조로 분할하여 제작한 후 마지막에 하나로 이어 붙인다. 버블 스테이션은 구(球)를 이루는 여러 개의 잎사귀 모양의 날개, 원형의 바닥면, 송풍기나 선풍기가 연결되는 몇 개의 공기주입관, 출입구로 나뉜다. 필요에 따라 종이를 대고 다리미로 다림질해서 펴거나, 머리 손질을 위해 사용하는 고데기로 공기가 새지 않게 열접착 한다. 설치할 공간의 바닥을 잘 청소하고, 필요에 따라 바닥에 부드러운 바닥재를 깔 수 있다. 공기주입관에 가정용 선풍기 또는 공업용 송풍기, 주방 환풍기 등을 설치하여 바람을 불어 넣는다. 이때 미리 바닥 안쪽에 무게가 나가는 물건을 두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선풍기, 공업용 송풍기를 공기주입관과 연결한 후 바람을 불어넣어 비닐돔을 부풀린다.
지름 8m의 반구형(半球形) 버블 스테이션을 만든다면, 바닥면은 테이프를 접착할 자리를 생각해 5~10cm 더 크게 재단해야 한다. 출입구는 겹쳐서 닫을 수 있는 형태로 구의 옆면을 잘라 만든다. 공기주입관은 에어버블 공간의 크기를 고려해서 사방에 여러 개를 만든다. 보통 부착하는 송풍기 또는 선풍기의 크기를 고려해서 관의 지름을 결정한다. 가장 만들기 어려운 부분이 돔을 형성하는 잎사귀 모양의 날개다. 잎사귀의 개수는 원의 둘레 길이를 고려해서 임의로 정할 수 있다. 뾰족한 잎사귀를 나란히 붙여 구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위쪽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이 값을 손쉽게 복잡한 계산 없이 구하기 위해 스타돔의 캔버스 크기를 구하는 온라인 계산기를 활용할 수 있다. 온라인 계산기에 원하는 잎사귀의 지름과 개수를 입력하면 잎사귀의 높이와 높이별 폭이 계산된다. 이때 접착면을 고려해 양쪽, 밑 선을 5~10cm 더 길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구한 값대로 여러 개의 잎사귀를 재단해서 이어 붙이면 구(球) 형태의 비닐막을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닥면, 반구면, 공기주입관을 붙여 하나로 만들고 송풍기로 바람을 불어넣으면 완성된다. 하지만 반드시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반구형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종종 길고 큰 동굴형, 상자형으로 만들기도 하고, 자유롭게 여러 가지 형상으로 만들 수 있다. 색색 비닐을 사용해 패턴이나 이미지를 표현할 수도 있다. 만약 투명 비닐을 사용한 동굴형 공간이라면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바수라마와 안토니오갈라재단이 함께한 ‘플라스틱 초현실주의-빛(PLASTIC SURREALIMS – LIGHT)’ 창의력 워크숍으로 설치한 에어버블 공간
우리의 공간본능은 일상과 다른 공간에서 가슴 부푼다. 버려진 비닐로 만든 투명한 동굴.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른 존재가 되어 자신을 드러낸다. 투명한 동굴 벽에 상상과 이야기들을 그림 언어로 새길 수 있다. 마치 원시 동굴 벽화처럼. 시간과 장벽을 건너 왜곡된 모습이라도 상관없다. 아이들은 공간 밖을 바라보고, 이 투명한 세계 밖에서 누군가 그들을 지켜보면 또 어떨까. 모험 놀이가 위험을 전제한다면, 탐색은 낯선 경험을 찾아 나선다. 아이들의 탐색을 위해 우리는 공간의 예술가와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 버려진 비닐봉지를 이어 붙인 이곳에서 감정의 거품이 떠오르고 비유적 생각을 불어넣을 수 있다. 어두운 밤이라면 그 안에 빛을 채우고, 때로는 음악을 채우거나 작은 풍선을 띄워 좀 더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어버블 놀이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요가와 명상 공간, 휴식 공간, 영화관, 식사 공간, 다실, 연주장, 임시 커피숍, 무대, 잠자리가 될 수 있고, 수다를 떨거나 또 다른 놀이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김성원
김성원
적정기술, 기술놀이교육 연구가.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매니저이자 (사)한국흙건축연구회 기술이사, (주)숲과도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들녘, 2009), 『점화본능을 일깨우는 화덕의 귀환』(소나무, 2011), 『화목난로의 시대』(소나무, 2014), 『근질거리는 나의 손』(소나무, 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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