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리터러시 – 도구 활용에서 사회문화적 소통까지

글_정현선(경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리터러시, 시각적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본래 리터러시란 문자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이해하고 생산할 수 있는 근대적 의미의 의사소통 능력을 뜻하는 용어이다. 우리말로는 학문 분야에 따라 ‘문해력’ ‘문해성’ ‘문식력’ ‘문식성’ 등으로 번역되며, 여전히 좁은 의미로는 문자 언어로 읽고 쓰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와 같은 영상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대중문화가 확산된 것에 힘입어, 문자를 통한 의미 생산 능력을 뜻하던 리터러시는 본래의 의미보다 훨씬 확장된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다양한 정보와 메시지들을 비판적으로 해독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와 관련된다.
한편, 이처럼 리터러시 개념이 문자 언어 이상으로 확장되어 쓰이는 것은 다양한 대중매체의 발달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지만, 의미 생산의 주요 상징체계로서 문자 언어가 담당했던 역할에 상대적인 변화가 생겨난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시각적 리터러시(visual literacy)’나 ‘영상 리터러시(cineliteracy)’와 같은 용어들은, 시각 이미지나 영상 이미지가 마치 문자로 쓴 글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의 ‘어휘’와 ‘문법’을 통해 의미를 생산하는 상징체계임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시각 언어’나 ‘영상 언어’라는 말은 이미지 역시 언어와 마찬가지로 의미 생산 기능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니, 의사소통에 있어 문자 언어의 기능은 인쇄매체가 중심을 이루던 시대와 같지는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언어 자체의 구조가 아니라 언어의 실제적 사용에 관심을 둔 언어학자인 할리데이(Halliday)의 언어에 대한 정의를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다음의 세 가지 요건, 즉 ①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기호를 통해 표상할 수 있는 기능 ②소통 주체 간의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 ③텍스트를 조직하는 기능에 의해 성립한다. 시각 이미지가 ‘시각 언어’로 일컬어지는 것은 시각 이미지 역시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대상이나 인물,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 뿐 아니라 ‘영상 언어’를 동원하여 의미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문자 언어는 물론 이미지와 몸짓 등 다양한 의미 생산 체계를 동원해
의미를 수용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예를 들어 시각적 리터러시나 영상 리터러시 등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미디어 생산자, 수용자, 유통자 사이의 관계 변화
‘디지털 리터러시’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미디어로 ‘읽고 쓰는’ 능력, 즉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에 의해 생산되는 메시지와 텍스트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과 스스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의미를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기존의 생산자-소비자 간의 관계가 무너지고 생산-소비의 동일체인 ‘생비자’의 소통 능력이 강조되는 오늘날에 중시되고 있는 새로운 리터러시 개념인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에 의한 리터러시 개념의 질적 변화를 연구한 학자 중에 영국의 언어교육학자인 군터 크레스(Gunther Kress)를 들 수 있다. 크레스가 주장한 리터러시 개념을 디지털 미디어에 적용해 보면, 디지털 리터러시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생성되는 다양한 정보와 메시지, 그리고 예술적 텍스트들을 비판적으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으로 다음의 세 가지 능력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1) 문자언어로 말하기와 쓰기, 이미지와 몸짓을 통한 메시지 생산 등 다양한 언어와 기호를 통한 표상(representation)
2)‘컴퓨터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인터넷 리터러시’ 등 메시지 생산을 위한 의사소통 기술의 사용
3) 인터넷 출판과 같이 의미 유통을 위한 자원의 개입

디지털 미디어는 문자 언어와 인쇄 매체를 의사소통의 주된 ‘양식(mode)’과 ‘매체(media)’로 삼았던 기존의 의사소통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문자 언어와 인쇄매체의 중심성이 무너지고 영상 언어와 영상 매체가 위력을 발휘하게 됨에 따라, 문자 언어를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의 규칙 발견에 주력했던 언어학 역시, 시각 언어와 비언어적 소통 및 대중매체의 의미 작용에 대한 기호학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문자 언어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시각 언어만의 독특한 의미 작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시각 언어가 문자 언어와 함께 배치되면서 발생하는 의미 효과 및 문자 언어가 인쇄매체에 기입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시각 디자인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서는, 문자 언어의 의미 작용 자체에 대해서조차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리터러시는 문자 언어는 물론 그 밖에 이미지와 몸짓 등 다양한 의미 생산 체계를 동원해 의미를 수용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예를 들어 시각적 리터러시나 영상 리터러시 등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이와 동시에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미디어로 인해 생겨난 미디어 생산자, 수용자, 유통자 간의 관계 변화를 전제로 한 개념이기도 하다. 이는 의미 생산과 수용에 관여하는 디지털 미디어의 기술적 속성이 기존의 인쇄매체나 영상매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마셜 맥루한, 꽹땡 피오르, <미디어는
메세지다(The Media is the Massage)> 표지.

‘디지털 미디어는 메시지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미디어는 문자 텍스트, 사운드, 이미지,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로 이루어진 메시지 혹은 서비스가 하나의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멀티미디어적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이처럼 다양한 정보의 처리를 위해 디지털 압축, 전송, 복원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쌍방향성, 다대다(多對多) 소통, 무한대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양적 확산 및 네트워크화, 다양한 형태의 정보 통합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등과 같은 기존의 대중 매체를 뜻하는 ‘올드 미디어(old media)’의 일방적 소통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간주된다.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 대중매체와는 달리, 디지털 카메라나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미디어의 경우에는 그 장비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할 뿐 아니라, 조작법도 배우기 쉽고 생산된 텍스트를 유통시키기도 쉬워졌다.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으로 인해, 정보의 수동적 수용자에 머물렀던 일반인들도 정보의 적극적인 창조자이자 제공자로서 매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매체 수용자(독자)와 생산자(작가) 간의 엄격했던 구분도 허물어지게 되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고발과 의견 개진 일반인들이 정보의 창조자이자 제공자가 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보 중심의 텍스트 생산과 배포의 측면에서 뿐 아니라, 미적 텍스트의 소통에서도 디지털 미디어가 가져온 변화는 혁명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자신의 창작물을 게시해 독자에게 평가받는 인터넷 소설가들이 등장해 문학의 판도를 바꾸어 놓다시피 했다. 만화 분야에서도 기존의 인쇄매체 형식을 따르지 않고 스크롤바를 내려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만화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든 여러 가지 예들은 사실 디지털 미디어가 가져온 소통 방식의 변화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압축되는 생각, 즉 미디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정보를 입력하는 특수한 구조이자 형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맥루한(McLuhan)의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는 언어가 문법을 갖고 인간의 지각작용에 간섭하듯이, 미디어 테크놀로지도 일종의 ‘문법’과 같이 미디어 사용자의 지각 작용에 일정한 효과를 일으킨다는 주장이다. 의미의 측면에서 볼 때 이 말은 문학작품에서 내용뿐 아니라 형식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텍스트에서도 역시 메시지의 내용뿐 아니라 메시지가 소통되는 방식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자유롭게 복제되고 변형되며 무한대로 증폭되는
디지털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사회적 윤리와
책무성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야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문화예술교육
디지털 리터러시에는 적어도 세 가지 범주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디지털 미디어와 기술을 의사소통의 도구와 기기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도구적 리터러시’의 차원이 있다. 흔히 ‘ICT 활용 능력’이라 불리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의미 수용과 생산을 중심으로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는 차원이 있다. 앞서 말한 ‘시각적 리터러시’나 ‘영상 리터러시’ 등과 같이 언어와 리터러시 개념의 확장을 강조하는 것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를 앞서 말한 도구적 리터러시와 구분하기 위해 ‘언어적 리터러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리터러시는 이 두 가지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미디어를 사회문화적 소통 구조 차원에서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이해하는 일종의 ‘메타언어능력’ 내지 ‘문화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는 ‘미디어 리터러시’ 내지 ‘비판적 리터러시’ 차원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디지털 리터러시에는 기기적 차원의 ‘도구적 리터러시’, 언어적 차원의 ‘언어적 리터러시’, 문화적 차원의 ‘미디어 리터러시’의 세 가지 차원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 번째 차원인 미디어 리터러시에는 자유롭게 복제되고 변형되며 무한대로 증폭되는 디지털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으로 제기하는 사회적 윤리와 책무성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디지털 리터러시가 문화예술교육과는 어떻게 관련되는 것일까? 오랫동안 문화와 예술에 대한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은 문화와 예술을 전문적인 작가의 창작 행위 중심으로 보거나, 사회의 전통적인 문화유산으로서 지켜나가야 할 보물과도 같은 것으로 보는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문화와 예술을 즐기는 향유자 내지 수용자들의 삶 속에 문화와 예술이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중시하는 수용자 중심의 관점이 생겨났다. 이는 문화를 ‘삶의 양식’으로 바라보는 보다 인류학적 의미의 문화 개념이 예술에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고, 수용자가 받아들이는 의미를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한 ‘수용미학’의 관점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여기에 진정한 ‘앎’이란 가르치는 이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는 배우는 이가 어떤 의미를 스스로의 마음과 가슴으로 구성했는가를 중시하는 구성주의적 교육이론이 교육 현장에서 힘을 얻은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관점의 문화예술교육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 더불어 디지털 미디어의 전사회적 확산은 전통적인 방식의 미디어 생산자와 수용자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다. 이제 누구나 쉽게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하여 예술작품을 생산할 수 있고, 스스로 생산한 작품을 웹상에서 자유롭게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예전에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문화와 예술을 소비하는 위치에 놓여있었던 어린이와 청소년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생산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많은 어린이, 청소년, 일반인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영상물을 만들어 이를 웹상에서 공유하고 있으며, 이는 더 이상 신기하고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들이 소통 행위에 대한 인식과 책임을 바탕으로 보다 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공유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정현선, “디지털 리터러시의 국어교육적 고찰”, <국어교육학연구> 제21집, 국어교육학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