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16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에는 예술강사, 협력기관 관계자, 교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교육 공헌자 시상이 있었다. 그중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원활한 운영과 사업 개선에 기여하여 공로상을 받은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이하 협회) 이자영 담당자를 만났다. 망원동에 위치한 협회 사무실에 들어서자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운영진들의 열기가 바깥 무더운 날씨보다 한층 더 뜨겁게 느껴졌다. 그 가운데 곱고 가녀린 한 분이 웃으며 인사를 한다. 한눈에 이자영 담당자임을 알 수 있었다.
이자영 담당자는 협회에서 복지기관 문화예술 지원사업(~2016년), 장애인 가족이 함께하는 방학·주말 프로그램 사업(2013~2016년), 활동가 파견사업(2013~2015년) 등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맡고 있다. 예술전공자로서의 이해를 바탕으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예술을 향한 사랑만큼 커져 버린 그녀의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뭉클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궁금하다.
장애인복지관 상호 간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복지관 종사자들의 전문성 제고를 통하여 장애인복지관을 지역사회 재활시설의 구심체로 육성‧발전시킴으로써 장애인의 사회참여 및 복지증진 확대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2011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협회 간 업무협약체결을 시작으로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협회차원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2016년에는 장애인복지관 218개소, 주간보호센터 및 보호작업장 32개소, 총 250개 복지시설과 182명의 예술강사, 예술가와 함께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무용을 전공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계기로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나?
대학 졸업 후 무용단에서 작품 활동과 함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 예술경영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누구나 문화예술을 접하고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문화예술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문화예술정책이나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 졸업 후 한 재단에서 문화예술복지 업무를 담당하면서 그중 가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힘든 경험,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경험이 있다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기획사업 중 하나로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활동가 파견사업’을 시범 운영했다. 보통은 복지사가 참여자들의 장애 정도나 성향 같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복지사의 의견에 따라 프로그램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에 비해 활동가 파견사업은 예술가가 직접 기관을 방문하여 예술가의 시선으로 참여자들의 욕구를 확인하고 발견하며 진행했다. 처음 이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는 ‘예술가 친구사귀기’라는 타이틀로 진행되었다. 기존에 많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참여자의 변화나 명확한 성과를 요구하고 그것에 맞게 운영되었기 때문에, 복지시설 담당자들은 결과물이나 목표 없이 ‘그냥 친구가 되면 되는 것이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로 본인들이 가진 예술적 감각과 실천이 어떻게 친구가 되는 과정 속에 만들어지는지 어려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예술을 매개로 친구가 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마음이 통해서였는지 참가자들이 점점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즐기기 시작했다. 그중에 자폐성 장애인이나 지적 장애인이 서로의 속마음을 끌어내 인터뷰하는 대화 속에 재미있는 음악 작업을 했던 예술가와 장애인들의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들의 삶을 통해 완성된 음원 속 목소리와 이야기는 엉뚱했지만 재미있고 편안했다. ‘무엇이든 예술이 되고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이 함께하는 ‘방학·주말 프로그램’은 올해로 4년째 진행되고 있다. 기존 복지기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과 활동가 파견사업이 장애인 당사자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라면, 이 프로그램은 장애인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장애인 가족이 돌봄의 대상이 아닌 협의의 주체이고, 지원의 대상이 아닌 주인공이 되는 관점의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지난 3년간 많은 가족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평일에는 장애아동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어려운 아버지들을 위한 <아빠는 슈퍼맨>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다. 아버지가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에 아이가 반응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의 아빠를 본 적 없어서인지 아이들이 넋을 잃고 쳐다보기도 하고, 아빠를 따라 하는 몸짓 속에 모두가 또 함께 웃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렇게 가족과 관계를 형성해가는 모습을 통해 ‘이런 게 바로 문화예술교육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장애인 문화예술을 특별한 시선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문화예술이라는 하나의 큰 틀에서 동일하게 바라보아야 할까? 장애인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를 누군가는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저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소리, 말, 행동이 그들에게는 중요하고 짜릿하고 행복한 순간들일 수 있다. 우리가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 때 반응하고 표현하는 것처럼, 그들이 느끼는 문화예술을 통한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소중히 해주는 것이 우리가, 그리고 문화예술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 지금은 누구나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이며, 그 울타리 안에 장애인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장애인 문화예술이 특별함에서 평범함으로 자리를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복지사 등 이들의 삶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인권에 대한 부분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자기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얼마만큼 장애인에게 당연한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고, 프로그램의 기획 및 구조적인 운영방향이 그것을 지지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업에 참여하는 복지시설 실무자, 예술강사(예술가)들과 의견을 조율하며 공감대를 찾아가고 있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문화예술과 복지 중 무엇에 더 중점을 두고 기획하는지?
초창기에는 복지적 측면에서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방식을 많이 고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예술이 이들의 삶을 지지하는 도구로써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휘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의 기획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낯설지만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고 있고 실행하고 싶다.
지금까지 기획한 프로그램 중 가장 성공적이라 생각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활동가 파견사업과 방학·주말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운영 구조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두 사업의 공통점은 문화예술교육 접근에 대안을 제시한 협업의 형태였다. 협업이라 함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복지시설 실무자, 참여자가 함께 만들어 나가고, 기록하고, 과정을 남겨 이들에 의해 생태계처럼 자라고 순환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2년째 참여한 복지시설에서 음악, 영화, 미술의 협업 활동을 통해 단순 향유에서 나아가 서로의 모습을 관찰하고 소통을 위한 또 다른 통로를 만들어가며 장애인뿐 아니라 가족 모두 즐겁게 참여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복지시설과 예술강사(예술가) 간 필요와 요구를 조율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먼저 복지시설 담당자, 예술강사(예술가) 간 필요와 요구조건이 생겨난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큰 틀에서 같은 목적으로 고민하는 예술가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각각의 위치에서 사업 참여자들 간 역할에 대해 충분히 공유하는 것이 필요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는 높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는 예술가에 비해 다소 취약한 복지시설 실무자와 예술가의 역동성이라는 두 가지의 측면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세부사업별로 협회의 중간자역할에 차이가 있었는데, 복지기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복지시설 담당자들의 사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오리엔테이션과 워크숍을 진행한다. 활동가 파견사업 및 방학·주말 프로그램의 경우 장애인을 둘러싸고 그들의 삶을 지지하는 매개자들의 에너지와 다양한 아이디어를 함께 공유하는 간담회나 워크숍을 개최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의견수렴이 어려울 경우 현장에 대한 자세한 모니터링과 논의를 통해 필요와 요구를 조율하는 방향을 찾고 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활동가 파견사업의 성과를 정리하셨다고 들었다. 장애인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다.
수혜자 중심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있어 역점을 두었던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사례집을 제작했다. 연구원들과 현장 인터뷰를 통해 고민과 사업의 방향, 과정을 심도 있게 바라봤다. 예술가와 복지시설 담당자가 함께 설계했던 지점들이 때로는 생각처럼 진행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우리에게는 다른 의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유의미한 것이었다. 또한 사업을 기획했던 협회뿐만 아니라 예술가, 복지시설 담당자의 고민을 깊이 알 수 있었고, 기획자로서 정책과 대안, 구조적 기회를 더 많이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새로움과 가능성을 꿈꾸게 한 특별한 만남』이라는 사례집 제목처럼 말이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에 몸담고 있는 동료, 앞으로 이 분야를 이끌어갈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인이 문화예술을 통해 무엇인가 경험하고 고백할 수 있고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현장에서 느꼈던 그들의 알 수 없는 음성과 표현들, 그 세계에서 뭔가 즐거우면서도 자유로운 공기를 많은 분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장애인’이란?
‘가치창조’라고 말하고 싶다. 장애인이라는 이름. 누군가는 특별하다고 안타까워할지 모르는 그들의 삶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고 만들어가고 싶다.
이자영
이자영

학부에서 무용(현대무용)을 전공했고, 예술경영 대학원을 졸업했다. 공연기획사에서 문화예술공연 관련 행정업무를 담당하며 현장에 첫 발을 디뎠고, 문화 복지 재단에서 농어촌 청소년, 장애인, 소외계층 등을 대상으로 문화사업을 기획했다. 2014년부터 (사)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에서 복지기관 (장애인분야)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영상 _ 강장원(미술작가)

서민지
서민지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학과, 동대학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11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장애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nesquik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