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최근 인문학 열풍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회 전반에 인문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와 성찰,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어떻게 세대와 이웃, 가족 간의 소통과 화합의 장을 열어줄 수 있을까?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인문예술캠프를 기획하는 두 명의 전문가 대담을 통해 개인의 성찰을 넘어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인문학적 사고에 대해 들어보고자 한다.

일시
| 2015. 7. 7(화) 오전 10시 30분
장소
| 북카페 ‘달빛에 홀린 두더지’
대담자
· 함돈균 (문학평론가, 인문예술캠프 청년참여형 기획자)
· 양철모 (공공예술작가, 인문예술캠프 가족참여형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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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두 얼굴, ‘위기’와 ‘열풍’
양철모 :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일단 인문학의 현황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인문학 열풍’이라는 말이 유행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인문학 위기’라는 말도 함께 나오고 있다. 왜 사람들은 인문학에 열광하고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함돈균 : 우리가 흔히 ‘인문학 위기’라고 간주하는 것은 사회에서 비실용적이고 취업과 직결되기 어려운 인문예술 학문 분과들의 통폐합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착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대학민주주의나 인문학 전공자 생계와 관련한 ‘노동의 위기’이지 인문학 위기의 본질은 아니다. ‘인문학 위기’의 본질은 인문학의 ‘공공성’의 위기와 관련된다. 지금 한국의 대학 중심의 인문학은 동시대적 삶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수행하지 못한지 오래 되었으며 사회 해석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그래서 오히려 대학은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으며, 민간의 자율적 인문공동체나 문체부나 교육부 등 정부 주도의 인문정책에 방어적이거나 ‘인문학의 대중화’와 같은 방식으로 수세적으로 대응해 온 면이 있다. 어떤 쪽이든 인문학의 하드웨어를 가진 대학이 시대정신 속에서 인문학 관련 정책이나 프로그램에 선도성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양철모 :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인문학의 흐름을 보면 여성주의자들이 함께 실천적인 운동을 하면서 사회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낸 것 같다. 예를 들어 조한혜정 교수는 여성주의자들과 함께 하자센터를 만들고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을 바탕으로 미래 교육과 청소년 운동을 했다. 1990년대 후반 IMF 이후 시민운동과 지식공동체가 생겨나며 많은 움직임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시기에 인문학이 분화되고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다른 방식으로 전유할 수 있는 인문학적 활동들이 늘어난 것 같다.

함돈균 : 그렇다. 1980년대의 세계를 해석하고 변화시킨 학문적 기초는 사회과학이었다. 사회과학의 담론은 사회를 구조의 명료성에 따라 파악하고 큰 프레임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등으로 인해 진보 운동이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힘을 잃어가는 추세 속에서, 그 명료성의 사회 분석 프레임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 하나하나를 깊고 다양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거대담론이 아니라 미시적·심층적 분석 프레임이 필요하게 되었던 1990년대 이후 세계적 흐름과 한국사회 현실 속에서 인문학은 대안 담론의 성격을 띠었고, 문예아카데미, 수유연구실, 철학아카데미 등 민간 영역의 대안적 인문학 공동체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인문학은 사회과학보다 명료하지 않다. 하지만 인문학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한층 복잡하고 모호해 보이는 사회에서 기초적이고 심층적인 생각의 토대를 기르는 게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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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인문예술에서 ‘공공’의 인문예술로
양철모 : 1990년대는 예술계에서도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던 것 같다. 작업실에서 작업만 하던 작가들이 현장으로 나왔고, 작업실 안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활동가, 경제학자, 문학인과 같이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과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장르 간 협업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문화공공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로 인해 작가의 역할과 태도가 변화한 것 같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믹스라이스’에서는 이주 경험이 있는 과거의 사람들을 추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건 지식도 아니고 역사도 아닌, 어떻게 보면 그 안에 접혀진 주름 같은 것이다. 어느 순간 예술가들이 이런 탐색을 하게 되었다. 개인의 삶을 토대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과거와 역사를 되짚어보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함돈균 :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는데, 한 유명 미술관에서 내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기획을 의뢰했다. 왜 미술을 전혀 모르는 인문학자를 섭외하려고 했을까?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술가가 개인들의 역사를 되짚고, 문학비평가가 미술관에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이다. 시인은 손 기술이 좋아서 좋은 시를 쓰는 게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맥락으로 풍경을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오고, 물건을 볼 때도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쓸모가 생긴다. 우리 시대의 인문학은 전통적인 인문학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인문학이라는 건 인간적 삶에 관한 모든 것, 인간적 삶에 대한 어떠한 심도 높은 통찰과 반성능력을 토대로 실천적인 지점과 연결될 수 있는 모든 활동영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양철모 : 최근 일상예술, 생활예술, 공공미술과 같은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공공의 공간에 만들어지는 환경조형물은 많은 사람들이 향유해야 할 문화적인 것인데 대부분 기득권을 가진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작품으로 향유되고 있어서 시민들이 비판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이런 문화적인 것들이 마을로, 생활로 가게 하기 위해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가 확산되었다.

함돈균 : 인문학이 더 이상 전통적인 인문학이 아닌 것처럼 예술이라는 관점도 조금 확장시켜 봐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공공장소에 놓이는 건축물에 대해 많은 건축가들은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그 건축물을 자신의 개인적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문정신이 스민 건축가라면 그것을 단순히 뛰어난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된 개인 작품이라고 여기기보다는, 공공적인 공간에 그것이 놓이는 만큼 그것을 여러 가지 시야에서 파악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문(人文)’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사람의 무늬’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사람의 무늬’는 다양하다. 이 다양성에 대한 성찰이 곧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인문학적 사고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지금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어떤 건축가가 만든다면, 단순한 디자인적 요소를 넘어서서 왜 지금 이것을 만드는가라는 필연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우리 시대의 절박한 기능성, 서울역 주변이라는 공간의 맥락, 그곳에 스민 역사적 시간과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 주변에 살고 있는 시장 사람들과 오가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노숙자들의 존재까지 포섭하는 다각도의 시선을 포섭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적 요소 외에 시선의 다양성과 통합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통찰력이 결합될 때 우리는 건축가도 인문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건축도 인문학도 서로 확장된 개념이 되며, 이러한 방향이 우리 시대 인문학이 가야하는 시대정신이며 실천적인 방향이 될 것이다.

인문적 사고를 예술적 체험으로
양철모 : 그렇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인문예술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굳이 인문과 예술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문예술캠프를 통해 인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려면 기획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하고 또 캠프를 통해 참여자들이 받을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함돈균 : ‘문화예술캠프’라고 하지 않고 ‘인문예술캠프’라고 할 때는 어떠한 방향성이 숨어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냥 ‘문화’라고 벙벙하게 말할 때와 ‘인문’이라고 말할 때는 차이가 있다. ‘문화’는 광범위한 개념이고 추상의 차원이 높다. 그러나 우리가 ‘인문’이라는 말을 지금 시점에서 사용할 때에는 ‘비어있는 기표’처럼 보이지만 실은 채워가야 할 어떤 ‘시대정신’ 같은 것을 감지할 필요가 있다. 그 방향성을 나는 ‘공공적 삶에 대한 통찰’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공공적인 것인데, ‘사람의 무늬’ 곧 여러 사람들의 관점을 통합한다는 것, 공공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의 논리, 그런 힘들을 통찰하고 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문적 사고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자연도 있고, 심지어는 인간이 만든 ‘사물’도 하나의 공동주체로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깊어지지 않는다. 이 공동주체적 요소에는 삶의 전체를 이루는 기본 플랫폼으로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고려도 포함되어야 한다. 시간은 과거만 있지 않고 아직 살지 않은 미래도 있다. 인간 외의 생물, 무생물적인 요소들, 무형의 요소들까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주체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겨야 비로소 통합적인 인문적 깊이가 생긴다.

양철모 : 인문이라는 것을 ‘비어있는 기표’라고 표현하셨는데 사실 유연하고 비어있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인문이고, 예술은 그런 것을 매개하는 방법으로써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분법적으로 나눴을 때 정신과 몸이 있다면 정신은 지식의 영역, 몸은 경험의 영역으로 흔히 말한다. 나는 피부가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문화예술적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머리가 아니라 피부로 기억하면 다음 행위를 했을 때 그 기억된 피부가 더 살가워지고 몸이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다. 인문예술캠프에서는 인문이라는 방향성, 주제를 가지고 예술로 피부가 기억하는 시간성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돈균 :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이 실험적 캠프에서도 인문과 예술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인문이라고 하는 그 방향성을 예술이라는 체험과 표현행위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 우리는 ‘예술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예술가가 참여해서 예술적인 것인가, 아니면 ‘아트’(art)라는 말의 원뜻처럼 무언가를 ‘제작’하기 때문인가. ‘인문’도 그런 점에서 ‘강의’를 하는 차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과 만나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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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힘을 기르다
양철모 : 예술가들 또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인문예술캠프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인문학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판소리를 하는 예술가의 경우, 판소리에 이야기가 있고, 인간의 희노애락이 있고, 교훈과 도덕이 있다는 걸 항상 자각하면서 판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인문예술캠프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예술행위 속 인문학적 고민과 질문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함돈균 : 한번 쯤 곱씹어볼만한 좋은 말인 것 같다. 전통적인 인문학 강의에서는 언제나 지식을 전달하고 답 자체를 알려주지만 인문적 사고의 핵심은 질문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대한 질문을 말이다. 가족캠프라고 한다면 가족에 대한 위상 혹은 종류가 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 예를 들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성결혼, 세계화 추세에서 다문화 가정도 일반화되어 가고 있고, 결혼을 하지 않는 1인 가족도 급격히 늘어가고 있고, 노년세대들만으로 이루어진 가정들도 보편화 되어 간다. 가족캠프가 평소 대화를 하지 못한 가족들끼리 친밀성의 유대를 경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이것이 ‘인문’이라는 관점을 결부시키는 캠프라면, 우리 가족과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의 이질적 형태의 가족들과 어떻게 사이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공존의 모색을 이야기해 보는 게 가능할 것 같다. 그냥 ‘가족캠프’가 아니라 ‘가족인문예술캠프’라면 캠프를 통해 ‘가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협소한 가족주의를 넘어서 다양한 가족들에 대한 이해와 공존의 논리를 생각해보고 ‘이웃되기’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양철모 : 가족캠프의 경우 아이의 이야기가 가족의 이야기가 되고, 가족의 이야기가 사회의 이야기가 되는 지점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청년 또한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삶에 대한 질문으로 발전하고, 다른 질문과도 만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든 표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캠프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인문예술캠프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이걸 다 경험하기는 어렵겠지만 대부분의 가족이 아이를 독립적인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아이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도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 청년의 경우도 자기 스스로에 대한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은 시간이 된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함돈균 : 청년캠프에서 내가 생각해 보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청년세대가 자기 세대 문제 인식의 카운터파트너로 생각하는 노년세대,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요즘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나타나는 세대갈등이다. 청년세대와 노년세대 간 갈등에는 당연히 근거가 있다. 청년들 스스로 삼포세대, 버림받은 세대, 뭔가를 포기한 세대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그러나 사회 구조상으로 볼 때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사회구조로 돌리는 것 또한 주체의 실천적 가능성을 스스로 좁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70대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전쟁을 겪은 세대, 전쟁 직후에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에 직장에 들어가고 싶어도 산업 인프라가 구축이 되어있지 않은 시절이었다. 자기 세대 삶의 방식과 가치에 대해 질문하기보다는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시대였고, 그 나름에 이해할 만한 지점이 없지 않다. 그런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2,30대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청년세대가 자기 세대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조금 더 객관화 시켜서 볼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난 인문적 관점에서는 우리 시대 청년 멘토들의 단골 힐링 키워드인 ‘공감·위로·격려’ 같은 개념보다는, 자기 세대에 관한 객관적 시각을 갖는 계기를 만들고, 그에 기반 해서 ‘청년’으로서의 주체적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부여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양철모 : 청년들한테는 세대적으로 88만원세대와 같은 피해자로 정의를 내리는 게 많은 것 같고, 한편으로는 끝없는 경쟁을 대중매체가 강요하는 것 같아 이중적인 면이 보인다. 세대 간 갈등에 대한 문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급속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밥 세끼를 먹는 것이 삶의 존재였던 세대와 지금 자기 세계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침해받기 싫어하는 세대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지속되어야한다. 어떤 책에서 세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는 자기 집에 한두 평의 공간이라도 공공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누구는 도서관, 누구는 찻집처럼 여러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을사람들의 삶과 관련하여 강의도 하고, 서로 만날 수 있는 마을 안의 집이다. 세 번째는 공동주택인데 젊은 세대와 노인세대가 함께 사는 집이다. 이것은 경제적 문제도, 세대의 문제도 아니다. 이런 문화적인 방법들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공간, 시간, 청년세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유연한 제안들은 민간차원에서의 그 과정을 실행하고 그 다음을 관(官)이 받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문예술캠프도 짧은 시간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현실하고는 많이 다를 수 있다.

함돈균 : 우리 시대 인문학 열풍의 가장 긍정적인 의미는 해방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전 국민이 ‘공부하고 싶다’는 학구열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처음이자 모처럼 찾아온 이 시대 분위기를 사회성숙을 위한 계기로 이어지게 하려면 인문학을 사적인 교양의 영역으로부터 해방시키고 확장시켜야만 한다. 미국의 국립인문재단(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 NEH)의 설립취지문에 ‘민주주의는 시민의 지혜를 필요로 한다(Democracy demands wisdom and vision in its citizens)’는 말이 나온다. 인문학, 인문이라고 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성장과 유지에 있어 중요한 ‘지혜’로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민의 지혜’가 바로 ‘인문정신’이다. 1960~80년대에 우리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그런 ‘피의 시대’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차이를 지닌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지혜’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공존하며, 일정한 수준의 사회 통합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공공적 지혜를 모색하는 걸 말한다. 내가 앞서 여러 사람들의 무늬, 관점을 통찰하고 통합시키는 능력이 인문학이며, 인문학의 시대정신이 시민의 공공적 삶에 대한 통찰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뜻이다.

함돈균
함돈균

문학평론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한국문학 연구·비평, 인문적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책상 위의 인문학’을 사회적 공공성과 시민적 가치를 담보한 인문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선배 인문학자들과 함께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을 만들고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민사회·대학·정부·공공기관 등에서 민관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인문기획과 사회디자인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사물의 철학』 『예외들』 『얼굴 없는 노래』 등이 있다.

양철모
양철모

공공미술 삼거리 대표. 예술과 마을네트워크 이사.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사.
믹스라이스(Mixrice)로 활동하며 ‘이주’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여러 흔적과 과정, 경로, 결과, 기억들에 대해 탐구하는 공공예술작가이다. 믹스라이스는 식물의 이동과 진화, 식민의 흔적과 더불어 이주 주변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맥락에 대해 사진, 영상, 만화를 통해 작업하고 있다.

인문예술캠프 ‘달빛감성’
2015 인문예술캠프 ‘달빛감성’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가족·청년들이 인문과 문화예술을 통해 세대·계층을 아우르는 소통의 기회를 갖고 내면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족을 대상으로 한 캠프는 강원도 인제 만해마을과 충남 아산 교원연수원에서 오는 7월 27일(월)부터 8월 3일(월)까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캠프는 경기, 전라, 경상에서 오는 가을(10월~11월)에 진행된다.

사진 _ 장영주 (마루스튜디오)

김다빈
김다빈 _ 상상놀이터
beyondlisa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