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악기’. 생소한 말이다. 악기는 나무나 금속 따위, 더 끼워봤자 북의 재료인 가죽이나 편경에 쓰이는 돌, 현악기의 줄 정도가 아닌가. 이 재료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사람 손을 타기 때문에 대부분 견고하거나 교체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종이 악기라니. 초등학교 시절에나 하던 재활용품으로 악기 만들기 수업일까? 한껏 부푼 궁금증을 안고, 종이 악기 워크숍이 열리는 아라아트센터를 찾았다.


종이악기 제작 과정

 

종이 악기를 만드는 사람들

 

이날은 워크숍 이틀째로, 전날 종이 악기 제작 과정 6단계 중 총 4단계까지 진행한 상태였다. 워크숍이 열리는 널찍한 공간에는 조별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공간 뒤쪽은 큼지막한 파티션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어, 파티션 앞쪽으로 종이 악기를 꾸미는 데 필요한 각종 부자재와 도구가 갖춰진 테이블이, 그 뒤로 전날 만든 악기를 말리는 건조실과 대형 열풍기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또 하나 이색적인 것은, 오늘 수업이 얼마나 열성적일지 미리 보여 주듯 바닥 전체가 비닐로 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참가자들도 비닐 비옷을 입고 신발을 비닐로 싸매는 등 준비 태세를 단단히 갖추고 있었다. Euromodels

 

종이악기 제작 과정
종이악기 제작 과정



 

아직 이틀째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많은 참가자가 전날 만들어둔 악기들을 손보거나 물감을 섞어 조색하는 등 준비에 한창이었다. 곧, 간단한 제작 요령을 듣고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미리 준비해 온 러프 스케치를 바탕으로 악기 위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그림이나 컬러 패턴을 검색해 응용하기도 했다. 물론 바로 붓을 들어 과감하게 채색부터 하는 사람도 많았다. 단색으로 통일하거나 그라데이션을 넣거나 붓으로 터치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각기 다른 개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채색을 마친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비즈나 단추를 붙여 악기를 꾸몄다. 큼지막한 비즈로 맑고 빛나는 눈을, 작은 비즈로 하늘을 수놓은 별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음 순서는 현을 만드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설명에 따라 4개의 현을 팽팽히 당겨, 줄 간격을 일정하게 고정했다. 실제 악기의 경우 이 과정에서 줄 간격이 일정하지 않게 고정되거나 느슨해질 경우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예민하게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비록 종이로 만드는 악기였지만, 참가자들은 진짜 악기 제작자가 된 것처럼 열과 성을 다해 악기를 만들었다.

 

종이악기 제작 과정
종이악기 제작 과정



 

마지막 과정은 활 만들기. 둥근 나무 막대 끝에 스티로폼을 붙이고 검정 전기 테이프를 동여매 활털걸이를 묘사하니 그럴싸한 활이 탄생했다. 악기 제작이 모두 끝나자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완성된 악기를 손에 쥔 참가자들은 성취감으로 충만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스트라디바리* 부럽지 않아 보였다.

 

종이악기 워크숍

 

꿈의 오케스트라와 엘 시스테마

 

이번 워크숍은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엘 시스테마를 본떠 만들어졌으며, 현재 전국 32개 거점기관에서 1,7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하고 있다. 이번 워크숍을 위해 초청한 캐나다의 시스테마 뉴 브런즈윅Sistema NB, 이하 NB의 캔 맥크라우드, 에런 맥파렌, 케이티 베스바터는 캐나다 현지의 ‘종이 악기’ 시스템 도입 사례를 통한 교육적 효과에 대해 조언했다. 최초 종이 악기 교육을 시도한 베네수엘라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 시스템을 도입했으나 캐나다의 경우 아이들이 악기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하고, 악기로 인해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교육 여건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들의 조언이 종이 악기 워크숍 활용 방식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로 다가왔다.

 

엘 시스테마의 수혜자가 대부분 저소득층을 위시로 한 사회 소외계층이기에, 대부분 처음 악기를 접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들은 오케스트라를 실제로 본 적도, 오케스트라 중 단원의 역할이나 행동 양식에 대한 지식도 없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엘 시스테마 사업 기관들은 악기 파손이나 악기를 통해 일어나는 안전사고 발생 등의 위험을 안고 있다. 종이 악기와 종이 악기를 통한 교육은 이 문제에 놀라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종이악기 제작 과정
종이악기 제작 과정



 

종이 악기의 역할과 ‘꿈의 오케스트라’의 미래

 

종이 악기는 아이들 스스로 제작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자신이 직접 만든 악기에 애착을 형성한다. 또한, 진짜 악기를 소유하는 것에 대한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도 있다. 종이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게 되며 실제 악기를 지급할 때 생길 수 있는 파손 우려가 줄어드는 것은 덤이다. 이들은 종이 악기를 다루며 악기를 존중하게 된다. 또한, 악기를 들고 활을 쥐는 방법, 오케스트라에 대한 사전 교육까지 소리 내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종이 악기를 통해 배운다.

 

NB에서는 총 6주 간의 종이 악기 과정을 수료한 아이들만이 가족과 지인들이 참석한 연주회에서 많은 청중으로부터 음악가로 인정받고, 진짜 악기를 수여 받는다. 이는 비록 종이 악기이지만 그 의미에 그치지 않고, 꼬마 단원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고 나아가 공동체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을 시사한다.

 

강릉문화원 최진 행정 코디네이터는 “실제 현장에서 악기 관리에 어려움이 많은데, 종이 악기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교육과 관리에 훨씬 유익할 것 같아, 앞으로 신규 강사에게 워크숍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다만, 일주일에 2회 6시간 정도 교육 중이기에, 종이 악기 프로그램에 할애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 종이 악기를 만드는 데 얼마나 비용이 소요될지 등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밝혔다.

 

이번 워크숍에는 ‘꿈의 오케스트라’를 시행 중인 거점기관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해, NB의 종이 악기 제작과 활용을 공유하였다. 사업 4년 차를 맞이한 ‘꿈의 오케스트라’가 더욱 확장되고 내실을 다져, 한국형 엘 시스테마로 정립되고 더 나아가 엘 시스테마의 롤모델로 자리 잡길 기대해 본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1737):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명장. 현재의 표준형 바이올린을 창시하였고,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최고의 명기로 꼽힌다.

 

글•사진_ 서유경