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 사람을 모으는 자리

전효관|기획 운영단장, 시민문화네트워크 대표<!– | nanaoya@hanmail.net–>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에서 주최하는 <청소년문화복지아카데미>가 6월 23일부터 28일까지 이천에 있는 유네스코 문화원에서 열렸다. 청소년 활동이나 사회복지 쪽에서 품 청소년문화공동체는 상당히 유명한 조직이다. 하지만 품이 유명세를 타는 이유는 세상의 다른 경우들과는 사뭇 다르다. 언론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은 적이 없이 그 활동을 보고 조금씩 소문으로 알려진 것이 전부이며, 유명해졌지만 13년 동안이나 지하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자기 영역에서 떠나다

아마 지금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사회복지 영역에서 문화적 시각을 도입한다는 것은 몇 년전만 해도 매우 낯선 일이었다. ‘문화복지’라는 개념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회복지 캠프에 머리 염색한 사람이 강사로 나타나거나 캠프에서 락 공연을 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았다. 또 시민사회의 주제들을 다루거나 문화체험을 통한 ‘즐거운 타락’ 이런 강의명을 넣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품의 프로그램에는 이런 변화가 담겨있다. 조금씩 각 영역이 지키려고 하는 경계를 넘어선다. 때로는 자기 영역을 내준다는 격한 내부 반응에도 불구하고 품이 자기 영역을 넘어 사람을 초대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품의 심한기는 청소년 존재의 변화를 따라가려고 10년 이상을 계속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품이 시도하는 프로그램 변화는 그만큼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다. 이번 행사의 자료집을 들여다 보면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박노해 시인의 강의도 있고, 사회복지 쪽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실험영상을 보기도 하고, 클래식 공연을 보기도 한다. 또 시민사회와 문화운동에 관한 강의가 있으며, 문화기획자 되기, 청소년 문화에 대한 강의들이 있다. 새벽부터 날을 넘기며 진행되는 이 행사에서 사람들은 극한적인 상태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문화체험은 어떤 효과를 가질지 토론하고, 지역문화운동을 일구어 온 활동가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빡빡할 수 있을까 하는 일주일 간의 프로그램 구성은 아마 품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 욕망과 이어져 있다.

아마도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기 경계를 넘어 새롭게 떠날 근거를 얻어갈 것이다. 자료집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문을 만들어 놓았다. 문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벽도 만들어 놓았다.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가라”고 이야기하며, 아마 이런 넘어서기는 “마음을 여는 것이며 소통을 위하여 자신을 드러냄이며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강대근 유네스코 문화원장의 <여는 글> 중에서). 만나기 위해서는 변해야 하며, 청소년을 둘러싼 세대 단절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인 셈이다.

사람을 초대하는 기술

품이 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왠 자원봉사자들이 이렇게 많은가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행사 진행을 도와주는 사람은 물론이고, 만사 제치고 참관이라도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다. 캠프의 만만치 않은 일들은 1년 전에 아카데미를 들었던 사람들이 채워주며, 저녁에 열리는 클래식 공연은 ‘공짜’로 매년 와서 해주는 팀들이 있다.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일할 수 있는 장비와 짐을 숫제 싸들고 캠프 기간 동안에 와서 자기 일도 하면서 짬을 내서 거드는 경우도 있으며, 외국에 나갔던 사람도 무리해서 일정맞추어 달려와서 축하의 말을 기꺼이 해준다.

항상 가난했지만 품이 가난해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을 제대로 초대할 줄 알기 때문이다. 품의 어린이 캠프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캠프 끝나고 사람을 보고 싶어하는 열병을 치르며, 무감각한 어른들도 품의 캠프가 열릴 시즌이 되었는지 가끔 궁금해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인연을 만들 줄 알고, 인연을 불러 모을 줄 아는 기술은 내가 보기에는 품의 가장 탁월한 기술이다. 개인적으로 언젠가 품에서 강의를 했더니 책 한권이 배달되어 온 적이 있다. 그 책에는 강의를 들은 사람들의 감사 인사가 담겨있었는데, 강사료를 책정하지는 못하지만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줄 아는 것이다. 가끔은 ‘너무 존중해주는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품의 초대에 언제나 기꺼이 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금요일 날 저녁에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첼로로 이루어진 팀의 공연이 있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공연을 지켜보면서 품에 초대받아 오는 사람들은 준비를 해오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어려운 현장을 지킬 대학생들이 80명 가량 모인 자리에서 이 모임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선곡과 멘트가 이어진다. 중간에 생일 축하 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노동의 새벽>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클래식 공연에서 볼 수 없는 소란스러움과 자연스러운 즉흥성은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관계의 밀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현장의 모습이다.

품을 통해 생각해보는 문화예술교육의 과제

문화예술교육, 말로는 새로울지 모르지만 학교에서, 지역사회에서 조그마한 노력들이 있었다. 문화와 교육이 만나는 것 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아티스트와 교육자가 만나는 것도 매우 지난한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경계를 넘어설 ‘의지’가 있다면 한 걸음을 잘 내딛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품이 사회복지와 문화를 만나게 하면서 새로운 관계와 발상을 하는 것처럼.

또 서로 다른 조건의 현장들이 있다. 지역의 조건이 다르고, 인문계와 실업계가 다르다. 매우 열악한 학교 현장과 사회적 인식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초대해서 말을 들을 수 있고, 서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만나는 것이 즐거움이 된다면 문화예술교육의 미래는 어둡지 않을 것이다. 품 청소년문화공동체가 온 몸으로 해내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