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한 문장’들이 쌓여서 삶의 ‘이야기’가 된다(약 : 마음 속의 ‘한 문장’)”는 긴 제목은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오랫동안 제 속에 있던 감동적인 문장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슴을 울리는 ‘한 문장’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저는 가끔 기억의 감퇴가 마음의 감동을 배신해서 흐릿해지고, 먼지 덮인 듯 희미해지더라도 빛이 바래지 않는 한 문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한 문장은 어느 때 꺼내보아도 생생한 울림이 여전하지요. 그런 마음 속의 한 문장들이 쌓여서 풍요로운 삶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문화예술교육의 꽃을 피우면, 열매도 맺겠죠?
신정수

저는 의욕만 앞서 허브화분을 사다가 하나 둘 죽이던 ‘식물 킬러’였지요. 그러나 이제는 천장을 뚫고 올라가 잭크와 콩덩쿨처럼 하늘까지 뻗을 기세로 화분을 길러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제가 키우는 허브 화분은 야산의 진달래 나무만하고, 제가 키우는 넝쿨식물은 온 벽을 뒤덮을 지경입니다. 조금 과장하면 말이지요.
우유를 부어주면 잘 자란다, 반음지에 놓아야 자란다, 음악을 틀어주라, 잎사귀를 닦아주라는 몇 가지 조언을 시도해보았지만 식물들은 이내 퍼석퍼석 말라가다가 빠져버린 머리카락처럼 축 늘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최근 제가 터득한 식물을 잘 기르는 방법이 있습니다. 화분은 하루의 해 움직임이 변하면서 바람과 볕의 방향이 잘 변하는 곳에 놓고, 하루에 몇 번씩 생각날 때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것입니다. 덥고 습한 날, 피부에 기름지듯이 식물에 윤기가 흐르면서 작은 싹이 볼록볼록 올라오는 것을 보고 생각해냈지요.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식물은 약간 높은 습도를 유지하며 볕이 좋아야 잎에서는 수분을 잘 내보내고, 뿌리에서는 물을 쭉쭉 빨아올리며 순환이 잘 일어나 잘 자라게 된다고 합니다.
문화예술교육 사이트 기획운영단이 일을 할 멋진 사무실이 생겼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뒤편에 있는 컨테이너에 일러스트 작가 김대중 씨의 그림으로 옷을 입혔지요. 아르떼의 사무실 이름은 ‘씨앗 상자’입니다. 갖가지 크고 작은 인물들과 의인화된 사물들, 그리고 꽃과 씨앗들이 복작거리며 ‘문화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림이 그려진, 문화예술교육의 귀여운 씨앗상자입니다. 사람들이 뛰고 뒹굴고 구르는 동작의 신호등, 문화예술교육의 씨앗들을 가지고 노아의 방주에 타는 사람들, ‘문화예술교육의 씨앗을 뿌려라‘며 하늘을 나는 독수리, 지식공유라고 말풍선을 단 도서관 곰팡이 꽃 등이 제 말풍선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씨앗이 자란다.”
“문화의 숲이 만들어진다.”
“숲에서 호흡한다.”
“문화율도국 찾아갑니다.”
“세상을 통해 나를 보고”
“자연을 통해 우주를 본다”
“꽃이 피었으니, 열매도 맺겠네”

문화예술교육은 초록빛 배추모양의 얼굴인 사람, 머리에 꽃을 피운 사람처럼 ‘자기표현’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서로가 TV와 같은 미디어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거나, 카메라를 들고 ‘자연을 통해 우주를 본다’고 말하는 아이와 같이 타자를 읽는 감수성과 ‘공감능력’에 기반한 소통능력과 방법을 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학교와 학교 밖이 연계하고, 학생들의 목소리와 교사들의 고민과 시도가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가운데, 문화예술교육은 교육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중심에서 주변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순환의 ‘분무기’가 되지 않을까요?
식물을 기르는 마음과 문화예술교육의 마음이 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아르떼 사무실 ‘씨앗상자’에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