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호호 캠프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가족이 만나 문화예술교육을 함께 체험함으로써 예술감수성을 확장하고 즐거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가족 문화예술교육 캠프다. 온 집안이 함께하니 더 없이 좋다는 뜻의 가가호호(家加好好)답게 온 가족이 함께 새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예술활동을 체험할 수 있다. 올해 처음 열린 가가호호 캠프는 강원도 횡성 숲체원에서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1회차(초등학생 대상),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2회차(중고등학생 대상)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가가호호

 

쑥스럽게 시작된
가족 문화예술교육 체험 캠프

 

숲체원은 대규모의 연수원 형태가 아닌, 숲에 녹아 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집중시설은 찾아볼 수 없었고, 여기저기 키 작은 건물들이 골짜기를 따라 이곳 저곳에 배치되어 있어 하나의 자연으로서 눈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쾌적하고 고즈넉한 장소였다. 가가호호 캠프는 그런 숲체원 전체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느슨해 보이지만 제법 세련된 연주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와 숲체원 골짜기를 문화의 향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비를 피한 처마 밑에서 전체 기획을 담당한 총괄 디렉터 강군(본명 강지웅, 프로젝트팀 AN20 소속)을 만났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예술교육캠프TF와 함께 이번 가가호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가가호호
가가호호

왼쪽 사진은 총괄 디렉터 강군, 오른쪽 사진은 가가호호 캠프에 참가한 가족

 

“우리나라에 ‘가족캠프’나 ‘예술캠프’는 있어도 ‘가족예술캠프’, 즉 가족이 함께하는 예술캠프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 모험을 한 번 해 보기로 한 거죠. 기획 컨셉도 ‘쑥스럽지만’으로 정했습니다. 예술을 경험할 때의 쑥스러움과 가족이 함께 낯선 곳에서 2박 3일을 보내는 것에 대한 쑥스러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거죠. 그런데 정말 다들 쑥스러워 해요.”

 

취재일은 가가호호의 2회차가 진행되는 날이었다. 예술을 전공하거나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중고등학생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였다. 1회차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과 가족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실기를 중심으로 해당분야의 예술가를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러는 동안 가족들은 미리 마련된 예술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이번 캠프에는 다문화가정, 편부모 가족, 할머니와 함께 응모한 소녀, 임신중인 젊은 부부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요. 이 참여자들의 스펙트럼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가 숙제였는데 사실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어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단순하고도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되니까요.”

 

강군의 말처럼, 아이들이 워크숍에 참여하는 동안 가족들이 참여하게 될 예술체험 프로그램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곁들임 프로그램이 아닌, 실제 예술체험이 일어날 수 있도록 심사숙고 했다. 시간과 형식에 구애 받을 필요 없이 예술가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과정이 끝나면 무언가 구체적으로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기획단의 의도였다.

 

가가호호
가가호호

대나무 숲 프로그램 참가 중인 가족들

 

실제 참여한 가족들에게 소감을 묻자 “동심으로 돌아가 내게도 예술적 감성이 남아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거나 “처음에는 귀찮기도, 두렵기도 했지만 막상 와보니 어쩌면 아이보다 나에게 더 좋은 프로그램인 듯 하다.”고 말했다. 이는 가가호호의 기획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말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 가가호호 캠프의 진정한 의미는 가족이 예술체험을 통해 자녀를 이해하고, 자녀는 자신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결과물을 통해 구성원들이 갖고 있던 예술적 잠재력을 새롭게 깨닫는 것, 즉 내가 가진 예술세계의 토양은 가족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는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입시 실기가 아닌
내 삶 속 문화예술의 의미를 찾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강의실에는 새 피아노가 튜닝을 마친 상태로 놓여 있었고, 예술가 1명과 학생 4명, 스태프 1명이 한 그룹을 이루었다. 과정은 자유롭게 진행하되 실기 연습, 숲 거닐기, 대화 나누기 등의 과정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예술가로서의 공통점을 찾는 것까지가 과정의 목표다. 사실, 단순히 음악 실기를 배우기 위해서라면, 굳이 이곳 강원도까지 이동할 필요는 없다. 예술가를 만나 음악을 대하는 자세, 고유한 감성,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함께 딴 짓도 해보고, 고민을 공유하는 시간이 훨씬 더 귀한 경험인 것이다.

 

‘액자 속 바이올린 방’의 이택주 선생님은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가족과 함께 머물며 예술을 체험한다니, 처음에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와보니 사실이더군요. 비현실적인데 현실이 되고, 기대보다 큰 효과를 얻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라며 감탄했다. 가가호호 캠프는 자신에게도 예술의 목표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가가호호
가가호호

왼쪽은 서수민 선생님과 함께 현악앙상블 수업 중인 학생들, 오른쪽은 안명주 선생님과 ‘오두막집의 플루트’ 참여 학생들

 

안명주 선생님은 ‘오두막집의 플루트’라는 이름의 방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공유했다. “여기 와서 깜짝 놀라기도, 또 부끄럽기도 했어요. 그 동안 아이들에게 현실적인 가르침만 해왔지, 음악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으니까요. 이 캠프를 통해 음악 이전의 나의 정체성, 그에 따른 고민을 나누면서 연습도 병행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환상적인 체험이었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배우고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한 참가 학생은 가가호호 캠프를 ‘신비로운 캠프’이라고 표현했다. “선생님이 갑자기 산책을 가자는 거예요. 이게 실기와 무슨 관계가 있나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걷다 보니 선생님이랑 굉장히 친해졌어요. 많은 대화를 통해서 내가 이해 받고 있고, 또 내 음악이 전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골짜기를 가득 메우는
숲의 축제

 

각 워크숍은 이날 저녁에 있을 페어웰 파티(farewell party)에서의 발표를 준비 하고 있었다. 참여 학생들의 실력은 천차만별이지만 이미 목표는 얼마나 훌륭한 연주를 해내는가에 있지 않았다. 서로 어울려 호흡을 맞추고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과 어우러지는 과정의 산물이 합주가 되고, 합창이 되고,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페어웰 파티의 1부는 음악 실기 전공 학생들의 미니 콘서트와 미술 실기 전공 학생들의 전시회로 이루어졌다. 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진지하게 연주를 한 적이 얼마나 될까? 가족들 앞에서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진지해져 갔다. 후반부에 이어진 악기 장르별 합주는 음악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편안한 캐주얼 차림으로 그 어떤 공연보다 클래식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자녀들의 연주를 응원하고 대견해 하는 가족들의 뜨거운 마음은 이곳 저곳에서 피어 오르고 있었다.

 

미술 작품 전시회장에서 만난 학생들의 작품은 독창적인 컨셉트를 가지고 있었다. 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법에 대해서 오늘 한 수 제대로 배웠던 모양이다.

 

그 동안 학생들의 곁에서 응원하고 지켜 보아주고 지원해 주던 가족들이 직접 선보이는 무대로 페어웰 파티의 2부가 시작되었다. 주객이 전도된듯한 이 무대로 공간은 ‘쑥스러움’ 투성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예술을 자신의 인생으로 택한 자녀들의 어른스러움과 그들의 고민, 예술의 환희, 즐거움, 의미뿐만 아니라 청중 앞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게 하는 특별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가가호호

모든 참가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2박 3일간의 연습 결과를 선보인 페어웰 파티

 

비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지금껏 강의실이었던 곳이 전시실이 되고, 공연장이 된 그 밤, 숲체원은 축제였다. 일상이 자연스럽게 축제가 되고, 문화예술이 그대로 삶에 녹아 드는 것을 그곳에 모인 모든 가족들은 경험했다. 비록 오늘은 쑥스러웠지만, 내일은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내리는 비가 자연스럽게 땅에 스며 여름의 꽃을 힘껏 피울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글, 사진_ 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