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지만, 말뿐이다. 4월 태양은 몸 곳곳에 스며든 추위를 녹이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봄, 우리 몸은 동면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온 케이티 덕은 달랐다. 단 한 번도 움츠린 적 없는 것처럼 움직였다. 갑자기 바닥에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온 몸을 흔들며 뛰기도 했다. 제12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케이티를 만났다. 그녀의 몸짓은 수화처럼 언어적이고 본능을 구체화 시킨 몸의 무언가舞言歌처럼 들렸다.

 

 

몸, 머리와 의식의 만남

 

케이티 덕(Katie Duck)은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즉흥춤 전문가다. 음악, 텍스트, 무용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함께 즉흥작업을 하는 그녀는 Magpie라는 즉흥공연그룹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제12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가 열리기 전 <어린이 즉흥 클래스> 워크숍에서 그녀를 만났다.

Q. 한국방문을 환영합니다. 현재 유럽에서 즉흥춤 전문가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본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현대무용 의상이 싫어 즉흥춤으로 진로를 변경한 케이티입니다.(웃음) 춤은 다섯 살부터 췄던 것 같아요. 현대무용을 전공했지만, 광대학과 코미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25살에 즉흥춤으로 전환했어요. 그때 유럽에서 재즈연주자와 처음으로 즉흥 공연을 했었는데, 정해진 틀이 없이 진행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주로 유럽에서 공연하다 암스테르담에 정착해 컴퍼니를 만들고 연주가들과 많은 작업을 했죠. 가정이 생기면서 영국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지만 몸이 근질거려 40살에 그만두었습니다. 지금도 암스테르담에 머물며 대학 강의를 하고 있지만 세계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워크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더 즐겁답니다.

Q. 첫 방문이신지,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올해로 8번째 방문했어요. 네덜란드에서 한국 무용수를 초청해 공연한 적도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친숙하게 느껴져요. 특히 트러스트 현대무용단과 친하게 지내는 편인데, 그들에게 한국 전통 무용에 대해 배운 적도 있습니다.

Q. 즉흥춤이라는 장르가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무용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즉흥은 음악과 몸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지는 춤이에요. 모든 순간이 선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춤이 될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 판단은 오로지 관객의 몫이죠. 즉흥춤을 감상한다는 건 무용수를 보는 게 아니라 몸이 판단해 가는 과정을 본다고 생각하면 돼요.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 창의에 관한 수업을 할 때 단체로 진행하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죠.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춤을 보면 그 사람의 캐릭터까지 파악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은 뉴런, 즉, 뇌 신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두뇌 활동에 대한 자각반응이죠. 의식과 두뇌, 마음의 연결을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줘야 할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발레학원이나 현대무용은 몸을 움직이는 테크닉, 즉 아름다움만 가르칩니다. 하지만 즉흥춤 수업은 내 두뇌와 몸이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배웁니다.

 

나를 표현하는 행복

 

Q. 음악을 듣고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현대무용보다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알아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선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 말고 내 오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터득해야 해요. 남의 시선에 신경 쓰기 보다는 음악을 틀어놓고 내가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여 보는 거예요. 지금 이 음악에 반응하는 나의 몸짓에 집중하는 거죠.

Q. 이번 축제에서 어떤 공연을 보여주실지, 무대를 통해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세계인구의 80%가 아침에 눈에 띌 때 몸에 대한 자각 없이 일어나요. 기지개도 켜지 않죠. 나머지 20%는 무용수, 운동선수, 어린이인데 그들은 몸에 반응을 살펴요. 자신이 몸을 갖고 있다는 자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움직임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말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Q.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삶과 춤의 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현재 즉흥공연 그룹 Magpie를 함께하고 있는 알프레도와 투어도 계속할 거예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으로 채워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저의 목적입니다. 많은 돈을 만들면서 사는 것은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게 특권 아닐까요? 이 또한 저의 몸이 원하는 방향입니다.(웃음)

 

 

글_김지혜ㅣ사진_김병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