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어린이병원 정신건강과에 근무 중인 김붕년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모처럼 매서운 추위로 겨울다운 오후였다. 창문에 스민 햇빛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고 병원 특유의 알코올 냄새에 긴장감이 느껴지는 가정의학과 건물 안. 남의 속을 훤히 들여다볼 것처럼 잘 닦인 안경과 의사가운을 입은 김붕년 교수는 세심하고 차분해 보였다. 그는 학교폭력은 학교문화가 문제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건강한 학교문화가 해답이다

Q.학교 폭력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로 접근하는 방식은 아무런 해결책도 주지 못합니다. 문제의 이유와 범위에 대해서 지금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자체의 문제로 보고 학교문화를 개선해야 합니다. 학교문화는 사회문화의 반영이므로 결국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폭력 무감각증, 물리적인 힘이 우대받는 후진성이 학교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결국 어른들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른들의 전근대적인 문화가 아이들을 모두 피해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학교 생활하기 참 어렵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합당한 교육목표를 주고 정당한 평가시스템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작업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교육의 목표는 오로지 좋은 학과 성적을 내는 일에만 집중되어 있고 평가 기준 역시 그것 하나입니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갖추어야 할 인성이나 체력, 문화적 식견 등은 아예 배제됩니다. 그러다 보니 점수 높은 아이가 모범생이고 힘센 아이가 학교 짱이 되는 겁니다. 점수가 낮으면 열등생이고 힘이 약하면 차별대우 받아 마땅한 아이가 되죠.

학교교육 환경이 달라져야 한다

Q.아이들은 더 이상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아이들이 살고 있는 현실은 우리 교육환경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작은 옷을 억지로 입히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그나마 교육이 유지되는 것은 담임선생님들의 헌신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이 개선되려면 담임선생님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어야 합니다. 체벌 권한을 더 주자는 그런 발상이 아니라 교장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상명하달식으로 이루어지는 군대식 문화로는 담임이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아이들과 만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아이들과 만나는 접점에는 담임선생님이 있는 것이니까요. 학생과 담임이 체념하고 낙담하는 학교문화가 계속되는 한 문제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자존감과 공감의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Q.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가장 큰 문제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존감과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을 기를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덕목은 가정에서 배워야 하지만 학생들은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죠?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는 성적과 물리적인 힘이 최우선적인 가치라고 말합니다. 자아형성이 가족에서 또래 중심으로 옮겨가는 중요한 시기에 자존감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불안감과 우울함에 시달리게 되고 공격성이 강해지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 공감하는 능력도 이때 형성되죠. “내가 아픈 것처럼 저 사람도 아프구나. 내가 기쁜 것처럼 저 친구도 기쁘구나.”라는 공감능력이 없으면 대인관계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외톨이가 되거나 반사회적인 성향을 갖게 되는 거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약자에 대한 보호 등 이타적인 행동 역시 기대하기 힘들어집니다. 이는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회병리현상 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학교폭력이 개선되려면 학생들이 자존감과 공감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모든 교육과정에도 이런 내용을 포함해야 하죠. 문화예술교육을 교과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 확대가 좋은 해결책

Q.문화예술교육이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정신건강교육을 한다고 해서 별도의 과정을 개설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별도의 교과목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국어나 사회 시간에 자연스럽게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국어 수업 시간에 집단 따돌림을 소재로 한 수필을 읽고 토론하게 한다든지 사회시간에 시각장애 체험하기와 학교폭력 역할연기를 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심지어 기질적인 문제로 폭력적인 성향을 갖게 되는 경우라 해도 문화예술교육은 도움이 됩니다.

반복적인 가해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뇌 MRI를 찍어 보면, 상당수에서 뇌의 앞쪽 전두엽에서 담당하는 공감 기능이 떨어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표정을 통해 고통과 슬픔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죠.

문화예술교육이 학교폭력 완화에만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학생 중 5%~10%가 ADHD 증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정말 에너지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에너지를 제대로 발산할 방법이 교실에서는 없어요. 그러다 보니 문제아로 낙인 찍히게 되죠. 하지만 토론을 통한 문제해결 중심의 교육방법이나 체육, 미술 등의 과목에서는 정말 뛰어난 자질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또래들보다 훨씬 창의적인 에너지를 발휘하곤 합니다. 선천적으로 행동장애가 있는 경우라 해도 문화예술교육은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되

도록 해 준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학교 문화가 자존감과 공감능력이 충만하면 폭력적인 성향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고 문화예술교육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교과목 성적이 좋은 아이가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높여 준다는 환상도 이제는 깨질 때가 왔습니다. 현대 사회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군대문화가 더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다양하고 재미있고 창조적인 발상이 중요한 사회입니다. 양적인 성장의 한계가 오고 질적 성장을 꾀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학교교육 목표와 평가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 중에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은 지금보다는 많이 높아져야만 합니다. 지금 청소년의 모습이 30년 후의 우리나라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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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붕년 교수는 서울대 어린이병원 정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소아 정신 및 행동 발달 장애 연구가 전공이다. 진료 현장에서 수많은 학교폭력을 접하면서, 이를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에 절감하여 한국형 ‘왕따 스톱(stop)’ 프로그램을 만들어 각 학교에 보급하고 있다. 집단 따돌림 가해·피해 아동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 치료 지침서이다.
지난 2004년부터 5년간 서울시 소아청소년 광역정신보건센터장을 역임했고, 호주 퀸즐랜드 뇌과학연구소와 소아 트라우마(trauma·충격 손상)센터 교환 교수를 지냈다. 올해부터 한국자폐학회장을 맡았다.
(약력: 조선일보 2011.12.28일자 발췌)

글.사진_ 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