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한 권 출간됐다. 제목은 <달콤 쌉쌀한 코코아>. 소설과 수필, 시, 시나리오 등이 담겨있다. 문예지일까. 이 책에 이름이 실린 작가들은 바로 ‘2014 학교문화예술교육 문학창작분야 시범사업’에 참여한 16개 고등학교의 학생들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 구상하고, 한 글자씩 고심해서 새겨 넣은 그들의 고민과 그들의 현실과 그들의 상상과 그들의 꿈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의 대부분은 평소 글 쓰기에 관심은 있지만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었고, 일종의 글쓰기 기술을 배우기 위해 프로그램을 찾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평범한 문학창작 수업이 아니었다. 한민고등학교의 임민지 학생은 다음과 같은 후기로 이번 프로그램 참여 소감을 밝혔다.

 

“책상 앞에 앉아 선생님이 앞에서 수업하는 대로 지루하게 글을 쓸 거라는 생각이 깨지는 데는 몇 분 채 걸리지 않았다. 동그랗게 앉아서 수업은 시작되었고 이야기하기 편한 대로 누워도 되고 바닥에 앉아도 됐다. 첫 수업은 자신이 숨기고 싶은 점, 페르소나를 서로에게 털어놓는 것이었다. 평소 내가 외면했던 진짜 내 모습에 대한 얘기를 내 입으로 서른 명이 넘는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나도 내 진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은 〈달콤 쌉쌀한 코코아〉에 수록된 「16주 수업을 끝내며」를 재구성하였습니다.

 

경기•경상•충청 지역 16개 고등학교 학생들의 창작물 112편이 담긴 〈달콤 쌉쌀한 코코아〉. 그 중 아르떼 365에서는 「변기맨이 된 남자」, 「가락국수」, 「친구가 되어줄게」 3편의 작품을 연재할 예정이다. 각 작품의 작가인 근화여고 박다정 학생, 유성고 강창훈, 이강현 학생, 하남고 이강빈, 오예린 학생에게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창작 과정을 들어보았다.

 

‘글’ 쓰러 가서
‘나’를 만났어요

 

Q. ‘문학창작 프로그램’이 일반 국어, 문학 수업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박다정_ 교실이 시끄러워요. 친구 작품을 읽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거든요. 서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왜, 문학 수업시간에는 졸기 바쁘잖아요.

 

오예린_ 항상 음악이 흘렀어요. 자유롭게 발상하고, 원활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요. 학교수업이나 보충수업에서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이론만 배우잖아요. 근데 문학창작 프로그램은 여러 소설이나 영화 등을 보면서 글감을 찾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었어요. 덕분에 재미있게 창작을 즐길 수 있었어요.

 

강창훈_ 시험을 위한 수업을 벗어났다는 것. 국어를 배웠다기 보다, 글 쓰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글쓰기에 필요한 요소들이요.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상상’하거나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복선’을 그리는 방법 등. 지금은 몸에 배어 자연스러워졌지만, 이 수업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할 수 있게 된 것들이에요.

 

이강현_ 무엇보다 ‘부담’이 없었어요. 일반 국어 수업에서 기존의 시와 소설을 해석해서 분위기가 어떤지, 이 글에서 어떤 장면과 문장이 중요한지, 숨어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과정이 주는 부담이 문학창작 프로그램에서는 전혀 없었어요. 그 대신 어떤 작품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발표하고, 친구들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면서 머리를 말랑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강빈_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는 것.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듣는 수업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다루는 프로그램이니까 집중력도 높았고, 늘 재미있게 참여했어요.

 

Q. 이번 ‘문학창작 프로그램’ 중에서, 어떤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오예린_ 창작에 앞서 자신의 꿈을 되짚어보았던 첫 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다른 친구들이 말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에 대해 떠올려볼 수 있었어요.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무언가 경험한 것이 많더라고요. 금슬 좋은 부모님도 계시고, 사이 좋은 형제도 많고, 친척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또 여행도 많이 다니구요. 여행 중에 외국인에게 도둑 맞았던 일, 관광지에서 동생을 잃어버리고 길에서 펑펑 울었던 일, 일본 꼬마와 싸웠던 일 등등. 떠오른 일들을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박다정_ 선생님께서 첫날, 8절 종이 두 장을 주시며 한 장엔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다른 한 장엔 20년 뒤 자신의 프로필을 적으라 하셨어요. 저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이 높은 목표를 적긴 했지만,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적어보니 가깝게 느껴져서 깜짝 놀랐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10년 뒤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을까, 2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등 ‘나’와 ‘나의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강창훈_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동화책을 보고, 이야기와 글을 보태는 활동이 있었어요. 당시 저희 모둠은 소설과 시를 썼는데, 그때 저는 강현이와 소설 파트를 맡았어요. 저는 조금 어둡거나 험악한 표현을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그 수업 덕에 저에게서 좀처럼 찾을 수 없었던 감수성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제 글에 조금이나마 화사함이 더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강현_ 그때 저희가 썼던 소설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 아이가 우산을 쓰고 걸어가요. 도중에 다른 색의 우산을 든 아이를 마주치지만 무서워하지 않고 같이 힘차게 나아가요. 그렇게 걸어가면서 색색의 우산 친구들이 점점 모이게 되고, 마침내 여러 색이 어우러진 우산 덩어리가 되어 ‘학교’로 가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이 작업을 하면서 ‘어떤 비유를 해야 문장이 살아날까’, ‘화자의 감정을 조금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깊게 했어요. 선생님께서 그런 저를 보고 이런 고민은 글을 쓸 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제가 ‘섬세함’을 가졌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강빈_ 한글날에 모여서 창작활동도 하고, 점심에 짜장면 먹었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사실 예린이와 공동창작을 하면서,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방과후뿐이니까 늘 충분히 의견을 나누지 못하고, 부족함을 느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정말 긴 시간 동안 의논하고 수정할 수 있었어요. 지금의 틀을 거의 갖추게 되었던, 저희에게는 정말 의미 있던 날이었어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문학은 놀이 아닐까요?

 

Q. 평소에 ‘문화예술’을 어떻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수업을 통해 시선이 달라지기도 했을까요?

 

박다정_ ‘언젠가는 배워야 할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제는 ‘몇 번이고 배워야 할 분야’라고 바뀌었어요.

 

오예린_ 문화예술이란 저와는 좀 멀게 느껴졌었어요. ‘영향력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수업을 통해서 문화예술에 한 발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나도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구나 하고요.

 

강창훈_ 사실 저희 어머니도 무용 강사이세요. 평소에는 그저 ‘무용을 가르치시는 구나’ 생각했는데,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어머니가 하시는 일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이강현_ 지금까지는 문학작품을 문화예술의 하나로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문학작품을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고, 마냥 어렵기만 하다는 생각을 벗어나게 되었어요. 이제는 편해졌어요.

 

이강빈_ 저는 문화예술과 창작이 가진 힘에 대해 늘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 깊이가 더해진 기분이에요.

 

Q.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 나갈 계획인가요?

 

강창훈_ 네, 계속해서 글을 써 나갈 생각이에요. 지금 제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글 쓰기’거든요. 지금보다는 좀 더 성숙한 글을 쓰고 싶어요. 사실 〈가락국수〉를 제출하고 나서 다시 보니까 너무 학생이 쓴 글이라는 게 티 나더라구요. 좀 창피했어요.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한 탓인 것 같아요. 지금은 대학입시합격자와 불합격자를 소재로 한 단편 소설을 구상 중이에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재난 영화나 게임처럼 지구 전체를 배경으로 하는 큰 세계관을 가진 장편 소설을 쓰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이강현_ 글을 반드시 써야겠다는 다짐까지는 아니지만, 쓰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빈 시간을 투자해서 쓰고 싶어요. 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소재가 곧 제가 쓰고 싶은 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강빈_ 글을 써 봄으로써 제가 다룰 수 있는 창작의 범위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이것을 기반으로 공익광고 UCC를 제작할 생각이에요. 열심히 궁리하고, 제작해서 공모전에도 출품하고, 또 상도 받고 싶어요.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열심히 해볼 계획입니다.

 

오예린_ 글은 꾸준히 쓸 계획이에요. 저는 두꺼운 책에 있는 어려운 작품보다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여운이 진하게 남는 그런 창작물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열심히 글을 써 나가야겠죠?

 

박다정_ 쓸 수 있을 때까지! 수업 중에, 선생님이 본인의 대학면접 당시 이 질문을 받고 ‘화장실에 들고 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대요.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았는데, 저는 누군가 제 글을 읽었을 때 ‘어떻게 이렇게 쓰지? 질투 나서 죽여버리고 싶은데 재밌어서 죽일 수가 없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쉽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Q. 여러분이 생각하는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이강빈_ 문학은 ‘공기놀이’다. 공기놀이를 잘 하는 편은 아닌데, 친구들하고 자주 했었거든요. 처음엔 진짜 못해서 1단을 넘기질 못했는데 점점 2단, 3단까지 할 수 있게 되더니, 마침내 꺾기까지 도달 했죠. 문학을 공기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처음에는 미숙하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강창훈_ 저는 문학이 현실에 지친 우리에게 대리만족의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성숙한 글로 세계의 청소년들에게 대리만족감을 주고 싶고요. 즉 문학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이강현_ ‘작가의 애달픈 마음’인 것 같아요. 작가가 소설이나 시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일련의 사건이나 상상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즉 어떤 작품이든, 그리고 그 작품 속 어떤 인물이든 작가의 감정을 스치지 않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으니까요.

 

오예린_ ‘동네미용실’이라고 생각해요. 동네미용실에는 아줌마들이 수다 떨면서 정보를 주고 받거나 감정을 토로하잖아요. 그 대화가 동네의 활력이 되기도 하고, 또 가끔은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해요. 문학도 그런 것 같아요. 공유하고 알아가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또 이것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다정_ 〈소나기〉의 소녀가 보라색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모든 국어 선생님이 보라색이 죽음을 암시하는 색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황순원 선생님은 보라색을 좋아해서 보라색을 쓰셨다고 해요. 이렇게 문학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어떤 이들한테는 따분하고 지루하겠지만, 경주 근화여고의 어느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요.

 

친구들이 쓴 글은 결코 고등학생의 수준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구성도 탄탄하고, 세련된 전개방식과 설득력까지 갖추었다. 아마도 자신들이 늘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들과 그것들이 해소되는 순간을 절실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글을 잘 쓰기 위한 기술에 앞서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방식을 배웠다. 글 쓰기를 일종의 ‘놀이’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친구들이 얼마나 이 프로그램에 즐겁게 참여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프로그램이 친구들의 꿈을 이루는 데 좋은 경험이 되었길 바란다.

최민영

최민영 _ 글

 

〈달콤 쌉쌀한 코코아〉
「2014 학교문화예술교육 문학창작분야 시범사업」에 참여한 전국 16개 고등학교(경화여고, 근화여고, 김포제일고, 단원고, 대전공고, 동안고, 문창고, 선주고, 성의고, 안산동산고, 영석고, 유성고, 천안고, 충남외고, 하남고, 한민고)의 학생들이 창작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시 65편, 동시 2편, 개인 창작 소설 20편, 공동 창작 소설 7편, 시나리오 5편, 웹툰 1편, 비평문 3편, 동화 2편, 융합 장르 2편, 학생 및 예술 강사 후기 5편 등 총 112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4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은 예술강사 지원사업 8개 분야(국악, 연극,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영화, 사진, 공예, 디자인)외에 새로운 분야와 형태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학교에서 보다 풍성한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2014년에는 문학창작 분야를 비롯하여 관현악(앙상블), 미디어아트, 서예문화로 총 4개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진행되었다.

 

〈달콤 쌉쌀한 코코아〉연재 순서
1. 「변기맨이 된 남자」 – 박다정 (근화여자고등학교) 2015년 3월 10일 게재
2. 「가락국수」 – 강창훈, 이강현 (유성고등학교) 2015년 3월 17일 게재
3. 「친구가 되어줄게」 – 이강빈, 오예린 (하남고등학교) 2015년 3월 24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