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친구다” 극단 학전

김지연|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기획팀장<!– | nanaoya@hanmail.net–>

<지하철 1호선> 등의 작품으로 연출가로서 활동해 온 김민기와 극단 학전은 오랫동안 어린이극 시리즈를 준비해 오고 있다. 올해 안으로 유럽 아동극을 중심으로 몇 편을 무대화하고 내년에는 학전 블루 소극장을 아동극 전용극장으로 개조하고 아동극 신작들을 무대에 올릴 계획을 갖고 있는 극단 학전. 어린이의 눈높이에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아동극은 아이들에게 ‘공연’을 통해 ‘소통’하는 새로운 경험의 공간이 될 것이다. ‘학전 어린이 무대’의 첫 작품으로 선보인 <우리는 친구다>를 웹진 땡땡은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의 김지연 팀장과 함께 관람하였다.

우리는 친구다

<우리는 친구다>는 극단 학전이 어린이 무대로 내건 첫 번째 작품이며, 세 번째 그립스 극단의 번안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독일 그립스 극단이 78년 처음 만들었던 <막스와 밀리: Max and Millie>를 김민기가 한국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번안한 작품이다.

작은 소극장 학전 BLUE의 극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무대이층 왼편에 다양한 악기와 함께 3인조 밴드가 앉아있고, 아이들의 방을 연상시키는 이층침대가 하나 놓여있을 뿐이다. 공연이 시작되자, 3인조 밴드는 기타와 하모니카, 콘트라베이스와 카쥬 등을 이용해 경쾌한 라이브 연주로 아이들의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는다. 2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장면전환마다 그리고 배우들의 노래에 맞추어 연주하는 이 3인조밴드의 모습 속에서, 그리고 흥에 겨워 박수치고 춤추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콘서트장은 이게 아닐까라는 흐뭇한 상상을 하였다.

<우리는 친구다>는 많은 아동극들이 다루는 환타지, 권선징악을 다루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억압인 학원공부와 부모의 이혼, 자녀에 대한 무관심, 부모의 폭력 앞에 놓여진 아이들의 모습이 주 초점이다, 하지만 이작품의 출발은 문제를 제시하고 가르치기보다, 아이들의 편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부모의 이혼이라는 과정에서 겁쟁이가 되어버린 민호, 혼자 지내며 TV속의 어른들의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슬기, 학원 공부와 아버지의 폭력 속에 폭력과 거짓말을 일삼는 뭉치, 그러나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자전거와 장난감총의 거래, 열쇠를 만들기 위한 거짓말과 놀이, 은밀한 거래들은 우리 아이들이 한번씩은 해보았을 것이기에, 어느새 어린 관객들은 연극 속 인물들과 은밀한 상황을 공유한 친구가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다>가 갖는 또 다른 재미는 무대의 변형과 그 공간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놀이이다. 아이들의 이층침대는 어느새 놀이터 미끄럼틀로 바뀌어져 있다. 고정되어있지 않은 세트는 잦은 무대 전환 속에서도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잃지 않게 한다. 또한 극중 인물인 민호와 슬기, 뭉치는 이 이층침대와 미끄럼틀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베개 싸움, 자리 뺏기,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친구다>는 첫째, 2시간에 가까운 공연시간, 둘째, 환타지보다는 현실속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기존까지 우리나라 어린이극의 정서에 많이 위배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점은 원작을 넘어선 우리 현실 감각에 맞는 김민기의 번안을 통한 아이들의 은밀한 공감대, 그것을 엿보는 어른들의 쑥스러움과 통쾌함이라고 본다. 또한, 굳이 많은 설명으로 아이들이 작품을 하나하나 이해하기 보다는 아이다운 배우들의 행동을 통해서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 감정으로 따라갈 수 있었던 것, 행동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 것은 어른, 어린이 관객 모두가 긴장과 흥분 속에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필자는 5월에 이 작품을 보고, 7월에 수정되어 다시 올려진 <우리는 친구다>를 보았다. 그러나 재공연에 들어가면서 연령을 낮춘 이 작품은 오히려 아이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설명을 넣음으로써, 어린이․어른 관객 모두에게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린 게 아닌가 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였다)

김민기와 극단 학전, 그립스극단

이번 <우리는 친구다>는 94년이후 김민기의 4번째 번안 뮤지컬이자, 그립스 극단과 이루어진 3번째 번안 작업이며, 연출자 김민기로서의 5번째 뮤지컬 작업이다. 그러나 김민기의 음악극 작업은 사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70~80년대 ‘아침이슬’에서부터 알려진 김민기의 많은 노래, 저항가요(?)가 김민기를 따라다녔지만, 8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아빠 얼굴 예쁘네요”, “공장의 불빛”, “개똥이”의 음반작업과 음악극, 슬라이드 공연은 이야기 같은 김민기의 노래속에 음악극에 대한 김민기의 많은 관심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많은 활동을 해온 김민기가 91년 학전 소극장을 만들고 활동하다가, 사회 검열 없이 공식적으로 올린 첫 번째 작품은 94년 첫 공연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수정을 거치며 올려지는, 극단 학전의 장수프로그램인 <지하철 1호선>이다. 이 작품이 그립스 극단과의 인연의 시작이기도 하다. 독일 그립스 극단은 독일의 아동.청소년극의 대표적인 극단이며, 60년대 정치적 흐름속에 세워진 극단인 만큼 정치. 환경 등 여러 사회이슈들을 음악극으로 만들어 공연하고 있고또한 그립스 극단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독일과 전혀 다른 사회 속에 살고 있는 한국의 현실로 새롭게 작품을 재탄생시킨 것은 김민기의 뛰어난 언어능력과 음악적 감각일 것이다. 이러한 감각을 통해 연출된 작품은이 독일의 시대상을 다룬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내에서 만들어진 순수 창작극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김민기의 번안. 연출 작업은 그립스 극단과 돈독한 우정을 쌓으면서 <지하철 1호선>은 극단 학전의 독일공연, 그립스 극단의 한국공연이 올려지기도 하였다. 이후 그립스 극단 작품의 여러 교류가 오가면서 만들어진 작품이 청소년들이 당을 만든다는 얼토당토한 이야기에서 출발한 <모스키토>와 초등학생들의 생활을 다룬 <우리는 친구다>이다.

이 세 작품이 모두 지니는 특징은 현실 속에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철저히 그들의 시각에서 사회를 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극단 학전의 세 작품을 보면서, 관객들은 맘껏 웃으며, 주변에서 보이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모습에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민기와 어린이극

이번 <우리는 친구다>는 극단 학전이 내건 첫 번째 어린이 무대이다. 김민기는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말했듯, 앞으로 극단 학전이 어린이 무대를 끊임없이 만들어나가겠다고 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번안 뮤지컬 <우리는 친구다>가 김민기의 어린이 무대의 출발은 아니었다고 본다. 80년대 중반 <연우소극장>에서 만들어진 <아빠 얼굴 예쁘네요>, 그리고 80년대 후반 음반 작업에서 95년 초연되어진 <개똥이>는 김민기가 만들어낸 우리식의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음악극이라 여겨진다. 분명 그립스 번안 뮤지컬과는 다르지만, 따뜻하게 담아내고 푼 현실의 모습들, 그리고 꿈꾸는 희망세상, 이것들이 아이들의 눈을 통해, 숲 속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춰진 작품이었다.

김민기의 음악에는 저항이라는 말보다는 자유와 희망을 꿈꾸는, 그리고 주변의 모습을 관찰하듯 바라보는 건강함이 있었다. 그 음악의 특징이 지금 현사회의 음악극과 맥이 닿아있는 부분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김민기의 뮤지컬 작업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