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적을 짓는 건축가’ 정기용

전효관|기획운영단장

전효관: 지혜를 나누는 인터뷰는 우리 사회의 존경할만한 ‘어른’들이 후속세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제 인터뷰 개요를 메일로 보내드렸는데…..

정기용: 아침이면 메일이 책 한 권씩 와서 추리기도 힘들어요. 나는 인터넷이나 이런 것들은 좀 파괴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좋은 세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과잉의 세상이라…..

전효관: 선생님은 독특한 매력을 갖고 계신데 젊은 시절에 무엇을 하셨을까 궁금하거든요. 혹시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정기용: 저는 원래 미술 대학을 나왔어요. 1964년에 미술대학에 들어갔고 68년에 졸업하고 대학원에 갔어요. 알다시피 대학생활에서 기억에 남은 건 한일회담 반대 시위하다가 얻어터진 것 정도지요. 학교에 탱크가 들어와 있었고, 군부대가 주둔했었어요. 그 당시 휴교령이 내렸었죠. 군인들의 폭력이 넘쳐나고 날뛰는 시절, 정말로 살벌하고 삭막한 시절에 미술대학에 다니면서 미술은 뭐 말라 비틀어진 미술인가, 미술이 이 세상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아가 예술이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이런 질문에 부딪혔죠. 내가 성깔이 못 되서 꾸준히 하면 되는데 전공에 집중하기보다 세상에 불합리한 것들에 관심이 많았고, 또 한편으로는 무력하게 살았어요. 세상이 그릇된 것을 아는데 할 일이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희망과 젊음을 불태울 공간도 없었지요. 그래서 굉장히 반(反)사회적으로 살았어요. 저주하고 증오하고 그랬죠. 다만 독서를 통해서 계속 생각하기는 했지만 룸펜식으로 살았다고 해야겠죠. 대학교 1학년 때는 남 줘패기도 하고, 깡패로 살았어요. 반사회적으로 젊음을 탕진했죠.

전효관: 건축가가 되신 계기가 있으세요?

정기용: 대학 다니면서 예술이 주어진 것을 향수하고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미술대학 교수들, 이 사람들이 작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회적 관계들에서 모순을 봤어요. 전시를 하면 학부형들이 사가 집 거실에 갖다 걸고, 이렇듯 미술 작품들이 독점되는 현상이 이해가 안됐죠.
내가 그 당시 읽은 책 중에 감동을 받은 책이 있어요.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라는 책이죠. 이 사람은 산업혁명 시대를 살았어요. 세상은 변화하는데 그 변화에 대처할 방식을 못 찾은 사람들이 갈등하고,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생각들이 등장하고, 이런 산업혁명기를 몸소 겪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세가지 신조를 가지고 살았는데, ‘노동의 만족’, ‘부의 분배’, ‘환경의 질’이라는 신조였어요. 이 말들이 아주 귀에 꽂혔지요. 나는 노동을 하나? 나는 부의 분배에 이바지하나? 다같이 좋은 환경을 만드나?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되었지요. 사회적으로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는 데 주력한다는 이야기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살아가는 방식에서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는 것 같았어요. 나도 그렇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미술은 아닌 것 같았어요. 유니크한 오브제를 독점하는 것이 미술인 것 같았어요.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어도 독점은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건축은 미술과 다른 것 같았지요. 건축은 누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없고, 혼자 쓸려고 짓는 것이 아니라 하는 수 없이 다같이 써야 하고, 한 사람이 주인이라도 그 사람이 죽으면 딴 사람이 살아야 하고, 또 건축은 생활환경과 관계되어 있기도 하구요. 건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 논문의 결론이 ‘나는 미술대학을 떠나서 건축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척박하던 시절에 한 젊은이가 사회적 환경에서 고민하면서 선택한 것이 바로 건축이지요.

전효관: 선생님이 글을 쓰신 것을 간혹 본 경우가 있는데, ‘문화로서의 건축’, ‘삶으로서의 건축’ 등 이런 말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정기용: 건축은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건축은 형태와 공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형태를 만들고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조직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결과가 형태와 공간일 뿐이죠. 사람들은 건축이라고 하면 무슨 양식인지를 따지지만, 모든 양식이 탄생하는 것은 시대에 가장 적합한 삶의 방식을 조직한 결과이지요. 따라서 나날이 변화하는 이 시대의 삶을 어떻게 조직하는 것이 이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일까,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건축가의 덕목이자 윤리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느 장소에 있어요. 다시 말하면 장소를 떠나서 사람은 살 수가 없지요. 사람들은 집에서 살지만, 집 밖에 나가면 편의점도 있고 파출소도 있고 시청도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사회에서 살면서 건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삶을 풍요롭게 하느냐, 아니면 빈곤하게 하느냐는 것이 삶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달려있지요. 따라서 건축을 예술이나 공학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알아야 하고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여행하면서 창밖을 보면서 근사하다고 무심코 말하는 경우가 있지요. 우리가 사는데 필수적인 것이 외부세계와 대화하는 것이에요. 풍경이라는 것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의 기본을 이루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가정 풍경, 거리 풍경, 도시 풍경, 농촌 풍경이 있지요. 산다는 것은 풍경을 소비하면서 산다, 혹은 풍경과 관계맺으면서 산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점에서 건축은 외부 세계와 관계맺는 방식인데, 이것이 잘 드러나지가 않아요. 지금 이야기하려는 초점은 건축이 예술이라든지, 건축이 공학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들입니다. 건축은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인문 분야라고 말해야 해요. 따라서 쉽지가 않지요.

전효관: 선생님 말을 듣고 있으니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할 듯합니다. 건축가의 덕목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정기용: 건축에는 전문가가 없어요. 마치 흐르는 물 같아서 시간이 흐르면 고쳐야 하고 지금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존속해야 하지요. 이것이 건축의 어려운 점이고 모순이죠. 삶을 조직해야 한다고 하지만, 미래의 삶을 지금 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건축가는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하죠. 건축가는 시간을 앞당기며 사는 사람들인데,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깊이, 삶의 깊이를 잴 수 있는 광범위한 능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건축가가 되려면 세 가지 덕목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많이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식을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알아야 하지요. 두 번째로 역사의식, 시대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건축은 당대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가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 중인지 이런 것에 대해서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어떤 좌표에 있는지 알야야 해요. 마지막으로 건축은 창작이기 때문에 상상력 또는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건축에는 천재가 없다고 하죠. 상상력이나 창의력은 사람들을 보살피는 섬세한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린 문제지, 단순히 주어진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삶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섬세함에서 창의력이 나올 수 있지요.

전효관: 얼마 전 선생님과 순천의 기적의 도서관을 둘러보았는데, 기적의 도서관이 그런 덕목들이 잘 스며있는 공간이라고 보았습니다. 4개의 어린이 도서관을 설계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여주세요?

정기용: TV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기적’이라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대한민국에 하나도 없던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을 만들었다, 또 적은 예산과 짧은 시간에 만들었다, 그리고 진짜 기적은 그것을 만들어 놨더니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는 것이죠. 사실 어린아이들과 어머니들의 삶의 공간을 조직하고, 그것이 잘 사용되고,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하는 것은 건축가의 상상력, 지식, 시대정신만으로는 불충분했어요. 어린이 도서관을 지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린이 도서관이 잘 운영되기 위한 지혜가 필요했지요. 청소도 하고, 책도 챙겨야 하고, 빌려준 책 회수도 해야 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온도도 조절해야 하고, 수많은 관리와 운영이 정확하게 챙겨질 수 있도록 배열이 되어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싫어하지요.
그런데 그런 경험을 이미 진작 한 아주머니들이 계셨어요. 30평 남짓한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해 온 분들이 세네분 계셨죠. 우리는 그 분들의 체험을 통해 워크숍을 했지요. 그러니까 건축가는 계속 배워야 해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을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숙지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건축 설계란 건축가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체험된 지혜를 바탕으로 나오는 것이죠. 어린이 도서관이 성공적으로 된 힘은 아줌마들의 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체험을 해 온 아주머니들의 지혜를 건축가가 건축화한 것이죠.
하나의 예를 들자면 아버지, 남자들은 어린이 도서관에 안 가요. 왜냐면 가면 애들과 아줌마들만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주머니들의 경험을 듣다보니 아버지들이 어떻게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주게 되었는가 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순천 어린이도서관에는 아버지들이 많이 있어요. 어린이 도서관을 통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살아나고,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살아나고, 관계와 관계가 살아나게 되었죠. 제가 제일 충격적으로 들은 말은 어떤 아주머니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지요. 아침에 어린이 도서관에 갈 수 있으니 그렇다고 그래요. 나로서는 아주 좋은 경험이었어요.

전효관: 최근 베니스 국제비엔날레에 참가하셨잖아요. 제가 보니까 주제가 ‘방의 도시’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한국사회의 도시의 삶을 방으로 이해하셨다고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선생님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이해하려고 하시는지 설명이 되지 않을까요?

정기용: 베니스 국제비엔날레 건축전 커미셔너를 했어요. 커미셔너란 전시를 조직하고 건축가를 선정하고 하는 일이지요. 주제를 ‘방의 도시’라고 한 가장 큰 이유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사는 속에는 새로운 현상이 보이거든요. ‘방’이라는 말은 노래방, 피씨방, 빨래방, 전화방 등 2004년의 상업적인 방들에서 끌어다 쓴 것이지만, 뒤집어 보면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거든요. 건축이 삶을 조직화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삶이 변하는 방식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많지요. 특히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고, 하루 하루 조금 조금씩 바뀌어서 10년이 가고 30년이 가면 많이 달라져 있거든요. 도시나 건축을 바라보는 건축가들의 토대는 일상적인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은 반복되고 지루하고 탈출하고 싶은 것이지만, 일상적인 삶이야말로 탐구하고 연구하고 들여다 봐야할 가장 중요한 것이죠.
특히 우리나라의 많은 인문사회과학과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늘 외국 이론가들의 이름을 빌려와요. 이 수입 오퍼상들은 매일 하는 일이 외국의 사상과 이론을 수입하는 일을 하죠. 해외 건축잡지에서 다루는 경향은 중요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이 필요해요. 한국에서 도시나 건축 이론이 자생적으로 형성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들여다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건축전 하면 건축가들을 불러와서 너의 작업을 잘 구성해서 전시하자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죠. 대한민국에도 건축가가 있다고 폼 잡는 것이 하는 일이죠.
내가 보기에 세계 건축가들이 공유할만한 것이 한국사회에 있다는 생각이죠. 유럽은 역사와 문화의 전통과 무게에 짓눌려서 현대적 삶을 살고 있지만 환경은 그렇지 않아요. 한국의 삶은 현재 사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문화와 전통도 있지만, 한국의 역동성은 사람들이 새롭게 유입되고 테크놀로지들이 모이고 순발력있게 적용되고 하는 것이라고 봐요. 도시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예를 들어보면 유럽 사람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PC가 보급되면서 인터넷에서 광장을 만들고 있지요. 또 온라인의 경험을 현실에서 확인하려고 합니다. 월드컵 때 시청 앞 광장에서 이루어진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온라인 상에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오프라인에서 방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종합해보면 한국의 도시상황이 다른 어떤 나라와 견줄 수 없을 정도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방’으로 풀어보려고 했어요. 방은 사적인 공간인데, 그 안에 들어가면 세계를 만납니다. 공간과 장소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균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삶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은 해방 이후 50여년 동안 실험실이었지요. 식민지 체험, 제주 4.3 사건, 6.25 군사 쿠테타, 근대화와 산업화, 전국민의 부동산 투기꾼화 등이 숨가쁘게 일어났지요. 서구사회의 진행 과정을 압축적으로 실험실에서 해버린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의 일상에서 한국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식에서 “건축의 미래는 건축가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일상적 삶 속에서 한국민들이 취할 수 있는 인간 해방의 탈출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런 주제를 다루어보려고 했어요.

전효관: 이제 교육 이야기로 넘어가 보죠. 선생님과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프리즘이 무엇일까 궁금했던 적이 많습니다. 교육, 청소년 이런 말을 들으시면 어떤 프리즘으로 문제를 보고 계실까 궁금합니다.

정기용: 교육 이야기를 할 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교육은 ‘식민지 경영’과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의 교육은 가장 나쁜 쪽으로 가고 있지요. 교육의 가장 나쁜 측면이란 식민지에서 강자가 약자를 일방적으로 단련시키듯이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이예요. 교육을 약소국가 점령하듯 해버리면 교육의 목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지요. 개인의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할뿐만 아니라 자유의지를 잘 발달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돼요.
어린이 도서관 준비하면서 도정일 선생님이 추천한 어느 불란서 노인이 쓴 책을 보고 놀란 적이 있지요. 그 책에 “어린이들은 원래 세계인으로 태어났는데, 초등학교 들어가면 국민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면 빼도박도 못하는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구절이 나와요. 우리들이 어린이들에게 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순수함과 세계성, 그리고 ‘경계없음’에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지요. 순천 어린이 도서관 만들때 비행기처럼 만든 이유도 어린이들이 세계인이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교육의 근본적 목표는 사람을 국민국가의 국민으로 키우기 전에 하나의 생명체로, 우주의 생명체로 키우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되기 때문에 수많은 갈등이 터져 나오게 돼요. 국민, 하나의 종교로 키워내면서 교육은 약자를 억압하고 타자를 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전효관: 교육과 식민지 경영에 관한 이야기 재밌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정기용: 초등학교, 중학교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교과목이 있다면 자기가 사는 동네 읽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사는 도시의 지도그리기같은 학습이 필요해요. 이 과정에서 무엇을 인식하는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아주 섬세하게 일상을 읽게 하는 능력을 키워내야 해요. 아이들과 발표하고, 선생님은 토론을 이끌어가고 이러면 될 것 같아요. 왜 여기는 24시간 편의점이 있고 저기는 없는가? 왜 저것은 네모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이런 질문들 속에서 현실생활을 읽고 관계를 설명하고 논의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 섬세하게 읽고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전효관: 요즘 문화교육, 문화예술교육, 감수성 교육이 강조되는 것도 맥락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문화교육,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기대를 하신다면 어떤 것인가요?

정기용: 지식 교육을 넘어서 상상력과 감수성을 위해서는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거리에서 본 것들에 대해 경청해야 하고, 그것을 표현하게 해야 하고, 또 가공해보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글이든 그림으로든 아이들의 논리를 드러나게 하고 서로 비교해보게 하고, 관점을 발견하게 하고, 매일 알던 일상에 더 새로운 세상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일을 해야 해요.
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1학년 아이들이 하는 과목이 ‘도시탐험’입니다. 첫째 시간에는 일정한 경계를 주고 본 것을 이야기하고, 둘째 시간에는 흥미가 있는 것에 대해 토론하고, 셋째 시간에는 본 것을 그려오고, 그 다음 시간에는 내부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물어오고 이런 식으로 진행합니다. 한 학기 끝나면 아이들 머리가 부드러워져요. 도시가 있는지 알았다든지. 왜 조그만 가게들이 모여있는지 알게 돼요.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해 알지 않고 뭘 배운다는 것인지, 사람들에 대해 알지 않고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이런 질문을 하게 합니다. 교육은 경계, 울타리를 치는 순간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교육이라는 것은 세상과 대면시키는 것이겠지요. 일상적으로 관계가 없더라도 많은 타자를 섬세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보살피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을 보살피는 것을 통해 형제애를 배우고 소통능력이 근본바탕에 놓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요.

전효관: 선생님 강의 인기가 좋죠. 아주 재밌게 들었습니다.

전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