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4일 새벽 이슬이 미처 가시지 않은 아침 8시 30분. 거창군 삶의쉼터종합복지관(이하 ‘삶의쉼터’) 강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삶의쉼터에서 진행되는 노인음악, 장애음악, 장애연극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결과공유회’ 무대가 한 자리에서 열리는 날이다. 장애연극 수업을 맡고 있는 전오미 예술강사의 제안으로 마련된 자리이기도 하다. 강당에는 출연진과 관계자들로 북적였고, 가족, 지역 주민 등이 공유회 관람을 위해 속속 복지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인파 속에서 전오미 예술강사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넓은 강당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 그녀를 만났다.

 

에너지 넘치는 그녀
예술강사가 되기까지

 

현장에서 예술강사를 만나보면, 참 다재다능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 안에서 준비한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는 한 손으로는 북을 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장구를 쳐도 모자란 까닭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일은 ‘오지랖’이 넓어야 하고, ‘신명’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전오미 예술강사가 부산하고 분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복잡한 오디오 믹서를 조작하면서 음향을 연출하고, 출연자들의 대사 상대가 되어주었으며 몸소 춤을 춰 보이고, 큰 소리로 대사를 읊으며 시범을 보였다. 연극 출연자들의 분장을 돕고, 무대의상을 살피고 무대 소품도 챙긴다.

 

 

“니는 오지랖도 넓고, 애들도 좋아하잖아. 애들 가르치는 거 함 해보믄 어때?”

 

학교 조교의 솔깃한 제안을 전오미 예술강사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2006년부터 학교 예술강사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2007년 거창에 있는 학교로 배정받았다. 부산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바쁘게 지냈던 그 시절, 그녀는 힘든 줄도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복지기관에서 장애인을 위한 연극수업도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연극 강사로서 학생들을 만난 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이 일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인지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스스로 꽤 보람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201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회 예술강사’로서 삶의쉼터에서 장애인 참여자들을 만나고 있다.

 

“학교 예술강사가 되고 나서 사회복지나 평생교육과정 등을 통해 좀 더 깊이 있는 장애인 교육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또 알아야만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장애인과 일반인의 큰 차이는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모두 ‘진심이 담긴 관심’으로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작은 표정도 좋아
소리를 질러도 좋아
‘나’를 보여줘

 

삶의쉼터 장애연극 프로그램에 함께하는 이 곳 직업훈련반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20~40대의 성인임에도 자신 있게 생각을 말한다든지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무기력한 모습 일색이었다. 전오미 예술강사는 커리큘럼을 통해 ‘나’를 먼저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나’에 대해 당당하게 표현하도록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보여줘나를 보여줘

 

“오늘 발표회의 제목인 ‘나를 보여줘’도 같은 맥락이에요. 연극 제작 과정 전반에 장애인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무엇이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어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연극 무대에서처럼 평소에도 자기 스스로를 멋지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죠.”

 

늘 따로이 진행되어 오던 장애연극과 노인음악, 그리고 장애음악 프로그램 참여자들과 함께하는 결과공유회 자리를 한데 모은 것도 전오미 예술강사의 아이디어였다.

 

“복지관에서 봄 즈음에 늘 해오던 바자회가 올해 초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취소되었어요. 모두들 아쉬워하고 있을 때, 문득 ‘우리 복지관에 무대도 있겠다, 작품도 있겠다, 전시와 공연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술 전시와 공연이 어우러진 발표회’를 제안했는데, 복지관에서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어요.”

 

무대를 한데 새로이 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지역에서 매년 열리는 ‘거창국제연극제’에 익숙해진터라 다양한 문화예술이 어우러지는 장을 쉽게 그려볼 수 있는 공감대가 지역주민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고, 덕분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행사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닿는 순간

 

연극 수업을 통한 참여자들의 변화가 눈에 보이는지 묻자 ‘친구들이 보여주는 희미한 웃음 한자락, 먼저 건네는 짧은 인사 한마디’가 바로 성공의 기준이고, 보람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자들이 연극 활동을 하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 이것이 큰 성취가 아닐 수 없다며 그녀는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교육이 진행되면서 복지관 선생님들이 ‘우리 직업훈련반 친구들 얼굴이 달라진다’, ‘점점 웃음이 많아진다’ 하고 말해주었어요. 대성공이었죠.”

 

전오미 예술강사는 인터뷰 중에 참여자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담아 막힘 없이 소개해주었다. 그 모습에서 그녀가 얼마나 진심어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만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말을 전혀 하지 않았던 학진이, 박학다식 반장님 연진씨, 뭐든 적극적인 해영, 수줍음 많은 지영, ‘아뵤~’ 이소룡만 외치는 동석, ‘오미쌤, 반갑습니다!’ 낭랑한 목소리 영택, 조용히 할 일 잘하는 호돌, 5년 전 외웠던 한마디 대사 지금껏 외우는 현아, 질서정연한 세영, 매번 주인공만 원하지만 대사는 제일 늦게 외우는 유현. 저는 이 친구들이 아주 아주 기대됩니다.”

 

‘선생님이 좋아요. 안아주고 싶어요.’, ‘선생님, 제가 저금해서 커피 사드릴게요.’, ‘선생님처럼 연극배우가 될 거예요.’ 참여자들이 해준 말을 전하며 ‘핫핫핫’ 웃어 보이던 전오미 예술강사. 장애인과 함께하는 예술강사는 ‘천천히 느림보 거북이처럼 가야 한다.’는 말을 그녀는 꼭 전하고 싶어 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고마운 마음과 신뢰, 그리고 사랑. 이 마음의 언어가 밖으로 나와 전해지는 순간, 그 희열이야말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이날, 거창에서 바로 그 기적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정민영

정민영 _ 글ㆍ영상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