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SCO동아시아 어린이 예술제- 문화교류가 없는 문화교류의 장

UNESCO동아시아 어린이 예술제- 문화교류가 없는 문화교류의 장

김지우
(웹진 콘텐츠팀,arte13@hanmail.net)

김지우|웹진 콘텐츠팀<!– | nanaoya@hanmail.net–>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2일까지 2004 UNESCO동아시아 어린이 예술제(CPAF)가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대한민국 수원에서 열렸다. UNESCO와 수원시의 공동 주최로 중국, 일본, 홍콩, 마카오, 몽골과 국내 팀 다수가 참가한 이번 행사는 2001년 중국 북경, 2002년 일본 후쿠오카에 이어 세 번째로 개최되는 것으로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화합과 평화 증진을 위한 문화교류와,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욕심이 컸던 만큼 아쉬움 또한 많이 남는 행사였다.

27일 해외 예술단의 입국을 시작으로, 행사기간 동안 참가 예술단들은 숙식을 같이 했다. 28일 전야제, 29일 개막식, 30일 본 공연, 31일 폐회식을 거쳐 국내 팀은 귀가하고, 해외 팀은 수원 청소년들과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일반 시민과 각 국의 참가단들이 함께 한 28일 전야제는 신영일, 홍수현의 사회로, 손님맞이 축하공연이 있었다. 가수 테이, UN, 이정현의 축하무대와 각 국 참가단들의 장기자랑, 그리고 난파소년소녀합창단의 각국 동요 메들리를 끝으로 일반 시민과 참가단들의 호응 속에 전야제는 막을 내렸다.

29일에는 손범수, 최윤경 사회로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참가국 예술단의 개막 공연과 세계적인 소프라노이자 유네스코 평화 예술인이기도 한 조수미씨의 공연이 있어서인지, 경기도 문화의 전당 대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넘칠 정도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세계적인 공연 예술제에 빈자리가 있으면 안 된다는 수원시의 욕심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좌석표를 선착순으로 무료로 나눠주어 관객들은 복도와 계단까지 꽉 차버렸고, 미처 들어오지 못한 관객들은 로비에서 기다리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지나치게 많은 관객들의 작은 웅성거림은 행사진행에 방해가 될 정도였으며, 좌석표가 2중 발권이 되기도 하는 등 참가국들이나 관객들 모두에게 불편한 여건에서 개막식이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러한 행사진행이 문화교류 행사의 의미를 서로가 동의하고 만족하고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본공연이 있었던 30일은, 1부와 2부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각 참가국을 반으로 나누어 한 팀이 총 2회 공연을 하게끔 프로그램이 짜여졌다. 물론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무대위에 서는 아이들의 표정은 자신감에 넘쳤으며 그들의 공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고 박수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관객들에게는 이번 행사를 통해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다른 나라들의 전통예술과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된 좋은 기회였으리라.

하지만 참가하는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10세 미만의 어린이들부터 10대 후반의 청소년들로 짜여진 참가 예술단 어린이들이 한국의 무더위에 적응할 틈도 없이 무리하게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꽉 찬 프로그램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아침식사를 7시부터 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11시가 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지쳐갈 수밖에 없다. 대기시간에 쓰러져서 자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다른 나라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기회라고 좋아하던 아이들은, 일정에 쫓기고 같은 나라끼리만 몰려있게 짜여진 상황 때문에 잠깐의 틈을 내어 같이 사진을 찍는 것이 고작이었다.

본공연이 끝나고 짜여진 ‘축제의 밤’ 행사는 많은 친구들이 기대했던 시간이다. 하지만 나라별 장기자랑이 메인 프로그램이었고, 그때까지도 서로 어울리지 못했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의례적으로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캠프파이어 시간이 모든 나라 아이들이 어우러져 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고, 아이들은 이제야 준비해온 선물을 교환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외국 참가단이 수원 청소년들과 함께 홈스테이를 하고, 만남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은 준비되어 있었다. 중국과 한국어린이, 일본과 한국어린이와 같이 일방통행적인 문화교류 이전에, 3박 4일 길게는 4박 5일 동안 숙식을 같이 한 각 국의 참가 어린이들이 서로 소통하며 함께 할 자리가 없었다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어에서 가장 정감어린 단어로 쓰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식구(食口)’이다. 식구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한솥밥을 먹으며 진정한 친구로 우정을 쌓고, 누가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 원하는 진솔한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제외한 채, 단순히 보여 지기만 하는 문화교류에 급급한 것은 아닐까. 외국 친구들은 한국의 문화에 대해 얼마나 많이 친숙함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을까. 폐회식 때 까지도 각 국의 어린이들은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번 동아시아 어린이 예술제가 보여 지는 것에 있어서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그 외의 부분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문화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는 서툴렀고, 문화교류의 장을 표방했지만 진정한 문화교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 서로의 공연을 뽐내고 비교하는 것은 문화교류가 아니다. 각국의 체험과 경험이 스스로 체화될 때 진정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형식의 국내, 국제 행사들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좀 더 충실한 기획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어야, 생산자와 매개자와 향유자간의 내실 있는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김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